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15)
러스트 [RUST]-515
크다.
정말 컸다.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큰 곰을 본 김 양의 감상은 크기뿐이었다. 거대한 곰이 울부짖기 전까지는 그랬다.
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
삐—-이이—–
엑소슈트 헬멧에는 외부의 소리를 증폭하거나 감쇄하는 기능이 들어있어, 갑작스럽게 터지는 섬광탄의 폭음도 어느 정도 방비가 가능했다. 그렇게 자동으로 소리를 차단했건만, 전신이 울리는 느낌에 김 양은 몸을 바짝 웅크렸다.
두 번째 함성에 유리창이 터지고 바닥에 깔린 먼지들이 치솟아 올랐다. 소리 자체가 음파 공격이라고 해도 될 지경.
[전차. 저거 곰. 확인했으면 쏴!]김 양이 엄폐하고 있던 전차에 신호를 줬다. 주포로 때릴 각도는 나오지 않았는지, 외부에 따로 장착한 재블린 미사일 발사기가 불을 뿜었다.
한 번에 발사된 2발의 대전차 미사일이 허공으로 치솟다가 내리꽂혔다. 전차의 포탑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재블린 미사일에 2방이나 맞았지만, 큰 곰은 멈추지 않았다.
곰은 앞을 가로막는 2층짜리 건물은 그대로 분쇄해 버렸고, 5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건물은 그대로 타고 넘었다.
콰드드드득-
육중한 곰이 매달린 건물이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며 기울어지는 모습에 김 양은 입을 떡 벌렸다.
[전원 진지로 퇴각!]친위대원들이 퇴각하는 것을 지켜본 김 양도 자리를 옮겼다. 그런 그녀에게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오는 6개의 흔적.
‘이것들은 뭔데 날 따라오는 거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리퍼 슈트가 확실했다.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신형 리퍼 슈트가 쫄쫄이라는 건 그렇다고 치고.’
단단한 갑주형 엑소슈트와는 달리 리퍼 슈트는 쫄쫄이. 큰 곰의 하울링에 충격받고선 엉금엉금 기어 다닌 주제에 악착같이 쫓아오는 건 뭐란 말인가? 김 양은 공용회선을 사용해 경고했다.
[제국군 은신 슈트 6명. 계속 따라오면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겠음.]걸릴 줄 몰랐는지, 따라오던 6개의 흔적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조금 더 멀리 떨어지는 6개의 흔적.
김 양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귓구멍을 똥으로 틀어막았는지, 경고를 무시한 채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오고 있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따라온다는 게 문제였다. 살아서 알아먹지 못하면 뒈져야 알아먹는 법. 피똥을 싸고 싶다는 걸 그냥 두면 예의가 아니었다.
[전차 D 포인트로 이동.]엄폐하고 있던 전차를 옆쪽으로 이동시킨 뒤, 주포의 사선에 들어온 곰을 쐈다. 120mm 탄이 거대한 곰의 옆구리를 두들겼다.
!!!
관통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청났지만, 그뿐. 부러진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탱크를 노려봤다.
[대가리를 날려버려!]신속하게 재장전된 주포가 곰의 머리통을 향해 불을 뿜었다. 동시에 흔들리는 곰의 머리, 권투선수가 직선 공격을 회피하는 기술 더킹과 유사한 자세로 포탄을 피한 곰이 앞발을 휘둘렀다.
포탄을 회피하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진 앞발에 옆에 있던 건물이 폭발하듯 박살 났다. 잔해와 먼지가 연막탄처럼 흩어진 사이로 거대한 자취를 감춘 곰.
[C 포인트로 이동!]김 양의 외침에 4 드론의 영상을 공유하고 있는 전차가 바로 반응했다. 펑-펑-펑- 백린 연막탄 속으로 전차가 사라지자 어느새 나타난 곰이 주변을 헤집었다.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앞발에 건물 벽이 터지고 가로수가 부러졌다. 알루미늄 캔 찌그러지는 소리를 내며 구겨지는 자동차들, 그 길 건너 전신이 난도질당한 한 작은 곰이 있었다.
옆구리를 공격한 탱크를 찾아 발광하던 큰 곰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새끼의 피가 사방에 뿌려진 것을 본 곰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있다.
쿠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새끼의 피 냄새를 묻히고 다니는 무언가가 근처에 있었다. 은신하고 있는 적을 알아챈 곰이 앞발을 휘둘렀다. 산탄처럼 터진 보도블록이 새끼의 피 냄새로 범벅인 5개의 흔적을 덮쳤다.
사방을 쓸어버린 돌조각에 두들겨 맞은 5개의 흔적이 치지직- 모습을 드러냈다. 원흉을 찾았다는 기쁨인지, 원수를 갚을 수 있다는 흥분인지 모를 소리를 낸 곰이 5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쿠우워!
은신이 까발려진 5명의 공격은 무력했다. 큰 곰의 눈알을 노리고 저격하는 것도 실패. 새끼의 사체를 확인한 곰이 앞다리로 머리를 가리다시피 했기 때문.
