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57)
러스트 [RUST]-557
기순이 녀석 집중력이 승천했는지 반응이 빨랐다.
‘설마 정말 그거냐?’
‘일본 진짜 그거야?’
콘택트렌즈에서 휙휙 올라가는 텍스트.
‘지진이냐고?!’
텍스트도 애원하듯 올라갈 수 있던가?
기순의 신호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반은 확실하지 않았지만, 일본 지진을 떠올리는 순간 명확해졌다. 이건 분명히 그때 느꼈던 울렁거림이었다.
기순과 마루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이기영 부장의 눈빛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거기 이 부장님. 그냥 거기 있을 겁니까? 누님 등에 바퀴벌레 떼줘야죠.”
“······.”
기순의 말에도 이기영은 출입구에서 비켜서지 않았다. 단지 주먹을 꽉 쥘 뿐. 까드드득- 거무스름한 건틀릿에서 일그러지는 금속음이 나직하게 뿌려졌다.
그 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는지 마루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자, 기순이 재빨리 주의를 돌렸다.
“대역 누님 등에 바퀴벌레 붙었어요.”
“입 다물고 있으세요!”
“아니 진짠데.”
“조용히!”
기순의 입을 틀어막은 대역이 심은영에게 계속 신호를 보내봤지만, 심 회장은 대답이 없었다. 비서실을 달달 볶아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회장님과 연결이 끊겼어. 어떻게 된 거지?”
[저희 쪽에서도 연결되지 않습니다. 비상 대책 대응 방안에 따라 대행께서 지휘해 주시기 바랍니다.]혹을 떼려고 하다 혹이 더 붙어버린 격이 됐지만, 대역은 금방 침착해졌다.
“후- 알겠어요. 지금부터는 제가 지휘합니다.”
제일 처음 변한 것은 말투. 바로 심은영과 같은 톤의 목소리를 낸 대역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긴급 비상사태 선포합니다. 즉시 대피명령 내리세요.”
비서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사이렌이 울리며 비상등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심 회장 대역은 마치 자신이 심은영이 된 것처럼 움직였다.
“어이 누님. 누님이 그냥 가버리면 우린 어쩌라고?”
출입구로 향하는 그녀를 향해 기순이 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니 잠깐만 누님. 아까 이야기 못 들었어요? 심 회장이랑 우리 국왕이 이야기했던 내용? 전부 자살할 생각입니까?”
“······.”
“저기 아재 진짜 죽어요. 거기 아저씨도 눈에 힘 풀고. 솔직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아재가 우리 국왕 막을 수 있어요? 아니죠?”
기순의 말에 이기영 부장은 대답 대신 까드득- 건틀릿을 고쳐 쥐었다. 그런 기순의 눈에 마루가 보낸 텍스트가 떠올랐다.
‘병력이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감이 좋지 않아.’
‘잠깐만. 아씨- 일을 벌여도 명분은 잡자. 응.’
“지금 여기 뒤로 막겠다고 병력 보내면 진짜 뒤 없는 겁니다. 분명히 선제 대응한다고 했습니다. 이거 분명히 자료 남는 거라고요. 대행이 되자마자 죽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말 가려서 하세요.”
“우리 국왕한테 죽지 않으면 지진으로 뒈진다니까요. 지금 살려면 무조건 안전지대로 피해야 합니다. 당장 튀어야 하는데 여기 있으라고요? 지진이 터지는데?”
“지진? 그게 무슨 말이죠?”
기순이 마루에게 신호를 보내곤 이야기를 계속했다.
“일본에서 지진 터지기 전에 우리 국왕이 먼저 알아챘거든요. 그 느낌이 지금 샌프란시스코에도 느껴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대행의 얼굴이 구겨졌다. 지진을 느껴? 무슨 동물이라도 되나?
“말이 되든 안 되든 우린 여길 뜰 겁니다.”
“그건 곤란해요.”
도돌이표 같은 소리에 마루가 살짝 앞으로 나서며 미약한 살기를 뿌렸다. 흐읍- 옆에 있던 기순이 숨을 들이쉬며 버티는 모습.
강심제가 효과가 있기는 했는지 기절하거나 호흡곤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기순이 버티는 걸 확인한 마루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이유로 우릴 가둬두겠다는 거지?”
“심은영 회장님과 연락이 끊겼어요. 당신들이 여기서 시간을 끄는 동안 다른 쪽에서 심은영 회장님을 공격했다는 게 제일 의심되는 상황이고요. 그러니까 사태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여기 얌전히 있었으면 좋겠군요.”
대역이 상황을 설명했지만, 마루는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곧 지진이다. 비켜.”
‘아니면 벤다.’
마루는 진심이었다.
그 진심에 맞서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무스름한 건틀릿을 찬 두 주먹을 치켜들어 자세를 잡은 이기영 부장이 단단하게 답했다.
