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48)
러스트 [RUST]-548
“저거 진짜 괜찮겠음?”
트라우마 장난 아닐 것 같은데.
“저 정도는 괜찮아. 초반에만 충격이지 반복하면 괜찮아져.”
“······.”
‘괜찮기는. 돈 받고 작업하던 애들도 멘탈 나가던데. 진심임?’
‘죽지만 않으면 돼, 죽지만 않으면.’
김 양의 놀란 눈빛에 마루는 정직한 눈빛으로 응대했다.
본래 그런 것 아닌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해줄 뿐이라는 것.
자신과 김 양은 그 아수라장에서도 살아남았고 지금 이렇게 강해졌다. 그러니 기순이도 죽지만 않으면 강해지리라.
굳건한 마루의 얼굴을 마주한 김 양이 고개를 저었다.
‘마음대로 하셈요.’
그러다가 친구 홱 돌아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쯧-
마루는 믿었다.
기순이라면 견딜 거라는 걸. 이건 욕심이나 기대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머리통에 촉수 매달고도 자살하지 않은 놈이었다. 그 옛날 그런 모욕과 푸대접을 받고도 삐뚤어지지 않은 녀석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이상해 질 리 없었다.
마루가 나주연에게 확인했다.
“기순이 새 신체는 어떻게 됐어?”
“세팅 끝났어요. 이제 옮기기만 하면 돼요.”
“훈련 끝나면 바로 옮겨. 포도송이들은?”
“예. 현재까지는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어요.”
“포도송이에 넣을 기순이 기억이랑, 박사의 지식 부분 추출 부분 합치는 건?”
“박사의 지식 추출에서 예상보다 손실이 조금 있지만, 덧붙이는 건 성공했어요.”
뇌둥둥 박사가 하고 있던 연구를 빨리 따라잡으려면, 과학 지식을 추출해 융합해야 해야 했다.
혹시나 싶어 포도알을 모조리 태워버리려고 했었지만,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슈퍼컴퓨터의 조합이 워낙 사기적이었다.
박사의 기억 중 연구와 지식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을 높은 순도로 추출하는 데 성공한 것. 그렇다면 그냥 폐기하기는 아까운 게 사실이었다.
마루가 옆에서 지켜봤지만, 뒈진 박사가 부활할 조짐이라거나, 뭔가 어쩔 것 같은 찜찜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 그럼 현재 가상훈련 사실성 단계 높이자.”
“어느 정도까지 높일까요?”
“현재 위치에서 최고 수준으로.”
“배경은 지금도 실사에 가까워서 하려면 NPC 데이터와 반응도 최고 수준으로 하는 게 효과적일 것 같은데요?”
마루가 ‘NPC 쪽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었잖아.’는 눈빛으로 나주연을 바라보자, 그녀가 냉큼 부연 설명했다.
“지금이야 나루와 똑같은 얼굴이 등장해 충격받았지만, 기순 씨라면 알아챌 걸요. 저기 NPC들 비명이나 지르지, 살아있는 사람 같지는 않잖아요. 발각되면 금방 효과가 떨어질 텐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차이가 나나?”
“당연하죠. 지금은 조금만 여유 있게 보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라고요.”
“NPC 나루는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데?”
“사람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요. 특히 나루의 인격 데이터는 저와 기순 씨의 기억에서 추출해 만든 데이터라 그걸 실행하면 정말 리얼 하게 반응할 거에요. 지금처럼 어설픈 반응과는 확실히 다르죠.”
잠시 고심하던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주연과 기순이의 머릿속에 있는 나루라니. 얼마나 변했을지, 철은 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기순이가 잘 극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마루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주연은 바로 시스템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본 김 양이 모니터를 향해 다시 한 번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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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은 떨리는 손을 무릎에 얹고 힘을 줬다. 일어서려 했지만, 바르르 떨리던 전신이 힘을 잃고 푹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앞으로 엎어진 기순이 몸을 일으키려 고개를 돌린 순간, 옆구리에 칼을 박아 넣었던 여자의 열린 동공과 마주쳤다.
긴 생머리를 한, 나루의 얼굴에 기순이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게 뭐지?
지금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루가 왜 여깄는지.
왜 특수 전투복을 입고 있는 건지.
그리고 어째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그냥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젠장! 씨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나루라니.
‘내가 나루를 죽였다니.’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후우- 하아-
씨- 후우- 하아아-
깊게 심호흡하자, 이상하게 진정되는 느낌과 함께 돌아버릴 것 같았던 흥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생각하자. 생각해.’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었다. 어째서 장갑차에 홀로 남아있었지? 시작부터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이어진 공격.
