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71)
러스트 [RUST]-571
그것은 이유 모를 불길함을 해석하지 못했지만, 그것에 먹혀버린 보안팀장과 심은영은 알고 있었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슈칵-
짧게 끊어지는 소리가 스치듯 그것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번 죽어본 심은영의 기억과 사신과 만났던 보안팀장의 기억이 그것을 움직인 것.
종이 한 장 차이로 칼날을 피했음에도 무엇에 잘렸는지, 그것의 목덜미에 길게 자국이 남았다. 찢어진 상처에서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닌, 점액질.
“헙? 이. 이게···.”
면담하고 있던 능력자가 몸이 굳었는지 제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가!]허공에서 이질적인 기계음이 들리자, 더 굳어버린 남자를 향해 그것이 고개를 돌렸다. 찢어진 상처가 더 크게 벌어지며 점액질 속에서 꿈틀거리는 실지렁이 같은 촉수들이 드러났다.
가까이 있었기 때문인지 마루는 그것이 표출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살의가 아닌 다른 무엇이 더 강했다.
‘공격을 받았는데도 살의나 분노가 아닌 다른 감정이 우선된다고?’
결핍?
결여?
결손?
아니, 이건 식욕이었다.
‘미친 괴물 새끼가.’
강렬한 식욕이 몸이 얼어서 굳어버린 남자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꿈틀 돋아난 촉수가 남자를 향해 쏘아지고 그걸 중간에서 잘라낸 마루가 재차 외쳤다.
[도망쳐!]허으- 허어어!
촉수가 튀어나오고 그게 허공에서 잘린 것을 본 남자가 일어서다 풀썩 쓰러지더니 엉금엉금 기어서 천막 밖으로 도망쳤다.
휘리리릭!
잘린 촉수가 낙지처럼 몸을 비틀며 펄떡거리고, 잘린 단면에서 흘러내린 점액질이 사방으로 튀었다.
파파파팟!
순간적으로 치솟아 오른 찝찝함에 마루가 몸을 뒤로 뺐다.
허공에 흩뿌려진 점액질이 넓게 펴지더니 꽃잎처럼 아주 느릿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쩍 벌어졌던 상처가 스르륵 아물며 보안팀장의 모습이 우물텅꾸물텅 일그러지며 심은영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 마루 씨죠. 거기에 있는 것 알고 있어요.”
처음에는 머리가 변하더니 서서히 상반신이 심은영의 모습으로 변했다.
실시간으로 드러나는 매끈한 목선을 타고 이어진 쇄골(鎖骨). 그리고 복숭아처럼 봉긋한 가슴까지.
마루의 눈썹이 위로 살짝 치솟았다.
[······.]심은영으로 완벽히 변한 그것은 나신(裸身)이었다.
오리지널 심은영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 미세하게 틀어졌던 좌우 대칭도 완벽하게 틀어 맞았다.
마치 단백질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매끈한 모습. 잔주름 하나 없는 촉촉한 피부와 자체 발광하고 있는 듯한 나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Oh God!-”
“What the···.”
반쯤 열린 천막 사이로 홀딱 벗은 여자의 몸이 보이자, 면담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이기 시작했다.
‘이 쪼다 같은 새끼들이.’
하지만 마루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꽃잎처럼 떨어지던 것들이 모양을 바꿔 작은 낙하산처럼 변했기 때문.
‘낙하산?’
꿀렁-
서서히 하락하던 것이 꿀렁이는 움직임으로 위로 치솟아 올랐다. 서서히 낙하하다 꿀렁 다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은 해파리 같았다. 반투명한 엄지손톱 크기의 해파리들이 천막을 느릿하게 유영하기 시작했다.
‘생체 센서인가?’
은신 모듈을 간파하지 못하자 즉석에서 이딴 걸 만들어 뿌렸다고?
촉수 따위가?
그럴 리 없었다. 이건 심은영이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출렁출렁 좌우로 흔들리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던 촉수 해파리 하나가 마루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마루는 그걸 피해 뒤로 물러섰다.
