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08)
러스트 [RUST]-508
“어디 있냐니까? 갓 낳은 알?”
끼루-룩? (아니 저기요. 그거 칼인가요?)
끼룩- (좀 진정하시고.)
마루가 이가 드러나도록 미소 지었다.
“이 새끼들 지금 말 돌리고 있는 거지? 그렇지?”
“에? 엣. 빨리 대답하세요. 그러다 죽어요. 진짜.”
간호사가 큰일 난다고 갈매기들에게 말했지만, 갈매기들은 못 알아듣는 척했다.
푹!
푸국!
푸드드득-
퍼덕퍼덕-
머리를 잃은 갈매기의 몸통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강한 산성을 띤 배설물이 그대로 쏟아져 나와 바닥을 녹이며 유독가스를 피어 올리기 시작했다.
“에···?”
마루는 간호사를 붙들고 자리를 옮겼다.
“거의 2년이야.”
“······.”
“여기 갈매기들은 2년 가까이 사람을 먹잇감으로 보고 살던 놈들이다.”
“······.”
후드와도 잠깐 이야기했었지만, 여기 갈매기는 사람 알기를 우습게 하는 것들이었다.
인간쯤이야. 인간이 감히.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수북하게 쌓인 갈매기 사체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덤벼들지 않았겠지.
손쉬운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던 인간이 도발하자 참지 못하고 달려든 것만 봐도 그랬다. 그런 놈들이 갑자기 살려달라고 한다? 마루는 믿지 않았다.
“네가 한 말 알아들으면서도 못 들은 척한 놈들이고. 이런 놈들에게 쓸 신경이 있으면 우리 애들에게 신경 써.”
“···예.”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던 간호사가 살짝 마루의 옆으로 다가섰다. 아주 살짝.
“그래도 갈매기들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좋기야 하지. 근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제가 이야기를 해볼게요.”
“까마귀들이 싫어할 텐데.”
같은 종이라면 모를까 다른 새들이 간호사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까마귀들이었다. 알고 그러는 것이든 모르고 그러는 것이든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행동이었던 것.
패주한 갈매기들을 악착같이 추격 토벌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간호사가 갈매기와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다면, 까마귀들과 사이가 나빠질지도 몰랐다.
“그럼 물어보고 할게요.”
까마귀에게 묻겠다고? 까마귀에게 허락받겠다는 건가?
무슨 주객전도도 아니고.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빡 잡혔다.
“물어보긴 뭘 물어봐. 까마귀들이 싫다고 하면 안 할 건가?”
“에? 아니··· 그게.”
“까마귀가 상전도 아니고. 하고 싶으면 그냥 해.”
“예.”
간호사가 감사하다고 작게 웅얼거렸다. 마루는 못 들은 척. 까마귀들을 불러모았다.
“알 품고 둥지에서 버티는 놈들은 죽이지 말고 생포해. 그리고 버리고 간, 알이 있으면 먹지 말고 그대로 둬. 알겠나?”
깍!
까악!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오노 나나에가 말할 테니 잘 듣도록.”
까악!
깍!
“갈매기랑 이야기할 때 조선소에 뭐가 있는지 물어보고. 특이한 점 있으면 그쪽으로 연락해. 나도 조선소에 가보려고 하니까.”
“예.”
간호사에게 자리를 넘긴 마루는 바로 뉴포트 뉴스 조선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갈매기 놈들이 조선소에 뭔가 비밀이 있는 것처럼 했었으니, 한 번은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갈매기 해부 결과가 나왔습니다.]산성 배설물 때문에 급히 확인했었는데 결과가 나온 것.
[산과 미생물의 조합이라고 해요. 자료는 바로 보내겠습니다.]후드가 보낸 영상이 리퍼 슈트의 헬멧 HUD에 떠올랐다. 강한 산성을 띈 분변과 그 속에 있는 균이 시너지를 일으켜 엄청난 부식력이 생긴다는 결과였다.
[비행선에 태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그렇겠지.”
단순한 산성 분변이 아닌, 미생물과의 시너지 효과로 부식을 일으킨지라 일반적인 내산성 페인트를 바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화물칸을 개조한다고 쳐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만에 하나 작전 중에 갈매기들이 비행선 기낭에 똥을 지린다면? 가스주머니에 구멍이 뚫린 비행선이 추락할 위험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갈매기를 배제하기에는 여러모로 아까운 게 사실이었다.
