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0)
러스트 [RUST]-50
김 양은 작은 돌돌이와 함께 달렸다.
중간중간 돌돌이에서 최루탄과 연막탄을 꺼내 까면서 달렸다. 최루탄과 연막탄이 줄어들수록 돌돌이 무게가 점점 가벼워졌다. 그래도 돌돌이 바닥에 깔린 묵직함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뭔가 뿌듯한 묵직함.
그러니까 골드의 묵직함? 호텔 사장 심은영의 대역을 로열 마리나 근처까지 안전하게 배달하는데 배달비 금 4kg. 이건 못 먹어도 고였다.
푸쉭-
푸화아아아악-
최루탄과 연막탄이 뽀얀 연기를 사방으로 뿜어댔다.
심은영의 대역, 일본어로 카케무샤라고 했던가? 그림자 무사? 어쨌든 샬롯 호텔 사장과 정말 똑같이 생긴 여자였다. 자신도 깜박 속을 뻔했다. 어제 같이 밥을 먹어서 알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못 알아차렸을 것이다.
열심히 달리면서 생각해보니 기분이 좀 묘했다. 못 알아차렸다면 대역인지 모르고 그냥 보디가드 노릇했을 거 아닌가? 그것도 어제 받은 선수금에 묻혀 퉁 쳐서. 그래서 이렇게 기분이 칙칙한 건가?
언덕 위에 지어진 샬롯 호텔이라, 포위를 빠져나온 뒤엔 완만하게 아래로 기울어진 경사를 타고 달리니 편했다. 끌고 뛰는 돌돌이도 그냥 자동으로 경사 타고 굴러가 힘도 덜 들었다.
근데 왜 계속 찝찝하지?
슬쩍 뒤를 보니, 호텔 사장 대역, 그리고 음- 어제 돈 가방 가져왔던 아저씨. 그러니까 가방 셔틀 아저씨. 마지막으로 신경 거스르게 하다 스카우트 됐다는 이 실장? 승진해서 이 과장? 이렇게 3명이 막 뭔가를 뿌리면서 뒤따르고 있었다.
플라스틱 재질로 보이는 동그란 건데. 사방으로 파종하듯 흩뿌리고 있었다. 소형 발목지뢰는 김 양도 본 적 있었다. 대략 100g 정도 되는 것이었다, 근데 지금 저 사람들이 뿌려대고 있는 건 김 양이 봤던 작은 발목지뢰보다도 훨씬 작은 거였다. 무슨 밟으면 소리 나는 알람 같은 건가?
‘뭐하는 짓이래? 후딱 내려가서 째질 생각을 해야지.’
언덕을 다 내려와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랬다. 이쯤 왔으면 이제 각자 갈 길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김 양은 걸음을 늦췄다. 김 양이 걸음을 늦추자, 뒤따르던 사람들도 걸음을 늦췄다.
“거기. 이 과장님? 이제 언덕 다 내려와서 이제 로열 마리나 근처인데요? 이제 각자 찢어지죠?”
이기영 과장이 ‘에이 뭘 또 그렇게.’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도 로열 마리나 가는 길이라서요. 그냥 앞장서서 가세요. 우린 조용히 알아서 갑니다.”
응? 이건 뭐라는 소리야?
“로열 마리나 근처까지만 배달해 달라면서요? 근데 로열 마리나로 가신다?”
“예. 일단 배를 타고 도망치겠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김 실장이고 월드 애들이고 득달같이 달려들 거 아닙니까?”
로열 마리나. 그러고 보니, 거기 우리 배도 있잖아?
위험해. 그래, 찝찝함의 원인이 이거였어.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살짝 돋으려고 했다. 뭔가 위험한 느낌이었다.
거기서 회사랑 샬롯이랑 붙으면? 백정 튀어나오는 거 아냐?
빡친 얼굴로 칼 뽑는 백정을 상상하자 진짜 소름이 돋았다.
이대로 가면 빼박 내가 샬롯 애들 데리고 어그로 끌어서, 김 실장이랑 회사 직원들 끌고 가는 거로 보이겠네?
그러니까 백정이 지금 이 상황을 보면 너님 아웃?
“잠깐. 그러니까 이대로 뒤에 김 실장이랑 회사 직원들 달고 로열 마리나까지 가겠다는 건가요?”
김 양의 말이 조금 다급해졌다. 그때 멀리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수류탄 정도는 아니고 그 절반? 절반의 절반 정도 되는 폭음? 그리고 억누른 비명? 아까 뿌린 쪼그만 게 지뢰였어?
그 소리가 무슨 의민지 아는 것처럼 이 과장은 여유로웠다.
“그렇죠. 슬슬 우리 애들이 로열 마리나에 도착할 시간이 됐으니, 조금만 더 도망치면서 버티면 됩니다. 우리 애들 도착하면 앞·뒤에서 그냥 콱 해버리면 끝. 그러니까 겸사겸사 김 양이 좀 도와주시면 고맙죠.”
방금보다는 조금 가까운 곳에서 터지는 작은 폭음과 신음.