“여기서 나갈 수 없다.”
기순이 발짝 뛰었다.
“아- 미치겠네. 진짜 다 뒈진다니까요. 다들 이렇게 개죽음할 거요? 누님 말대로 우리가 미끼고, 심 회장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칩시다. 쳐요. 그럼 살아서 진실을 파헤치고 복수할 생각을 해야지. 여기서 뒈지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자신하는군. 예전에 그러다 뒈진 놈이 있지. 김 실장이라고.”
전부를 다 보이지 않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라는 듯 이기영 부장이 이를 드러냈다.
“기순아.”
마루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기순이 납작 엎드리며 연막탄을 깠다.
펑- 연막탄이 터지는 순간을 노린 기순이 잽싸게 구석으로 들어가 은신 로브를 뒤집어썼다. 크직-크직- 바닥에서 느껴지는 감촉. 키틴질 고유의 짓이겨지는 느낌에 소름이 돋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푸화아아아악-
연막이 채 뿜어지기도 전, 이기영 부장의 대쉬가 이어졌다.
타이슨 드릴에 이어 물 흐르듯 쏘아진 스트레이트를 이클립스의 옆면으로 막자,
때애애앵-
중세수도원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금속음.
연막과 종소리를 뚫고 원- 투- 스트레이트에 이어진 로우킥.
땡-땡- 때에에에에엥-
우우우우웅-
포탄 같은 공격이 이클립스와 부딪치며, 그 충격파로 연막탄의 연기가 순간순간 지워졌다.
스윽-
초근접 공방 속으로 대역이 끼어들었다. 소리 없이 옆으로 다가선 그녀가 마루의 하체를 향해 가위 치기(가니바사미, 蟹挟-かにばさみ)를 노렸다.
그녀에게 완벽한 틈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기영 부장은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8자를 옆으로 뉘운 것처럼 흔들리는 움직임에 따라 맹렬하게 이어지는 훅.
때애애앵-
때애애앵-
이제까지 모든 공격을 제자리에서 쳐내던 마루가 처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툭- 단 한 걸음으로 대역의 가위 치기를 피하며, 이기영의 뎀프시 롤에서도 벗어난 마루가 다시 발을 굴렀다.
뒤로 물러서던 마루의 몸이 대각선 천장을 향했다. 얌체공이 튕기듯 천장으로 튕긴 마루가 천장에서 바닥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쓰거어그어러럭-
이클립스를 흘려 막은 거무스름한 건틀릿이 비명 질렀지만, 마루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건틀릿으로 흘려보낸 줄 알았던 마루의 칼질이 어느새 반원을 그리며 가위 치기를 노렸던 대역을 향했다.
이기영 부장이 숄더 차지(shoulder charge)로 막으려 했지만, 그것조차도 마루의 노림수. 대역을 향했던 칼날이 어깨를 들이민 이 부장의 팔뚝을 스치고 지나갔다.
건틀릿과 맨살의 접점이 자로 잰 듯 깨끗하게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잘렸거나 말거나 통증을 무시한 이기영 부장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뚝을 마루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후두두둑- 스프레이처럼 뿌려진 핏방울이 마루의 얼굴을 덮쳤다.
“···!”
흩뿌려진 핏방울 사이로 파고드는 이기영 부장의 강렬한 살의에 핏물에 시야를 잃은 마루가 반응했다.
이클립스를 옆으로 뉘어 급소를 가리는 것과 동시에 기순이 보낸 텍스트가 붉게 물든 시야 안쪽에서 떠올랐다.
‘어퍼컷! 어퍼컷!!.’
‘!’
휘릭-스트레이트를 막으려고 세웠던 칼날을 비스듬하게 뒤틀자, 마치 떨어지는 칼날에 자기 팔을 스스로 밀어 넣은 것처럼 변했다. 맹렬하게 솟구쳐 오르던 주먹이 바닥으로 덧없이 떨어졌다.
툭-
크아아!
양팔을 잃었음에도 이기영 부장은 멈추지 않았다. 입을 크게 벌려 마루의 코를 노린 것. 마치 좀비 같은 격렬한 반격에 마루의 볼이 씰룩 움직였다.
서걱-
입을 벌린 채로 바닥에 떨어진 머리통이 데굴 바닥으로 굴렀다.
‘아- 다 잡아놓고···. 참지. 좀.’
탄식하는 듯한 기순의 텍스트가 눈을 어지럽혔지만, 마루는 무시했다.
간질간질, 울렁울렁, 찝찝함이 뒤섞여 기분을 더럽혔다.
흩어지지 않은 살기에 출입구 밖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살기가 뒤섞여 두피가 간질간질했다. 거기에 빌딩이 흔들리는 것처럼 울렁울렁, 출렁출렁하는 느낌도 모자라, 무언가 이상한 찝찝함까지.
