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62)
러스트 [RUST]-562
샬롯 그룹 보안팀은 부산 항쟁 시절 마루의 활약을 직접 눈으로 봤었다. 그렇기에 ‘움직이면 썬다.’는 말에 농담처럼이라도 웃을 수 없었다.
마루를 소문으로만 들었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문은 둘째치고 지금 당장 경험하지 않았던가?
바로 눈앞에서 칼질 한 번에 기관총도 거뜬히 막는 복합소재 바리케이드가 썰리는 것을 본 뒤로는 그냥 얼음 상태로 굳어버렸다.
‘팀장님 이건 무슨 괴물입니까?’
‘닥쳐. 새끼야. 그냥 입도 뻥긋하지 마.’
다들 총 들고 다니는 데 혼자 칼 들고 다니는 놈이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미친놈이라면 단지 총알을 낭비하게 될 뿐이었고, 미친놈이 아니라면 총을 쏴보지도 못할 테니까. 그럼 지금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손가락에 쥐납니다. 쥐요.’
‘그럼 그 손가락 꺾어버려! 그냥 꺾으라고!’
능력자들이 생기기 시작한 시대이자, 변종과 식인귀들이 폐허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칼질하고 다닌다는 건 인간에서 벗어난 무엇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러니까 쥐난 손가락을 꺾어서라도 교전은 피하는 게 좋았다.
“······.”
“······.”
“한 번 정도는 본 얼굴들이 꽤 있네요. 나 알죠?”
다들 아는 얼굴이 많네?
나긋나긋 이야기하는 마루의 목소리에 오히려 더 소름 돋은 직원들이었다. 목소리만 그렇지 마루의 눈빛은 걸리기만 하면 썰겠다는 살기가 가득했기 때문.
얼음 상태로 굳어있는 보안 팀장을 보곤 고개를 까닥이는 마루. 헬멧을 벗으라는 마루의 신호에 조심스럽게 헬멧을 벗은 팀장이 쿨럭쿨럭 마른기침을 뱉었다.
“그러니까 보안 팀장이었죠? 거기 부산 살롯 호텔에서 봤었던?”
“예.”
1년 반? 햇수로 2년 전에.
“나 알죠?”
“예.”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서로 불상사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팀장을 본 마루가 질문을 시작했다.
“이 앞에 있던 검은 촉수. 이거 샬롯에서 만든 겁니까?”
“저희 쪽에서 만든 게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 제약회사 야마츠키, 타카이치 쪽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는 팀장의 대답.
“좋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 검은 촉수와 일본에서 싸워 본 적 있거든요. 근데 그때와는 여러모로 다르던데 그건 어떻게 된 겁니까?”
“저는 보안 쪽이라서 그쪽으로는 잘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마루의 눈초리가 가늘어지는 것을 본 보안 팀장이 절박한 목소리를 냈다.
그걸 마주 본 직원 하나가 보안 팀장에게 살그머니 신호를 보냈다. 기관단총을 살포시 쥐는 모습에 보안 팀장이 눈을 부라렸다.
‘야. 멈춰! 멈춰! 다 죽일 셈이냐?’
‘옆에서 콱 쏘면 되는 걸 왜 쫍니까?’
팀장의 얼굴이 노랗게 떴다.
정면에서 대놓고 왔다는 소리는 달랑 칼 한자루 들고 괴물 쥐 떼와 검은 촉수를 뚫고 왔다는 이야긴데, 왜 쪼냐고?
‘하···. 우리 그냥 쫄고 살자. 가늘고 길게.’
‘···팀장님 우리 애들 숫자가 20명이 넘는데 뭐가 그렇게···.’
젊은 애들은 이게 문제였다.
처음에 확 쪼그라들어 수그렸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쪽팔리는 것 같기도 하고, 수그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버했다는 생각이 들면 더 막 나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
불과 3~4분 전만 해도 바짝 얼어서 찍소리도 못했던 것들이 몸이 풀리자마자 뇌도 같이 풀렸는지 발광을 시작했다.
팀장은 마루와 싸우기 싫었다. 쥐떼와 검은 촉수를 혼자 뚫고 온 것도 미쳤고, 바리케이드 썬 것도 미친 거였다.
미친 것과 붙어서 이겼다고 치자. 그래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고 치자, 그걸로 끝인가? 밖은 지진과 쓰나미로 난장판이 됐는데?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미군과 합류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냥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
‘그러다가 수틀린다고 칼질하면 어쩌시려고요.’
‘알았다. 알았으니까 그만해라.’
‘애들한테 긴장하라고 하겠습니다.’
이야기가 잘 될 것 같기도 했고, 아닐 것 같기도 했다.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진 팀장이 작게 신호를 보냈다. 그래도 일이 틀어질 때를 대비하는 게 좋겠지.
‘준비만 해. 준비만.’
‘전달하겠습니다.’
물 밑에서 신호가 오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루의 질문이 이어졌다.
“좋아요. 모른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치죠.”
“······.”
“근데 이상하단 말입니다. 쥐에 달라붙은 검은 촉수가 말입니다. 기생한 쥐를 이용해서 땅굴을 팠단 말이죠.”
