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24)
러스트 [RUST]-524
뇌가 흔들리면 몸을 가눌 수 없는 법. 그걸 기순은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씨발. 아오.]기순은 간신히 눈을 떴다.
[새끼야- 눈 안 떠?]아니 지금 뜨잖아.
무겁게 내리누르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는 순간, 보이는 주먹.
빡-
억-
묵직한 주먹이 턱을 흔들고 지나가자, 쓰나미가 몰려온 것처럼 골이 울렸다. 하얗게 날아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눈과 목에 힘을 줘서 간신히 버텼다.
큭-
저절로 나오는 신음. 머리통으로 총알을 막았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뇌가 곤죽이 된 순두부처럼 될 지경이었다.
[눈 떠. 눈 좀 떠보라고.]뻑! 빡!
윽-
리퍼 슈트의 헬멧에서 들리는 기계음 섞인 목소리는 어쩐지 마루 놈 목소리 같았다.
[안 떠?]“···그. 그만.”
기순이 필사적으로 입을 놀렸다.
“마- 고마해라. 마이-묵었다 아이가.”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자. 잠깐···.”
그러고 보니 목소리 못 알아듣냐고 했었나?
씨발 스피커 잡음 섞인 목소리를 어떻게 구별하라고.
뻐욱!
뭐라 대꾸하기도 전 묵직한 마루의 주먹이 기순의 명치를 졸라 세게 때렸다. 기순이 필사적으로 버텨보려고 했지만, 제대로 들어간 명치 한 방에 호흡이 뚝 끊겨버렸다.
‘개 씨발···.’
마루가 멱살을 풀자, 정신을 잃은 기순이 ㄱ자 모양으로 폭 꼬꾸라졌다.
‘이 새끼. 몸에 철판을 둘렀나.’
리퍼 슈트 글로브가 주먹을 보호했음에도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두툼한 복합소재 방탄판을 맨주먹으로 때린 듯한 감촉.
지나가던 김 양이 쓰러진 기순을 발로 슥- 밀어내며 물었다.
[계속 때리려고?] [어. 눈빛이 아직 아니야.]‘그러니까. 일단 패야지. 계속. 존나.’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김 양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저러다 내장 파열되거나, 턱뼈 부서지면 아까운 핑크 치료제만 낭비하는 게 아닐까 했지만, 자기가 패고 치료하겠다는데 어쩔?
[나도 해도 됨?] [뭘?] [아니, 같이 하면 좋잖음.] [???]뭘 같이 하고 싶은 건데?
[그것보다. 이 새끼 움직인 동선 전부 불태워라.] [촉수 때문에?] [어. 봤잖아. 이 새끼 촉수에서 국물 나오는 거.] [알겠음. 그거 다 태우고 나면 같이 해도 됨?]의욕적으로 같이 하겠다(?)는 김 양에게 마루가 해줄 말은 하나였다.
[···그래라.] [후후후- 금방 다녀오겠음.]기절한 기순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의 수난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기순이를 부르는 마루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기순아—-”
“왜? 왜 또 씨발-”
“허어- 기순아-”
“뭐가 문제인데.”
“아까 하던 이야기 계속해야지.”
“뭔 이야기를 해. 다 했다니까.”
오진 그룹이 남부연맹과 어떻게 연결됐는지도 그렇고, 거기서 뭘 하고 있는지 전부 이야기했지만, 마루는 만족하지 못했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만족하고 만족하지 않고의 문제라니, 대체 뭘 원하는 건데? 무슨 말을 해주면 만족하겠어?
“······.”
“······.”
흐릿한 눈빛으로 자기를 훑어보는 마루의 눈빛에 기순이 빽- 소리 질렀다.
“아- 씨- 마! 사람을 왜 그렇게 보는데. 진짜 다 말했다니까.”
“···기순아. 나 믿지?”
발작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 마루.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나 믿냐고?”
기순은 어쩐지 소름이 오도독 돋아올랐다.
“아니 씨발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리야? 아. 그래 믿는다. 믿어.”
“고맙다. 믿어줘서. 근데.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 보자, 네가 나라면 믿겠냐?”
마루의 이야기에 기순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따개비 거시기로 사방을 난장판으로 만든 놈을 어떻게 믿겠냐? 네가 한 짓을 생각해봐라, 그런데 내가 그냥 믿는다고 말했으면 거짓말한 거지. 아니냐?”
“아니, 그래도 그렇지 대놓고 못 믿는다고···.”
기순의 한탄을 마루가 중간에서 잘라버렸다.
“그러니까 네 진심을 증명할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할래?”