쫄쫄이 년들이 얼마나 잘 싸우는지 모르겠지만, 새끼 곰을 잡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저거 5명과 저격수 2명으로는 어미 곰을 막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 양을 멀찍이서 따라오던 6개의 흔적이 곰의 사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흐응-
노림수를 적중시킨 김 양이 흐뭇한 콧소리를 내곤 진지로 향했다. 4 드론이 중개하는 생생한 사투의 현장은 꿀잼이었다.
[거기서 들어가지 말고 싹 피했어야지.]어쩐지 곰을 응원하고 있는 김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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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이사 마크 2는 갑작스러운 환각과 환청에 당황했다.
시야가 2개였다가 5개로 변하더니 6개가 뒤섞였다. 전지적 회전목마 시점도 아니고 휙휙 돌아가는 시점.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동시에 겹치기도 했다.
환청도 마찬가지. 이쪽저쪽에서 들리는 소리가 동시에 뒤섞이다 보니 멀미가 날 지경.
이렇게 어지러운 게 언제였더라? 블랙호크의 꼬리날개에 RPG를 맞고 추락했을 때 이랬던가?
‘이 기억이 진짜 기억이 아니라니.’
“시바-” (씨발-)
[신발-]조그맣게 흘린 욕설을 깨알같이 번역하는 인공지능 본체를 찰싹 때린 유 이사 마크 2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시점. 다섯 개의 시점이 각각 전환되더니 하나로 섞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건.
‘예전에 미군이 실험했던 프로그램과 비슷한 거 같은데?’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이 실험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병사들에게 전술 카메라를 달아 현장 정보를 파악한다. 여기에 드론과 위성을 통한 실시간 정보를 규합, 실시간으로 전장 정보를 해석 전달해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하자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라크에서는 반쯤 성공적이었던 프로그램이 아프간에서는 엉망이 됐다. 아프간에서는 자주 정보, 통신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지금 그녀에게 전달된 정보는 그와 비슷했다.
전술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한 현장감. 마치 그녀 자신이 제국 요원들과 곰이 싸우는 장소에 있는 것 같았다.
‘단순히 구경꾼이 아니라. 거기서 내가 싸우는 것 같아.’
작은 고사리 같은 손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치지직- 뒤바뀌었다.
[5번 곰의 오른쪽 측면으로···.] [7번 칼날이 들어가지 않음.] [초진동 커터 사용 필요.] [초진동 커터 사용 허가.]삽시간에 떠오르는 사념에 유 이사 마크 2가 멍하게 서 있었다.
‘이게 뭐지?’
검은 쫄쫄이 슈트를 입은 건 그녀 자신이었다.
변해버린 환경. 순간이동이라도 한 걸까? 주먹을 움켜쥐자, 주먹이 쥐어졌다. 이질감 없는 움직임. 분명히 지금 움직인 건 그녀 자신이었다.
[9번. 위치이동.] [9번. 위치이동.]머릿속에 울리는 소리를 무시한 유 이사 마크 2가 주먹을 폈다 쥐었다.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4살짜리의 몸이 아니었다.
[9번 위험.] [9번 위험.] [9번 오류.] [9번······.] [9번······.]머릿속에서 앵앵대는 소리에 비례해 점차 뚜렷해지는 감각. 전장의 냄새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거다. 이거였다.
유 이사 마크 2의 눈빛이 흉흉하게 변했다. 거대한 곰이 앞발을 휘둘렀다. 굵직한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날아올랐다.
나무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지는 자들을 피해 그녀는 곰을 향해 달려들었다. 참새가 재잘대는 것처럼 짹짹거리는 소리. 제 위치를 지키라는 신호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곰의 옆구리에 난 커다란 상처에 고정됐다.
약점을 노려야 했다.
가진 무기는?
12.7mm 탄을 사용하는 권총, 세열 수류탄 그리고 롱-나이프.
나무를 피해 파고든 원수를 향해 앞발을 휘두르는 곰. 사선으로 그어지는 거대한 앞발을 피해 앞구르기를 한 그녀가 기어코 곰의 뒷다리에 닿았다.
쿠직-
생체장갑이라도 된 것 같은 미친 곰의 가죽.
새끼 곰을 난도질했던 나이프가 하릴없이 미끄러졌다.
곰은 자기 뒷발 힘줄을 노리는 원수를 잡기 위해 몸을 던졌다. 기우뚱 기울어진 곰의 몸통을 피해 더 깊숙하게 달려든 그녀가 곰의 중심을 노렸다.
‘가죽이 두껍다고? 그럼 거기도 두꺼울까?’
그렇게 파고든 중심 부근에는 맨질맨질 아무것도 없었다. 암컷이었던 것.
계획이 어긋난 유이사 마크 2는 뒷다리 끝으로 달려갔다. 어떡하든 곰을 주저앉혀 상처 난 옆구리가 드러나게 해야 했다.
‘신경을 끌어줘야 해. 저격 없나? 지원 사격이 필요한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시야가 변했다. 멀리 발광하는 거대한 곰이 스코프를 반쯤 채우고 있었다.
