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49)
러스트 [RUST]-549
요란한 경고음이 붉게 타올랐다.
날카로운 경고등이 장갑차 속을 울렁거렸다.
삐익삐익삐익-
기순의 몸이 앞으로 푹- 구부러지며 토악질을 시작했다.
끄어억-
우웩-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옆에 있는 전술배낭으로 향하는 손.
크헉-흐헉-
배낭이 어디 있는지 보지도 않고 휘적휘적 수통을 꺼낸 기순이 입을 헹궜다.
가르르륵- 퉷
토하고 헹구기까지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한 기순이 깊게 숨을 갈무리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분명히 2층에 숨어있는 것까지는 같았다.
그래서 쉽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묘하게 무언가 달랐다.
2회차 2층 숨나루를 잡지 못하고 걸림.
3회차 2층 숨나루를 잡았지만, 뒤나루에게 걸림.
4회차 생포를 포기하고 2층 숨나루, 뒤나루를 조용히 정리했지만, 나루들에게 걸림.
5회차 2층 숨나루 포기하고 반대편으로 이동, 지뢰 밟고 끝
6회차 반대편으로 이동하다가 방향 전환. 갑자기 튀어나온 2 나루와 교전 이후 포위 엔딩
7회차 ······
······
21회차 장갑차를 기동해 2층 숨나루와 뒤나루, 근처에 모인 나루들과 교전. 대전차 미사일 엔딩.
······
······
36회차 2층 숨나루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 함정을 파고 기다림.
그래.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그쪽으로 오리라 예측하기라도 한 것처럼.
2층에 숨어있는 나루를 기습해 잡은 것만 20번이 넘었다.
매회 특별히 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2층 숨나루를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20회차 후반부터 조금씩 미세하게 틀어지는가 싶더니, 30회차가 넘어서는 확실히 차이가 생겼다.
‘내가 갈 곳을 어떻게 알았지?’
조금씩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히 ‘회귀’나 ‘예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회차가 지날수록 미묘하게 변하다가 어느 일정한 임계점이 넘으면 전혀 다른 반응이 생긴다는 건 ‘회귀’와 ‘예지’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평행이동?’
평행차원으로 옮겨가는 건가?
사망할 경우 인접한 평행차원의 자신으로 빙의하는 것이라면?
확실히 1회차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고려하면 ‘평행이동’이 ‘회귀’나 ‘예지’보다 더 설득력 있었다.
‘설득력이 있기는 한데.’
어째서 한 번 생긴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는 걸까? 기순은 머리가 근질거리려 박박 긁었다. 이것도 다른 점.
‘점점 더 가려워지는 것 같은데?’
반복되는 죽음과 고통. ‘촉수가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 밀리지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두피가 가렵기 시작했다.
간질간질.
북북.
“아오- 미치겠네.”
장갑차 안에 오래 있을 수도 없었다. 해봤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나루들이 근처를 수색하더라. 그냥 대전차 미사일 엔딩.
평행차원이라고 가정하면 일이 복잡해졌다. 똑같은 것 같지만 다른 패턴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점점 더 심하게 뒤틀린 패턴이.
‘인접 차원에서 점점 멀어지면,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나루가 있어야 할 곳에 식인귀가 있다거나, 장갑차 아래쪽에 내려서자마자 지뢰가 터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잠깐 물을 마시고 생각을 정리하자, 미약한 두통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뭔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었는데, 점점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평행이동이 익숙해진 건가?’
단순히 평행이동이 익숙해지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운동능력도 비약적으로 좋아진 것. 처음에는 말 그대로 약했는데 지금은 겉보기와는 달리 국가대표급 체력을 갖고 있었다.
이 정도로 든든한 체력이면 뭘 해도 될 것 같은 느낌. 따개비와 융합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최소한 60%~70% 정도는 될 법했다.
갑자기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지는 사념(思念)
촉수.
융합.
따개비.
운동능력 상향.
한 번에 뒤섞인 이미지 속에서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회귀였다면 육체 능력이 좋아졌을 리 없어.’