까마귀 폭격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전함이나 요새를 무력화하는 건 쉽지 않았다. 들고 나를 수 있는 폭탄의 무게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인마 살상을 하거나 전차, 자주포, 장갑차 같은 전투차량을 공격할 때는 충분해도, 전투함이나 건물을 공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갈매기의 산성 배설물 투하가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까마귀의 폭탄으로 페인트나 피막을 벗겨내고 거기에 갈매기의 똥이 들어가 녹여버린다면?
그렇게 터뜨리고 녹이기를 반복한다면 함선이든 벙커든 충분히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마루는 갈매기 알을 확보하라고 했던 것이었다.
‘새끼 때부터 키워서 함재기나 거점 방어용으로 쓰려고 했는데.’
간호사가 한 번 해보겠다고 해서 기회를 줬을 뿐, 아니었으면 다 자란 갈매기는 전부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군요. 오노 나나에라면 성과가 있을 겁니다.]“그러면 좋고. 조선소 주변에 이상한 놈들은 없지?”
[네. 근방에 갈매기 둥지가 셋이나 있어서 그런지, 깨끗합니다.]“지금 조선소로 가고 있으니까. 근방에 지원이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 통신 보내.”
[알겠습니다.]조선소로 가는 동안 바닥에 떨어진 갈매기 배설물의 흔적으로 보니, 여러모로 신기한 놈들이었다. 일상적으로 똥을 쌌을 때는 산성도 그렇고 부식력도 높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해야 할 일이 있거나, 공격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 때는 산성도와 부식력이 엄청나게 강해진 흔적이 있었다.
여기저기 녹아내린 괴물 고양이 사체를 보면 확실히 그랬다.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건가?’
음.
길바닥에서 괴물 고양이 사체를 보니, 갈매기들이 조선소에 뭔가 있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조선소에 괴물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걸 중요한 정보라고 한 건 아니겠지?’
그렇게 조선소에 도착하자, 친위대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별다른 문제는 없나?”
[옛.]수색해야 할 면적에 비해 인원이 부족한 것을 빼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마루는 친위대원들이 수색하고 있는 항공모함을 지나, 옆에 있는 항공모함으로 들어갔다.
“항공모함 도면은?”
[확보했습니다. 자료 전송합니다.]항공모함이 작은 도시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니 과연 복잡했다. 지도가 없이 수색한다면 정말 끔찍할 뻔했다. 자세한 수색은 친위대에게 맡기고, 마루는 관제실과 동력실 위주로 돌아보기로 했다.
은신을 장비를 활성화 시킨 채, 한 시간 넘게 항공모함 내부를 살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이럴 때도 있어야지.’
매번 문제가 생기면 그게 인생이겠나? 가끔은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기도 해야지. 작게 웃은 마루가 더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몇 시야 지금.’
출출해서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버렸다. 마루는 한쪽에 앉아 전투식량을 데웠다.
휘이이이이-
발열팩에서 하얀 증기가 뿜어지고, 뜨끈하게 데워진 전투식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우- 이거 생각보다 먹을 만하네.’
허겁지겁 먹기를 반쯤 먹었을까? 밥 먹기 위해 벗어 놓은 헬멧에서 조그만 소리가 점차 겹쳐 나기 시작했다.
삐-
삐삐-
삐삐삐삐삐삐-
생체감지기에 표시된 붉은 점이 다닥다닥 찍히고 있었다.
“에이. 씨-.”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데. 이제껏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밥 좀 먹자고 하니까 기어 나와?
숟가락을 내려놓은 마루가 칼을 뽑았다.
스르르르르르릉-
동시에 붉은 점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삑삑삑삑삑삑-
삑삑삑-
삑삑-
삑-
-어?
야. 어디가?
이 씨발.
거기 안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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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은 냉기를 풀풀 날리며 걷는 나주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심은영 회장과의 만남에서 빈 정이 상할 대로 상한 듯 보였다.
1년이 넘게 그녀와 같이 일해본 결과, 그녀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마루와의 관계도 그래서 파탄 났고, 오진 그룹도 사실상 자기중심적인 판단 때문에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울릉도로 오진 그룹을 옮긴 것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울릉도에서 미국으로 넘어올 때는 문제가 많았다.
‘국토안보국과 버지니아 랭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면 국토안보국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루와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제가 부탁한 건 제대로 들어준 적 없더군요.’
나주연도 초반에는 국토안보국과 더 많이 정보를 교환했다. 하지만 국토안보국에 요구해서 받아본 정보와 자료는 그녀의 기준에 한참 모자랐다.
