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4)
러스트 [RUST]-54
낮고 둔탁한 소리, 소음기를 장착한 기단관총에서 나는 소리.
타닥-
가벼운 발걸음 소리 뒤로, 산뜻하게 내달리는 마루였다. 움직이고 나면 총알이 지나가고 뛰고 나면 바닥에 총알이 박혔다.
처음에는 ‘저 새끼 쏴!’, ‘죽여버려 십새끼.’ 의기양양 총질을 하던 직원들의 기운이 점차 불안과 당황, 당혹과 경악으로 변했다.
그저 느껴졌다. 흐릿한 연막 건너편 이쪽을 향한 살기가. 처음에는 단순히 이 과장을 향하는 총질인 줄 알았다. 근데 이 과장이 쓰러졌음에도 계속 이쪽으로 총을 쏴대는 이유는 뭘까?
티틱!
잠깐 딴생각을 했더니, 총알이 방탄 마스크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흐릿하게 보이는 적들의 모습. 역시 월드 놈들이었다. 이 새끼들은 아까 요트에도 쳐 쏘더니, ‘일단 쏘고 보자.’라는 게 사훈이냐?
쯧-
흐릿하다지만 연막 속에서 어떻게 대충 방향을 잡고 쏘나 했더니, 몇 놈이 적외선 감지기를 달고 있었다. 진짜 별걸 다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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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에서 2시!” 방향-
투다다다닥!
휙-! 붉게 표시된 반응이 길게 늘어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씨발- 뭐가 이렇게 빨라?”
“놓쳤다.”
“여기도.”
“9시에서 8시까지 갈겨!”
오른쪽에 있던 열화상이 어느새 왼쪽에 나타났다.
좋다고 쏴대던 직원들 사이로 조금씩 공포가 스며들었다.
뭐지 이건? 이게 뭐야?
“끊어 쏴!”
“잔탄 확인!”
타닥! 타다다닥!
2인 페어로 탄창을 갈아끼며 쉬지 않고 갈겨댔는데도 맞지 않았다. 탄창을 4개째 비우는데, 공기만 갈랐다. 마치 허공에 총질하는 느낌.
이거 사람인가?
이게 뭐야? 뭐야! 뭐냐고?
열화상이 길게 좌우로 길게 늘어졌다 나타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데 막을 방법이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좌우를 깎아 먹듯 다가오는 열화상.
숨이 점점 막히는 것 같았다. 질식할 것만 같았다. 숨을 내쉬려 욕을 뱉었다.
“씨이발!”
바로 8~9m 눈앞에 왔는데도 뭐가 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휙-하고 앞을 지나갔다가, 다시 슥- 옆으로 사라졌다. 직원들 모두 비명처럼 고함을 내뱉었다. 서로를 믿고 응원하는 외침.
“저쪽이다!”
“놓치지 마!”
“화망을 만들라고 화망을!”
“근처를 다 쏴버려!”
또 사라졌다?
어디로?
순간, 몸에 닭살이 돋았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뭔가. 뭔가가 여기 있었다.
고개를 돌릴 수 없어.
여기 있어.
여기 있다고.
뒤에. 옆에. 우리 중간에.
아!
아?
아-
누군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전방을 향한 총구가 덜덜덜 떨렸다.
아- 아아악!
전방을 보던 한 직원이 휙- 총구를 뒤로 돌린 채, 당겼다.
투다다다닥
그것을 시작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있던 자도 진형 중앙을 향해 당겼다.
투다다다닥
흐릿한 것이 있었는데?
분명히 진형 안쪽에 있었는데?
파파팍
타다닥
서로가 서로에게 총질한 결과. 8명 가운데 5명이 근거리에서 두들겨 맞고 쓰러졌다.
철컥철컥-
크릭-
틱-
순식간에 탄창을 다 비운 3명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탄창을 갈려고 하는 순간,
픽- 공기가 썰리는 짧은소리, 툭 떨어지는 탄창을 쥔 팔.
아아아- 팔이 잘린 직원의 입은 결국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데구르르 구르는 소리가 났다.
옆에 있던 직원이 그 모습을 보고 부르르 탄창을 밀어 넣기도 전.
콱- 목울대에 장미칼이 틀어박혔다.
풀썩. 그대로 무릎이 접혔다, 충격 때문인지 고개가 위로 들려졌다.
점점 흐릿해지는 눈동자에 하늘이 가득 찼다.
으아아아악
남은 한 사람이 들고 있던 총과 탄창을 내던지고 연막 속으로 뛰어들었다.
뿌득- 소리와 함께 앞으로 꼬꾸라진 직원의 뒤통수엔 장미칼이 손잡이까지 틀어박혔다.
으윽-
욱-
서로 총질한 것에 맞았지만, 죽지 않은 직원들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였다.
‘좀 싫지만.’
기순이 말하지 않았던가? 김 양도 그랬다.