도와? 뭘? 이게 무슨 미친···.
아니야. 이건 아니지, 이건 무조건 백정 엔딩이야. 난 여기서 나갈래.
“그간의 정이 있어서 말해 드리는데요, 이대로 로열 마리나로 들어가면 다 뒈집니다. 알았죠? 분명히 말해줬습니다. 전 여기서 빠지고요. 그럼.”
돌돌이에 실린 묵직한 정이 있어서 경고는 해줬다. 계약대로 로열 마리나 근처까지 안전하게 배달도 했다. 그러니까 이제 내 책임 없음. 김 양은 굿-럭- 하는 표정을 하곤 진짜 옆길로 빠졌다.
이기영 과장이 뭐라 말을 붙이기도 전에, 돌돌돌 캐리어를 끌며 냅다 옆길로 튀는 김 양.
“하- 뭔 저런···.”
이 과장이 쩝 입맛을 다셨다. 김 양의 화력이 아쉬웠다. 의뢰할 때, 이상하게 로열 마리나로 가기를 꺼리는 것 같아, 로열 마리나 근처까지로 바꿨더니 진짜 딱 근처까지만 동행하곤 그대로 튀었다.
“다 왔으니까 우린 계획대로 갑시다.”
안 팀장이 얼추 애들 데려왔을 시간이니, 조금 더 깊게 끌어들이면 좋았겠지만, 지금 이 정도도 김 실장 잡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퍼엉! 끄윽!
다시 작은 폭음과 비명이 터졌다. 확실히 가까워졌다.
김수현이 표정 볼 만하겠네. 최루탄과 연막탄이 만든 짙은 연기 저편, 살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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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애애애애- 사이렌 소리가 끝나더니 안내 방송이 떴다.
[로열 마리나 관리소에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로열 마리나와 인근 지역에서 대테러 대응 실전 합동 훈련을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해당 지역에서 통신이 차단되며, 통행이 제한될 예정이오니, 이용에 불편하신 분들께서는 시간 전에 훈련 지역 밖으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리겠습니다. 오늘 오전 9시부터··· 통신이 차단되며, 통행이 제한될 예정이오니···, 훈련 지역 밖으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저거 아냐?’ 마루가 기순을 보자, 기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제 마리나 관리소에서 이런 훈련이 있다는 소린 없었어.”
“그럼 저 소린 여기 마리나까지 엮인다는 말이네.”
마루의 말에 기순이 더 첨가했다.
“그리고 이렇게 마리나 사무소에 압력을 넣어, 대규모 조작을 한다는 건.”
“월드 그룹이 샬롯 내전에 개입했다는 소리겠고.”
마루가 기순의 말을 이어받았다.
하- 씨발. 마루는 짜증 났다. 꼭 오늘 이래야 했나? 내일 이랬으면 안 됐나?
장소를 바꾸든지, 하필 샬롯 내전에 월드까지? 뭣보다 다른 마리나는 그냥 두고 왜 하필 여기 로얄 마리나란 말인가?
“샬롯 호텔이랑 제일 가까운 마리나라서 내전 터지면 엮일지도 모르겠다 하고는 있었는데, 진짜 엮이니까 난감하네.”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기순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난 소리, 퍽! 작은 폭발음과 이어진 신음.
마루가 기순에게 눈짓했다. ‘야 들었냐?’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9시 되려면 15분은 남았구만. 에이 씨부럴.
샬롯 애들이 도망치겠다면서 ‘요트 내놔.’ 그러면 요트에 실린 내 돈은? 지금까지 그 생고생을 했는데 배를 뺏겨? 그럴 수야 없지.
마루가 웃통을 훌떡 까곤 방탄조끼를 걸치며 말했다.
“너도 혹시 모르니까 챙겨 입고, 일단 배를 저쪽 앞바다까지 빼라. 괜히 휘말린다.”
퍽! 다시 가까워진 낮은 폭발음과 신음. 뭔가 터졌는데 당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지 않고 삼키고 있었다. 신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아?
허미. 독한 사람들이네.
소리가 난 방향을 보니, 너구리라도 잡는 건지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뭔가 매콤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눈이 살짝 쓰라린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기순아 씨발 저쪽 보니까 최루탄이랑 연막탄도 사정없이 터트리는 것 같다. 이거 금방 출항 가능한 거냐?”
“어- 엔진도 최신형에 추진 방식도 워터젯 형식이라 마리나 빠져나가는 건 금방이야.”
전술 조끼를 입고 홀스터를 묶고는, 권총을 하나 꽂아 넣었다.
뭐가 더 필요하지? 일단 시야를 가릴 게 필요했다. 연막탄을 주렁주렁 조끼에 매단 마루가 구석에 쌓아둔 나무 상자 가운데 하나를 발로 찼다.
상자 뚜껑이 박살 나며 안에 가득 실려있는 것들이 드러났다. 칼과 도끼, 삽 같은 것들이었다. 그 가운데 마루는 중국 생산 미국브랜드의 일본도를 2자루 꺼내 들었다. 월드 축산에서 써보니 어느 정도는 버티는 내구성이었다.
