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18)
러스트 [RUST]-518
취리리라라락-
피막이 찢어진 틈으로 상처가 벌어지며 가느다란 촉수가 피어올랐다.
“씨발 이게 뭐야-”
상처가 찢어지며 연가지 같이 꿈틀대는 가느다란 촉수들이 속살을 헤집기 시작했다.
끄으으흣-
살이 생으로 꿰뚫리는 고통 속에서 유 이사 마크 2의 뇌리에 떠오른 기억의 파편.
이라크였던가? 아프간? 어느 전장이었다.
적이 쏜 백린탄이 터지고, 백린이 덕지덕지 묻은 파편에 맞은 부하.
‘—-끄아아아아악—-’
지글지글 부하의 생살을 파먹고 타들어 가는 백린의 냄새.
고통에 발버둥 치는 부하의 모습.
백린이 묻은 파편이 전신에 박혔으면 끝이었다.
어떻게 했었지.
그랬었다.
그래.
철컥-
M-117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긴 그녀는
그대로 자기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둔탁한 충격과 함께 유 이사 마크 2의 시야가 변했다.
진지한 표정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김 양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크 2는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두개골을 깨뜨리는 총탄의 충격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죽음의 공포와 뒤섞이는 기억. 세상이 흔들리고 울렁거리는 느낌.
그런 유 이사 마크 2의 변화를 김 양은 알 수 없었다. 촉수에 당한 쫄쫄이 년 하나가 자기 머리를 권총으로 날려버리는 장면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촉수에 당한 상처 속에서 피어오르는 꿈틀거림을 본 김 양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저거 위험하겠는데···.”
촉수에 당하면 안 된다는 정보가 퍼졌는지, 제국의 쫄쫄이 년들이 회피와 방어를 중점으로 하는 동안 짙은 선글라스를 쓴 둘이 쫄쫄이 년 셋을 밀어붙였다.
그동안 어딘지 눈에 익은 전투복을 입은 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건 한국에서 보던 전투복인데···.’
그것도 월드 회사에 다닐 때 보던 옷. 그걸 여기서 보다니.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에 대항하듯 제국군 쪽도 숫자가 늘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벌어지는 3대 2의 싸움을 두고 양측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순간, 시큼한 소리가 작전지휘실에 울려 퍼졌다.
우웩-
“갑자기 토를 하고 지랄이니.”
OTL 자세로 토하는 유 이사 마크 2의 등을 두들겨 주기 시작하는 김 양. 톡톡- 손은 마크 2의 등을 두드렸지만, 그녀의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있었다.
‘쫄쫄이 년들 열셋에서 둘이 줄었네.’
촉수에 당한 년이 자살하는 걸 봤음에도 주변을 포위한 채 대기하고 있는 쫄쫄이 년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기순이를 생포하려는 건가? 혹시 모르니까 기순이의 전력을 확인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고?’
하는 짓을 보면 확실히 그럴지도. 쫄쫄이들은 일반적인 육체 강화자 같은 움직임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특수부대 비슷한 느낌도 있다 싶다가도, 아까 서슴없이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 당긴 걸 보면 낡고 낡은 그쪽 애들 같기도 하고.
‘군 출신 용병인가?’
김 양은 정교한 기계처럼 맞물리는 공격과 수비를 보곤 조그맣게 감탄했다.
‘그년은 뭔데 그렇게 바로 자살했지?’
문득, 자살한 쫄쫄이 년이 살짝 걸렸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자기 머리통을 날려?
헬멧 반쪽이 날아가는 순간, 보인 피칠한 반쪽 얼굴.
어디선가 봤었지 싶은 미묘한 느낌.
‘반반한 년을 자주 보다 보니 착각한 건가?’
후드의 반반함이 신경 쓰였던 걸까?
흐응-
‘그래도 그렇지 제국이 미쳤나?’
10정에서 15정 급. 말이 10정에서 15정이지, 그 정도면 식인귀 가운데도 상위권이었다.
‘20정이랑 가끔 괴물 곰 같은 게 나와서 그렇지. 10~15정이 하나도 아니고 저렇게 집단으로 움직이면 훨씬 강할 텐데.’
아무리 다시 봐도 그거 같았다. 그거.
10~15정짜리를 단체로 갈아 넣다시피 해 데이터를 쌓고 생포하려고 하는 거, 목숨으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지랄이었다.
흥-
덴 브라운 이렇게 부하들 목숨을 쉽게 생각하는 양반 아니었는데, 총통 되더니 사람이 변한 건가? 그렇게 안 봤는데.
