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70)
러스트 [RUST]-570
마루는 진지했다.
이런 찝찝한 느낌이 들면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그 이유를 찾아야 했다.
[저번에도 한 번 이야기했었지만, 난 그냥 넘어갈 생각 없다.]계속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까?
기순은 혼란했다.
‘네이팜으로 융단 폭격을 해놓고도 찝찝하다고? 핵이라도 떨구자는 건가?’
아니면. 설마 이 녀석 취향이 그런 타입이었나?
기순의 침묵이 길어졌다.
[다시 살펴도 이유를 찾지 못하겠으면 제국 덴 브라운 총통에게 촉수 정보 제공하고 전략핵 떨구자고 하려고.] [···진심이냐?]아니 진짜 핵?
기순의 생각을 읽은 듯 마루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그냥 지나가도 당장은 괜찮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심회장과 융합한 촉수가 살아나갔으면 몇 년 뒤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너 정말이구나?] [정말이라니까.] [······.]미합중국이 정상적으로 있었다면 본토에 전술핵도 아니고 전략핵을 날리자는 이야기는 입도 뻥끗하기 어려웠을 터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게다가 전략핵 타격 목적지가 샌프란시스코였다. 어차피 지진과 쓰나미로 망가진 동네니까 핵으로 싹 밀어버리는 것도 그렇게 부담되지 않으니, 덴 브라운 총통과 이야기만 잘 된다면 핵으로 미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구야.
핵을 쏠 땐 쏘더라도 일은 대국적으로 하자꾸나.
[그래 알았다. 이쪽 인근에 있는 사람들은 김 양과 친위대를 보내서 규합하고 대피 유도할 테니, 넌 잔존 미군 규합하러 가는 게 어떻겠냐? 귀한 미군들은 네 얼굴 다 아니까. 이야기가 쉬워질 것 같은데? 그동안 제국에 비행선 보내서 전략핵 하나 받아오고.]그렇게 마루는 잔존 미군 캠프로 향했다.
지진과 쓰나미에 적잖은 타격을 입은 귀환 미군 캠프는 난리였다.
“천막도 그렇고 식수도 부족합니다.”
“샬롯 그룹은 어떻게 됐어? 아직도 연락이 없어?”
“회장 직통 전화도 먹통입니다.”
“지하 벙커도 연락되지 않고 있습니다.”
“젠장. 설마 지진을 못 피한 건 아니겠지?”
“어떻게 할까요? 수색대를 보낼까요?”
“보내. 당장 그쪽에 남은 물자가 있으면 융통 좀 해달라고 해. 이쪽은 보급창고가 쓰나미와 지진에 쓸려서 개판이라고.”
“옛.”
며칠 전부터 새벽이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방한 장비였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에 쓰고 넣어둔 방한 장비가 쓰나미에 휩쓸려버렸다. 빨아서 말려야 했지만, 그도 여의치 않았다. 수도와 전기가 전부 끊겨 그저 답답할 따름.
“손으로 빠는 건?”
“강물이 아직 흙탕물입니다.”
“하아- 미치겠군.”
“······.”
대규모 지진 여파로 산사태가 이어졌고, 강물이 흙탕물로 변해 흐르고 있었다.
조금 깨끗해진다 싶으면 다시 여진이 터져 흙탕물로 변하는 악순환. 제때 빨지 못한 옷가지에서는 이제 썩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 구조는 어떻게 됐나?”
“사실상 생존확률이 없습니다.”
기갑병이라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었으면 모르겠지만, 지진과 쓰나미로 지반이 약해지고 진창이 생겨 운용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에너지팩 충전 문제도 있었고.
“괴물 쥐와 바퀴벌레의 공격으로 피해가 늘고 있습니다.”
“골치 아프군.”
지진과 쓰나미로 괴물 쥐와 바퀴벌레도 많이 죽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쥐와 바퀴벌레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은 사방에 널린 주검을 식량 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번식을 시작하면 감당하기 어려웠다. 쥐는 최소 6~8배 증가할 테고, 바퀴벌레도 20배 육박하게 번식할 터.
겨울이 닥치기 전 현재 쥐의 숫자의 6~8배, 바퀴벌레의 20배와 싸운다고 생각하면 답이 없었다.
