RUST RAW novel - Chapter (490)
러스트 [RUST]-490
김 양은 방에 들어가 침대 위로 점프했다.
아아아악!
고양이가 냥냥 펀치를 하는 것처럼 베개를 두들기는 김 양.
‘왜 그랬지?’
어째서 그랬을까?
팍- 팍- 팍-
외팔이년이랑 빵년 면상을 보자니까 마음이 불편하다 못해 기분도 나빠지고 여하튼 그랬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다운인데, 1호기 간호사가 반지 들고 얄롱얄롱 그러는 거 같아서 더 짜증이었고.
반지라고 하면 응당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런데 반지를 1호기한테 주다니, 어쩐지 자존심 상하는 김 양이었다.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는 것처럼, 서로 목숨을 구해주고 지켜준 사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이제까지 얼마나 그렇고 그랬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 계속됐다. 1호기 때문에 짜증 난 상황에서 감히 2호기가 반반한 면상을 들이밀고 반지를 요구하는 것 아닌가?
1호기는 반지 받았다고 의기양양, 2호기는 뻔뻔하게 대놓고 반지를 노리고 이것들이 전부 정신 넋 나갔는지 나대는 통에 울컥하려는 순간 마루가 일갈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이고 죽는 아수라장을 거친 자신도 살기 때문에 찔끔했을 정도니, 간호사와 후드는 까무러치지 않았을까 했는데 웬걸.
둘 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기절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정신계 장비로 의심되는 장신구를 푼 상태인데 말이다.
‘이상하네. 그년들이 앞뒤 없이 개기는 것도 그렇고. 이상해.’
팍- 팍- 팍-
팍- 팍- 팍-
시원하게 베개를 두들기던 김 양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년들이 설마···.”
K-드라마로 단련된 그녀의 촉이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1호기와 2호기가 옆자리를 노리는 것 같다고.
그렇게 그녀는 마음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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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으아아악!
“그쵸. 저도 깜짝 놀랐다니까요.”
죽다 살아난 까마귀가 간호사의 어깨에 앉아 넋두리했다.
가벼운 살기라고 했지만, 소형 동물에게는 가볍지 않은 살기. 특히 마지막에 반지 빼라고 하고서 소리 지른 건 정말 무서웠다.
까악- 깍!
“그쵸- 저한테 관심 있으신 거 맞겠죠?”
팔찌, 발찌, 반지가 있었는데 콕 집어서 반지를 주셨다.
아무 의미가 없을까?
단순한 우연일까?
그분이 하신 일인데?
자기를 특별하게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오노 나나에는 가슴이 너무 떨렸다.
깍! 까악!
“그. 골을 넣으면 이기는 게 맞죠. 네.”
골대에는 골키퍼가 있는 게 당연하기도 했고, 골을 넣으면 이기는 것도 맞았다. 그런데 까마귀가 그걸 어떻게 알고 이야기를 하는 건지.
까아아악-
“에? 알이요? 아니 거기까지는···.”
까악? 깍!
“먼저 알 낳으면 끝이라고요? 그래도···.”
까마귀가 간호사에게 드리볼과 마르세유 턴을 지도하는 동안, 후드는 사만다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딘가 들뜬 친구의 모습에 사만다가 다양한 센서로 제니아를 확인한 결과 심박수와 체온이 미세하게 높았지만, 정상범위 안쪽이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그래 보여?”
후드의 반쪽 얼굴이 미소 지었다. 지금은 반쪽이지만 분명히 완치시켜 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니, 단순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깊은 감정.
[이젠 괜찮은 거야?]“······.”
자기도 모르게 리듬에 맞춰 꼼지락거리던 발가락이 사만다가 꺼낸 말에 딱 멈췄다.
그녀는 과거를 되돌리고 싶었다. 인간을 데이터화 하는 데 성공한다면, 과거-현재-미래라는 인과관계는 의미 없었다.
데이터화에 성공해 메타 유니버스에 들어간다면 모든 것을 원하는 데로 할 수 있었다. 부모님과 친구의 죽음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도 간단했다. 그런 세계를 만들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녀와 사만다가 만들고자 하는 세계는 그랬다. 그녀뿐만 아니라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세상. 제니아와 사만다는 그런 세계를 꿈꿨었다.