3초를 버티지 못하고 목이 떨어진 이기영 부장의 몸통이 철푸턱 쓰러졌다. 그 틈을 탄 대역이 마루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머리. 머리. 가슴.
훌륭한 모잠비크 드릴이었지만, 그녀의 총알이 꿰뚫은 것은 연막에 흐트러진 허공뿐이었다.
!목표를 놓친 대역이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어느새 그인 얇은 실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이어지는 화끈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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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으로 잘린 몸통이 서서히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분리됐다. 신체가 둘로 나뉘어 무너짐에도 끝까지 손에 쥔 총을 놓지 않았지만 그뿐. 그녀의 총구는 침묵했다.
후두두둑
생수로 눈에 들어간 핏물을 닦아낸 마루가 기순에게 신호를 보냈다.
‘바로 나간다.’
‘······.’
꼭 죽였어야만 했냐는 듯한 기순의 침묵에 마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요한 연막 속에서 기순이 갈고리 총을 꺼내 들곤 확인했다.
“여기 벽이랑 천장, 바닥 모두 철판 같은 거로 덧댄 것 같은데?”
“책상에 쏴.”
두 조각으로 나뉜 책상을 향해 갈고리 총을 겨눈 기순이 물었다.
“왼쪽? 오른쪽?”
“아무 쪽이나.”
크지지지직-
집무실 전면 강화유리를 뻥 뚫어버린 마루가 기순의 허리띠를 붙잡았다.
“스톱! 잠깐 스톱! 아직 안 쐈어!”
“쏴!”
허겁지겁 갈고리 총을 겨누는 순간 연막 저편에서 흐릿하게 움직이는 무엇.
“으힉- 뭐. 뭐야? 방금.”
“?”
츄리리릭!
검게 꿈틀거리는 무엇.
기순이 흐릿한 보이는 형체와 소리에 기겁했다.
“씨발. 촉수? 촉수수우우우어어어!”
마루가 기순의 허리띠를 붙잡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갈고리 총을 쏘자 로프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는 기순.
‘아아아아-’
‘아아아악-’
‘으워어어-’
콘택트렌즈에 텍스트로 변환된 비명이 끝없이 올라감에도 마루는 감각에 집중했다.
울렁거림과 찝찝함 그리고 사방에서 찌르듯 쏘아지는 살의가 뒤섞여, 날카로운 감각이 오히려 죽어버렸다.
‘아아아악-’
‘으워어아-’
기순의 비명 텍스트가 일순 변했다.
‘아래! 아래!! 아래!!!’
건물 아래쪽. 사람 팔뚝 크기의 괴물 쥐들이 하수구 구멍과 틈새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모습.
‘쥐랑 바퀴벌레는 서로 잡아먹는다며!’
놈들은 불붙인 드럼통 근처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사람들을 무시하고 한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쿠직- 바닥에 착지한 마루가 붙잡고 있던 기순의 벨트를 놓아주자, 발밑에서 격렬히 환영하는 소리가 들렸다.
크직- 뿌극-
‘아-’
“·········.”
“뭐 해? 가자.”
기순의 등을 툭 미는 순간 뒤섞여버려 뭉개진 감각이 위험을 호소했다.
점점 더 불어나는 쥐떼.
보도블록을 뒤덮은 바퀴벌레.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
마루의 눈동자가 반사적으로 사방을 훑었지만 당장 위험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쥐와 바퀴벌레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 방향으로···.
‘뛰어!’
떠오른 신호에 기순이 펄쩍 앞으로 뛰자, 서 있던 자리로 쿵- 떨어져 내린 덩어리. 목과 양팔이 없는 이 과장의 몸통.
“씨발!”
죽다 살아난 기순이 고개를 들어 빌딩을 올려다봤다.
뚫고 나온 자리에 삐져나온 코털처럼 가늘게 흔들리는 검은색 촉수 몇 가닥이 보였다. 연막이 뭉글뭉글 새 나오는 구멍 사이로 꿈틀거리는 검은 촉수에 기순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 저. 저기.”
“봤어. 일단 타자.”
마루는 울렁이는 감각을 부여잡고 비행선에 올라탔다.
“얼굴이 왜 그럼?”
완전무장한 채 대기하고 있던 김 양이 마루의 몰골을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고도 올려! 당장!”
비행선이 고도를 높이자, 서서히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회색빛 쥐 떼와 다갈색 키틴질로 번들거리는 바퀴벌레가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그리고 멀리서 날아오른 새떼가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날아가는 모습까지 멀리서 보니 확실히 불길했다.
!?그리고 거대한 음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무엇이 퍼져나간다는 느낌과 함께 높다란 빌딩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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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가 일순간에 끓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