김 양의 손이 토닥토닥- 유 이사 마크 2의 등을 두들겼다.
‘그. 그만 두들겨.’
우엑-
속에서 올라올 때 그거 아는가?
누가 등을 두들기면 어쩐지 더 올라오는 거.
지금 유 이사 마크 2의 상황이 딱 그랬다. 진정되나 싶으면 토닥이는 울림이 등판을 타고 증폭하는 것처럼 커졌다.
“시. 시바려-나. 고마-애해- 고마-” (시발련아 그만해. 그만-)
[쉬마려- 나. 고마워해. 고마워.]인공지능의 번역에 속에서 썅욕이 나왔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몇 번을 토했는지 이제는 신물이 넘어올 지경. 그만 두들기고 물이나 마시고 싶은 유 이사 마크 2였다.
“아- 다 토했냐?”
김 양이 물을 따라주자, 한 컵을 다 마신 유 이사 마크 2는 모니터와 보조 인공지능을 노려봤다.
“왜?”
“······.”
엉금엉금 인공지능을 향해 기어간 마크 2가 인공지능의 번역 앱을 끄곤 김 양에게 말했다.
“쪼슈-대가리 이허내, 주교야 해.” (촉수 대가리 위험해, 죽여야 해.)
촉수 머리. 저거 위험한 거였다.
“우리가 위험한 것도 아닌데 뭘. 그리고··· 이래저래 묵은 빚이 있어서.”
촉수 괴인에게 묵은 빚?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기에 유 이사 마크 2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방어 위주로 전환한 쫄쫄이들이 촉수를 수십 가닥씩 휘젓고 괴인을 막아내는 영상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쫄쫄이는 전부 11명. 넷은 촉수 괴인을 막고 있었고 셋은 양복 선글라스 둘과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팽팽한 균형. 시체 지키고 있는 쫄쫄이 넷이 합류하는 순간, 그대로 끝날 게 분명했다.
‘시체?’
9번의 시체를 지키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가?
어째서?
유 이사 마크 2의 시선이 모니터 속 시체를 향한 것처럼 김 양도 시체에 생각이 닿았다.
‘설마 쟤들 시체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건가?’
무슨 시체였지 저거. ‘아- 그 움직임 특이했던 쫄쫄이.’ 근데 왜 그 시체를 저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지?
김 양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객관적인 전력이 열세임에도 덤벼든 이유가 저 시체를 노렸기 때문인가?
‘기순이라면 불리한 짓을 할 이유가 없는데.’
저렇게 나왔다는 건 뭔가 카드가 있다는 뜻. 그렇다면 균형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전황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저거 시체만 우리가 빼돌릴 수 없을까?”
갑작스러운 김 양의 질문에 유 이사 마크 2가 입을 다물었다. 시체를 확인하는 순간 클론이라는 게 밝혀질 게 뻔했다.
‘쫄쫄이들 전부 오리지널의 클론이라는 게 밝혀지면 좋을 게 있나?’
생각해 보니··· 있었다.
생육속도가 일반적인 애보다 몇 배는 빠른 자신도 이제 고작 3~4살짜리 몸인데, 저 클론들은 성체였다.
그러니까 저 클론의 시체를 연구하다 보면 급속생장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지 몰랐다. 그건 자신에게도 좋은 일.
이 빌어먹을 몸뚱이를 빨리 키우는데 쫄쫄이 시체가 필요하다면 해야지. 유 이사 마크 2가 생각을 감추고 태연히 대답했다.
“규러게 어디써” (그런 게 어딨어.)
“그렇겠지. 보는 눈도 많은데, 우리가 빼돌리다 걸리면 웃기게 될 테니까.”
마크 2가 유도한 대로 김 양이 신경을 껐다.
‘들키지 않게···. 우연으로 틈이 생긴 것처럼.’
빙의(?) 접속(?)을 해서 균형을 깨고 틈을 만들어주면 됐다. 그녀가 보기엔 김 양이 씨발련인 건 사실이지만,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틈이 생기면 알아서 잘 받아먹겠지. 자연스럽게 해보자. 자연스럽게.’
유 이사 마크 2가 다시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좋을까?’
일단 촉수 괴인과 싸우고 있는 넷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정교하게 돌아가는 공방전에 갑자기 끼어들다가 또 촉수에 찔리는 건 사양. 그렇다면 쫄쫄이 셋이 막고 있는 짙은 양복에 선글라스 두 명을 조지는 게 좋겠지.