“진심을 증명해? 그게 무슨 말인데? 어떻게 증명하면 되는 건데? 울면 되냐?”
마루가 씩- 웃으며 김 양을 호출했다.
“올 때 뇌둥둥 좀 가져와라.”
[뇌둥둥? 어디에 쓰려고.]김 양의 갸웃함에 녹아있는 불길함을 알아챈 기순이 물었다.
“뇌둥둥이 뭔데?”
“···친구 믿는다며?”
“아니 씨발 뭐냐고?”
“······.”
끼융끼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등장한 엑소슈트가 들고 있는 건, 진짜 뇌가 들어있는 어떤 장치였다.
[뻐규르르르르르르르] [뻐어규르르르르르르]이상한 거품 소리를 내는 장치를 본 기순이 마루를 바라봤다.
‘저게 뭔데? 저걸 왜?’하는 기순의 표정에 마루가 눈빛으로 대답했다.
‘괜찮아. 괜찮은 거니까 이쪽에 잠깐 앉아.’
“어. 야. 왜 묶는 건데?”
“허어- 괜찮다니까. 머리에 구멍이 뚫려도 안 죽어. 급속치료제 알잖아. 그거 쓰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잠깐 눈 감고 있어.”
“어- 야- 잠깐- 잠···.”
뽀각! 두개골 깨지는 소리와 함께 정보추출기가 게걸스럽게 기순의 뇌를 파고들었다.
츄르르르르르-
자아아자다아아아아아-
[뽀규르르르르르르르]정보추출기가 기순의 뇌를 훑는 소리, 기순이 거품을 무는 소리, 그리고 뇌둥둥 박사의 거품 소리가 뒤섞이며 모니터에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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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폭격으로 숲을 불태우겠다는 신성 왕국의 경고에, 제국군과 남부군은 병력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놈들 싸우지도 않을 거면서 왜 와서 지랄이야.”
“멀쩡한 숲을 왜 태우는 건데?”
“저 새끼들은 제국과 남부연맹 둘 다 불가침조약 맺었다며?”
“박쥐 같은 새끼들.”
양측 병사들 모두 불만이 팽배했다. 본디 미합중국 시민이었던 자들인지라 더 그랬다. F-22 부품, 설비, 시설이 중요하다고?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가슴은 아니었다. 어차피 당장 뜨지도 못할 F-22 때문에 죽고 죽이다니, 고작 1~2년 전에는 같은 미합중국 시민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양측 지도부는 끝없이 병력을 추가했다. 처음에는 양측 합해 몇백 단위였던 병력이 2주가 지날 무렵에는 몇천으로 늘어났고. 이대로 병력 충원이 계속된다면 만 단위가 충돌할 상황이었다.
“숲에서 작전한 뒤, 피부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병력은 무조건 격리할 것. 이게 무슨 개소리지?”
“변종 따개비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숲에 따개비? 미치겠군. 이걸 믿으라고?”
“촉수 괴인의 촉수가 따개비 그거랍니다.”
“환장하겠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애들 토막 낸 촉수가 따개비 그거고. 그걸 머리통에 붙이고 다닌 놈이 촉수 괴인이다?”
“···그렇습니다.”
“신성 왕국은 그걸 어떻게 알았데?”
“변종 따개비의 최초 발견자와 신고자가 신성 왕국 국왕이라고 합니다.”
좋은 뜻에서 알려준 정보가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누군가 이쪽 의도를 곡해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분위기를 보니 그런 거 같음.]“따개비는? 퍼지지 않았고?”
[네이팜 폭격이 효과적이었다고 보입니다.] [피부 간지러움 증 생긴 병사들도 미리 환부를 제거하는 수술 받아서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고 했음.]다행이었다. 기순의 뇌에서 추출한 정보로는, 촉수 번식에 제한이 있었다.
처음 기순의 공격을 받은 자들은 상처에 파고든 따개비 유생이 자라나 전투력을 상실하게 됐지만, 다음 세대부터는 아니었다.
상처에서 자란 유생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없었다. 오진 그룹은 한반도에 있을 때부터 따개비 관련 약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 기술을 기순에게 적용한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순의 촉수 공격에 당한 자들은 대부분 즉사했기 때문에 간혹 살아남은 자들이 따개비에 감염됐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따개비 촉수를 휘두르는 괴인이 사방에 따개비를 뿌릴 수도 있네? 그 자체로도 확실한 생체병기 아니겠는가?
오진 그룹은 남부연맹에 속했지만, 남부군 소속은 아니었기에 제국군과 남부군 모두에게 쫓기게 된 기순이었다.
