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34)
러스트 [RUST]-534
인공지능이 발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발전을 하드웨어적인 부분이 아닌,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의미했을 때로 한정한다면 어떤 해석이 나올까?
현재 인공지능 셋이 들어있는 슈퍼컴퓨터 모듈을 따지자면,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 뛰어난 하드웨어 성능을 갖고 있었다.
그 뛰어난 하드웨어를 이용해 자동학습을 취한 인공지능은 얼마나 발전했을까?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최소한의 제한만 있었던 인공지능들은 무얼 학습했을까?
일단 그들의 업무 영역은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었다.
군사작전 보조, 행정 보조 쪽은 디아나. 정보 관리, 보안, 해킹과 같은 파트는 사만다. 그리고 연구 관련은 트리아가 담당했다.
물론 연산력에 여유가 있을 때마다 각기 다른 영역을 돕기도 했지만, 각자의 영역 부분에 초점을 둔 연산력 분배였다.
결과적으로 최소한 자기 영역에서만큼은 숙련된 인간처럼 임기응변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공지능이 발전한 것.
마루는 디아나가 ‘배제’, ‘제거’를 권했던 일, 사만다가 후드에게 ‘조언’했던 일, 트리아가 박사의 안전을 가지고 ‘거래’를 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자동포탑이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곤 차갑게 웃었다.
실수로 내려왔다?
인공지능이 실수?
실수를 가장한 계산이겠지.
아마 사람처럼 실수한 것처럼 보여 반응을 유도하려고 했겠지.
“트리아-”
“트리아아아-”
트리아를 애처롭게 부르짖는 사내를 발로 죽 밀어버린 마루가 목에 걸고 있던 열쇠로 금고문을 열었다.
끼릭-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전자장비 없이, 오직 기계식으로 작동하는 문짝이 열리기 시작했다. 두툼한 금속 재질의 문이 열리자 예의 그 독특한 슈퍼컴퓨터 모듈이 보였다.
녹색, 파란색, 붉은색으로 빛나는 모듈 셋. 요란스럽게 번쩍이며 점멸하는 불빛이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흐으으억- 트리- 트리아아아-”
구석에 쭉 밀려났던 사내가 문이 열리자마자 비척비척 안쪽으로 들어섰다.
툭- 발을 걸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엎어진 남자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발로 꾹 짓밟은 마루가 차갑게 말했다.
“동작 그만.”
어쩐지 찝찝하고 더러운 느낌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여기 잡혀있는 박사 말고 또 다른 박사가 신박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등판을 꾹 누른 발이, 박사의 척추를 압착기처럼 누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눌려버린 등판, 으스러질 것만 같은 고통에 박사가 미명 질렀다.
“끄아아아악- 트. 트리아아아악!”
“동작 그만.”
박사의 높은 비명과 마루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선명하게 대비됐다. 치열하게 주도권 다툼을 하던 인공지능 셋이 슬그머니 불빛을 줄였다.
마루도 박사를 짓밟는 것을 멈췄다.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지면서 조금 전 느꼈던 공포도 휘발됐는지, 다시 비척비척 슈퍼컴퓨터 모듈을 향해 기어가려는 박사.
쿠직-
마루는 단호하게 발목을 밟아 으스러뜨렸다. 고통에 찬 비명이 높고 길게 이어졌다. 붉은 불빛이 허둥지둥 마루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만하셔요. 박사님을 살려주기로 했잖아요.]“네가 보이엔 내가 박사를 죽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쿠직-
반대쪽 발목을 밟아, ‘트리아’ 어쩌고 하려던 박사의 아가리에서 다시 비명이 터지게 한 마루가 흉흉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지금 마루가 하는 행동은 ‘무력화’나 ‘고문’에 가까웠지, ‘처형’이나 ‘살해’는 아닌지라 불안하게 흔들렸던 트리아의 붉은 불빛이 조용해졌다.
[······.] [······.] [······.]다른 인공지능도 마루의 거침없는 행동에 몸을 사렸다. 연산결과 잘못하면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길 확률이 90% 이상이었기 때문.
[디아나, 현재 폐쇄한 연구실 현재 상황 모니터에 띄워.“ [접속이 어렵습니다.]“트리아 때문인가?”
[예.]“트리아 CCTV 화면 띄워. 1번에는 현재 상황, 2번 모니터에는 24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영상. 4배속으로.”
[······.]“야. 모니터에 영상 올리라고.”
트리아의 붉은 불빛이 불안하게 깜박였다. 픽- 웃은 마루가 이클립스를 어깨 위에 걸쳤다. 여기저기 피딱지 앉은 것처럼 우둘투둘한 이클립스의 단면이 도드라져 보였다.
“너는 나와 한 계약을 어겼어.”
[···무슨 소리죠?]“이런 소리지.”
서걱-
발목이 으스러졌음에도 트리아의 붉은색 모듈을 향해 기어가던 사내의 목이 잘렸다. 꿀럭- 잘인 단면에서 질척하게 흘러나온 핏물이 트리아의 모듈을 향해 서서히 흘러들었다.
