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28)
러스트 [RUST]-528
변이를 일으키지 않은 동물들과 변이를 일으킨 괴수들이 뒤섞여 날뛰기 시작했다. 나주연이 산책하던 산책로도 순식간에 엉망으로 변하면서 설치해둔 CCTV가 망가졌다.
“CCTV가 고장 난 것 같습니다.”
“설치한 지 얼마나 됐다고 고장이야? 마지막 영상은?”
“산책로를 따라 동물들이 몰려다니는 영상이었습니다.”
“쯧- 까마귀를 잡아달라고 했더니 숲을 뒤집었군.”
까마귀를 잡다가 변이 괴수라도 만난 듯싶었다. 그래도 청소부 녀석들 실력 하나는 확실한 놈들이었다.
“변이 괴수들까지 뛰쳐나온 것 같으니, 당분간 출입통제 해.”
“알겠습니다.”
‘CCTV를 고치려면 또 깨지겠군.’
고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 회장이 움직이는 곳에는 반드시 동행하거나 최소한 CCTV라도 깔았어야 했으니까.
나주연을 떠올리자 피어오르는 향기. 요원은 달콤한 잔향을 기억하곤 고개를 흔들었다. 이유 없는 호감이라니, 이런 일을 하는 인간에게 있어 최악인 감정.
‘후- 아무래도 근무지를 바꿔야겠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녀를 보는 순간, 다잡았던 마음이 흐물흐물하게 풀어지는 걸 보면 상성이 좋지 않았다.
‘이러다 실수하기 전에 알아서 피하는 게 좋겠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요원은 나주연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당분간 산책을 할 수 없다고요?”
나주연의 목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솟아올랐다. 요원이 머쓱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변이 괴수들이 산책로에 출몰했습니다. 안전관리상 산책로가 정리될 때까지는 실내 운동으로 대체하셨으면 합니다.”
“최소한 하루에 2시간 이상 나갈 수 있기로 하지 않았나요?”
정갈한 연구실. 모든 실험 기자재들이 오와 열에 맞춰진 공간. 매드 사이언티스트하면 떠오르는 뒤죽박죽인 연구실과는 달리, 그녀의 연구실은 강박증 환자의 거처처럼 먼지 하나 없었다.
요원은 연구실을 돌아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연구실에 처박혀 있으라면 자기라도 미칠 것 같았으니까 이해는 됐다.
“그랬습니다. 조금 전에도 자유롭게 산책하시도록 해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안전문제로 곤란합니다. 청소팀이 숲을 청소하고 있으니 며칠만 기다리시면 예전처럼 산책하실 수 있게 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나주연은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청소팀이 숲을 청소한다고 하질 않나, 숲에서 변이 괴수가 출몰했다고 하지 않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까마귀 때문인가?’
정중하게 인사한 까마귀가 떠올랐다. 까마귀들이 무슨 짓을 했고, 청소부가 출동해 까마귀를 사냥하던 중 변이 괴수를 자극했을 확률이 높았다.
‘이것들이 설마 내 다람쥐들을···.’
나중에 필요할지 몰라 강화하고 있던 다람쥐를 잡아먹으려고 한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정체가 발각됐겠지. 그러니까 괴수 사냥 전문팀이라고 불리는 청소팀이 왔을 터.
기다리라고 했더니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일을 벌였나? 누가 그가 키우는 짐승 아니랄까 인내심이 없었다.
나주연은 접속 포인트를 떠올렸다. 이곳에서 도보로 움직이면 아무리 빨라도 이틀, 넉넉하게 잡는다면 사흘에서 나흘은 잡아야 할 거리였다.
도망치는 순간부터 추적이 붙는다는 걸 생각해 볼 때, 단독으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 김 실장도 몇 남지 않았다. 탈출 전문가 기순이라도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없었다.
‘까마귀와 김 양의 도움이 필요해.’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을 알려야 했다.
“키우던 다람쥐들 때문에 잠깐이라도 안 될까요?”
나주연이 요원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서자, 달콤한 향기에 훅 침몰한 요원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흠- 잠···. 잠시만입니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었기에 나주연은 바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은 김 실장은 고작 8명. 함께 가야 할 필수 연구인력 40명 그리고.
“같이 가자. 따로 챙길 건 없지?”
“예? 지금 가자고요? 여기서 또 어디로 간다고요.”
나주연의 이야기에 나루가 드물게 부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솔직히 불만이 많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꿈꾸던 명문 대학에 진학했다. 체력과 반사신경, 순발력을 높여준 약의 도움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것도 실력 아니던가?
스포츠 쪽만 도핑이 있는 건 아니었다. 피지컬이 중요한 연주 분야에서도 알음알음 도핑이 있었고 들키지 않는 도핑은 곧 실력.
