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16)
러스트 [RUST]-516
시애틀에 있는 F-22 공장을 제국이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 지나지 않아 남부연맹에 알려졌다. 남부연맹에서 추진하는 일을 제국이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이든 연맹이든 얼마 전까지는 미합중국이었다. 양측 모두 스파이로 삼을 만한 인적자원은 넘쳤다. 이중 스파이(이중간첩)도 그렇고.
남부에서 F-35에 힘을 주는 순간부터, 제국은 F-22를 확보하기 위해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전부가 어렵다면 부품과 기술만이라도 확보해야 할 상황. 그마저 힘들다면 최소한 남부 측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근미래 제공권이 달린 문제였기에 정예부대를 투입하는 게 맞았고, 이왕 정예부대를 보내는 김에 클론 부대를 같이 보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클론 부대에 대한 정보 또한 남부연맹으로 들어갔다.
“제국 놈들 엉덩이에 불이 붙었군.”
“그쪽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을 테니까.”
“제국이 F-22를 확보하는 건 막아야 합니다.”
“우리도 정예부대를 파견하도록 하죠.”
“그건 어렵습니다. 당장 변이 괴수들을 막고 있는 병력이 빠진다면 위험합니다.”
혹한 동안 잠잠하나 싶더니 날이 풀리자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괴수들. 연방군과 주 방위군에서 가려 뽑은 정예 병력은 괴수와 사투 중이었다.
“웨어울프(Werewolf)의 안정화는 아직입니까?”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진 그룹의 약이 효과 있다면서요?”
“크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완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진의 약에 의지하게 된다면 완전함을 잃게 될 겁니다.”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연구가 성공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상황은 아닙니다.”
“현장에서는 약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셀 수 없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연구가 끝날 때까지 한시적으로나마 사용승인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에서 시애틀에 클론 부대를 투입한다는 정보가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할 겁니까?”
“클론은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남부에서도 클론 부대를 연구했었다. 하지만 클론 부대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가지 기술이 필요했다.
클론을 만들어 성장시키는 데 10년 넘게 걸린다면 의미가 없으니 급속 생장기술은 필수였다. 그렇게 급속 생장시켜 성체로 만들었는데, 계속 세포분열이 일어나 순식간에 늙어버리면 죽도 밥도 안됐으니 안정화 기술도 필수적.
마지막으로 정보 주입기술이 없다면 몸만 다 자란 유아를 양산한 꼴이 됐으니, 정보 주입기술도 필요했다.
남부는 식인귀 제어, 통제 연구와 늑대인간 연구, 귀족 연구에 전력을 투입하고 있었기에 여력이 없었다.
“제국이 클론 부대를 보냈다는 건, 실증실험일 겁니다.”
“클론 개발의 난제를 극복했다는 이야기겠군요.”
제국에서 클론 기술을 확보했다는 이야기.
“일단 제국에서 만든 클론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정예부대를 뺄 수는 없습니다.”
제국의 정예병과 클론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더해 신성 왕국까지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는 첩보를 생각하면 어중이떠중이를 보내봐야 소용없었다.
“오진 그룹의 보안팀을 보냅시다.”
“호오-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생체실험을 담당하고 있는 버지니아 컴퍼니와 군부의 비밀 연구소는 클론을 잡아와 봐야 연구할 여력이 없었다.
이에 반해 새로 합류한 오진 그룹의 연구 역량은 아직 여유 있는 상황. 어차피 클론 실험체를 포획하는 데 성공해도 오진 연구소에 보내야 할 판이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오진 그룹이 포획해서 연구하라고 하는 게 좋았다. 만약 클론 포획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오진이 가진 힘을 줄일 수 있으니, 그 또한 나쁘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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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연은 남부연맹에서 보낸 명령서(?)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생각하는 게 참···.”
시애틀로 가 제국을 견제하고 클론을 포획할 것. 이후 클론 연구를 위임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일타 쌍피를 노리는 거지 뭐.”
이쪽이 제국의 클론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 성공해서 좋고, 실패하더라도 제국과 오진의 힘을 뺀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였고.
“···텃새가 있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건 좀 당혹스럽네요.”
“미합중국에서는 일상인 일이었는데, 몰랐냐?”
연방정부의 기관마다 서로 견제하고 통수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견제를 통해 균형을 이룬다는 원칙을 명분으로 별의별 일들이 다 있었으니까.
군 정보국에 허위 정보를 전달한다거나, 허위 정보라는 걸 알면서도 출동해 허위 정보를 준 놈을 역으로 엿을 먹이려고 한다거나. 테러 정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별일 아닌 걸 확대해서 뒤집어엎거나. 상식을 초월한 일들이 넘쳤는데 이 정도는 견제도 아니었다.