“나 내리면 바로 가라. 그리고 함부로 머리 내밀지 말고. 내밀 거면 그거 뭐냐 셀카봉? 그걸로 내밀어서 보고.”
객쩍은 소리를 해 놓고도 뭔가 그랬는지 마루가 훌쩍 뛰어내렸다.
그런 마루의 뒷모습을 본 기순이 중얼거렸다.
“근데, 사시미는 왜 주렁주렁 뒤에 매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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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실장은 독이 바짝 올랐다. 최루탄 연막탄 까더니 바닥에 발목지뢰를 깐 씹새끼들이었다. 짙은 연기 때문에 바닥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시간이 걸리면 놈들을 놓칠 게 분명했다.
거기에 방해전파 때문에 흩어진 직원들에게 제대로 경고도 못 하는 상황.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발목을 다친 직원들이 늘어났다. 그나마 살포형 소형 지뢰였는지, 밟았다고 발목이 통째로 날아간 건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추격하던 16명 가운데 6명이나 발목을 부당 당해 아웃 됐다.
‘죽인다. 죽인다. 죽여버린다. 씹새끼. 죽인다. 죽인다. 모조리 때려죽인다.’
김수현 실장은 머리끝까지 뻗치는 열기를 참느라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마리나 근처. 강한 바람이 불자, 시야를 가리던 짙은 연막이 휙- 사라졌다.
그렇게 김 실장의 눈에 들어온 장면.
막 급하게 선착장을 빠져나가려는 듯한 배 한 척.
저거다.
저거였다.
놈들이 튄다. 김 실장이 발작했다.
“씨발 저거 막아! 저거 배 막아!”
김 실장의 앞에 가던 직원들이 앞으로 내달리며 소음기 달린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마루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아니 이 새끼들이 말도 없이 총부터 쏴?’
요트에 싣겠다고 과일과 채소를 쌓아놓은 팔레트 뒤에 숨어있던 마루가 상자에 손을 넣었다. 잡힌 걸 확인하지도 않고 마루가 손에 잡은 걸 그대로 집어 던졌다.
획-
빠작-
맨 앞에 있던 직원의 면상을 때리며 폭발한 고구마. 고구마에 처맞은 직원의 팔이 하늘로 들렸다.
투다다다다-
털썩-
그 황당한 모습에, 막 요트에 총을 쏘려고 했던 직원들이 사주경계 태세로 전환했다.
마루는 재빨리 하나 더 던졌다.
휙-
퍽-
얼굴을 때린 사과가 폭발했다. 직원 하나가 짱돌에 맞은 것처럼 뒤로 쓰러졌다.
“방독면 벗어! 시야 확보해!”
김 실장이 바로 뒤따라오면서 소리 질렀다.
깡- 푸시시시식
토옹- 파시시식
마루가 집어던지 연막탄이 터지면서 연기가 자욱해졌지만, 바람 때문에 금방 흐려지기 시작했다.
‘젠장.’
스키마스크처럼 생긴 방탄 마스크를 찬 마루가 칼을 뽑아 들고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흐릿한 연기 저편 서로 등을 맞대고 사주경계를 하는 직원들이 느껴졌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마치 느릿하게 뛰는 것 같은 감각. 온 전신의 피가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위이이잉- 탁
앞으로 내디딘 발걸음 소리를 뒤로하고 몸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연기를 꿰뚫고 탄환처럼 쏘아진 마루의 모습에 한 직원이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휘두른 칼날이 직원의 팔뚝을 때렸다.
퍽!
으직!
‘잘리지 않아?’
마루는 내달린 관성을 살려, 직원의 몸에 몸통 박치기를 했다.
쾅!
자동차에 치인 것처럼 튕긴 직원이 옆에 있는 직원들과 부딪혔다. 볼링핀처럼 우수수 쓰러진 직원들 사이로 김 실장이 마루에게 총을 겨눴다.
탕-
콱!
총소리와 함께 김 실장의 가슴을 때린 뭔가. 방검복과 방탄복을 겹쳐 입었음에도 충격에 갈비뼈가 나간 것 같은 통증에 김 실장은 호흡을 끊었다.
툭- 가슴을 때린 것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눈동자가 아래를 향했다. 바닥에 보인 건 장미무늬 회칼.
“뭔 씨발?”
0,1초나 지났을까? 잠시 아래로 눈동자가 내려갔었을 뿐인데, 상대가 없어졌다.
김 실장은 반사적으로 팔을 들었다.
콰직-
작업용 토시 장갑 위로 떨어진 칼날.
방탄방검 성능이 좋아 잘리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전부 해소하지 못했다.
칼을 막은 팔뚝에서 느껴지는 통증.
꾸우우욱- 내리눌리는 압력.
어디가서 힘이 약하는 소리 들어본 적 없는 김 실장이었지만 이건···.
뭔가 느껴지기도 전에 김 실장은 낙법 치듯 몸을 던졌다.
픽-
공기가 썰리는 소리와 함께 김 실장이 있던 곳에 칼질이 났다.
뭐. 이. 병신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