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3)
러스트 [RUST]-53
이런 싸움은 처음이었다.
막내는 무서웠다. 이런 걸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부 악몽 같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중학생 때 애들이랑 싸웠던 것? 중2병 휘날리며 정말 미친 듯이 무섭게 싸웠다. 하지만 그건 지금 이 상황과 비교하면? 비교할 거리가 아니었다.
싸울 때는 분을 이기지 못해서, 쪽팔리니까, 화를 내다가 진짜 화가 나서, 왜 화났는지도 모르고 혈압 오르는 대로 지랄하고 난 뒤, ‘아 망했어요.’ 이런 식이 대부분.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이 싸우는 건 달랐다. 오직 상대방을 어떻게 죽일까?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의. 지금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 피가 튀고, 아차 하는 순간 뼈가 부러진다.
막내는 그 농밀한 살의와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의지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심지어 두 사람 다 막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는 자기를 뽑아준 사람, 다른 하나는 자기한테 친근하게 대해준 사람. 하나는 호텔 샬롯으로 옮기면서 승진한 사람, 다른 하나는 회사에서 인정받은 성골 실장.
그 둘이 죽도록 싸우는 모습에 막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영상을 촬영하는 도중에도 막내는 그저 두렵고. 떨리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저러다가 덜컥 누군가 죽기라도 한다면? 뒤에 있는 회사 직원들이 어떻게 할까? 회사를 배신하고 샬롯으로 옮긴 사람들이랑 어떻게 할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두 사람의 결판은 순식간에 났다.
뻑!
김 실장의 안면을 때린 묵직한 박치기, 잠깐 의식을 잃은 김 실장.
그걸로 끝났다.
아- 막내는 한숨 놓였다. 결판이 났으니 이제 끝났겠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기영 과장이 김수현 실장의 몸에 올라탔다. 마운트 포지션에서 내려찍는 파운딩.
말 그대로 그냥 뒈져라 파운딩을 시작했다.
막내는 속으로 ‘제발! 그만해요.’ ‘이러다 사람 죽겠어요.’를 외쳤다. 속으로. 속으로만.
코가 내려앉고, 광대가 주저앉았다. 김 실장이 팔을 휘적거리며 파운딩에 저항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늘어져 버렸다.
이제 정말 끝났겠지, 끝일 거야. 막내는 휴대폰을 고쳐 들었다. 이제 이기영 과장이 김수현 실장을 포로로 잡아서, 회사 사람들에게 물러나라고 하고, 협상할 거야. 그러겠지?
당연히 이쪽이 불리했다. 회사 직원들, 성골들의 무장과 장비를 생각하면 그랬다. 양쪽이 충돌했을 때, 학살당하는 건 이쪽이었다. 낡은 리볼버에, 절연 테이프 감은 철근, 쇠 파이프, 금속 배트, 소방 도끼든 사람들이랑, 중무장한 회사 직원이랑 싸우면 결과는 뻔하지 않나?
막내가 잠깐 생각에 빠진 사이, 이 과장이 늘어진 김 실장의 다리를 붙잡고 뭔가 이렇게 저렇게 하더니 힐 훅을 했다. 으드득 무릎 관절이 뒤틀리는 모습.
막내는 숨이 턱 막혔다. 이겼잖아. 때렸잖아. 죽겠잖아. 근데 또?
뒤틀린 것으로 보아 김 실장은 병신이 될 것 같았다. 막내는 이 과장이 무서웠다.
양 팀장이 한 번은 지나간다고 했지만, 이 과장이 사실을 안다면? 주먹질 한 방에 얼굴이 박살 날 거다. 이겼는데도 저렇게 하는데. 김 실장에게 문자를 보냈던 것이 밝혀지면?
막내는 똥을 먹고 대성통곡하던 사내가 떠올랐다. 시골과 해외에 팔아버리라는 말도 떠올랐다. 손이 달달달 떨렸다.
사커킥. 사커킥. 김 실장의 머리통을 축구공 차듯 하면서 목이 부러지지 않는다고 짜증 내는 이 과장. 저 사람이 과연 내가 아는 사람인가? 죽이겠다고 발로 찼는데, 죽지 않는다고 목을 자르게 칼을 가져오라고 하는 사람이 무서웠다.
막내는 덜덜덜 떨면서 연장 가방을 열었다. 빼곡하게 차 있는 연장들. 피가 묻어 녹슨 것도 있었고, 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도 있었다. 막내는 제일 작고, 약해 보이는 것을 들었다. 꼬챙이처럼 뾰족하고 긴 것이었다. 이걸로는 목을 자르지 못하겠지.
덜덜덜 떠는 손으로 막내가 꼬챙이처럼 길고 가는 흉기를 들고 갔다. 김 실장을 보면서 뒤로 손을 내민 이 과장의 등이 보였다.
저쪽, 김 실장네 정보 담당관이 보였다. 눈에서 피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당장이라도 김 실장을 구하려고 오고 싶은데, 뭔가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 뭔가가 막고 있는지 오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눈이 마주쳤다.
자기를 보고, 뻐끔거리는 입 모양.
찔러!