슥-
그 움직임이 공기의 흐름을 만들었는지 나풀나풀 흔들리던 촉수 해파리가 공기의 흐름에 휘말려 빙글빙글 허공에서 비틀거리자, 심은영의 텅 빈 눈동자가 마루가 있는 방향을 향했다.
‘씹-’
마루는 반사적으로 네이팜 수류탄을 깠다.
팅-
작게 핀 튀는 소리에 촉수 해파리들이 일렁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나-둘-셋- 속으로 셋까지 숫자를 센 마루가 제자리에 네이팜 수류탄을 떨군 채 뒤로 물러섰다.
심은영의 팔이 고무줄처럼 늘어나, 네이팜 수류탄을 쳐내려고 했지만, 이미 지연시간이 끝난 네이팜 수류탄이 먼저 폭발했다.
반경 3~4m가량을 불바다로 만든 불꽃이 천막을 불태웠다. 화염을 뒤집어쓴 촉수 해파리들이 공중에서 몸부림치며 불티로 변했다.
[전술핵 준비됐습니까?] [치직- 아직 시간이 걸립니다.]마루는 녹화 영상을 지휘 본부로 보냈다.
점액질이 뿌려지고, 꽃잎처럼 흩날리던 그것이 공중에서 작은 해파리로 변해 유영하는 장면.
[생체 센서입니다. 공기의 움직임으로 동작과 소리까지 파악합니다. 여기서 저걸 놓치면 끝입니다.] [치이익- 폭발력은 최소로···.] [최대로. 최대로 해야 합니다.] [삐이익 ···알겠습니다.]네이팜 수류탄이 터져 막사 하나가 불바다가 됐음에도 몇몇은 나신인 여체를 구경하고 있었다.
‘쪼다 새끼들이.’
홀랑 타버린 막사 안쪽에 보이는 동그란 구체가 서서히 잿더미로 변해 흩날렸다. 언제 생겼는지 반투명한 피막이 동그랗게 펼쳐져 네이팜 불꽃을 막은 것.
동그랗게 타오르는 불꽃의 장벽을 둘러본 그것이 풀쩍 점프했다.
‘어딜.’
날아오르는 것에 맞춰 마루가 바닥에 있는 돌을 집어 던졌다. 퍽- 허공에서 돌에 맞은 그것이 불바다가 된 막사 위로 떨어지기 전, 촉수가 튀어나와 옆에 있는 군용차량을 꿰뚫어 공중에서 몸을 지탱했다.
촉수에 의지해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린 그것은 돌멩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촉수를 뿌렸다.
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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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 본부는 마루가 보내온 영상에 충격받았다.
“당장 퇴각한 뒤 핵을 터뜨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런 게 돌아다닌다면 인류의 생존은 절망적이게 될 겁니다.”
무조건 여기서 말살하자는 쪽. 블라디마루가 괴물을 붙잡은 동안 퇴각하고 터트리자는 이야기.
“지금 블라디마루 칼린을 버리자는 겁니까?”
“버리고 자시고 할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 하나의 희생으로 저런 괴물을 잡을 수 있다면 인류는 그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제정신입니까? 그는 신성 왕국의 국왕입니다. 그를 괴물과 같이 날려버리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고요?”
“그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술핵 폭발력을 최대로 해달라고. 그의 말대로 최대로 해서 휘말려 죽었다고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은 모두 3발, 기폭장치를 고치면서 벙커 버스터 기능이 날아갔지만, 대신 살상력과 살상범위가 더 커졌다.
폭발력을 조정해 10kt 정도로만 해도 용산구 면적이 날아갔다. 그런데 현재 보유하고 있는 B61-11의 폭발력을 최대로 조절하면 340kt이 가능했다. 사실상 샌프란시스코를 통째로 날리고도 남을 위력.
샌프란시스코를 통째로 날릴 위력이면 피난민과 부대원 전부 전멸이었다. 지진으로 길은 망가졌고 쓰나미까지 휩쓸고 가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1시간에 2km를 가면 잘 간다고 할 정도로 극악한 상황에서 최대 위력으로 날리자고?
