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63)
러스트 [RUST]-563
[가스!] [연막!]김 양의 외침과 함께, 같이 탈출한 친위대원들이 산개하며 복창했다.
[가스.] [가스.] [연막!] [연막!]엑소슈트의 화생방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며 신경가스를 제독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낮은 기계음 사이로 김 양이 내달렸다.
끼융끼융끼융-
[전원 탈출. 창문으로!]신경가스와 동시에 터진 연막탄이 빌딩 안쪽을 어둑하게 만들 정도로 연기를 뿜어댔다. 그 틈을 이용해 창문을 뚫고 몸을 던진 김 양과 친위대가 수십 미터 아래로 자유 낙하했다.
푸화학-
3~4번 사용할 수 있는 제트팩이 작동하며 파란 불꽃이 노즐에서 뿜어져 나왔다. 휘청거리는 친위대원들 몇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착지했다.
[인원보고.]착륙하자마자, 부대를 이끈 김 양이 인원파악부터 시작했다.
[하나] [둘] [삼]···
···
[총원 28명, 작전 중 실종 7명 현재 인원 21명 이상입니다.]‘실종이 너무 많아.’
심은영 회장의 옆에 선 엑소슈트가 떠올랐다. 분명히 검은 촉수에 오염된 상태였다.
‘일본에서 본 검은 촉수라면 엑소슈트의 특수장갑을 뚫을 수 없을 텐데.’
당시 백정과 교전했던 검은 촉수였다면 분명 엑소슈트를 파고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그년이 뭔가 한 게 분명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였는데.’
김 양은 전술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바로 비행선에 있는 기순에게 전송한 뒤, 마루가 있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쪽에서 검은 촉수에 오염된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기에 그걸 잡으면서 동시에 까마귀들의 지원 폭격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보낸 영상 뭐야? 샬롯 심 회장이 검은 촉수랑 같이 있었던 거 확실해?] [보면 모름?]김 양의 퉁명스러운 답변에 기순이 미치겠다는 듯 말했다.
[아니. 아- 씨-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 [벙커 쪽으로 가려고. 마크 2랑 클론이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뒤에서 백업하게.]그쪽에서 계속 검은 촉수 오염된 사람들이 나오니까 그거 잡으면서 겸사겸사 간다는 이야기에 기순이 잠시 침묵했다.
[···그거 함정 같다.] [응? 무슨 소리임?]벙커 방향으로 전속 이동하던 김 양이 오른손을 번쩍 들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급속 기동하던 친위대가 제자리에서 바로 멈추며 사주경계 태세를 취했다.
기순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조금 전 탈출 루트를 생각해봐. 빌딩에 심 회장이 기다리고 있었잖아. 어떻게?]그랬다. 탈출 정보야 생포한 친위대에게서 정보를 뽑았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그건 결과였다. 원인은 빌딩 1층을 방어하던 친위대를 어떻게 생포했을까? 교전 신호를 보내지도 못하고 잡혔다는 뜻.
[···그러니까 내 앞에서 알짱거렸던 것들은 미끼?] [아마도. 벙커 앞쪽에 구멍이 뚫렸다고 믿게 하고, 실질적인 주력은 뒤를 잡은 거지.] [그럼 마루랑 마크 2가 위험한 거 아님?] [···그렇다고 하면? 너와 친위대까지 전부 들어가서 어쩌겠다고?]김 양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임?] [적들이 생각하지 않는 쪽을 잡아야지. 샬롯 본사 빌딩에서 이기영 부장과 대역 알지?]마루랑 기순이 협상하겠다고 갔던 이야기. 김 양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순이 설명을 계속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보다. 심 회장이 촉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려면 그곳에 있는 촉수를 회수할 필요가 있어.]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거기 있겠음?] [촉수가 아니라면 이기영 부장의 시체. 머리라도 있겠지.] [둘 다 없으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당장 벙커로 가서 날 죽여줍쇼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알겠음.]김 양은 행동이 빨랐다. 바로 수신호로 이동 방향을 바꾸고 행군을 시작했다.
[그리고 심 회장이 다시 대화를 요청하면 받아줘.] [무슨 개소리니.] [최대한 시간을 끌라고.] [···알겠음.]역시 기순이 음흉하기는.
김 양과 그 뒤를 따르는 친위대가 폐허를 뚫고 샬롯 본사를 향해 내달렸다.
김 양 일행이 탈출하면서 깨진 창문에서는 울컥울컥 짙은 연막이 피어올랐다.
그 틈으로 몸을 내민 심은영은 작게 인상을 썼다. 벙커를 향해 가던 김 양과 친위대가 방향을 바꿔 본사가 있는 쪽으로 갔기 때문.