“따. 땅굴이요?”
촉수에 잠식된 쥐가 그랬다고? 그런데 그게 어때서?
“예. 땅굴을 파서 불길을 피했더군요.”
“······.”
당연히 굴을 팔 수 있으면 파서 불길을 피하겠지. 그냥 타죽기만 기다려야 했나? 그게 어떻다는 거지? 팀장의 의구심에 마루가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런데 말이죠. 땅굴을 파서 이쪽으로 도망친 놈들이 왜 여러분을 습격하지 않고 지나쳤을까요?”
“······.”
마루는 그게 궁금했다. 불길 아래로 도망친 놈들이 왜 이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고 지나친 걸까? 우연이라고? 그럴 리가.
일본에서 봤던 검은 촉수는 사람들을 사냥했었다. 연구원과 보안요원을 잡아먹고 덩치를 불렸던 검은 촉수가 사람들을 그냥 지나친 이유가 뭘까?
마루의 날카로운 추론에 팀장이 꿀꺽 침을 삼켰다.
이유?
있었다.
‘제단의 파편.’
팀장은 힐끗 특수 보관함으로 가려는 눈동자를 필사적으로 멈춰 세웠다.
‘제단의 파편이 있으면 검은 촉수의 공격을 받지 않아.’
제단의 파편에 대해 알게 된다면 반드시 뺏겠지.
그냥 먼저 넘겨줘야 하나?
‘잠깐.’
땅굴을 파서 갔다고? 제단의 파편이 있는 저지선을 통과해서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는 의미였다.
‘맙소사. 회장님!’
심은영 회장과 연구원들 핵심 인력들이 모여있는 후방으로 쥐떼를 잠식한 검은 촉수가 들어간 것이었다.
여기서 제단의 파편을 잃게 된다면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죽는다.
제단의 파편을 넘기고 구해달라고 할까?
아니야. 제단의 파편만 먹고 빠진다고 한다면?
흔들리는 팀장의 눈동자에 마루가 선택을 강요하듯 칼 손잡이를 쥐었다.
마루야 빨리 대답하라는 의미에서 칼을 쥔 것이지만,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간신히 숨을 삼키고 있던 보안요원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느껴졌다.
“쏴!”
“죽어!”
“멈춰!”
아우성인 공간 속에서 갑자기 굿거리장단이 터져 나왔다.
쿵기덕-쿵더더러러럭-
오옥
욱컥칼집째로 두들겨 맞은 직원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그 귀신 같은 움직임에 팀장이 입을 떡 벌렸다.
“팀장님 애들 관리 똑바로 하세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네? 예. 이 자식들이 정신 똑바로 못 차리고!”
바닥에 엎어져 끙끙 앓는 직원들을 갈구는 팀장의 뒤통수에 마루가 말했다.
“그래서. 목숨값이라고 생각하고 말해 봅시다. 검은 촉수 놈들이 어째서 여길 습격하지 않았는지.”
팀장이 뒤돌아서지 않고 답했다.
“제단의 파편 때문일 겁니다.”
마루의 머릿속에 떠오른 제단은 하나뿐이었다.
“제약회사 비밀 실험실에 있던 그 제단?”
“그렇습니다.”
팀장이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응시했다. 그쪽에는 금속보관함이 놓여있었다. 딸깍- 보관함을 열자 투명한 보존액에 담긴 검은색 돌조각이 들어있었다.
“이게 있으면 검은 촉수가 공격하지 않는다고”
“원인은 모르겠지만, 반경 15m~20m 정도까지는 그랬습니다.”
마루가 제단의 파편을 챙긴 채, 물었다.
“안으로 들어가 심 회장 얼굴을 볼 생각인데. 어떻게 할 겁니까?”
“같이 가겠습니다. 빨리빨리 일어나! 여기서 뭉그적거리다 뒈지고 싶으면 계속 뭉그적거리고.”
제단의 파편이 없다면 어디서 어떻게 검은 촉수가 나올지 몰랐다.
“화염방사기 챙겨. 거기 진압 방패도 챙기고.”
팀장이 직원들을 달달 볶아 마루의 뒤를 따랐다. 차단벽 몇 개를 거쳐 심은영 회장과 연구진이 있다는 중심부에 도달했을 때 그들을 기다린 건 난장판이 터진 공간이었다.
쓰러진 캐비닛 안쪽에서 기습적으로 쏘아졌던 검은 촉수가 멈칫- 뒤로 물러섰다. 제단의 파편이 있는 방향으로는 공격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득실득실, 꿈틀꿈틀 쥐의 사체에 박혀있는 촉수들이 빙 둘러 포위한 채 마루와 보안팀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저기 구멍 뚫려있는 바닥과 붉은 핏자국이 선명한 것을 보니, 기습에 당한 것 같았다.
“잠깐. 정지.”
팔뚝이나 허벅지 정도 크기로 뚫렸던 구멍과 달리 마치 맨홀 구멍처럼 커다랗게 뚫린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으로 향한 핏방울의 흔적.
