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33)
러스트 [RUST]-533
톡톡. 건드려봐도, 반응이 없었다.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 사라진 생체정보 단말기였다.
[——————]거품이 나지 않는 뇌둥둥.
그렇다면 그건 이제 뇌둥둥 박사라고 할 수 없겠지, 그냥 껍데기만 남았다고 봐야 했다.
‘그럼 알맹이는 어디로 갔을까?’
알맹이가 어떻게 빠져나갔느냐가 중요했다.
김 양은 바로 마루가 가져온 헬멧을 떠올렸다. 일종의 전자파를 이용해 뇌에 직접 정보를 새길 수 있다고 했던 장치.
정보를 새길 수 있고 지울 수 있다면 덮어쓰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역시 최고 존엄. 바로 간파했네.’
응.
혼자서 고개를 끄덕인 김 양이. 턱짓으로 에리카에게 사이코메트리를 시작하라 신호했다. 약간 주저하던 에리카가 맨 앞에 있는 연구진의 손을 살짝 잡았다.
살풋 구겨지는 미간.
“이 분은 괜찮아요.”
“거기 옆으로-”
“이 사람도 이상한 점 없어요.”
“이쪽으로 나와.”
······
······
그렇게 중간쯤 갔을 때, 에리카의 손을 붙잡은 한 연구원이 손아귀에 힘을 줬다. 쑥 – 끌어당기는 힘에 에리카가 참새처럼 비명 질렀다.
“꺅- 세게 잡지···.”
타아아앙!
소음기에 억눌린 묵직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뻐어어억—-!!!
에리카를 끌어당겼던 연구원의 머리통이 폭발하듯 날아갔다. 코 윗부분 머리통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 12.7mm 작열철갑소이탄을 근거리에서 맞은 결과는 참혹했다.
“우——이——”
가까이서 터진 핏방울과 고깃덩이를 맞은 에리카가 울먹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그대로 기절했다거나 비명을 질러 하늘을 쑤시고 버둥거렸을 텐데. 많이 강해진 것 같았다.
“잘했어.”
“······.”
김 양의 칭찬에 핏방울이 튄 얼굴을 닦은 에리카가 숨을 몰아쉬었다.
“마귀 들린 새끼였음.”
“······.”
“······.”
“······.”
그녀가 시체를 턱짓하자, 머리통이 날아간 연구원에게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에리카를 잡고 있던 반대편 손이 쥐고 있는 드라이버가 보였다.
“봤음?”
“······.”
“······.”
“······.”
김 양이 연구진을 향해 겨눴던 총구를 척- 내려놓자, 바짝 날이 섰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잡혔다. 분노조절 장애를 일으킨 자들이 넘치고 좀비 아닌 좀비가 된 자들이 준동하던 시기를 겪고 들어온 연구원들이라, 혼란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12.7mm짜리 바렛을 일반적인 소총을 들 듯이 편하게 어깨에 걸친 김 양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음 계속해.”
“이상한 자를 잡았으니 끝난 것 아닙니까?”
한 사람이 잡았으니 끝난 것 아니냐는 친위대원의 말에 그녀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응. 아니야. 다음···.”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는 게 맞았다. 신형 정보추출장치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기억을 건드릴 수 있게 된 놈인데 어디까지 갔을 줄 누가 알겠나. 그놈이 만약 복사, 붙여넣기라도 했다면?
“복사. 붙여넣기요?”
“그래. 복붙한 놈이 있을지 모르니까 다들 긴장해. 에리카- 계속해.”
아마 마루도 이걸 생각해서 자기를 보냈을 것이 분명했다. 연구원이랍시고 어설프게 처리하지 말라는 뜻.
에리카는 계속하라는 김 양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복사 붙여넣기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얼굴에 튄 핏방울을 닦은 그녀가 다시 숨을 크게 쉬었다.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핏방울. 터진 머리통. 코 윗부분이 박살 난 시체. 시체.
후으-
넘어올 것 같은 무엇을 꾹 누른 에리카가 다음 연구원을 향해 다가섰다. 가까이 있었기에 자기처럼 피를 뒤집어쓴 연구진의 손을 붙잡자, 밀려오는 감정.
공포. 그리고 공포.
[읽지 마.]애원과 공포로 이어진 끝에 처음으로 다른 게 나왔다.
[트리아!]어? 트리아?
‘트리아면 그거 인공지능?’
연구원의 손을 붙잡고 사이코메트리를 쓰느라 자연스럽게 숙였던 에리카가 김 양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마자 들리는 작은 소리.
퓨각-! 퓨걱-! 퓩!
이어 그녀가 잡고 있던 연구원의 팔에 힘이 쭉 빠지며 뒤로 넘어갔다.
“계속해.”