예상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었다. 금을 좋아하는 아이였으니, 대화를 해봄직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짜고짜 가스에 연막탄이라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줄이야. 예전 정보대로라면 도망치기는커녕 생각 없이 총부터 쐈을 텐데. 많이 변했다.
혹시나 몰라 벙커로 유도할 미끼를 뿌려놨었다. 그걸 무나 싶더니 갑자기 폐허가 된 도시로 갔다. 이유가 뭘까?
심은영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배회하는 까마귀들과 그보다 더 높이 점처럼 보이는 비행선이 보였다.
‘김기순.’
머리를 이상하게 쓰는 녀석이 하나 있었지. 그쪽도 말이 통하는 애였는데 말이야. 심은영이 창문 밖으로 발걸음 옮겼다.
······
바닥으로 추락했어야 할 몸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검은 촉수들이 그녀의 몸을 붙잡은 것. 심은영의 등판에 달라붙은 촉수가 거미의 다리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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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연구실에서 자료를 챙기는 마루의 표정은 무섭도록 차가웠다. 솔직히 이 모든 상황이 짜증 나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는 뭔 폭탄이 이렇게도 많은 건지. 폭탄이 많은 건 그렇다고 치고 왜 하필 눈앞에서 지랄인가?
보이지 않고 몰랐더라면···.
편했을까?
‘빌어먹을.’
마루는 변종과 식인귀가 싫었다. 식인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생리적으로 인간을 도축하려는 놈들의 발상이, 먹잇감 보듯 하는 그 눈빛이 싫었기 때문이다.
마루의 기억에 있는 괴생명체도 마찬가지였다. 분노와 복수심에 미쳐있었던 그것. 강력한 구속장치 속에서 몸부림치던 괴생명체는 남의 머릿속을 헤집으려고 했었다.
그렇게 탈출해서 한다는 짓이 연구원들을 잡아먹고 자기가 먼저 정신공격을 해놓고 복수하겠답시고 따라왔었다.
그 촉수를 가지고 실험이라니, 샬롯 심은영 회장이 정신 나간 게 분명했다.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촉수가 사람에게 기생하게 됐으니 일본에서 붙었을 때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옛날과는 달리 유리한 점이 있다면 검은 촉수에 영향을 주는 제단의 파편이라는 걸 구했다는 건데, 그와 연관된 자료만큼은 반드시 찾아야 했다.
[아셨습니까? 제단의 파편과 관련된 자료를 찾으면 되는 겁니다.]“크. 큼. 알겠습니다. 찾고 나면 약속대로 풀어주시는 겁니다?”
[계약은 지킵니다.]“큼. 다들 들었지? 후딱 찾고 좋게 끝내자. 아까처럼 병신 짓거리할 생각하지 말고.”
아차 했다면 부러지거나 금이 갔겠지만, 절묘하게 피해 두들겨 팼던지라 끙끙 앓으면서도 연구실을 뒤지기 시작한 직원들이었다.
‘아무래도 찝찝해.’
지진과 쓰나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검은 촉수도 그렇고, 심은영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랬다.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느낌에 마루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유희연과 클론이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대기하다 빠지는 촉수 없도록 하라니까.] [그쪽은 김 양과 친위대가 백업해주기로 했어. 무슨 일인데 이렇게 오래 걸려?]걱정했다는 말을 생략한 이야기에 마루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 꼭 찾아야 하는 정보가 있어서.] [어지간하면 나가자. 지형이 좋지 않아.]유 이사의 경험상 이런 지하 벙커는 좋지 않았다. 부비트랩이 설치됐을 수도 있었고, 자폭 장치라도 있으면 생매장이었다.
마루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찝찝함의 이유가 그것 때문일 수도 있다 싶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때 샬롯 보안 팀장이 마루를 불렀다.
“여기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바닥에 뚫린 구멍을 보며 손을 흔드는 보안 팀장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찝찝함이 더러운 감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마루는 바로 몸을 돌려 출입구로 향했다.
[가자.]짧고 단호한 마루의 한마디에 유희연과 클론들이 퇴각 진형을 취한 채 뒤따랐다.
“어? 여기 이상한 흔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냥 가십니까?”
[쥐 떼도 없고, 검은 촉수도 없으니 우리 계약은 여기까지인 걸로 합시다.]“그러지요. 다 들었지? 그만들 하고 모여.”
열심히 뒤집던 직원들이 행동을 멈추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에이 씨- 뺑뺑이만 쳤네.’
‘중요한 정보라고 하더니.’
‘중요하긴 개뿔. 뒤집어 놓고 그냥 가는 걸 보니 개털이었나 보네.’
‘이럴 거면 왜 굳이 들어오자고 한 건데?’
‘팀장님은 뭐라고 하셔?’
‘무기고에서 무기나 챙기란다.’