누굴?
막내는 멍했다.
그렇지 않아도 진이 전부 빠진 것 같았다.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났다.
찔러!
아니면 다 죽는다.
막내의 눈에 기관단총을 든 직원들이 보였다. 정신이 몽롱했다.
순간, 교통사고로 장애가 된 부모님이 떠올랐다. 아- 가족들 전부 서울에 있는데···.
철컥- 회사 직원들이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찔러!
찌르란 말야!
다 죽···.
푹-
어?
막내는 눈을 끔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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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뚫고 나온 송곳 같은 칼날.
이기영 과장은 반사적으로 백스핀 블로우를 때렸다. 퍽 소리와 함께 막내가 데굴 굴렀다.
“이런 씨발.”
“형님!”
배에 꼬챙이가 꽂힌 이 과장을 본, 안 팀장이 소리 질렀다. 그리고 누군가 방아쇠를 당겼다. 단 한 발의 총성이 순식간에 도화선이 됐다.
타타다다당!
소음기를 단 기관단총이 총알을 뱉어냈다. 총탄을 받아먹은 사람들이 피를 토해냈다.
순식간에 벌어진 아수라장이었지만, 생각보다 대응이 빨랐다. 방패를 들고 있던 애들이 기관단총을 막아섰다.
이 과장은 배를 부여잡고 손을 저었다.
“오지마! 씨발- 종구야. 그거 해! 여기 오지 말고 그거 해!”
이기영 과장을 향해 달려가던 안 팀장이 주먹을 꽉 쥐곤 뒤로 돌았다.
“새끼들아, 준비한 거 까-. 전부 까라고!”
팅- 퉁- 텡- 푸쉬시시시식
연막탄이 자욱하게 연기를 쏟아냈다. 수십 개의 연막탄이 한 번에 터지자,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한 연막이 펴졌다. 그냥 다 죽어라- 총알을 뱉던 기관단총이 입을 다물었다.
안 팀장과 직속 부하들이 맥주병이 가지런하게 담긴 짝을 끌고 왔다. 맥주병을 막은 천이 길게 뽑혀있었다.
“십새끼들 아주 불지옥을 보여주마.”
중동에서 장비 존나 좋은 미군이 장비빨 믿다가 어떻게 좆됐는지 알려주지. 안 팀장이 사제 네이팜을 채워 넣은 화염병에 불을 붙였다.
“다 태워버려!”
안개 저편으로 수십 개의 화염병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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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정신을 잃었던 막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입속에 뭔가가 있었다. 퉤- 침을 뱉자, 피와 함께 이빨이 몇 개 튀어나왔다. 너무 아팠다. 망치로 얼굴을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짙은 연기가 바람을 타고 파도처럼 밀려왔다. 건너편에서는 끊이지 않는 총성과 폭발하는 화광이 흰 연기 속에 색을 입혔다. 막내는 눈을 깜박였다. 흐릿했던 초점이 돌아왔다.
김 실장님.
막내는 김 실장을 찾았다. 그러려던 게 아니었다. 그냥. 그건 아니었는데. 막내는 달달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김 실장의 몸이 밀려오는 연기 속에 가라앉고 있었다. 이 과장은 보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무서웠지만 김 실장이 죽게 두면 안 됐다. 어차피 이젠 뒤가 없었다. 김 실장을 살려서 나가야 했다.
으- 윽-
김 실장의 상태는 처참했다. 입 주변에서 피거품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으로 보아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았지만, 과연 살 수 있을까 싶은 몰골이었다. 왼팔은 부려져 너덜거렸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과 발목이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비틀려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우우-
우웩-
자기도 모르게 토악질한 막내가 김 실장의 방탄조끼를 잡아끌었다. 정보 담당관이든 회사 직원이든 김 실장을 데리러 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오지 않고 있었다.
끙- 무거웠다. 잘 끌리지 않았다.
그래도. 살려야 했다. 김 실장이 살아야. 자기도 살고. 김 실장과의 끈도 끊어지지 않을 테니.
막내는 필사적으로 김 실장을 끌고 연기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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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실장의 부하들은 분노했다.
부상이 아니었다면, 이기영 따위는 수수깡 부러뜨리듯 부숴 버릴 수 있었을 거다. 다친 틈을 타 1:1을 하자고 개지랄 떤 이기영 씹새끼에 대한 증오가 10월의 찬 공기를 달굴 지경이었다.
“씨발 그냥 보고만 있습니까?”
“대체 왜 그럽니까? 이기영이 개새끼랑 떨거지들 때문에 그런 겁니까?
간신히 수류탄 안전핀을 꽂고, 예비대가 있는 곳으로 온 정보 담당은 미칠 지경이었다. 자기라고 김 실장을 구해오고 싶지 않겠는가?
근데 거기엔 ‘그게’ 있었다. 씨발 ‘그게’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과정이야 어쨌든 김수현 실장과 이기영 과장은 그거 앞에서 1:1을 했다.
근데 김 실장이 위험하다고 우루루 몰려가 이기영을 쏴 죽이고 김 실장을 구해온다? 씨발 그러다 ‘그게’ 움직이면?