어깨에 12.7mm 바렛을 걸친 채, 다른 손으로 소음기 달린 권총을 뽑은 김 양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후으으-읍-
에리카는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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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닥- 내달리던 소리가 뚝 끊기면 어김없이 붕 떠오르는 마루의 모습. 대놓고 점프하듯 계단을 내달리는 마루가 무전기를 확인했다. 불안하게 깜박이던 LED 표시등이 안정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기. 어떻게 됐어?”
[이제 막 두 마리 잡았음. 아무래도 복붙인 것으로 보이니까 그쪽도 조심하기 바람.]복사, 붙여넣기라고?
혹시나 했더니, 젠장···.
“연구실 정리 끝나면 이쪽으로 오지 말고, 일단 그 기계 한 번이라도 머리에 쓴 사람은 에리카에게 확인받도록 해.”
[전부? 해보기는 하겠지만, 에리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되는 데로 확인해봐. 멀쩡한 연구진도 많잖아. 신형 정보추출기를 몇 개나 만들었는지, 만든 뒤 몇 명이나 썼는지, 누가 썼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어도 어디야.”
[알겠음.]슬금슬금 기분이 찝찝해지는 게, 생각할수록 영하니 불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 이사 마크 2가 떠올랐기 때문.
유 이사 마크 2가 같은 유전자를 가진 클론에 빙의(?), 접속(?)하는 방식이라면, 뇌둥둥 잭 니스 박사는 자신의 정보를 복사해서 다른 사람에게 붙여넣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둘 사이에 차이는 컸다. 유 이사 마크 2가 한 번에 한 클론에 들어간다면, 잭 니스 박사는 복사해서 동시에 여럿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다른 몸뚱이로 옮겨 탈 수 있다는 공통점이 더 컸다. 만에 하나 유 이사 마크 2의 능력이 점차 강해져 클론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쓸 수 있게 된다면?
잭 니스 박사의 육체 강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머리에 쓰는 헬멧형 정보추출기를 사용해 정보를 추출, 복사, 붙여넣기를 하지만 원거리에서도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미 70~80년대부터 실험이 있었어.’
5G가 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국제면 기사에 5G 중계기를 차로 들이받아 버린다거나, 자기 집 근처에 5G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시위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들 그랬을까?
인간의 뇌에 전자파를 쏘아 사람을 미쳐버리게 한다거나, 감정을 증폭시켜 사람을 조종하는 실험들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뇌둥둥 잭 니스 박사가 그 실험을 이어받아 끝내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광역 복사, 붙여넣기로 탄생한 수만 수십만의 잭 니스 박사의 뇌가 직렬로, 병렬로 연결되어 연산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뇌둥둥 생체단말기 경험이 있는 잭 니스 박사의 연산력은 슈퍼컴퓨터를 아득히 넘어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수만에서 수십만의 인간의 뇌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 뇌를 자유자재로 단말기로 사용할 수 있게 되려면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니, 분명히 슈퍼컴퓨터실로 갔을 터.’
잭 니스 박사라면 반드시 트리아를 확보하려고 할 테니까.
인공지능 컴퓨터실 문앞.
한 남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연결됐기에 알 수 있었다. 방금 2명의 자신이 사라졌다는 걸.
“열려라! 열려!!”
필사적으로 보안 문을 해킹하는 그가 소리 질렀다.
덮어쓰기를 너무 급하게 했는지, 부작용인 두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두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격통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끄윽-
신체와 정신이 강제로 뜯겨나가는 느낌이 뇌리를 흔들었다. 일순 다리에 힘이 풀린 사내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쿱-
코피가 터지며 아찔해지는 시야.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여기서 멈출 수 없어.’
신형 정보추출기야말로 신세계를 열 수 있는 열쇠였다. 아무도 불행하지 않은 사회, 모두가 행복한 신세계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의 시작이었다.
이것을 이용한다면 트리아와 직접 이어질 수 있었다. 이것을 이용하면 자신이 만든 세상에 타인을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
슈퍼컴퓨터를 온전히 장악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블라디 아크 타워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디트로이트에 있는 수십만의 뇌를 손에 넣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러니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열려라! 열려!’
주저앉았던 그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생체단말기 시절 얻은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해 슈퍼컴퓨터실의 보안 출입문을 뚫고 있는 잭 니스 박사였다.
후욱-
끼기기기기깅-
미쳐버릴 정도의 과정을 거쳐 기어코 보안 문을 열어낸 사내의 눈빛이 희열에 잠겼다.
하하하하하-
“열었다. 드디어. 열었어.”
‘트리아. 내가 간다.’
우리가 꿈꾸던 이상향을 만들···.
자동문이 열리자, 그 안에 또 문이 있었다. 전자식 보안 문이 아닌, 다이얼과 열쇠로 여는 문.
은행 금고?
언제 이딴 금고 문짝을 달았지?