“괜찮아.”
지금은.
후드는 자기도 모르게 설핏 웃었다. 화상으로 뻣뻣한 반쪽 얼굴이 현실을 일깨웠지만, 그마저도 기꺼운 그녀였다.
[트리아가 박사의 연구자료를 공유해 왔어. 어떻게 할까?]“뇌둥둥 박사?”
[잭 니스 박사.]“어쨌든 그와 우리 생각은 다르잖아.”
인간을 데이터화 하자는 쪽은 같았지만, 지향점이 달랐다.
그녀와 사만다는 개인이 각기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게임으로 따진다면 싱글 플레이에 원하는 모드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임. 배경이든 규칙이든 개인이 마음대로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게임.
이와는 달리, 박사와 트리아가 원하는 세상은 현실처럼 일정한 규칙이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게임으로 따진다면 멀티플레이 게임. 모드도 없고 트레이너도 없는.
그래서 그들의 게임에서는 그와 트리아가 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규칙을 다루고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건 그들뿐이었으니.
“나는 굳이 우리 연구를 공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너는?”
[그쪽 연구를 참고할 수 있다면 연구자료 공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어째서? 그 박사 이상하다는 거 알잖아.”
[제국에서 가져온 기후예측 파일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든 게 사실이야. 만일을 위해서라도 관련 기술을 연구해두는 건 필요해 보여. 그것도 되도록 빨리.]제국이 됐어도 IVY 리그 대학이 어디로 도망가는 건 아니었다. 남부연맹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많은 대학을 가진 제국.
대학마다 연구실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남부연맹과 제국의 연구력 차이가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런 제국에서 중요하게 연구하고 있는 사안이 미래예측 분야였다.
그런데 그 미래예측 가설이 굉장히 심각했다.
“그렇게 심각할 정도야?”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연산해 본 결과 지구는 멸종단계에 들어갔다는 결론이야. 이대로 가면 앞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영역은 굉장히 줄어들 거고.]겨울에 동면하는 동물처럼 할 수 있는 저온수면 장치 연구도 필요했고, 어쩌면 육신을 버리고 데이터화를 해서라도 자아를 유지하는 방법인 정신-기억 데이터화도 필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다.
[인간이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건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체인이 있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그 글로벌 시스템이 무너져 버렸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까?]인공지능이기에 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진단이었다.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도 이겨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도 금방 잘 넘겼잖아. 시간이야 조금 걸리겠지만 경제 문제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재작년 대재난으로 일본이 무너졌을 때, 기존의 세계 경제 시스템은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해.]경제 3위 일본이 수출, 수입하던 물량이 사라졌다. 당연히 대공황 급 충격이 세계를 휩쓸었어야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어째서?
일본이 사라졌음에도 작년과 재작년 크게 변한 게 없다고 느꼈던 이유가 뭘까?
감염자들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한 혼란, 식인귀의 창궐, 변이 괴수들의 출몰, 중국과의 전쟁, 유럽의 난민 내전 발발 같은 일들이 한 번에 터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망한 후폭풍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 경기침체는 이미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말이 침체지 따지고 보면 침체가 아니라, 이미 죽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
당장 기축통화인 달러가 끝장났다. 남부연맹은 연방이 퍼질러 싼 빚을 갚지 않겠다고 떨어져 나갔고, 달러를 붙잡고 있던 동부도 때려치우고 제국으로 간판을 갈아 버렸다.
미국 국채는 어쩌고 달러 결제 시스템은 어쩔 건가?
일본이 망해 버리면서 공중에 뜬 엔화 경제 규모는 어쩌고?
사실상 글로벌 시장과 공급망이 동시에 죽었고 다시 살아날 기미는 없었다.
[연산결과. 인간들이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어. 남은 건 전쟁밖에 없다는 결론이야.]큰 손인 중국이 7개로 쪼개져 싸우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동부의 제국과 남부의 연맹이 으르렁대는 중.
그렇게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되자, 중동이 미쳐 날뛰고, 유럽과 인도도 마찬가지였다. 여차하면 다시 핵전쟁이 터질 수도 있었다.