어설프게 하는 게, 더 좆 같아진다고···
지금도 좆 같은데 더?
푹- 푹- 픽-
비척거리던 직원들이 잠잠해졌다.
쯧-
칼을 휘둘러 찝찝함을 털어냈다. 칼날에 붙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덜컥-
처음부터 조금 흔들렸던 칼이 숫제 덜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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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팀장은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김수현 실장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어떡하든 응급 차량을 현장 밖으로 빼려고 했는데 길이 막혔다. 언덕 위에 있는 샬롯 호텔부터, 여기 로열 마리나와 그 인근이 전부, 샬롯 호텔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이래서는 숫제 거미줄에 걸린 먹이 꼴이었다.
“연막 때문에 앞에 뭐가 있는지 파악이 어렵습니다.”
“적외선 감지기로도 어려워? 그거 보고 피해서 가면 되잖아.”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가능하지만, 바닥에 뭘 깔았는지 확인하려면 어차피 차 밖으로 내려야 해서 마찬가지입니다.”
빌어먹을. 정보팀장은 속이 탔다. 이대로 김 실장이 죽는다면, 줄줄이 모가지였다. 그냥 비유적으로 모가지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모가지가 위험했다.
최 실장과 백 실장이 죽고 홍 과장까지 죽으면서 김수현 실장을 애지중지하는 유 이사였다. 거기에 이기영이 배신했으니, 과장 자리에 올라갈 사람은 김수현 실장 하나였다. 이런 상황에서 살릴 수도 있었는데, 능력 부족으로 살리지 못했다는 소리가 나온다면···.
유 이사의 삼백안이 떠올랐다.
“젠장. 방법이. 뭔가 방법이. 아직도 통신장애야? 호텔에 들어간 추격조에게선 연락 없고?”
“없습니다. 방해전파가 주변에 쫙 깔려서, 통신기도 전화기도 먹통입니다.”
전파방해, 약 먹인 새끼들 투입, 지역통제, 다량의 연막탄, 소형 살포형 발목지뢰, 사제 네이팜을 이용한 화염병.
그리고 어쩌면 ‘그거’까지···. ‘그게’ 샬롯 편이 아니라고 해도, 그거 자체만으로 억지력이었다. 그런 게 이런 연막 속에서 날뛰면? 답이 없었다. 그게 여기 있다는 걸 서울 샬롯 놈들이 몰랐을까?
“개 씨발. 서울에 있는 샬롯 새끼들이 이걸 몰랐다고? 우리를 밀어 넣어서 확인한 거잖아.”
정보팀장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일단 김 실장을 살려야 한다. 김 실장을 내보내면서 통신장애 지역을 벗어나 본사에 연락해야 했다.
이미 부산지부 보안팀은 절반 이상 날아갔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갈려 나가는 중이었다. 예비대도 화염병과 연막 때문에 불타고 있었고. 21세기에 연락을 취하는데 무전기도 전화기도 아니고 전령을 보내서 확인해야 한다니, 어이가 없어서.
정보팀장은 헛웃음만 나왔다. 월드 그룹이 한국의 음지에서 활동하고 10년이 넘었다. 지금처럼 좆 같았던 적이 있었나? 없었다. 양측 200에 가까운 인원이 충돌한 적도 없었다. 부딪쳐 봐야 합쳐서 100명 안짝이었다. 사장급, 회장급 목을 한두 번 따봤던 것도 아니었다.
근데 꼴랑 부산 샬롯 호텔 여사장 잡으러 왔다가 이게 뭔가? 부산지부 날아가고, 시큐리티와 PMC 부분이 통째로 증발하게 생겼다.
퍼어어엉!
바리케이드로 사용했던 버스에 기어코 불이 붙었다. 연속해서 터지는 화염병, 불타는 바리케이드. 이제 남은 버스는 하나.
“다 불러! 모아서 방어선 만든다. 크레모아 깔고, 수류탄 분배하고. 직속 팀 오라고 해.”
“옛-”
일발 역전 한 방밖에 답이 없었다.
끌어들여서 크레모아로 날려 버리고, 수류탄으로 휘젓고 근접 전투로 끌고 가는 수밖에. 근접에서 기관단총이면 이길 것이다. 연막 때문에 서로 피가 넘치겠지만, 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 된다면 이기고 병신 되는 게 당연했다.
김 실장을 태운 구급차 호위를 직속팀에게 맡기면 희생은 있겠지만, 탈출은 가능할 거다. 정예부대를 탈출하는 데 쓰는 게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연막 속 저쪽에서 들리던 소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뒤로 후퇴하니 밀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 와라. 더 가까이. 크레모아 맛을 보여주지.
“팀장님. 직속 애들 주변에 없습니다. 위치 확인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뭐야? 5분, 10분 전까지만 해도 근처에 있었잖아?”
순간 정보팀장의 머리가 띵-했다. 설마?