“그건 불가능합니다. 영상을 봐서 알겠지만, 블라디마루 칼린이라고 하더라도 그 괴물에게 한 시간을 버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저번에 보낸 영상에서는 그 괴물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저번 영상에서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생체 센서 같은 걸 만들어 뿌렸답니까? 지금 저걸 잡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 불가능한데 무슨 생각들입니까!”
“그만. 20kt 규모로 제한한 폭탄을 대기하지. 위력 조절까지 얼마나 걸리나?”
장군이 결정을 내렸다.
“10분 정도 걸립니다.”
“바로 시작하고 우리도 일어서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희망을 목격하고 있는 건지 모릅니다. 생체 병기든 아니든 저런 게 많이 있었다면 진작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는 건 저것에 이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
“······.”
“저도 동의합니다. 무엇보다 저게 캠프에 들어와서 한 행동을 기억해 주십시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사람을 공격하거나 그러지 않았다는 걸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
“······.”
“최소한 저 생명체가 보안팀장의 모습으로 의태한 것과 능력자들과 면담한 걸 보면 의사소통 가능한 게 맞습니다. 어쩌면 블라디마루 칼린이 선제공격하지 않았다면 대화로 풀어갈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저걸 제어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불안요소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습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처음 보냈던 영상에서는 촉수들이 쥐새끼를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그 촉수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저것을 이용한다면 쥐새끼와 바퀴벌레를 확실히 치울 수 있습니다.”
핵을 쓰지 말고 대화를 해보자는 쪽. 여차하는 상황이 생겨도 핵으로 태워버리지 말고 샘플을 확보해서 생체 병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저 촉수와 싸워본 사람이 블라디마루 칼린입니다. 그가 무조건 칼질부터 했겠습니까?”
그랬을 거 같은데?
그러지 않겠냐?
은신해서 목부터 치는 거 방금 나왔는데?
“······.”
“······.”
“칼질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란 말입니다. 그를 희생해서 핵을 터뜨리자? 위력 최대로 하라고 해서 했더니 휘말려서 죽었다? 그걸 신성 왕국에서 이해하겠습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언제부터 전우를 버리고 이용하는 게 당연해졌습니까?”
미합중국 연방군. 지금은 고향과 조국을 잃어버린 군이었지만, 그들은 세계 최고의 군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는 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전우를 이용해서 괴물을 죽이자?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의사소통이 될지 모르니 전우는 던져주고 괴물과 대화를 하자?
태우지 말고 샘플이라도 건져서 생체 병기를 만들자?
“FUCK! 부끄러운 줄 압시다!”
지금 목숨 걸고 괴물과 싸우고 있는 전우를 두고 이게 할 소리란 말인가?
이게 명예로운 군인인가?
“이상적인 이야기는 이상일 뿐입니다. 현실을 봅시다. 현실을.”
“명예 운운하는 놈들치고 속이 검은 놈들이 천지였지. 그래서 신성 왕국에 붙겠다는 소리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누구는 좋아서 그런 의견을 낸 줄 압니까?”
“블라디마루 칼린의 말대로 핵을 쓰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까? 그럼 그렇게 이야기하면 되지, 거기서 명예는 왜 나오는지 모르겠군.”
의견 차이를 넘어서 감정싸움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장군이 손을 들었다.
“그만. 괴물 촉수와 대화를 해보자는 의견은 곤란해.”
“장군님!”
“촉수의 목적이 번식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 번식하지 말라고 할 건가? 샘플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샘플을 확보해 달라고 블라디마루 칼린에게 요청할 건가? 그가 거부하면? 우리 애들을 촉수에게 던져주고 샘플 얻을 건가? 난 그렇게 못 해. 자네들이 앞장설 텐가? 그렇다면 생각해 보지.”
“······.”
“그리고 블라디마루 칼린이 촉수를 묶어둔 동안 핵을 쓰자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야. 명예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어려워. 처음 계획대로 진행하지. 폭발력 조정은 어떻게 됐어?”