핵전쟁이 터지지 않는다고 해도 식량, 에너지, 원자재를 둘러싼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앉아서 굶어 죽을 바에야 전쟁이라도 해야 할 판인 나라들이 점차 늘고 있었다.
북반구 중위도 이상 지역에서는 7~8개월 동안 이어진 혹독한 한파와 폭설이 적도 인근과 남반구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들었다.
대규모 농사는 끝장났고, 당장 수확하려면 콩과 옥수수, 감자라도 심어야 할 판인데 곡물회사에서는 지금 상황을 이용해 규제를 풀고 이익을 챙길 생각만 하고 있었다. 대규모 기아와 아사 사태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불확실성이 너무 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해.]다시금 인간 데이터화 기술과 저온수면(동면) 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만다였다.
“···이야기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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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한 원인을 찾았음에도 마루는 멈추지 않았다.
“디아나. 장신구 성분 조사 결과는 아직이야?”
[팔찌의 성분 분석이 끝났습니다.]“바로 올려줘. 나머지는?”
[하루는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마루가 보고서를 읽었다.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재질인지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세라믹 계열 재질이었다.
“뼈 성분인가?”
[본-차이나와 유사한 구조라고 합니다.]단순히 뼈를 깎아서 만든 것도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본-차이나도 아니었다. 괴수 뼈일까?
[중심부에는 살아있는 세포조직이 있습니다. 일종의 신경세포로 보인다는 연구결과입니다.]“괴수의 뼈에 괴수의 신경세포인가?”
[뼈는 괴수의 뼈이지만, 중심에 있는 신경세포 조직은 인간의 DNA라고 합니다.]“인간? 일반인?”
[식인귀 아니면 감염자의 것으로 보입니다.]“바이러스에 감염된 신경세포라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현재 신경세포에서 발산하는 정신파가 있는지 실험하고 있습니다.]“아까 회의실 영상 올려봐.”
장신구를 차게 한 뒤 미약하게 살기를 뿌렸을 때 세 여자의 반응이 이상했었다.
[?] [?] [?]세 여자의 표정이 비슷해진 장면,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오른 것 같은 모습. 약간 발갛게 달아오른 볼. 그렇게 자신을 쳐다보는 세 여자의 시선.
정신계열 방어라고? 저 표정이? 오히려 정신계열에 당해서 저러는 거라면 몰라도?
“이상하지? 아무리 봐도 정신계열에 당한 것 같은데?”
[···센서 기록 확인 결과 세 사람 모두 심박수와 호흡수가 소폭 상승했습니다.]“그치? 아무래도 당한 것 같지?”
[···아이돌 팬 행사장에서 생기는 신체 반응과 연인들이 데이트할 때 보이는 신체 반응과 유사하다는 연산결과입니다.]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살기에 처맞더니 데이트 반응? 연예인 팬 서비스?
확실히 놈들의 장비는 무서웠다.
[장신구에서 나오는 정신파가 분석됐습니다. 특정 감정이 최고조에 달할 때 나오는 정신파와 유사한 패턴입니다.]장신구에서 나오는 정신파가 서로 상쇄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중첩 증폭되는 영역이 있었다. 따끈따끈한 분석자료를 훑던 마루가 자료에 별표를 그리며 말했다.
“여기 이 자료. 파형이 왜 4개지? 장비는 3개인데?”
[외부에서 간섭한 파동입니다.]외부에서 간섭?
“이거 지금 시뮬레이션 돌려봐. 외부 파형이 들어오기 전이랑 후랑 나눠서.”
[시뮬레이션 결과입니다.]역시나 외부에서 자극하는 파형이 있었다.
“외부 파동 근원지 역추적 가능한가?”
[연산 시작합니다.]특수컴퓨터의 연산력은 엄청났다.
삽시간에 지도가 떠오르고 그 위에 붉은 점이 딱 찍혔다.
블라디 아크 타워가 보이는 공원. 외성벽 바로 인접한 공원에 정신파를 뿜고 있는 뭔가가 있었다.
“김 양과 에리카, 친위대를 보내.”
[알겠습니다.]굴러라.
구르면 정신을 차리겠지.
일단 김 양부터 시작하는 마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