유 이사가 쫄쫄이 셋이 있는 곳으로 정신을 집중하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주먹을 쥐었다 펴는 순간, 시점이 변해있었다.
바로 코앞. 짙은 선글라스를 쓴 양복쟁이가 그녀의 면상을 향해 쭉 펀치를 내뻗었다.
본래의 쫄쫄이였다면 이런 펀치가 날아오자마자 뒤로 물러서며 방어했겠지. 몇 방 막으며 뒤로 물러서면, 옆에서 지원이 들어와 순간적으로 2:1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 이사 마크 2는 그게 아니었다. 머리를 흔들어 강력한 스트레이트를 흘려버린 그녀가 허리를 돌려, 그대로 선글라스 양복쟁이의 면상에 카운터를 꽂아 넣었다.
휙-
빠각!
카운터가 제대로 들어갔음에도 양복쟁이는 터프했다. 다시 왼손 스트레이트가 날아오는 걸 슬쩍 피하며 다시 면상에 카운터를 날리는 유 이사 마크 2.
빠각!
짙은 선글라스가 부서지면서 한쪽 얼굴을 긁어 버렸다. 쭈직- 벗겨진 얼굴 껍질이 떨어지며 양복쟁이의 면상이 드러났다.
붉게 물든 눈알이 깨알 같이 달린 상판.
그래 눈알이 아니라 눈알들이었다. 한쪽 눈구멍과 얼굴을 잠식한 작은 눈알들이 빙글빙글 사방을 훑다가 유 이사 마크 2를 향해 초점을 맞추는 모습.
“개- 씹-”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건데. 저번에는 촉수더니 이번엔 눈알? 반사적으로 M-117 피스톨을 뽑아 겨눈 마크 2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타타탕-
초근접거리에서 속사로 뽑힌 권총.
17+1 그러니까 18발이 담긴 탄창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면상, 면상, 가슴.
심장, 심장, 상판.
얼굴, 명치, 센터.
위, 아래, 위, 위, 아래···.
초근접에서 쏜 총탄에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양복쟁이가 뒤로 비척비척 물러났다. 얼굴 그것도 눈알 부분에만 최소 5발이 박혔다.
깨알같이 주렁주렁 박힌 눈알이 터져 투명한 국물과 핏물이 섞여 흘렀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흐-
마치 웃는 것 같은 숨소리.
유 이사 마크 2는 총구의 방향을 놈의 눈알을 향한 채, 재장전을 끝냈다.
불룩- 보글- 불룩- 뽀그르륵-
총알에 터진 눈알이 불룩불룩 끓어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싱싱한 눈알이 솟아올랐다.
빙글-두리번- 두리번- 빙글-
새로 솟아난 눈알들이 유이사 마크 2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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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상을 실시간으로 본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 속사.’
어디서 본 속사였다. 저게 피스톨이 아니라 리볼버였다면 더 빨랐겠지, 무엇보다 권총을 뽑을 때의 자세는 김 양의 눈에 익은 자세였다.
유 이사. 개 같은 아줌마의 자세.
‘저 쫄쫄이 년···’
“비행선 현장 인접 상공으로. 까마귀들 폭격 대기시켜. 늑대 부대 주변 포위하고. 신병들은 쉬게 두고, 친위대원들은 집합.”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 김 양이 명령을 내렸다.
눈깔 증식 양복쟁이들도 이상했다. 저 기괴할 정도의 재생력.
저거 일본에서 마루랑 잡은 그거 같았다. 검은색 촉수 괴물.
‘아니면, 그 빨간약 부작용 때문에 이상한 괴물로 변했다는 심 회장 대역.’
저런 게 왜 기순이랑 같이 있는 거지?
“야. 전황 잘 살펴보고 있다가, 문제 생기면 바로···.”
유 이사 마크 2를 향해 말하던 김 양이 뚝 제자리에서 멈췄다.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동그랗게 뜬 눈. 눈동자가 렘(REM) 수면하듯 이리저리 빙글빙글 움직이고 있었다. 기괴한 마크 2의 모습에 김 양의 얼굴이 굳었다.
“이 년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쯧-
“위생병 호출해.”
김 양은 발걸음을 멈춘 채, 모니터를 바라봤다.
눈알이 터진 자리에서 다시 솟아나는 눈알. 심장을 꿰뚫은 총탄 자리에서 흐르는 건 빨간 피가 아닌, 검붉은 점액질 같은 것.
피해가 누적될수록 양복쟁이는 변하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