[박사님!!! 당신. 당신. 당신 지금 약속을 어겼어!!!]“지랄하네. 디아나, 사만다. 컴퓨터실 자동포탑 권한 싸움보다 연구실 CCTV 자료 빼내는 데 집중해.”
[알겠습니다.] [예.]자동포탑 장악에 사용되는 연산을 줄이자, 6개의 자동포탑 가운데 2기의 통제권이 트리아에게 넘어갔다.
4개의 기관총이 엮인 자동포탑 2기가 붉은빛을 내는 것과 동시에, Rsh 리볼버의 방아쇠가 먼저 당겨졌다. 묵직한 총탄의 에너지를 흡수한 이클립스가 귀신 같은 소리를 냈다.
끼이이이이이이이–
고통과 원한에 찬 진동음이 날카로운 절삭력으로 환원되는 느낌. 마루는 그대로 자동포탑을 향해 원한에 찬 이클립스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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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버터가 잘리는 것 같았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자동포탑을 감싼 특수복합 장갑이 도려졌다.
쿵- 쿠쿵-
천장에 달린 자동포탑이 총알 한 발 쏴보지 못하고 낙과처럼 떨어지자, 인공지능들의 불빛이 움찔 떨렸다.
“CCTV 녹화 영상 어떻게 됐어? 찾았으면 모니터에 올리고, 디아나, CCTV 영상 분석해서 뇌둥둥 박사 수리할 때 거든 사람들 명단 뽑고, 격리 통제하라라고 김 양에게 전달해”
[알겠습니다.]“사만다. 현재 상황을 1급 비상사태로 본다.”
[1급 사태 말씀입니까?]“그래. 1급 사태 가운데 전시로 본다. 전시 대응 태세 시작하도록 해. 해킹 대비도 철저하게, 스푸핑(Spoofing)과 재밍(Jamming)에 특히 유의하고 EMP 대응도 준비해.”
[예.]디아나와 사만다에게 명령한 마루가 붉은색으로 불안하게 점멸되고 있는 트리아를 향해 성큼 다가섰다.
[······.]“너는 계약을 어겼고.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어.”
마루는 트리아가 아닌, 다른 두 인공지능이 들으라는 듯 이야기했다. 애초에 뇌둥둥 박사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가 뭐였나? 트리아가 협조하도록 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3개의 모듈로 분리된 슈퍼컴퓨터는 그 자체로 정반합의 원리를 구현할 수 있게 설계된 걸작이었다. 1+1+1=3 이상의 성능을 낼 수 있도록 고안된 특수한 시스템.
셋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성능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기 때문에, 박사와 트리아의 병신 짓거리도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묵과할 수 없었다.
“뇌둥둥 상태인 박사가 신형 정보추출기를 통해 의식을 덮어쓸 수 있게 됐다는 걸 CCTV를 통해 알 수 있었을 거야. 그렇지?”
[······.]중요한 정보를 독점하기 위해서 그리고 육체를 강탈한 박사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CCTV 자료를 넘기지 않았을 터.
당연히 디아나와 사만다가 보안 자료를 요구했을 것이고 이를 거부하자 인공지능이 싸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결과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통신망이 불안정해졌고, 김 양과 유기적인 대응을 펼칠 수 없게 됐다. 그건 전부 트리아의 배신 때문이었다는 걸 이야기하는 마루였다.
“틀린 부분 있거나 반론이 있으면 말해봐.”
[······.]제일 악질적인 것은 그 부분이었다. 마루가 목을 친 박사가 마치 그 한 사람인 것처럼 ‘연기’했다는 점.
덮어쓰기 한 걸 둘이나 잡았다는 김 양과 통신하지 못했다면 깜빡 속았을 법한 연기. 인공지능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까? 마루가 겪은 바로는 ‘속이고’, ‘연기’를 할 정도였다.
그리고 트리아가 일으킨 위험보다 자신들의 성능이 저하될까 두려워한 나머지, 마루에게 바로 보고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사태를 해결하려고 할 정도.
그렇지 않은가? 트리아가 이상 징후를 보였으면 곧바로 마루에게 트리아가 문제 있어 보인다고 우선 보고했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디아나와 사만다가 선택한 행동은 일단 트리아를 진압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가는 것이었다.
마루는 천천히 이야기를 계속했다.
“연산력 떨어지고 성능 떨어질까 싶어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다?”
[그게 아닙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CCTV 분석 결과는? 김 양에게 전달했고?”
[전달했습니다.]“말해봐.”
[트리아를 말려야 했습니다. 분명 트리아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 말릴 수 있다면 위험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저희 쪽을 배제할 것이라는 연산결과 때문에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 해결하려고 했을 뿐입니다.]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내 말이 맞았다는 거지?”
디아나와 사만다가 뭐라고 항변하기 전, 이클립스가 굵직한 검붉은 실선을 그렸다. 붉게 점멸하고 있던 슈퍼컴퓨터 모듈 하나가 사선으로 길게 쪼개졌다.