‘어?’
여긴 또 어디야? 여기가 어디든 곰을 저격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9번 오류.] [9번 제거.] [9번 제거.]짹짹짹.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 묵직한 두통을 꾹 참은 유 이사 마크2는 곰의 머리를 노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엉덩이와 뒷다리를 노리는 불개미에 짜증이 터져버린 곰이 신경질적으로 앞발을 휘둘렀다. 머리를 가리고 있던 앞발이 머리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녀가 방아쇠를 당겼다.
퉁퉁퉁퉁퉁-
10발들이 탄창 하나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지금.’
지금 옆구리를 공격하면 잡을 수 있어. 그 강렬한 승리에의 의지에 반응이라도 하듯 스코프를 노려보고 있던 시야가 반전됐다.
저격수의 몸이 아닌, 본래 곰의 약점을 노리고 뒤로 돌아간 몸. 유 이사 마크 2는 이게 환상이라도 좋았다.
갑작스럽게 머리에 쏟아진 총탄을 막기 위해 엉거주춤한 곰의 옆구리가 텅 비어있었다. 가죽이 벗겨지고 갈비뼈가 드러난 곰의 옆구리를 향해 내달리던 그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풀썩-
곰의 뒷다리와 엉덩이를 밟고 달리던 몸뚱이가 아래로 추락했다.
‘어?’
[9번 제거완료.] [9번 시체확보.] [신성 왕국에 도움 요청.]머릿속을 두들기는 소리.
전신이 녹아버리는 느낌에 유 이사 마크 2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장면 고사리같이 작은 아이의 손이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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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대 괴수 창을 챙긴 김 양이 4 드론으로 찍은 영상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거기서 앞발을 휘둘렀어야지. 아씨. 일단 휘두르고 슉슉-]답답한 곰탱이 같으니, 더킹을 하길래 위빙도 하고 훅도 좀 날릴 줄 알았더니 짐승 새끼. 그냥 답답하게 놀고 있었다.
그래도 돌아가는 꼴을 보니 곰탱이가 불리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칼날이 들어가지 않고, 저격도 먹히지 않는 걸 보면 쫄쫄이 제국년들이 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전차. D 포인트에서 B 포인트로, 재블린 재장전 후 대기.]김 양의 시선이 곰의 옆구리를 향했다. 모든 싸움이 그렇듯,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때렸던 곳 또 때리고 쏜 곳 또 쏘는 게 효과가 좋지 않겠는가?
은신이 풀린 쫄쫄이 년들이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널뛰는 모습을 감상하던 김 양의 눈에 갑자기 어벙하게 멈춰버린 쫄쫄이 년이 들어왔다.
기계처럼 딱딱 맞물려 돌아가던 진형에서 딱 멈춘지라 도드라지게 보였다. 주먹을 쥐었다 피었다 몇 번 하더니 갑자기 곰을 향해 돌진하는 쫄쫄이.
김 양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래 뒤로 가서 빙글빙글 돌아봐야 곰의 앞발 휘둘러 산탄에 계속 처맞을 뿐이지.
뿌리째 뽑힌 나무도 피하고 접근한 쫄쫄이가 곰의 뒷다리와 엉덩이 쪽으로 달라붙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칼은 들어가지 않고, 총도 통하지 않았다.
쯧-
이럴 때 저격 조에서 지원해줬으면 좋으련만, 제국년들 새끼는 좋다고 잡더니 어미 오니까 답이 없기는.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저격수의 지원 사격으로 틈이 생겼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용감한 쫄쫄이년이 옆구리를 향해 내달리는 도중 저격총에 맞고 떨어진 것.
오발?
오발 가능성은 없었다. 정확하게 심장을 노린 저격이었다. 그것도 한 발이 아니라 두 발. 저격수 2명이 동시에 노렸다.
어째서?
‘제국년들 무슨 생각이지? 같은 편 팀킬이나 하고.’
됐다. 병신년들.
쿠워어어어어어어어!
한 마리 잡았다는 포효를 내뱉는 곰의 모습이 영상을 가득 채웠다. 두 다리로 일어서, 앞발을 활짝 펼친 포즈.
B 포인트에서 딱 때리기 좋은 자세에 김 양이 외쳤다.
[발사!]조금씩 재생되고 있던 상처에 다시 120mm 탄이 틀어박혔다. 끄웍- 주저앉는 곰의 머리통에 재블린 2발이 추가로 떨어졌다.
옆구리를 가렸던 곰의 앞발이 머리를 감쌌다. 두개골을 정확하게 때린 2발의 재블린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곰을 향해 긴 창을 든 김 양의 엑소슈트가 바람처럼 내달렸다.
곰.
곰은 내 것이야.
쿠어?
쿠지지직-
괴수의 부산물로 만든 거대한 창이 곰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120mm 탄도 뚫지 못한 갈비뼈가 깨지는 소리. 심장을 꿰뚫은 창날.
부르르 떨던 곰이 그대로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