자료의 방대함도 그렇고 국제정세에 대한 정보의 질도 버지니아 랭리의 것이 훨씬 좋았다. 거기에 변이 바이러스 연구자료와 파생된 연구는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남부연맹에 합류하는 게 배울 점이 많아요.’
‘마루가 왕국을 건국했어도?’
식인귀를 통제, 지배하는 연구는 그녀가 연구하고 있던 약의 주제와 비슷했다. 그래서 그녀의 합류로 늑대인간을 지배 통제하는 데 효과적인 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남부연맹에서 나주연의 중요성은 높아졌고, 그만큼 그녀는 자유를 잃게 됐다.
‘제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면 반드시 오겠죠? 그렇잖아요.’
적대적인 세력이 성장하는 걸 그냥 둘 리 없으니까 말이죠. 기순은 황당했다. 설마하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그래서 스스로 갇혔다고?’
‘겸사겸사. 연구환경은 좋잖아요.’
‘너 진짜 마루랑 잘하고 싶은 생각은 있는 거냐?’
‘그럼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목숨을 걸겠어요? 당신이 나루에게 목숨을 거는 거랑 비슷한 거죠.’
폭풍 한설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걷던 나주연이 뒤를 휙- 돌아봤다.
“무슨 생각을 하죠?”
“지금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나 그런 생각?”
기순의 말에 그녀가 차갑게 웃었다.
“무슨 짓이긴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거죠.”
“···그래. 나는 그렇다고 치자. 그럼 너는 뭘 하고 있냐?
“저도 마찬가지죠.”
“방법이 잘못됐다고 생각 들지는 않고?”
“당신이 할 말인가요? 저는 그래도 그의 눈에 밟힐 짓을 하고는 있다고 생각되는데, 당신은 그것도 못하고 있잖아요.”
“하- 씨- 그래. 그런데. 너. 내가 여러 번 말했지만, 이런 식은 정말 아니다. 마루 놈 보기보다 단호한 면이 있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방법밖에 없는 거고요.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절 생각이라도 해줄까요? 솔직히 말해봐요. 가만히 있었으면···. 그 사람이 세운 왕국으로 갔다면, 그 사람이 절 만나주고 그랬을까요?”
“······.”
그렇기는 했다. 마루 새끼라면 분명히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신경을 썼을 거면 오진 그룹이 울릉도로 옮겨 갔을 때 신경을 썼겠지.
나주연은 기순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다.
“······.”
“하- 씨-”
작게 욕설을 내뱉는 기순을 물끄러미 바라본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이럴 수밖에 없어요. 아직도 모르겠나요? 당신과 저는 이미 저주에 걸렸다는 걸.”
“······.”
저주라는 이름의 사랑, 혹은 집착이겠죠.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었으니, 저는 힘들어도 당신은 갈 수 있어요. 원한다면 그분에게 가도 좋아요. 가실 건가요?”
“······.”
기순이 입술을 짓씹고 나주연의 뒤를 따랐다.
그래 이건 저주였다. 사랑 따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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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두두둑-
두다다다닥-
무게가 20kg은 족히 나갈 법한 쥐들이 떼로 내달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찌이익- (엄마. 저거 뭐야 무서워.)
찍 찌이익!- (그럴 소리 낼 힘 있으면 달려!)
“야 씨발- 쥐 새끼들이!”
“거기—서!”
온다. 온다. 온다.
그게 오고 있었다.
죽음이 오고 있었다.
미친 듯이 내달리던 쥐 떼가 항공모함 후미에 있는 엘리베이터 안쪽 공간으로 내달렸다. 전투기를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인지라 폭이 25m에 달하는 거대한 엘리베이터였다.
찌익! (뛰어!)
우다다다다-
수백 마리의 쥐떼가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엘리베이터 버튼을 향해 점프하는 쥐 한 마리.
기오오오옹-
묵직한 소리를 내며 함재기 엘리베이터가 비행갑판을 향해 올라갔다.
살았다. 그래 우린 살았어.
찍- 찌이익-
그런 안도감도 잠시.
엘리베이터가 채 올라가기 전 죽음이 날아들었다.
“어딜 도망가. 응?”
뭉클- 피어나는 살기에 그대로 굳어가던 쥐들이 필사적으로 입을 오므렸다가- 내뱉었다.
퉤에에엡-
튀이이입-
“이 씨발 더럽게.”
휙- 엘리베이터 한쪽 벽면을 밟고 옆으로 피하는 순간 들리는 소리.
치이이이이익-
그리고 메케한 연기와 금속이 부식되는 특유한 냄새가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