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05)
러스트 [RUST]-505
비행갑판을 때리는 날갯짓 소리.
푸드드덕- 푸드득-
목이 잘렸음에도 퍼덕거리는 갈매기들은 낙지처럼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까마귀나 다른 조류를 벴을 때와는 조금 다른 손맛. 닭이나 소, 돼지 잡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생선? 낙지? 느낌이 영.’
마루는 이클립스에 묻은 찌꺼기를 털어내며 살짝 고개를 들었다. 어스름한 달빛 하나 없는 깜깜한 하늘을 보자,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쩝-
헬멧 안면 가리개를 열고 생수를 들이켜는 순간,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물을 뿜고 말았다. 지독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기 때문.
푸- 웁-
“뭔 냄새가···.”
실험실 청소하면서 염산 같은 강산을 처리했을 때 나던 냄새가 떠올랐다. 그 비슷한 냄새가 코와 눈을 자극했다.
‘씨발. 항공모함 갑판에서 뭔 이딴 냄새가···.’
바로 안면 가리개를 내린 마루가 냄새의 원인을 찾기 위해 바닥을 살폈다.
‘삭았어?’
갑판은 부분부분 엉망이었다. 수리하지 않은 부분은 어느 정도 괜찮은데, 긴급복구한 부분이 심각하게 부식된 상태였다.
쿠직-
살짝 발끝으로 누르자 과자가 부서지는 것처럼 쑥 들어가는 갑판. 마루는 바로 에드먼드 가필드 장군에게 연락했다.
혹시 오래된 자재로 고친 게 아니냐는 마루의 질문에, 멀쩡한 자재를 사용해서 수리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항모를 나포하러 올라왔을 때도 수리한 자국이 있었지, 이렇게 심각하게 부식된 흔적은 없었다.
바로 오늘 낮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갑판을 관리하는 병사들이 이렇게 심한 부식을 그냥 뒀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삭은 게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건데.
‘이건···. 새 똥?’
부식된 곳 주변을 확인하자, 미끄덩하게 퍼진 무엇. 갈매기가 싼 똥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치이이익-
실시간으로 부식되는 것을 보니, 더러운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걸 어쩌나 고민하는 마루에게 레이먼드 가필드 장군이 연락했다.
[칙- 갈매기 떼, 함대 상공에 도착. 숫자는 1만 내외.]“기다립니다. 신호 보낼 때까지 기다리세요.”
잠시 뒤, 공기가 울렸다.
부르르르르르-
부우우우우우-
커다란 들통 가득하게 물을 담고 팔팔 끓일 때 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무언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다닥-
타다다다다다다-
소나기처럼 무섭게 쏟아지는 물컹한 덩어리들.
항공모함 비행갑판이 톡- 쏘는 산성 용액 냄새로 가득 차며, 지글지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미친! 지금!”
마루의 신호와 동시에 조명탄과 섬광탄이 발사됐다.
번쩍- 쨍하게 터진 섬광탄과 조명탄이 태양처럼 하늘을 밝혔다.
끼루루루루룩!
끼룩!
빙빙 돌며, 똥을 싸지르던 갈매기들이 갑작스럽게 터진 밝은 빛에 눈이 멀어버렸다.
팍-퍽-
끼루룩?
1만 마리에 육박하는 갈매기들이 하늘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비행대형이 삽시간에 뒤엉켜버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타다다다다다-
조명탄의 불빛으로 눈이 멀고 이어진 연쇄충돌로 우왕좌왕하는 갈매기들이 가득한 하늘. 구름처럼 빽빽한 갈매기 떼를 향해 항공모함과 7척의 이지스함에 장착된 25mm 벌컨포가 불을 뿜었다.
예광탄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고 하얗게 피투성이 된 갈매기들이 우박처럼 떨어지는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갈매기들이 고도를 높이고 속도를 높여 벌컨포의 사거리 밖으로 도망쳤다.
항공모함 관제실에서는 레이더 범위 밖으로 빠지는 갈매기 떼를 보곤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휘익-
이야아아-
에드먼드 가필드 장군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했던 말을 되새겼기 때문이었다.
‘까마귀도 많이 집요했습니다. 당연히 갈매기도 집요하리라 생각하고 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처음 작전이 성공해서 갈매기를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함재기를 모두 살리는 건 어려울지 모릅니다. 똑똑하다는 건 상황을 분석할 줄 안다는 뜻이고, 상황을 이해했다면, 함재기를 노릴 겁니다.’
“그만. 놈들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피해 상황 확인하고 갑판 정리 시작해.”
“넷!”
“정리 끝나면 바로 착함 유도에 들어간다. 연료 떨어지기 전에 착함시키려면 시간이 없다. 서둘러.”
“옛!”
“수리팀 갑판으로!”