대놓고 약 먹은 걸 자랑하는 애들도 있는 판에, 자기처럼 약간의 도움(?)만 받은 사람은 정말 드물다고 생각하는 나루였다.
하지만 그렇게 기대한 명문대 생활은 오진 그룹이 통째로 울릉도로 옮기면서 파탄 났다. 당시에도 갑자기 이렇게 끌려가다시피 했었다.
“울릉도에서 있었던···. 그런 일 때문인 건가요?”
“그건 아니야.”
그날 밤 갑작스럽게 시작된 폭음과 함께 울릉도가 전쟁터가 됐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나루는 감정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럼. 어디로 가는 건데요?”
나루의 생각에는 울릉도로 간 게 잘못이었다. 더럽고 치사해도 한국 정부와 협상해서 서울에 그대로 있었으면 그 난리 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아무리 큰 오진 그룹이라고 하더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걸 나루는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미국으로 넘어간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기대감이 컸다.
아메리칸 드림. 한국 변방 울릉도보다야 미국이 낫지 않겠는가? 이왕 미국으로 가는 김에 유명한 미국 음대를 가면? 줄리아드라던가 줄리아드 같은 곳.
그렇게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기대했건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세상에. 미국의 실상은 엉망이다 못해 처참할 지경이었던 것.
남부와 동부가 갈라졌고, 갑자기 신성 왕국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왕국이 건국되지 않나. 심지어 텍사스에는 그녀의 마음에 드는 음악 대학도 없었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지하 비밀 연구소에서 반쯤 갇혀서 지내야 한다는 점까지.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이제 한창 피어오를 나이. 이제 막 인정받을 상황이었는데, 덤 취급당하는 것도 모자라 땅속에서 보내는 것도 짜증인 걸 참았더니 여기서 또 어딜 간다고?
“신성 왕국으로 가려고.”
“그러면 처음부터 거기로 갔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애초에 제가 뉴욕으로 가자고 했었잖아요. 줄리아드도 있고 뉴욕이면 워너비였는데. 깡촌 넘치는 남부 텍사스로 결정해놓고는 갑자기 가자는 곳이 신성 왕국일 건 뭐에요. 거기 디트로이트가 중심이라면서요? 와- 정말 디트로이트 모르세요? 진짜 파산한 동네인데 하필 거기로 가자고요?”
불퉁한 나루의 목소리가 다다다- 울렸지만, 나주연은 귀엽다는 듯 넘어갔다.
“그때는 오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설마 디트로이트에 그 인간이 있어요? 맞죠? 그 인간이 오라고 한 거죠?”
마루를 그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에 나주연의 눈빛이 조금씩 차갑게 변하기 시작했다.
“신성 왕국의 국왕이 네 오빠. 마루야.”
“네?”
나주연의 말에 나루의 표정이 맹하게 변했다.
“고기나 잡던 인간이 왕이요?”
인간 백정인데?
어?
그러고 보니 언제인가 비슷한 소리를 들어봤던 것 같기도 했다.
‘진짜였어?’
맹했던 나루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나 회장은 오진 그룹 회장이었다. 한국 정부, 정치인들과도 팽팽하게 맞섰던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 없었으니, 인간 백정이 왕이 된 게 분명했다. 분명히 유력자를 죽이고 그 자리를 꿰찼을 거다.
어떻게 왕이 됐든, 왕이면 권력자란 말 아닌가? 아프리카 오지에 있는 나라의 독재자들도 엄청나게 화려하게 사는데, 미국에서 독립한 왕국의 왕이라면 얼마나 잘 살까.
나루는 럭셔리 왕족 생활 진짜 잘할 자신이 있었다. 왕의 동생이면. 공작? 그러니까 공녀? 그런 건가? 일단 귀족 위에 있는 게 왕족이잖아.
순간 마지막 헤어졌을 때가 떠올랐다. 검은 비닐봉지에 눌러 담은 누런 지폐 그리고 앞으로는 자기 앞가림 자기가 하는 거니까 알아서 살라고 했던 이야기.
“왕이 됐으면서 어떻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을 수 있죠? 동생한테? 아니, 최소한 아빠랑 엄마한테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파장애였잖아. 인터넷도 끊겼었고.”
울릉도로 갔을 때부터 불만이 쌓인 나루였다. 울릉도로 가지 않았다면, 한국 정부와 협상했다면 그 난리가 일어나지 않았을 거고, 부모님을 잃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 인간도 그랬다. 왕국을 언제 선포했는지 모르겠지만, 전부터 자리를 잡았으니 그럴 수 있지 않겠나? 그럼 예전부터 미국에서 자리 잡아놓고선 입을 싹 닦고 있었다는 소리?
인간이.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통신이 끊겼다? 그런데 왕국 이야기는 어떻게 알았어요? 방법이 있으니까 알았잖아요. 그렇죠? 언니도 알고 있으면서 그냥 넘긴 건가요? 아니면 그 인간이 언니한테는 연락했나요?”