“남부연맹으로 떨어져 나왔으니 다를 줄 알았죠.”
“그럴 거면 남부가 아니라 제국으로 갔어야지.”
오죽하면 덴 브라운이 제국을 선포하고 싹 일렬로 줄 세워버렸을까.
“제국을 선택했다면 제한적이나마 독립 세력을 유지할 수 없었을 걸요.”
“하긴 그렇다만. 그래서 어떻게 하게?”
남부연맹에서 내려온 명령을 씹는 건 최악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반쯤 연금된 상태인데, 명령에 불복했다는 걸 명분 삼아 보안 팀을 해체하고 통조림 시켜 버릴 게 분명했다.
“보내야죠.”
“김 실장들을 보내게?”
“김 실장님들은 융통성이 없으니까. 같이 가주셨으면 해요.”
“저번이 마지막 아니었나? 현장 구르는 건 하지 않기로 했었지?”
“나루가 왜 당신의 마음을 무시하는지 알려 드리죠.”
“그 이유를 안다고?”
“네. 저번에도 한 번 이야기했었는데···.”
“······.”
“아직도 알아채지 못한 걸 보면, 앞으로도 모를 것 같으니까 알려드리죠.”
“···좋아. 하지만 위험하면 바로 돌아오겠어.”
“당연하죠. 우리는 가서 싸웠다는 증거가 필요할 뿐이에요. 클론을 포획하면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김 실장 둘을 붙여 드리도록 하죠. 그리고 보안팀에서 10명이면 어떤가요?”
“그렇게 하지.”
시애틀에 도착한 기순은 생각보다 빨리 제국군 클론 부대를 찾을 수 있었다.
은신 슈트를 입고 한 몸처럼 움직이는 클론 부대는 곰을 사냥하고 있었다. 남부의 멧돼지만큼이나 변이를 일으킨 곰을 순식간에 난도질해 버리는 제국군 클론 부대.
‘이상한데.’
기순은 제국군 클론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걸 한 번에 간파했다.
동시합격훈련을 아무리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한 번도 엉키거나 주저하지 않고 합격하는 건 불가능했다.
정신계 능력자가 전부 직접 오퍼레이팅(Operating)해도 약간의 딜레이가 있을 텐데, 그마저 없는 움직임이라니.
‘더럽게 꼬였군.’
클론을 잡기 위해 교전했었다는 증거가 필요한 상황.
저렇게 움직이는 클론 부대와 싸우라고? 일단 붙으면 빠져나갈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했다.
이걸 어쩌나.
고민하는 기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클론 부대가 난자해 죽인 곰이 새끼였는지, 더 큰 곰이 난입한 것.
‘미친. 무슨 곰이···.’
남부에서 크다고 소문난 멧돼지조차 일반 멧돼지로 보일 정도로 커다란 곰과 클론 부대가 부딪쳤다.
난도질당한 곰도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새끼였다고?
그렇게 대치 상태가 이어지던 찰나, 어디선가 나타난 탱크가 어미 곰의 옆구리에 120mm 탄을 박아 버렸다.
신성 왕국이 곰 사냥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기순의 눈에 들어온 장면. 클론 하나가 특이한 움직임을 보였고, 그게 오류라고 생각했는지 저격으로 이상 움직임을 보인 클론을 쏴 죽이는 모습이었다.
‘저거다.’
기회였다.
“클론 시체를 그냥 두고 갈 리 없다. 준비해.”
기순은 김 실장들과 보안팀을 준비시켰다.
“김 실장은 뒤로 빠져. 내가 신호하면 그때 움직여.”
예상했던 대로 클론의 시체를 챙기는 제국군이었다. 기순은 클론의 시체가 담긴 팩을 싣고 가는 제국군의 뒤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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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의 웃음소리가 낮게 깔렸다.
후후후후후후—-
역시 막타는 좋았다.
어미 곰의 진을 뺀 제국년들이 생각하기에는 억울하겠지만, 결정적으로 피해를 준 건. 전차의 주포와 그녀의 기창 돌격이었다.
[그래서? 새끼 곰은 그쪽이 가져가야겠다?]쫄쫄이년 하나가 김 양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큰 곰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새끼는 자기들이 잡았다는 주장.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기 싫은걸.
김 양이 이걸 어떻게 날로 먹어야 할까 고심하던 중, 진지에 있는 지휘보조 인공지능이 비상신호를 보냈다.