‘지금까지 챙긴 자료는?’
‘몰라. 저쪽 구석에 둬.’
웅성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마루는 싹 무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던 팀장의 태도가 미묘하게 변한 것도 그렇지만, 점점 기분이 더러워지고 있었다.
저벅저벅-
윙-철컥-
기익-칙-
마루의 발걸음 소리와 엑소슈트 특유의 기동음이 비상탈출구를 향했다. 희연과 클론들은 언제든 화염방사기를 분사할 수 있도록 대비한 채 마루의 뒤를 따랐다.
저벅저벅-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던 마루가 갑자기 딱 멈췄다. 마루는 내밀었던 발을 내딛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린 뒤 이클립스를 빼 들었다.
“전투준비.”
나지막한 목소리에 희연과 클론이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사주경계에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마루가 벙커 바닥에 이클립스를 박아 넣었다.
쿠직-
칼날이 바닥을 꿰뚫자, 멀쩡했던 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쩌억- 싱크홀처럼 구멍이 뚫렸다. 그 깊고 어두운 구멍 속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심은영의 목소리가 울렸다.
“김 양을 통해서 만나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네요.”
칙- 클론들이 화염방사기를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향했다. 마루가 손을 들어 제지한 뒤,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검은 촉수 이야기?”
“아- 그건 정말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죠. 지진 때문에 격리 실험실에 문제가 생겼거든요.”
게다가 어디에 숨어있었던지 갑자기 창궐한 쥐 떼와 바퀴벌레까지. 대지진과 쓰나미가 모든 것을 계획을 무너뜨려 버렸다.
“대역과 이기영 부장도 오염된 건가?”
“오염이라고 하면 좀 그렇고, 공생이라고 해주시면 좋겠네요.”
심은영의 대답에 마루의 입꼬리가 씰룩 움직였다.
“공생? 그게 뭔지 알고는 하는 말인가? 공생이라 촉수가 원하는 건 뭔데? 당신은 대체 원하는 게 뭐지? 뭘 원했길래 일본에서 지랄 난 걸 알면서도 그걸 가져온 거지?”
“···어머. 잊었을까요? 이야기했었는데. 하긴, 인간은 누구나 자기와 관련된 일만 기억하는 법이니까 말이죠. 그래도 좀 서운하기는 하네요. 누구는 왕국을 건설했는데, 누구는 여기까지 아득바득 기어 올라왔더니 지진에 쓰나미로 전부 날려버리고. 촉수와 공생이라니.”
“신세 한탄하려고 김 양을 잡으려고 했다는 소린가?”
“아. 그렇게 생각하셔도 뭐라 답할 말이 빈곤하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김 양을 통해 말하지 않으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으니까요.”
“······.”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벙커라는 제한적 공간, 당신에게 극도로 불리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우리와 대화를 했을까요? 대놓고 급속치료제 레시피를 지우라고 한 사람이?”
“······.”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예상외의 상황입니다. 말했다시피. 지진과 쓰나미 전에는 이럴 생각이 없었으니까 말이죠.”
마루의 눈빛이 우묵하게 가라앉았다.
“좋아 그러자고, 전에 이야기하던 건 전부 치우고. 다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해보시지?”
“우리와 협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협상? 무슨 협상?”
“샌프란시스코는 무너졌어요. LA로 가서 재건한다는 방법이 있지만, 남부연맹과 멕시코 카르텔이 틈을 놓치지 않겠죠.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거점이 필요해요.”
픽- 마루가 웃었다.
“웃기는 소리네. 남부연맹이고 범죄자들이고 촉수로 쓸어버리면 그만이지 않나?”
“그렇게 드러나게 되면 핵에 두들겨 맞겠죠. 아닌가요?”
“그러니까 핵이 무서워서 거점이 필요하다?”
“예. 캐나다 북부지역 사람들이 없는 곳을 빌려줬으면 좋겠네요. 외딴 지역으로 가면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을 겁니다.”
폐를 끼치는 일이 없을 거라고?
“······.”
“그저 우리는 조용하고 외딴곳을 빌리고 싶습니다. 급속치료제 레시피를 파기하라고 한 것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또 원하는 조건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이건 또 무슨···. 마루는 어이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촉수를 굴리게 땅을 빌려달라고? 신성 왕국의 비호 아래서?
“난 촉수를 싫어해. 식인귀도 싫고, 흡혈귀도 싫다고.”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럼 그 촉수들은 뭐지?”
어둑한 구멍 안쪽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심은영의 모습.
그녀를 보호하듯 휘감고 있는 촉수들을 보며 마루가 칼을 겨눴다. 그런 마루를 향해 심은영이 흐릿한 미소로 대답했다.
“말씀드렸다시피, 그저 어쩔 수 없는 공생일 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