“···아니, 나도 국토안보국과 버지니아 랭리를 통해서 알게 된 거야. 안 지도 얼마 안 됐고. 시간이 없으니까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갈 준비부터 하자.”
나주연의 손을 살짝 뿌리친 나루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만요. 이렇게는 못 가요.”
“밖에 대기하고 있는 애들이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근처가 위험해졌으니, 경비원도 더 늘어날 거고. 시간 끌면 좋을 게 없어.”
“언니는 분하지도 않아요? 이제껏 가만히 있다가 틱-하니 오라 가라 그러는 데 그냥 가자고요?”
서서히 차가워지던 나주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직접 오라고 해야죠. 와서 직접 얼굴 마주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를 해야, 가든지 말든지 하죠.”
“그래. 그럼 그렇게 전해 줄게.”
“네? 언니는요? 아무 확답도 없이 이렇게 그냥 간다고요?”
아니. 이 언니가···.
부른다고 그냥 홀라당 가겠다고?
나루의 표정이 벙-쪘다.
“신성 왕국 국왕의 친동생이 있다는 건 감추고 있었거든. 내가 떠나고 나면 신성 왕국 국왕의 친동생이라고 말해. 그럼 여기 사람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야.”
“진짜로 지금 바로 간다고요?”
‘날 여기에 두고? 그냥 간다고?’
‘안 가겠다며? 그럼 가짜로 가겠니?’
나주연의 눈빛에 나루가 울컥했다.
그런 나루에게 약병을 통째로 건네주는 나주연.
“6개월 분량이야. 남용하지 말고.”
가득 담긴 약통을 받아든 나루의 얼굴이 버림받은 고양이 표정에서 도도한 고양이 모습으로 변했다. 6개월 안쪽에 데리러 오거나, 약을 보내준다는 뜻이니까.
“기순 씨는요?”
“시애틀에 갔어.”
당연히 보여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조한 물음.
“언제 오죠?”
“일이 끝나면 오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나루를 뒤로 한 채, 나주연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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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컴퍼니 본사.
죠셉 마이어 회장은 오진 그룹 나 회장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고도 담담했다.
“오진 그룹의 주력을 시애틀로 보내지 않았나?”
버나드 그린, 김기순과 김 실장을 비롯한 정예를 시애틀로 보낸 상황. 남은 자들은 신인류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능력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변이 괴수들이 제법 많은 지역에 오진 그룹을 넣었고 버지니아 직원을 비롯해 군부에서도 병력을 차출해 지키고 있었는데 빠져나갔다니.
“시애틀에서 보고입니다. 확인한 결과 버나드 그린을 비롯한 핵심 무력부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동부 제국으로 가는 길목은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서부로 가는 길목도 차단 완료했습니다.”
“북부는?”
“그. 북부는 쥐 떼가 있어서. 화생방 지대를 넘어간다고 해도 살아남기 힘들 겁니다.”
“그래서 북부에는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는 건가?”
“지금 바로 직원들 보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회장이 서류를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런데 나 회장은 어떻게 우리 요원들을 떼어 낸 거지?”
“지금 조사 중입니다.”
“남겨진 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 많은 오진 그룹 사람들을 버리고 핵심 연구인력만 챙긴 여자였다. 죽이지 않을 거라 판단한 건가? 하긴, 굳이 죽일 필요는 없었다. 동양계 실험체는 항상 부족했으니까.
“그리고 자기가 신성 왕국 블라디마루 칼린의 친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뭐라고? 친동생? 사실인가?”
죠셉 마이어 회장의 눈이 번뜩였다.
“예. 남겨진 오진 그룹 사람들 말로는 나 회장과 의자매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나 회장도 블라디마루 칼린과 약혼관계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국이 아니라 신성 왕국으로 간 건가? 제국이 아니라는 건 좋은데, 그렇다면 왜 함께 가지 않은 거지?
“더 자세하게 확인해 보도록. 그리고 정말 친동생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나 회장 추격은 그만하고. 오진 그룹 사람들도 예전처럼 그냥 두도록 해.”
든든한 선물을 남기고 갔으니, 최소한 대접은 해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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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숲 속.
여기저기 붉은 파편과 터진 고깃덩이 흔적이 널브러져 있었다. 누가 봐도 일방적인 학살이 펼쳐진 킬링필드가 펼쳐져 있었다.
“회장님. 이건.”
“괜찮아요. 그가 보낸 새들이에요.”
괜찮다고 대답한 나주연도 이런 참혹한 광경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살짝 목소리가 떨렸다.
착-
한쪽 날개를 펼쳐 모시겠다는 인사를 한 까마귀가 낮게 울었다.
까아악-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쪽으로-
마치 그렇게 우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