‘왜 한 명만 있었지?’
두 사람이었으면 제대로 저항도 못 해보고 죽었을 것이다. 기순의 고개가 수류탄으로 엉망이 된 여자를 향했다. 힘들게 여자의 얼굴을 살피자, 이쪽도 나루였다.
‘나루가 둘? 진짜 미치고 환장하겠네.’
하아- 씨- 후우- 벌
심호흡 끝에 기순은 떠올릴 수 있었다.
나루의 얼굴을 하고 죽은 여자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나루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면···. 이딴 방식으로 하지 않고, 유인했을 거다.’
그래.
처음부터 막 쏘지 않았을 거다.
얼굴을 보이고 가까이 접근해서 확실한 기회를 잡은 뒤 죽였겠지.
두 번째 공격도 마찬가지.
수류탄을 까지 않고 접근해서 쐈으면 끝이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어째서?
기순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첫 번째 나루의 사격 실력은 그냥 초보 그 자체였다. 총을 쏘는 방법을 머릿속으로는 아는데 실탄으로 연습해 본 적 없는 사람 같았다.
뒤에서 수류탄을 깐 쪽도 마찬가지.
수류탄 폭발로 먼지가 자욱하게 끼었다면 전술 라이트를 켜서 시야를 확보한 뒤, 먼지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때까지 위치 잡고 경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바로 밀고 들어왔다. 그렇다고 완전히 초짜냐 그럼 또 그건 아니었다. 마치 기초훈련만 이수 받은 것처럼 어딘가 어설픈 진입.
남녀를 떠나서 태클이 들어오면 방어하거나 흘리면서 총을 쏴야 하는데, 그런 부분도 없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얼굴이 같다는 점이었다.
두 여자가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긴 생머리, 왼쪽 눈 밑에 있는 아주 작은 눈물점. 작고 붉은 입술. 무엇보다도 그 피부, 흰 상아나 대리석 같은 피부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나루의 특징이었다.
욱신.
나루를 죽였다고 생각하자 자기도 모르게 죄어오는 심장. 무언가 이상하다고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가슴은 신음을 흘렸다. 심장에서 퍼지는 통증을 삼킨 기순이 천천히 깊게 심호흡했다.
‘나루가 아니다.’
나루지만 나루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유 이사 마크 2와 같은 케이스.
‘클론일 가능성이 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기순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나루이지만 나루가 아니라는 건.
그의 호흡이 살짝 거칠어졌다.
그러니까···.
기순은 자기도 모르게 바로 곁에 놓인 시신의 팔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탄탄한 쫄쫄이 슈트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시체 특유의 촉감이 아닌 살아있는 듯한 감촉.
두근두근두근
후-
‘난 정상인이다.’
‘시체 애호가가 아니야.’
‘클론인지 확인만 해보는 거야.’
‘그래. 뭔가 적에 대한 힌트가 있을지 모르니까.’
염불처럼 속으로 중얼댔음에도 어쩐지 식은땀이 삐질삐질 솟기 시작했다.
‘안 돼. 슴만튀는 살인죄보다 깊어.’
‘병신아. 세상이 망한 지 언젠데 슴만튀가 뭐냐? 슴만튀가.’
자아가 분열될 것만 같은 혼돈.
‘지금 슴만튀 하는 건 고인 능욕으로 더 무거운 범죄야.’
‘범죄는 개뿔이. 촉수로 죽인 사람들은 뭔데?’
‘지금이다. 지금이야.’
‘이상하다고 전부.’
기순은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껏 언제나 나루에게 무시당했기에, 역설적으로 기순은 지금 상황이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속으로 욕하면서도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기 시작하는 찰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겨워.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더럽게 그 앞에서 뭐하는 짓인지.”
“!”
나루 특유의 억양과 목소리에 기순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순이 반사적으로 손사래 쳤다.
“이건···. 오. 오해야.”
“오해? 뭐가?”
또각또각.
분명 전투화를 신었건만 하이힐 소리를 내며 조금씩 다가오는 나루의 모습.
마치 더러운 오물을 보는 것 같은 시선.
‘그러면 그렇지.’ 라는 눈빛에 기순은 심장을 찔린 것만 같았다.
아니, 찔렸다.
푸욱-
“??”
“!!!”
갈비뼈로 보호받고 있던 심장이 꿰뚫리는 소리,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며 그대로 풀썩 쓰러진 기순을 내려보는 차가운 눈빛.
“끝냈어?”
“그럼. 금방이지.”
또 다른 나루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그의 눈에 들어왔다.
흐릿해진 시야가 곧 어둡게 변했다.
그리고.