그 당연한 걸 30회차가 넘어서야 깨닫다니 이상했다. 하나가 이상하니 전부가 의심스러워졌다. 만약 ‘평행이동.’도 아니라면?
기순은 문득 등골이 서늘해졌다. 동시에 떠오른 생각.
‘통 속에 든 뇌.’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죽으면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가짜였기 때문이라면?
나루들의 대응이 점차 좋아진 이유가 인공지능이 학습하듯 경험치가 쌓인 거라면
아무리 평행차원이라고 하더라도 육체 능력이 좋은 쪽으로만 넘어가는 건 이상했다.
게다가 나루들의 대응이 점차 기민해졌다. 학습하고 경험치가 쌓이는 것처럼.
1회차의 그 어리바리한 나루는 30회차쯤 갔을 땐 찾아보기 힘들었다. 능숙한 군인이자, 경험 많은 암살자처럼 움직이는 나루들은 따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시뮬레이션인가? 아니면 가상세계?“
기순의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세상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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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라이트의 불빛은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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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빛이 동공을 찔러대자 찔끔 눈물을 흘리던 기순이 귀를 쫑긋했다.
“에-또- 혈압이랑 심장박동수, 동공 반응도 정상이에요.”
어쩐지 바운스 할 것만 같은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왜 이렇게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어있어?”
마루 새끼 목소리에 어쩐지 울컥하는 기순이었다.
30회차 넘도록 죽여댄 게 가상현실이었다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랬다.
‘왜 착각했지?’
처음부터 가상현실에 들어가기로 하지 않았던가?
뇌 배양 포도송이에 집어넣을 인격까지 고려하면 당연히 가상현실이라고 봐야 했다.
그걸 ‘회귀.’니 ‘예지’라고 한 것도 모자라.
‘평행이동.’, ‘평행차원.’까지 갔으니 실로 쪽팔릴 수밖에 없었다.
설마 뇌둥둥 생체 단말기 정보를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이 했던 생각들도 읽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기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에? 여기 환자분 체온이 올라가는데요? 정밀 검사를 해야 할까요?”
‘그게 아니야. 날 그냥 내버려 둬.’ 기순은 소리칠 수 없었다.
“괜찮은 것 같으니까 그냥 둬. 딱 보니 쪽팔려서 안 일어나는 것 같은데.”
마루가 손가락으로 기순의 옆구리를 간질이듯 찔렀다.
흐그억-
옆구리를 타고 올라온 참혹한 감각에 기순이 괴이한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나며 마루를 노려봤다.
“봐? 멀쩡하잖아.”
“······.”
마루는 기순의 원망 가득한 눈빛에 어깨를 으쓱했다.
“왜 그렇게 보는데? 어땠어? 이제 좀 괜찮냐?”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냐?”
끔찍했다. 클론 나루들이 나오는 가상현실이라니.
“그게 제일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미친. 하- 씨-”
머리를 벅벅 긁던 기순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굵직하고 꿈틀거리는 촉수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예전처럼, 그 옛날처럼 그냥 평범한 머리카락이 손끝에 착착 감기는 감각.
계획이 성공했다.
따개비에 감염되기 전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몸은 어때?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이상한 점 있으면 바로 말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말씀해 주세요.”
기순의 시선이 간호사를 향했다.
어딘지 백치미가 떠오르는 듯한 얼굴에서 가냘픈 목선으로 가녀린 목에서···. 목에서 아래로···.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래로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흔들리는 동공.
그렇지 않아도 쪽팔려서 달아올랐던 얼굴이 삽시간에 홍당무로 변했다.
“에? 괜찮으세요.”
기순의 이마에 손을 대보려 간호사가 팔을 뻗자. 기순이 화들짝 놀랐다.
“저 꼴을 보니 확실하게 벗어난 것 같네.”
“네. 풀린 것 같아요.”
나루에게 묶여있을 때는 다른 여자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던 기순이었다.
탈출했을 때 요트에서도 그랬고, 미국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기순이 간호사의 바운스에 반응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부작용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간호사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요트에 있었을 때도 저리 반응하지 않았는데.”