마찬가지로 열렬한 추격을 받은 건 클론들도 마찬가지, 유 이사 마크 2가 인상을 썼다.
“시바- 시가제하니 이써.”(씨발 시간제한이 있어.)
기순을 빼내기 위해 제국군 어그로를 담당했던 클론 부대를 남부군에게 뺏길 뻔했다.
링크에 제한시간이 있었던 것. 다행스럽게도 마루와 김 양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회수해 올 수 있었다.
유 이사 마크 2는 사뭇 다행이다 싶었다. 김 양 꼴 보기 싫다고 끌고 나갔다가 타임아웃으로 링크 튕겼으면 꼴이 뭐가 됐겠는가? 그래도 위기의 순간에 마루가 달려와 구해준 걸 떠올린 마크 2가 방실방실 웃음을 흘렸다.
후흐흣
“잰 원래 저렇게 잘 웃었냐?”
“···그랬겠음? 원본이 유 이산데.”
김 양이 가는 눈초리로 마크 2를 노려봤지만,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낯으로 씹는 마크 2였다.
“애랑 무슨 눈싸움이냐. 그만하고. 더 엮이기 전에 뜨자.”
마루의 다독임에 김 양이 휙- 고개를 돌렸다. 그에 까르륵- 웃는 4살의 유 이사 마크 2.
[F-22 관련 시설과 장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후드가 작전 본래 목표인 F-22 관련 기술, 설비 확보 문제를 제기했다.
“몇 개 건졌다며, 나머지는 제국이랑 기술 맞교환하지 뭐.”
제국의 클론도 챙겼고, 기순도 확보했다. F-22 기자재와 설비가 조금 아쉽기는 한데, 그거 챙긴다고 하다가 피곤해지는 것보다 빨리 뜨는 게 맞았다.
무엇보다 기순의 뇌에서 추출한 정보도 제대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고. 유 이사 클론들을 관리할 마크 2도 정밀 검사를 해야 했다.
“F-22 기술보다 기순이와 마크 2 관리가 더 시급해.”
[뉴포트 뉴스 조선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제니아와 나나에가 관리해줬으면 해, 기순이 놈이 제정신 차리면 교대해 줄 테니까.”
[···둘이서 말입니까?]후드와 간호사 조합이면 뉴포트 뉴스 조선소 관리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일단 까마귀와 늑대 부대는 조선소 방위 업무에 적응한 것 같았으니까.
“나나에가 동물 부대 관리하고, 제니아가 방어 요새와 연계해서 방어하면 별문제 없을 거야. 아- 갈매기 알이 있었네, 그건 부화하기 전에 연락 주고.”
[그렇게 할게요.]어쩐지 살짝 목소리가 좀 그런 후드였다.
“그래. 수고 부탁해.”
[······.]마루와 김 양, 기순, 유 이사 마크 2와 클론 3을 태운 비행선이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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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과 마크 2는 바로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검사 결과 클론인 마크 2도 장난이 아니었는데, 기순은 더했다. 과학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상태였다.
“버나드 그린의 몸은 존재할 수 없는 몸입니다.”
“그렇습니다. 따개비는 수상 생물입니다. 조개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바닷게에 가까운 생물이죠.”
그런데 인간과 따개비가 섞여 있었다. 아니, 이걸 섞였다고 해야 하나?
“흐흐흐흐- 사람의 몸속에 따개비 외골격이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연구.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건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을 주제입니다.”
훌러덩 벗겨진 촉수 달린 두피도 꼼꼼하게 분석됐다. 이 또한 연구원들의 광기를 불태울 주제였다.
“이 신축성. 이 단단함. 이것이야말로 고개 숙인 자들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허허허. 그렇지요. 심지어 자체적으로 움직이기까지 하다니.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다면 신세계를 열 수 있습니다.”
촉수로 무슨 신세계를 열겠다는 건지, 마루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다.
“따개비가 인격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예? 어째서 궁금하신 건가요?”
“저 친구 머리에 붙은 그게 자기 멋대로 움직여서 말입니다.”
“하하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본래 건강할 때는 멋대로 반응하는 곳이 거기 아니겠습니까?”
연구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는 설명 대신 전술 카메라로 녹화한 영상을 연구진에게 틀어줬다.
휘리리리리릭-
꿈틀대는 촉수에 찢기고 뜯기는 제국군의 모습.
굵직한 촉수가 몸에 박혔다 빠지면, 상처를 헤집고 자라나는 가느다란 촉수들.
“그게 사람의 인격에도 영향을 미칩니까?”
“······.”
“······.”
“연구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