빌딩 공사했을 때 여기에 왔었다. 당시에는 없었다.
슈퍼컴퓨터를 이곳에 설치했을 때는 이런 게 없었다고!!!
급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육체와 정신의 괴리를 갉아댔다.
주르르륵
사내의 코에서 멎었던 피가 다시 흘러내렸다.
이어 귓구멍에서도
그리고 어느새 뚝뚝 떨어지는 피눈물.
‘크흐흐흐.’
앞을 가로막은 문짝 앞에서, 그는 포기를 몰랐다.
뇌둥둥 생체단말기에 갇혔을 때도, 기스 라이저의 발아래 짓밟혔을 때도, 블라디마루 칼린의 폭압 속에서도 그는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고 버터, 마지막에 와서야 얻은 기회가 지금이었다. 고작 금고 문짝 따위에게 막히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니란 말이다!
웅웅-
[여기 금고 문짝이 있다. 컴퓨터실에 금고 문짝을 달아놨어.]이걸 열려면 정보와 자료, 기술이 필요했다. 다른 뇌들과 연결할 수 있는 제한적 능력. 강제 텔레파시가 발동됐다.
[▣▣▣▣▣▣▣▣▣▣▣▣▣▣▣▣▣▣▣]식인귀나 귀족들도 강제 텔레파시를 사용하면 후유증이 심각한데, 이건 더 심각했다.
으아아아아!
여기저기 복사된 또 다른 자신에게서 조금씩 정보가 밀려들었다. 사내는 회백색으로 빛나는 금고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끼리리릭-
죽어가는 육신이 피워올린 마지막 불꽃. 손끝의 감각이 전에 없이 예민했다.
티티티티틱-
느껴지는 톱니와 기계장치의 가동.
틱-
하나를 맞췄다. 다이얼을 반대로 조심스럽게 돌리던 그의 팔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
끄직-
기계음이 아닌, 고기 썰리는 소리와 함께 툭- 바닥으로 떨어진 오른팔. 사내는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멍하니 뒤를 돌아봤다.
누구?
누가 인류의 생존이 달려있는데 방해를···.
“누구긴 누구야 새끼야. 집주인이다.”
콱! 사내의 멱살을 움켜쥔 마루가 으르렁거렸다.
“크윽- 문을 열어. 문을 열라고!”
“붙여넣기 한 놈 몇이냐? 몇 명이야?”
“이 문을 열면 인류가 낙원에서 살아갈 수 있단 말이다!”
“어딨어? 어디에 풀었지?”
박사와 마루가 동시에 말했다.
“남부연맹과 제국은 대전쟁을 벌일 거다. 7개로 쪼개진 중국도 마찬가지고. 아직도 바이러스는 변이를 일으키고 있고 어디까지 변이를 일으킬지 모른다. 반복해서 변이를 일으키면 하나를 견뎌도 결국 변이를 따라잡을 수 없어.”
“따라잡지 못하기는 새끼야. 식인귀를 조질 수 있는 능력자들이 자연적으로 생기고 있는 거 몰랐냐?”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움켜쥔 멱살을 휙- 밀치자 발라당 넘어진 박사가 악을 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루는 총알을 하나 빼, 탄두를 분리했다. 코닝이 잘된 화약이 황동 탄피에 든든하게 들어있었다.
“환경재앙은? 기후변화는? 7개월의 혹한 다음에 7개월짜리 폭염이 온다면? 무얼 먹고 살아아아악!!!”
치이이익-
총탄에서 빼낸 화약으로 사내의 잘린 절단면을 태워버린 마루가 서늘하게 웃었다.
“대비하면 되는 일이다. 대비하고 있었고. 이 빌딩 공사했을 때 봤으면서 이 지랄인가?”
“그렇게 소수만 살겠다고? 모든 인류가 살아남을 방법, 진화할 방법, 아무도 고통받지 않는 세계를 만들 유일한 방법이 있음에도? 성공할 수 있어! 성공할 수 있다고! 내가 증거다. 이 내가 증거야!!!”
“지랄하네. 미친 새끼. 그래서. 다른 놈들은 어디서 뭘 하는 데? 말 안 해?”
마루의 칼이 엎어진 박사를 향했다.
뚝뚝 묻어나는 살기가 짙어지자, 박사의 코에서 다시 피가 터졌다.
주루룩-
컥- 컥-
박사가 CCTV를 향해 손을 뻗었다.
“트. 트리아.”
“트리. 아-”
위이이이잉-
기계음과 함께 천장이 열리며 자동포탑이 드러났다.
기이이- 4개의 총구가 마루를 향하자, 힘겹게 버티던 박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걸 본 마루가 담담하게 이클립스를 치켜들자,
에에에에엥-
소리와 함께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가는 자동포탑.
희망을 찾은 것처럼 반짝이던 박사의 눈빛이 순간 당황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