[···새끼 곰은 조금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어이 거기, 자연산! 주둥이 스톱. 누가 입 벌리래?]옆구리가 터진 어미 곰의 곁을 맴돌던 자연산 늑대가 김 양의 외침에 뒤로 물러나 으르렁거렸다.
[어 씹- 살려줬더니-]모조리 죽일 걸 살려줬더니 내 곰에 주둥이를 디밀어? 김 양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래 안 그래도 영양탕이 부족하다 했어!]새끼 곰에 대한 협상도, 비상신호도 뒷전으로 밀어버린 그녀가 자연산 늑대들을 덮쳤다. 길고 짧은 단말마의 끝. 전신을 피로 물들인 엑소슈트 밖으로 김 양의 낮은 웃음소리가 새 나왔다.
[후후후후후후후- 또 불만 있는 새끼.]제국군도 쫄쫄이년들도 왕국군과 늑대들까지 조용했다. 그 고요함을 깨는 소리.
까아아악-
[···불만이니?]까아아악-
엑소슈트의 어깨에 앉아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 까마귀가, 척- 한쪽 날개를 펼쳐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 거기에 뭐가 있다고?]깍!
인공지능이 비상신호를 보낸 게 이것 때문이었다.
[바로 HUD로 영상을 보내지 번거롭게.]투덜거린 김 양이 까마귀가 찍어온 정찰 영상을 확인했다. 제국군의 뒤를 추격하는 수상한 자들이 찍힌 영상 속에는 아는 얼굴이 껴 있었다.
‘그린 순? 기순이가 여길 왜?’
그러고 보니 오진 그룹이 남부에 붙었지? 김 양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흐응- 그래도 남부랑 상호불가침조약 맺었으니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제국이랑 남부랑 춤을 추든 몸을 비비적거리든 알 바 없고.
[거기 쫄쫄이 닥치셈. 우리가 시애틀에 온 건 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어? 새끼고 어미고 곰은 신성 왕국 것이야.]마귀 들린 게 아니면 알아듣지?
그나저나 기순이가 한 건 해줄 것 같았다.
[다시 말하지만, 곰은 전부 신성 왕국 것. 이게 불만이면 위에서 답변 가져와.]김 양이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들 지금 새끼 곰 신경 쓸 상황이 아니란다. 응.
잠시 뒤, 역시 기순은 김 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새끼 곰을 둘러싸고 기 싸움을 벌이던 쫄쫄이 년들이 썰물 빠지듯 우르르- 빠져나갔다.
[다들 곰 챙겨. 비행선에 바로 싣고 출발해.]“옛. 바로 돌아가는 겁니까?”
[곰이 더 있을지도 모르고 비행기 부품이랑 설비, 기술도 챙겨야 하니까. 일단 진지로 가서 대기.]“알겠습니다.”
곰을 챙겨서 넉넉해진 김 양이 너그럽게 휴식을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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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통제실.
유 이사 마크 2는 꼭 쥔 주먹을 쭉 뻗었다.
어른의 손이 아닌, 어린아이의 작은 손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쳤다.
확실히 꿈은 아니었다. 환상도 아니었고. 그럼 그건 뭐였지? 시점이 변하고 몸이 변하고 움직였던 느낌. 마치 본래의 몸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잉거지는 여상 제규꾼 여상 껴바.” (인공지능 영상. 제국군 영상 켜봐.)
[‘이 거지는 여성 제군. 여성 거봐.’ 말씀이십니까?]이 씹- 병신 같은 깡통이-
유 이사 마크 2가 벌떡 일어났다.
치밀어 오른 분노에 잠시 신경이 쏠리는 순간, 그곳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묵직해지는 기저귀.
“시바···.”
어쩐지 울고 싶어진 그녀였다.
“씨바려니···.”
그래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이를 악다문 채 어기적어기적 걸어간 유 이사 마크 2는 기어코 모니터를 터치해, 전체 영상을 살피기 시작했다.
‘찾았다.’
검은색 쫄쫄이를 입은 제국군과 거대한 곰이 싸우는 영상.
그래. 저기였다.
바로 저곳에 그녀가 있었다.
거대한 곰의 후방을 노리는 쫄쫄이의 움직임은 분명 그녀 자신의 움직임이었다.
빙의? 접속? 그게 뭐든.
이 빌어먹을 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가?
꾹 눌러 참았던 분노가 탁 풀리는 순간 들리는 소리.
뿌드드득-
기저귀에 묵직함이 더해지는 소리.
흐흐흐흐흐-
“시이이이이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