“새 몸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호르몬 조절이라든지 그런 쪽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부작용은 없고?”
“네. 조금 민감해서 그러는 거 같으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요.”
나주연이 검사지를 보고 대답했다.
“괜찮아 보이네.”
“그러게요.”
가까이 다가서는 간호사. 그를 피해 허둥지둥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당황한 기순이 김 양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그 애절함을 받은 김 양이 툭 말했다.
“잘 논다. 잘 놀아. 그냥 좋아 죽겠음? 아주 눈빛 보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냉혹한 매도(罵倒).
그래 그랬지. 이곳에 같은 편 따윈 없었다. 기순은 눈을 감고 현실을 거부했다.
“어? 괜찮으세요?”
간호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도 눈을 꾹 감고 거부하는 기순을 보며 후드가 물었다.
“남은 육체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몸 교체에 성공했으니, 따개비에 오염된 기순의 오리지널 몸뚱이를 어떻게 할지 물은 것.
“폐기해야지.”
“아깝습니다.”
“아까워도 폐기해야지. 저거 생각보다 골치 아플 정도로 전투력이 좋아서 사고 나면 위험해.”
“껍데기만 있는데 사고라니요?”
“유 이사 마크 2처럼 그런 능력자가 있다면?”
“아-”
유 이사 마크 2가 제국 클론을 인터셉트 (intercept)한 것처럼 누군가 기순의 오염된 몸뚱이를 움직일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하기 힘들었다.
능력을 각성했다 싶으면 대부분 신체능력 강화였지만, 이상한 능력을 각성하는 능력자들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최고의 가치인 안전, 안전을 지키는 방법 보안. 안전과 보안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평안한 삶인지라, 오염된 기순의 몸뚱이를 처분하는 데 일말의 거리낌이 없는 마루였다.
하지만 김 양과 후드의 생각은 달랐다.
”그냥 폐기하는 건 아까운 것 같음.”
“저도 동의해요. 전투력이 상당하다고 평가했으면서 폐기는 좀 그렇네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고 있어?”
“네 오염된 몸뚱이를 깔끔하게 처분하느냐, 아니면 써먹느냐 하는 이야기.”
마루의 대답에 기순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어떻게 할지 왜 너희들만 이야기하는데? 그거 내 몸이잖아?”
“······.”
“······.”
“······.”
“어차피 새 몸 얻었으니 된 거 아니었어?”
“그래도 그렇지. 내 몸을 어떻게 할지 날 빼놓고 결정할 건 아니지.”
“어떻게 하고 싶은데?”
“그냥 보관해 두자. 유 이사 마크 2가 다른 클론들 통제한다며? 그 방법 찾아서 그렇게 써먹으면 되지 않겠어?”
마루가 진중한 목소리로 결정 내렸다.
“오염된 기순의 샘플을 채취하고 폐기하지. 만약 나중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배양하기로 하고.”
“그리고 유 이사 마크2. 그 능력을 분석해서 언제든 써먹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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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쫄쫄이 슈트를 입은 병사 십여 명이 거대한 멧돼지 괴수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쩍 마가-” (그쪽 막아!)
멧돼지 주제에 똑똑하고 체력도 좋아 벌써 1시간 넘게 사냥이 끝나지 않고 있었다. 유 이사 마크 2는 익숙하게 클론들을 지휘해 괴수 멧돼지의 저항을 무력화시켰다.
“1쪼 고겨! 2죠 대기, 3져 퍼이.” (1조 공격! 2조 대기, 3조 포위)
한참 원 없이 한풀이하고 있던 유 이사 마크 2에게 긴급 전문이 도착했다.
[지금 즉시 복귀하라는 명령입니다.]“아라써.” (알았어.)
이제 다 잡았는데. 유 이사 마크 2가 클론들과 함께 아크 타워로 향했다.
아크 타워에 도착하자 유 이사 마크 2를 향해 열렬히 환호하는 연구원들.
“머야?” (뭐야?)
이 분위기는
“자 어서 오세요. 다들 기다렸습니다.”
이 미친년이 왜 여기에?
“우리 병원 놀이할까요?”
“······?”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