현재 생존한 쥐의 숫자를 보수적으로 잡아서 5만 마리라고 가정해도 30~40만 쥐떼와 싸워야 한다는 뜻이니까.
“생존자 수색은 오늘까지만 하기로 하지. 그리고 대 괴수 방어 준비와 물자 보급에 우선하도록.”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로이 스턴 소령은 어디 있나?”
“순찰 중입니다.”
“순찰 끝나면 오라고 해.”
“옛.”
헐레벌떡 연락병이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블라디마루 칼린이 수색대와 접촉했다고 합니다.”
대 중국 전쟁에서 칼 한 자루로 수천, 수만의 아군을 구한 영웅이자, 이제는 신성 왕국의 국왕이었다.
정치제도만 왕정이 아니었다면, 귀환병 모두 블라디마루 칼린의 휘하에 들어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사람이기도 했고.
“그래서?”
“신성 왕국에 합류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휘부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자고 했다는 말에 장군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혹독한 겨울이 될까 싶었는데, 길이 생길지 몰랐다.
“부사관급 이상 장교들은 전부 모이라고 해.”
“넷.”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그러니 다들 모여서 결정하는 게 좋겠지.
지금은 기존의 규칙이 무너진 세상. 장군이랍시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다 보면 뒤통수에 총알이 박히는 시대였다.
마루는 샬롯의 중앙벙커로 향하는 수색대와 마주친 후 그들과 함께 캠프로 향했다.
“그럼 중앙벙커에 심 회장은 없는 겁니까?”
[샬롯 그룹 상층부는 없습니다.]굳이 심 회장을 썰고 불까지 싸질렀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마루는 재빨리 교전 영상만 잘라 달라고 요청하곤 주제를 돌렸다.
[샬롯 중앙벙커를 수색하는 것치고는 무장이 중무장인 것 같군요.]“괴물 쥐떼도 그렇고 변이를 일으킨 동물들이 하나둘씩 출몰하기 시작해서입니다.”
괴물 쥐와 바퀴벌레 말고도?
“코요테 같은 것들이 출몰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아- 정확하게 확인한 건 아니지만, 중대형 고양잇과 동물을 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양잇과 동물이 아닌 변이된 고양이일 가능성이 큽니다. 퓨마나 재규어가 변한 건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요.]마루와 잠시라도 말을 붙이겠다고 수색대의 진형은 교대로 바뀌었다.
“저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실례지만 사진 좀 부탁해도 괜찮으신지요.”
수색대는 마루를 아이돌처럼 조심스럽게 대했다.
군인들의 아이돌이라니 어떤 의미로는 어렵기도 했지만, 마루의 활약을 알고 있는 병사들에게 있어서 그는 아이돌 그 자체였다. 칼 든 아이돌.
그래서 그런지 마루는 샬롯 그룹과 귀환 미군이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럼 일본에 남아있던 능력자들 대부분이 이쪽으로 같이 넘어왔단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몇 명은 병사로 지원했고 대다수는 샬롯 그룹 산하 용병대나, 무력부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술술 나오는 정보를 보니, 수색대와 만나기를 참 잘한 것 같았다.
“보급은 어떻게 합니까?”
“샬롯에서 70%~80%가량 지원해주고 군에서는 인근 범죄집단을 소탕하면서 노획하는 것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샬롯이 일을 잘하고 있었다.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보급을 넉넉하게 유지하면서 군과의 관계를 잘 조절한 것도 그렇고, 100%를 전부 다 대주지 않아서 군에서 자연스럽게 치안 활동을 통한 노획보급을 하도록 유도한 것도 그랬다.
‘기순이가 아까워할 만했네.’
100% 가능한데 70%~80%만 주면 빈 정 상할 수도 있지 않던가? 그걸 피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유도했다는 것 자체가 능력이었다.
‘그래도 촉수는 아니지.’
일본이 그 꼴이 났는데 제단과 촉수라니.
마루가 생각하기에 심은영은 매우 위험한 여자였다.
공포가 깃들면 이성이 떠나는 법.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선을 넘기 마련이었다.
심은영 회장이 편집증적으로 대역을 내세웠던 일을 봤을 때, 중앙벙커 비밀연구실 실험이 이성적이지만은 않았으리라.