“갑판 정리해. 빨리빨리.”
“갑판이 부식됐습니다!”
“이대로는 착륙 못 합니다.”
“그냥 대충이라도 구멍 막아!”
“착륙만 하면 돼. 착륙만.”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갑판을 때우는 보강공사가 시작됐다.
그걸 지켜보던 마루는 함교 안으로 들어가, 리퍼 슈트에 묻은 갈매기 똥을 닦아냈다.
치지직- 칙-
흐릿하게 마루의 모습이 드러났다.
‘페인트가 벗겨진 부분 금속이야 그렇다고 쳐도, 뭔 놈의 새똥이 신발 밑창까지 녹이는지.’
함대 전체의 불을 꺼. 암순응을 시킨 뒤, 섬광탄과 조명탄으로 시력을 뺏는 작전이 성공했지만, 갈매기들이 포기할 가능성은 없었다.
“착함 유도 시작해!”
“착륙 보조 케이블 걸어.”
“고리가 전부 삭았습니다.”
“삭았으면 매듭으로 묶으라고. 비상 매뉴얼 몰라?”
함재기 하나가 착륙하기 시작했다. 덧댄 흔적이 역력한 갑판이었지만, 착륙의 충격을 버텨내고야 말았다.
“성공이야!”
“됐어. 빨리 신호 보내!”
그렇게 연료가 간당간당한 순서대로 9대의 함재기가 착륙했을 무렵, 레이더병이 외쳤다.
“갈매기떼 접근.”
“시간은?”
“빠르면 3분. 늦어도 5분 안쪽입니다.”
“착함 유도는 어떻게 할까요?
아직 착륙하지 못한 2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살짝 긴장감이 감도는 관제실에 에드먼드 가필드의 목소리가 울렸다.
“착함 유도 계속해.”
“옛.”
“이지스함은 등화관제를 유지한 채 기동한다.”
처음은 제대로 먹혔는데, 이번에는 어떨까?
예상대로 갈매기들은 착함하는 전투기 뒤를 쫓지 않았다. 착함 유도등이 밝게 켜진 항공모함 주변을 날아다니며 이지스함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착함 완료했습니다.”
“함재기 전부 수납하고 갑판 비운다.”
“함재기 수납 완료.”
“전부 들어가! 갑판 전부 비우라고!”
삽시간에 깨끗하게 비워진 갑판 한쪽, 은신 상태로 대기한 마루가 관제실에 신호를 보냈다.
“일괄 소등실시!”
“일괄 소등실시!”
유도등을 비롯한 모든 불빛이 꺼진 항공모함에 짙은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25mm 벌컨포 부사수가 속닥였다.
“갈매기 놈들이 또 당할까요?”
“입 다물어. 두고 보면 알겠지.”
툭-
치이이익-
하늘에서 떨어진 갈매기 똥이 강철 장갑판에 떨어지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독한 냄새와 함께 삽시간에 부식되는 장갑판. 25mm 벌컨포가 삽시간에 얼룩덜룩 뭉개지기 시작했다.
툭- 투두두둑-
두두두두둑- 둑-
우박이 쏟아지는 것처럼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갈매기 분비물. 수리해서 때운 부분만 부식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전체적으로 부식되고 있었다.
‘후퇴한 이유가 산을 농축시킬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나?’
갑작스럽게 두근거리는 심장. 불길한 느낌에 마루는 즉시 작전을 시작했다.
[바로 시작합시다.]처음과는 달리 마찬가지로 섬광탄만 하늘을 밝혔다. 번쩍거리는 불빛과 굉음이 클럽 사이키델릭 조명처럼 빛났다.
“섬광탄이 먹히지 않아?”
“편대 비행? 눈을 감고?”
섬광탄이 터질 때마다 드러난 하늘. 살짝살짝 오와 열을 맞춰 비행하는 갈매기 떼는 섬광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날고 있었다. 저걸 잡으려면 집중포화를 쏟는 게 효과적으로 보였다.
“조명탄을 쏠까요?”
“아니. 작전대로 한다.”
에드먼드 가필드 장군은 블라디마쿠 칼린의 작전대로 할 것을 명령했다.
“벌컨포 발사.”
벌컨포가 반짝반짝 언뜻 드러난 갈매기 떼를 향해 불꽃을 내뿜기 시작했다. 길게 잔상을 남기며 허공을 수놓았다.
항모에 있는 벌컨포가 전부 불을 뿜었지만, 4문의 팔랑스 벌컨포로는 충분한 화망을 만들지 못했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예광탄을 이정표 삼아, 갈매기 편대가 하나씩 항공모함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지금.]마루의 신호와 동시에 항공모함에 불이 켜졌다.
그렇지 않아도 항공모함을 노리던 갈매기들의 시선이 어두운 밤 홀로 빛나는 항공모함을 향했다.