“닥쳐! 썅 나라고 가만히 있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김 실장을 죽이려는 이기영이었는데, 막내가 이기영의 뒤를 찔러서 김 실장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막내가 생각대로 해줘서. 제발 막내가 김 실장을 이쪽으로 끌고 와야 했다.
“정보 팀장님. 녀석들의 저항이 거셉니다.”
“그럼 들어가지 말고 현 위치에서 버텨!”
정보 담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짙은 연막 저쪽이 붉게 물들었다. 이어지는 폭음. 뜨거운 열기.
펑! 펑! 퍼어어엉!
화르르르륵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불이야!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진형.
정보 담당의 눈이 커졌다. 연막탄에 사제 네이팜? 화염병? 이 새끼들,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진형 뒤로 빼! 수류탄 까서 날리고 진형 뒤로 빼!”
연막으로 시야를 차단하고 화염병을 이용해서 전진한다. 저 단순한 방법을 당장 막을 방법이 없었다. 무차별적으로 계속 총을 쏴서 전진을 막고 있는데, 저쪽에서 바로 총성이 나는 쪽으로 화염병을 던져대니,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기영 개새끼가 바닥을 구르던 놈이었던 걸 간과했다. 개싸움에는 도가 튼 새끼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밀어 버리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화력에서 압도적으로 월등하니 어중이떠중이쯤이야 쉽게 제압할 줄 알았다. 구형 38구경 리볼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놈들에게 고전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봤다.
근데 막상 뚜껑을 까보니 아니었다. 지뢰라도 있었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팀장님. 지금이라도 당장 김 실장님을 구해와야 합니다.”
“맞습니다. 저쪽이 화염병을 이용해 저런 식으로 전진하면, 지금 가진 장비로는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안다고. 나도 알아. 근데 김 실장이 있는 곳에는 그게 있다고. 정보 담당이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고뇌했다.
“여기요! 여기 김 실장님 데려왔어요! 누구 없어요?”
막내의 목소리가 연기 저편에서 들렸다. 정보 팀장이 목소리 방향으로 내달렸다. 주위에 있던 부하들 몇이 같이 달렸다. 막내가 피투성이가 된 김 실장을 질질 끌고 있었다.
“씨발 이 새끼야 진짜 잘했다. 너 존나 씨발! 장하다! 의료반. 의료팀 빨리 불러!”
사제구급차에서 들것을 내린 의료팀이 김 실장에게 달라붙었다. 그리고 김 실장의 몰골을 본 부하들은 꼭지가 돌아버렸다.
정보 팀장이 김 실장의 상태를 확인하고, 방어에 신경을 쓰는 사이, 김 실장 직속 부하들 몇이 이기영을 잡아 죽이겠다며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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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감상은 간단했다. 단칼에 삭둑 자르는 것도 아니고, 주먹으로 치고받고, 관절을 뒤틀고 파운딩까지, 뭐라 말하기 꿉꿉한 느낌이었다. 이게 종합격투기 시청하는 것처럼 그럴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고 그랬다.
졸지에 ‘심판’당한 마루인지라. 결과는 봐야겠다 싶어서 있기는 있었는데, 뒤에서 푹- 엔딩이라니. 아- 뒷치기 당한 아저씨 죽지는 않았지. 그러니까 엔딩은 아니고.
이후 월드하고 샬롯이 대차게 붙었다.
‘흠- 금방 끝나겠는데? 김 실장이라는 사람은 저쪽에서 끌고 간 거 같고.’
그럼 슬슬 일어나 볼까?
마루가 자리를 정리하려고 할 때, 배에 꼬챙이를 꽂은 이기영 과장이 다가왔다.
“호텔 샬롯 사장님께서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
마루의 침묵에도 이기영 과장이 계속 말했다.
“저희 측 전속 용병이 되어주신다면, 호텔 샬롯이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 들어 주실 용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루는 헛웃음이 나왔다. 돈 받고 백정질하지 않겠다고 이 지랄을 떨고 있는데···. 마루의 분위기가 변하자, 이 과장이 재빨리 이야기를 덧붙였다.
“전속 용병이 아니더라도, 저희 쪽을 적대하지 않으시겠다는 답만 주셔도, 호텔 샬롯이 할 수 있는 예우를 다해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응? 그러니까 저쪽에 칼을 휘두르지만 않아도 뭔가 해준다는 거? 그건 조금 혹했다. 하긴, 자신의 상황을 알지 못하니, 저쪽에서는 자신이 다른 세력의 용병으로 들어가 호텔 샬롯을 향해 칼을 드는 걸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루가 ‘그건 괜찮겠네.’ 하는 순간,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느껴지는 짙은 살기. 살기의 방향이 마루가 있는 방향을 향했다.
“엎어져!”
마루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엎드리려던 이기영 과장이 엉거주춤했다. 배에 꽂힌 꼬챙이 때문이었다.
투다다다닥!
기관단총 소리와 함께 이 과장의 오른쪽 등판과 팔뚝을 훑고 지나가는 총알.
썅- 말하고 있는데, 어떤 새끼들이야.
마루가 칼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