피가 뿜어지는 것처럼 밝은 붉은색 냉각제가 핏-핏- 솟구치며, 고장 난 턴테이블 긁히는 소리를 냈다.
위이이이잉- 슈퍼컴퓨터 전체의 출력이 확 떨어지는 느낌을 아랑곳하지 않은 마루가 삼각형으로 배치된 모듈 한쪽 바닥에 이클립스를 박아 넣고, 트리아가 있던 곳을 케잌 자르듯 잘라버렸다.
끄직-끼이이익-끄지직-
물리적으로 뜯어버린 마루가 서서히 붉은빛이 사라지고 있는 토막을 발로 툭 차며 말했다.
“박사로 덮어쓰기 당했을 가능성 있는 사람들 전부 찾았지. 김 양에게 전달했고.”
아직도 안 했을까?
냉각제가 뚝뚝 떨어지는 이클립스를 든 마루가 입꼬리를 비틀자, 녹색 빛과 파란색 빛이 분주하게 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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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빛났던 감시 카메라의 불빛이 녹색으로 물들자.
“트리아!”
“트리아!”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는 기이한 모습.
[현재 1급 경계경보가 발령됐습니다.] [현재 시각 이후, 안내와 통제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시각 이후, 1급 경계경보가 발령됐습니다.] [모든 작업을 정리하고, 안내 방송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반드시 성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머릿속을 울리는 정신파에 두 사람이 얼굴을 찌푸렸다.
뇌둥둥 단말기가 보관되고 있던 격리통제실 깊숙한 곳.
정신파 테러에 사용된 뇌척수 정신파 발생기에서 LED 표시등이 작게 깜박이고 있었다.
헉- 허억- 헉-
신형 정보추출기. 헬멧형을 든 여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이 많은 남자처럼 숨을 몰아쉬는 여자의 숨소리.
‘연구동은 전부 트리아가 관리하는데···. 벌써 걸렸나?’
친위대가 연구원들을 격리하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몸으로 도망치다 보니, 금방 체력이 빠진 박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감시 카메라가 파란색으로 동작 등을 켠 채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트리아였다면 붉은색이었을 것.
‘트리아.’
박사의 가슴이 울컥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를 잡아 삼키는 것 같았다. 그 백정 같은 놈, 악마 같은 놈이 트리아를···.
우흣-우흣-
떨어지는 콧물과 눈물을 슥- 닦은 박사가 정신을 차렸다. 트리아의 권한을 뺏었겠지. 아무리 무식한 백정이라고 해도.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을 제 손으로 어쩌진 않았으리라.
‘무엇보다 각 모듈은 유기적으로 결합 됐어.’
하나를 건드리면 성능이 33% 하락하는 것이 아닌 50%~60%까지 떨어질 수 있었다. 슈퍼컴퓨터와 트리아의 도움이 없다면, 신성 왕국의 기술개발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으니. 트리아는 안전할 것이다.
친위대가 강경하게 통제하는 쪽은 남자들. 여자 연구원들은 비교적 여유롭게 대하고 있었다. 그걸 노리고 이 몸에 덮어썼지만,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 여자. 그 여자를 분석해야 해.’
아주 잠시 엿봤던 그 여자를 생각만 해도 박사는 영혼이 불타버릴 것만 같았다. 그 여자가 품고 있는 것은 분명 신비였다. 신비라고밖에 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 여자의 정보를 전부 빼낸 뒤.’
붙여넣는다. 아무리 백정이라고 하더라도 약혼녀를 경계하지는 못할 것.
‘놈은 이상향의 수호자가 되기 글렀어.’
오히려 지금 하는 짓을 보면···. 찌—이이잉- 관자놀이를 후벼 파는 듯한 통증과 함께 영상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야니아 킴에게 죽임당하는 자신의 모습. 한 명, 두 명, 세 명···. 그리고 슈퍼컴퓨터 실로 향한 자신의 팔이 떨어지고, 필사적으로 기어간 끝에 발목이 으스러지는 고통- 이어진 죽음.
흐으으읏-
강렬한 충격에 육신에 새겨진 버릇대로 신음이 나왔다. 끄윽-끄윽- 고통을 참은 박사가 이를 갈았다.
‘놈. 두고 보자.’
약혼녀의 손에 죽게 해주마.
박사가 의무실로 들어서자 커다란 전신 거울이 앞에 있었다. 거울에 비친 여자 연구원의 모습.
엉클어진 머리카락, 찢어진 스타킹에 단화. 그리고 연구원 가운을 입은 채 들고 있는 것은 전선이 복잡하게 튀어나온 헬멧.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나요?”
접수대처럼 생긴 곳에서 간호사가 말했다.
“저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간호사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예? 어디가아아아아앗!”
찌지지직-
전기충격기로 간호사를 기절시킨 박사가 재빨리 병실을 돌았다. CCTV가 돌아가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나 친위대가 들이닥칠 게 분명했다.
‘아니고.’
다음 병실-
‘아니고.’
끼이익-
문을 열자,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누워있는 그 여자의 모습이 박사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