번쩍- 길게 뻗은 서치라이트가 갑판 중앙을 비췄다.
인간 하나가 떡하니 서 있는 모습.
끼룩? (인간?)
끼룩끼룩- (미쳤나-)
끼루룩-낄- (잘됐네. 먹자.)
인간 놈들 산채로 먹히는 모습을 보면 무서워서 엉엉 울겠지.
처음 공격하기로 한 갈매기 무리가 입맛을 다시며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처음과는 달리 드문드문 쏟아지는 총탄은 위협 거리도 되지 않았다.
끼루루룩! (내가 첫입이다!)
끼룩! (눈알은 내 거!)
기세 좋게 내려간 갈매기들이 인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인간에게서 검붉은 기운 같은 게 퍼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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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 피어오르는 무엇인가.
그래 그건 보이는 게 아니라 전신을 파고드는 무엇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갈매기들은 알 수 없었지만, 몸이 공포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끼-
끼루룩
심장이 멎었다. 숨이 막히고 날개를 움직일 수 없었다.
갈매기들은 그대로 딱딱하게 굳은 채 갑판 위에 처박혔다.
퍽- 퍼버벅- 퍼벅-
관제실에서 그 장면을 본 에드먼드 가필드 장군과 병사들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저. 저게 뭡니까?”
“자살? 저거 자살 아닙니까?”
시속 150마일(240km) 넘는 속도로 꼬라박는 걸 뭐라고 해야 할까?
한 무더기 갈매기들이 죽고, 또 한 무더기가 내려꽂혀 죽었다. 간혹 블라디마루 칼린 가까이 접근한 갈매기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둘러진 칼에 의해 깔끔하게 절단됐다.
콰직-
뻐득-
끼이이-
충돌하면서 고깃덩이가 터지는 소리. 뼈가 부러져 뭉개지는 소리. 그리고 부식된 갑판이 힘겹게 우그러지는 금속음까지. 이제는 사체 때문에 블라디마루 칼린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됐다.
“맙소사.”
“저··· 저. 그게 사실이었어.”
누군가는 공포에 빠졌고, 어떤 이는 중얼중얼 HOLY를 찾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
에드먼드 가필드도 할 말이 없었다. 칼로 관제실 옆구리를 찢은 건 그렇다고 하자, 칼로 총알을 튕겨낸 것도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지금 저건 뭐란 말인가?
그렇게 수북하게 쌓인 갈매기 사체를 밟고 올라선 마루가 어둑한 하늘을 향해 칼을 내밀었다.
까딱까딱-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오와 열을 맞춰 비행하던 갈매기들이 길게 뻗은 쐐기처럼 진형을 바꿨다.
우우우우웅-
푸드드드득-
똘똘 뭉친 갈매기들의 살의가 단 한 사람을 향해 몰려 내려오는 순간, 마루가 신호를 보냈다.
[지금.]번쩍!
번쩍!
이지스함에서 터트린 섬광탄이 어둠을 하얗게 물들였다.
마루 하나만을 노린 갈매기들이 섬광탄에 겁먹지 않고 쐐기 진형으로 유지했지만, 그게 패착이었다.
투두두두둑-
이지스함에 달린 25mm 벌컨포가 집중사격을 시작하자, 뭉쳐있던 갈매기 떼가 지우개로 지워지는 것처럼 하늘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잔잔한 파도.
우수수 떨어진 갈매기 사체들이 작은 물소리와 함께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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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포트 뉴스 조선소를 향해 방향을 돌린 항공모함 관제실.
“······.”
“······.”
“······.”
마루가 관제실에 들어서자,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처음에 에드먼드 가필드 사령관에게 뭐라고 한소리 했다고 눈을 부라리던 자들이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는 모습에 마루가 물었다.
“뭡니까 분위기.”
“크흠. 아닙니다.”
에드먼드 가필드 장군이 살짝 갈라진 목소리도 답했다.
아니긴 뭐가 아닌지, 다들 밖에 좀 나가봐야 하려나?
픽- 웃은 마루가 비행선에 연락했다.
“뉴포트 뉴스 조선소 근처는 어때? 아직도 갈매기들 남았나?”
[대부분 정리된 것 같습니다.]미리 조선소 근처를 정찰한 후드가 영상을 보내왔다. 군데군데 수십 단위로 살아남은 갈매기 무리는 까마귀들이 달려들어 내쫓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갈매기 영역이라서 그런지 괴수나 감염자, 식인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좋은 일이었다.
“바로 거점 방어 들어가도록.”
[네.]모니터에서 잠시 주변 풍경이 지나가나 싶더니, 조선소 전경이 화면에 떠올랐다. 그곳에는 신형 항공모함 2척이 마루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