검은 촉수에 당했든 당하지 않았든 이쪽으로 간 게 분명했다.
쯧-
마루는 저런 구멍에 들어갈 생각 없었다. 제단의 파편이고 뭐고 여진 터지면 바로 무너질 땅굴 아니던가?
“가까운 곳에 벙커가 있습니다. 여기와 비상구로 연결된 벙커입니다.”
심 회장이 그곳으로 피신했을 확률이 있다는 팀장의 이야기에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제단의 파편인지 하는 게 더 없다면 쥐 떼를 흡수한 검은 파편을 막긴 불가능했다.
쥐새끼들 다른 건 모르지만 갉아대는 것 하나는 일품이었으니까. 거기에 검은 촉수가 붙으면서 어떤 버프가 생겼을지도 모르고.
마루는 대답 대신 연구자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대로 널브러진 자료들이 넘쳐났다.
취리리리릭-
휘리리리릭-
쥐새끼 등판과 머리통에서 돋은 촉수들이 위협했지만, 제단의 파편이 뿌리는 영향력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마루는 가뿐하게 무시한 채. 자료수집에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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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탕!
철컥-
투앙!
철커덕-
[어느 구멍에서 나오는 것임? 아직도 못 찾았음?] [에- 또- 까마귀들 시야에 잡히는 게 없다고 해요.]아니 뭔 태평한 소리를 처하고 자빠져 있음?
[대충 의심 가는 지역을 찍어서 폭격해 보면 알 거 아니야.] [아- 예 그렇게 전달할게요.]그 짧은 시간 동안 벌써 셋이나 머리통을 날린 김 양은 인상을 찌푸렸다. 헤드-샷을 하면 뭐하나? 터진 대가리에서 검은 촉수가 돋아나는걸.
그나마 까마귀들이 핀포인트 폭격으로 네이팜을 꽂아 넣어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검은 촉수에 감염된 샬롯 애들 엄청 놓쳤을 게 분명했다.
[마크 2. 그쪽은 어때?] [···마크 2 아니라고 했지.] [말이 짧네. 똥 기저귀. 한 번 마크 2는 영원한 마크 2란다.] [······.]작전 중에 누가 이름 부르니. 코드 네임 쓰지.
[벙커 안에서는 아무런 소식 없고?] [단거리 통신이 먹히지 않고 있어. 중계기까지 가지고 들어갔는데 중계기도 먹히지 않는 모양이야. 딱 5분만 더 기다려보고 진압하겠다.]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고기 방패가 좋은 게 뭐겠음. 응.
마크 2가 알아서 최고 존엄을 지킨다고 하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잘 키운 똥 기저귀 하나 열다섯 클론 부럽지 않은 법.
그렇게 생각하는 김 양의 디지털 스코프에 새로운 표적이 잡혔다.
반사적으로 조준, 방아쇠를 당긴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탕!
철컹!
어쭈. 피해?
투앙!
철커덕-
물 흐르듯 2번째 탄이 쏘아졌고, 그 짧은 찰나의 순간 김 양은 목표와 시선이 마주친 것 같았다.
퍼억!
왼쪽 머리통 부분이 날아가며, 두개골 속에 있던 검은 촉수들이 터진 구멍 밖으로 휘리릭- 쏟아졌다.
까아아악!
까악!
김 양의 저격에 맞아 잠깐 멈춘 틈새를 노린 까마귀들이 바로 놈에게 네이팜을 꽂아 넣었다. 핀포인트 폭격에 불타오르는 놈을 봤음에도 어쩐지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설마 이게 그건가?’
우리 최고 존엄이 자주 말하던 찝찝함?
김 양의 퀭했던 동공이 조금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 건가?
뭔가 찝찝할 때 우리 존엄은 어떻게 했었지?
썰었다.
아?
그거 말고.
런했다.
런?
눈 마주쳤다고 런하는 건 좀.
[저격 포인트 방면으로 검은 촉수에 잠식된 쥐 대량 이동 발견!] [촉수에 잠식된 쥐에게는 최루탄이 먹히지 않습니다!] [놈들이 방어선을 회피했습니다.] [빌딩 외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끼융-
벌떡 일어선 김 양이 친위대를 향해 말했다.
[사격 중지. 2번째 포인트로 이동한다.]그래.
찝찝함은 런의 계시였어.
미리 걸어 놓은 케이블을 이용해 재빨리 옆 건물로 튄 김 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는 게 느리군요. 더 빨리 넘어올 줄 알았는데.”
심은영 회장의 측면에는 친위대 엑소슈트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배신?’
김 양의 가늘어진 눈초리가 친위대 엑소슈트를 빠르게 훑었다.
그 시선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친위대 엑소슈트의 틈새에서 검은 촉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하늘 인사하듯 흔들리는 검은 촉수를 본 김 양의 눈초리 끝이 뾰족하게 변했다.
“까마귀 폭격이라니. 대단하네요. 폭격과 감시를 피해서 오느라 고생했답니다. 그래도 여긴 빌딩 안이니 방해 없이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그렇겠죠?”
지랄.
김 양이 화답했다.
[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