삐익삐익삐익-
요란한 경고음을 타고 붉게 점멸하는 경고등.
크헉-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기순의 몸이 앞으로 푹- 구부러졌다.
끄어억-
우웩-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절망감에 구토하는 기순.
더듬더듬 심장 어림을 어루만지던 그가 식은땀 범벅으로 고개를 들었다.
낯익은 빨간 불빛과 경보음에 사정없이 흔들리던 기순의 눈동자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설마. 회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훔친 기순이 주변을 살폈다.
‘아니면 예지?’
어쨌든. 살아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시큼한 토사물 냄새가 장갑차 내부를 채울 무렵, 기순은 어떻게 움직일지 동선부터 파악했다.
‘2층부터 어떻게 해야겠군.’
후면 해치를 여는 순간 2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루가 총을 쏴댈 것이다. 그럼 그 총성을 듣고 근처에 있던 수류탄 나루가 올 것이고 그 뒤에는 나루들이 몰려들겠지.
‘정보부터 찾아야 해.’
현재 상황도 그렇고 어쩌다 이리됐는지 알 수 없었다.
‘생포해야겠네.’
심장 어림에서 느껴지는 환상통(幻想痛-Phantom pain)에 기순의 눈동자에 독기가 살짝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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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외교부.
나루 특유의 목소리가 복도까지 울려 퍼졌다.
“그러니까 지금 무슨 소리죠? 네?”
반 옥타브 높은 톤의 목소리는 평상시에는 꾀꼬리 같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청량했지만, 지금처럼 쓸 때는 끔찍한 음파 공해에 가까웠다.
“집을 비워 달라고요? 집에서 나가라는 말인가요? 그게 무슨 말이죠?”
“범죄를 저지르면 모든 지원이 회수됩니다. 처음 나눠드린 지원 관련 자료에 나온 항목이었는데 모르셨습니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범죄자를 왜 지원하겠는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는 건데요? 그 인간이 계속 쳐다보면서 치근덕거렸다니까요! 그게 성폭력이지 뭔데요? 항소할 거야! 고소할 거라고요!”
나루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제 모든 특권이 회수되기 때문에 소송비용을 비롯해 소송 결과도 오롯이 감당하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성폭력으로 고소한다니까요! 피해자가 있으니까 검찰, 경찰이 수사해야 하는 거잖아!”
“성폭행이 아니라서 검경이 수사할 사안이 아닙니다. 성추행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직접 손을 댄 것도 아니고요.”
“위아래로 내 몸을 핥듯이 봤다니까요! 내가 수치심을 느꼈다고욧! 길을 가로막고 전화번호를 달라고 협박했단 말이에요!”
나루의 높은 톤에 외교부 직원이 낮게 한숨 쉬었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십니까?”
치안이 잡히지 않은 외곽에서는 강간, 약탈, 방화가 일상적으로 터지고 있었다. 강간으로 끝나면 다행 살인과 식육 사건도 넘치는 판국이었다. 지금처럼 변이 괴수와의 싸움이 격해지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랬고.
제국의 수도 뉴욕이라서 그냥 지나갔지, 다른 곳이었으면 진작 보복당할 상황이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렇게 꽃밭이지?
“저희는 원칙대로 대로 할 뿐입니다. 보석금은 장기 저리로 대출해 드린 것으로 처리했으니, 연체하지 마시고 제때 갚으시기를 바랍니다.”
졸지에 지원금이 끊기며 살던 집에서 쫓겨난 나루였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패소 결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말았다. 줄리아드에서 징계위원회가 소집된 것.
성폭행도 성추행도 없었는데 성폭력이라는 논란을 일으킨 학생.
심지어 고소까지 했다가 패소했다.
다시 말해 무고죄를 저지른 범죄자.
시작부터 논란을 일으켜 교수까지 담가버린 여자를 줄리아드에서 그냥 둘 리 없었다.
그렇게 징계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이 통보됐다.
“퇴학입니다.”
나루는 제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를 시중을 들어주던 사람들도 간첩 혐의로 입건, 멀끔하게 생긴 트로피 남친까지 모조리.
화려한 뉴욕은.
밝게 빛나는 자본주의의 도시는.
무일푼에 거주지 없음. 그리고 백수에겐 한없이 잔혹한 곳이었다.
그나마 나루가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외교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의 여동생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범죄자들과 엮이지 않게 제국정보부 요원에게 보호받고 있었다.
웅- 웅-
[나루 님이시죠. 여기 모나더 그룹 생명공학 연구실입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나루님의 DNA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나루는 연구에 참여하기로 했다. 거절하기엔 너무 큰 액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