쯧-
심 회장을 생각하니, 좋은 분위기에서도 찝찝함이 더해졌다.
‘이거 아무래도 덴 브라운 총통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봐야겠는걸.’
개념이 있는 덴 브라운이라면 촉수의 위험함을 알아챌 것이다. 국토안보국 국장까지 올라간 사람이 세계를 절단 낼 수 있는 위험한 생명체를 그냥 둘리 없었다.
‘수소폭탄으로 싹 날려버리면 개운해지겠지.’
결정을 내렸으니 개운해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캠프가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찝찝함이 강해지는 이상함.
[······.]“어디 불편한 곳이라고 있으십니까?”
감각에 걸리는 이질적인 느낌. 불길하고 더러운 느낌.
[캠프에 샬롯 사람들이 있는 겁니까?]“소속 상관없이 피난민들을 수용하고 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마루가 수색대원들에게 미리 준비한 검은 촉수 영상을 공개했다. 병사들은 검은 촉수의 모습을 보곤 경악에 빠졌다.
“심. 심 회장이 저렇게 변했다는 말입니까?”
“맙소사. 기생하는 촉수라니.”
[아무래도 캠프 쪽에 촉수에 오염된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루가 녹화 파일이 담긴 USB를 건네주며 설명했다.
바로 지휘부에 상황을 전달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킬 것. 대피시킬 때 하나로 묶지 말고, 소규모로 분리해 흩어 놓을 것. 그리고···.
[혹시 전술핵 있습니까?]다 알고 있다는 마루의 눈빛.
수색대를 인솔하고 있는 중위의 굳은 얼굴이 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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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마루 칼린이 건넨 영상을 확인한 장군과 영관급 장교들은 충격받았다.
“······.”
“······.”
샬롯 그룹에서 저런 생체 병기를 연구하고 있었다니, 심지어 회장이 그에 오염됐다. 회장이 저 지경이라면 샬롯 그룹 상층부가 전부 감염됐을 수도 있다는 뜻.
“샬롯 보안팀장이 능력자들을 면회한 뒤 나와 면담을 하고 싶다고 했지?”
“예.”
영상을 보기 전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영상을 본 뒤에는 지나칠 수 없었다.
“보안팀장이 혼자 왔다고 했던가?”
“예.”
“어렵군.”
보안팀장이나 되는 자가 혼자 왔다고 했을 때 이상하다 싶었다. 샬롯 회장도 감염된 판에 보안팀장이라고 안전할까?
그렇다고 확인을 해보자고 할 수도 없었다. 촉수가 의태한 상황이라면 잡겠다고 하다 대량 사상자가 나올 판이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은 전술핵을 요구했고?”
“예.”
전술핵을 요구했다는 것은 여차하면 그걸 썼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촉수와 직접 싸워본 그가 전술핵을 언급했다는 이야기에 장군의 침묵이 길어졌다.
“기폭장치 설치하는 건 끝났나?”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건 한 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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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곧바로 캠프로 들어가지 않고 리퍼 슈트의 은신 장치를 가동한 채 주변을 살폈다. 민감해진 감각이 캠프에 뭔가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캠프에는 예상대로 전술핵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용 수단이 없어 기폭장치를 설치했나 본데, 아쉬워도 그대로 써야 할 판이었다.
‘피난민들은 대피 훈련 명분으로 치웠고.’
샬롯 보안팀장이 혼자 캠프에 왔다는 말에 그놈이 오염됐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샬롯 중앙벙커에서 봤기에 알 수 있었다.
면담장소가 공개된 곳이라 대놓고 지랄하지는 않겠지만, 촉수에 오염된 놈이 기지사령관도 아닌 능력자들을 먼저 만나고자 했다는 부분에서 마루는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일렁이는 그림자가 능력자들이 면담하고 있는 막사를 향했다.
막사에서는 면담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피부가 단단해지는 능력이라고 하셨죠? 어느 정도나 단단해지는 겁니까?”
“수류탄 파편에 상처가 생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보안팀장의 모습을 한 그것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무엇 때문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것은 본래의 팀장이 가진 기분이었다.
불안함. 불쾌함. 찝찝함.
?
면담을 잠시 멈춘 그것의 뒤편 일렁이는 그림자가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