“아까 거기, 김 실장님이랑 이기영이랑 싸웠던 거기. 그쪽 경계·방어하고 있는 애들은 어떻게 됐어?”
“전령을 보냈는데, 전령도 그렇고 그쪽 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뒤로 빠지라고 했는데 오지 않고 있다고? 전령도?”
“예. 그쪽만 그렇습니다.”
“거기에 몇 명이나 있었지?”
“10명, 팀으로 2팀이 있었습니다.”
지금 연락이 끊긴 직속 애들은 8명. 4명씩 2팀. 거기에 10명. 5명씩 2팀. 합해서 18명. 말이 18명이지 중무장한 18명이었다. 거기에 전령까지 생각하면 19명. 거의 20명인데···.
정보팀장은 속이 탔다.
만약 직속 애들이 이기영이 조진다고 거기에 갔으면?
이기영이 조진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쐈다면?
그래서 ‘그거’랑 엮였으면?
20명이면 이길 수 있을까?
김 실장이 손도 대지 못하고 죽을 뻔했던 것이 떠올랐다.
픽- 공기를 썰어 대는 칼질에, 둥실 떠올랐다가 데굴 구르는 것들이 떠올랐다.
20명? 아- 아니야-
그럼 20명에게 총질 당한 그건 어떻게 할까? 빡쳤겠지?
아- 씨발- 그게 온다고? 여기로?
정보팀장이 버럭 소리 질렀다.
“전부 즉시 퇴각이라고 전해. 당장 후퇴한다. 크레모아 터뜨리고 팀 단위로 후퇴해서 복귀 합류 지점은 부산지부, 도망치기 힘들면 UN 공원으로 가서 버티라고 해. 근처에 있는 애들 모아서 김 실장님 탄 차량 호위하고.”
버티고 버텨서 크레모아와 수류탄으로 일발 역전한다는 계획은 바로 버렸다.
무조건 당장 후퇴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후퇴로 어수선해지는 찰나, 언덕에서 두두두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호텔 샬롯이 있는 방향에서 나는 소리였다.
후에헤헤헹
뷰겨쥬거듀
키리리이아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내달리는 사람들. 약에 빤 놈들이 후방에서 밀고 내려왔다. 정보팀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거기를 막고 있던 팀들은? 다 죽었다고?
“막아!”
“수류탄 투척 준비. 투척!”
쾅- 쾅- 쾅-
키에에에엑
끼에에에엑
내장이 삐져나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자들, 후방에 있던 처리반이 총을 쏘며 저항했지만, 9mm 탄으로 저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부러지고 깨지고 신음하고 마지막 단말마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김 실장이 탄 구급차를 향해 몰려오는 약 빤 미친놈들.
“크레모아 격발!”
“격발!”
폭발음과 함께 가죽 부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총탄 따윈 무시하던 약쟁이들도 크레모아 앞에서는 평등한 파편으로 승천했다.
잠시 흐른 정적. 그 고요함 뒤로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우루루 몰려드는 소리.
끼에에에에
큐어야하구
쟁민이네쟁
아- 탄식과 함께, 정보팀장이 권총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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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는 시끄럽고 요동이 심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흔들리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손잡이를 잡아주십시오.]방송국 헬기와 119 헬기를 합해 3대의 헬기에 나눠탄 19명의 직원은 장비를 점검했다. 아이스하키 방호복을 입은 것처럼 퉁퉁한 방호복을 입은 직원들이었다.
총화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총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스륵, 마체테와 쿠크리를 확인하고 칼집에 넣는 사람, 전투 도끼의 날을 가는 사람. 메이스와 모닝 스타, 망치에 일본도, 롱소드, 클레이모어까지. 냉병기란 냉병기는 죄다 모아 놓은 모습이었다.
그 중심. 관자놀이 부분에 붕대를 감은 채, 최 전무가 눈을 감고 있었다. 숯처럼 진한 눈썹. 탈모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건강한 모발, 강인해 보이는 턱, 부리부리한 눈매, 한일자로 딱 다문 입까지. 전형적인 무도인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문득 삼백안이 떠올랐다. 자기 입에 총구를 밀어 넣고 내려보는 삼백안의 눈동자.
‘유 이사 빌어먹을 년, 개년이.’
최 전무의 평온한 얼굴이 일순 일그러졌다가 다시 무표정, 고요함으로 돌아갔다.
[지상의 타격대와 통신이 두절 됐습니다. 고도를 하강하면 헬기들 사이에도 통신이 두절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막탄의 연기로 인해 지상의 상황을 확인할 수 없어, 착륙이 어렵습니다. 인근 지역으로 이동해 착륙하겠습니다.]조종사의 말에 최 전무가 대답했다.
“연막탄이 짙은 곳으로 간다. 이후, 레펠 강하한다.”
[레벨 강하, 위치는 연막탄이 짙은 곳. 확인했습니다.]헬기는 연기와 화염과 총성으로 가득한 방향을 향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