“20kt까지 조정하려고 했지만, 급하게 조정하느라 25~30kt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블라디마루 칼린에게 전달하고 우리도 바로 일어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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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아악-
사선으로 갈라진 심은영의 등판에서 점액질이 뿜어졌다. 허공으로 흩뿌려진 점액질이 바로 해파리 모양으로 변해 유영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빨리 변하고 있었다.
심은영의 모습을 한 그것의 곁을 맴도는 반투명한 해파리들이 공격 루트를 서서히 잠식하고 있었다.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팔의 사정거리, 상처가 벌어지며 튀어나오는 촉수의 공격 범위를 본능적으로 파악한 마루의 눈빛이 깊어졌다.
[치이익- 핵 조정 끝났습니다. 위력은 20~30kt입니다. 열구(熱球)의 크기는 2마일(3.2km)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안전하려면 최소한 6~7마일(9~11km) 정도는 떨어져야 합니다.]통신 장애 때문에 기폭장치의 신호 도달 거리가 5km 잘해야 6km 정도라는 게 문제. 마루는 머릿속에서 탈출 루트를 확인했다.
촉수의 재생능력과 반응 속도를 볼 때, 거리를 벌려봐야 4~5km가 한계였다. 그 뒤엔 바로 촉수가 추격해 올 것.
‘열로 태워버려야 하는데’
후폭풍이니 방사능이니 그딴 건 믿을 게 못됐다.
마루의 직감이 그렇게 속삭였다.
촉수를 죽이려면 핵폭발로 태워버리는 게 확실하다고.
두근두근.
계획에 따라 이리저리 변하는 긴장감. 바로 죽을 것 같은 루트. 여유 있게 살지만, 촉수도 살아남을 것 같은 루트.
그 느낌을 그대로 따르면서 마루는 최적의 루트를 만들었다.
[피난민들과 병력은 전부 빠졌습니까?] [치지직- 도로가 엉망이라 인근 벙커로 대피했습니다. 지표면에서 터지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청하신 전술핵과 오토바이는 지휘 본부 옆에 있습니다. ]마루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시작합니다.] [치지직- 무운을···.]주로 촉수를 회피하던 마루의 움직임이 변했다. 팅- 후두둑- 떨어지는 3발의 네이팜 수류탄, 고무줄처럼 늘어난 팔이 수류탄을 쳐내기 전 폭발하기 시작했다.
사방을 점유하며 유영하던 엄지손톱 크기의 해파리 촉수가 화염과 충격파에 휘말려 사라졌다.
쾅! 콰앙! 콰콰광!
화르르르르륵!
세 번의 폭발이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심은영의 모습을 한 그것과 이어지는 불길이 만들어졌다.
취이리리릭!
그것이 촉수를 뿜어내며 진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곳에는 오염된 쥐도 시체도 없었다. 그것의 내부에서 보안팀장은 ‘도주.’를 주장했고. 심은영은 ‘회유.’와 ‘포획.’을 주장했다.
‘지금 도망쳐야 해. 불길해. 불길하다고.’
‘도망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지금 생존할 유일한 방법은 저걸 붙잡거나 회유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것은 마루를 포획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심은영과 보안팀장의 경험 속에 있는 대규모 폭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도망친다고 했을 때 융단 폭격이나 미사일 공격을 피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무너진 잔해가 완벽하게 몸을 지켜준다는 보장도 없었고.
그렇다면 저걸 잡아서 흡수하거나, 최소한 저것과 근거리 교전을 계속해 인간들이 공격할 수 없도록 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도망쳐야 한다니까.’
‘거리가 벌어지면 바로 공격받는데 도망이요? 어디로? 어떻게 가겠다는 거죠?’
연속으로 네이팜 수류탄이 터지고 화염으로 만들어진 길이 열렸다.
(온.다.)
‘으아아아! 도망쳐야···.’
‘이번에 잡아야 해요.’
그 불꽃을 뚫고 들어오는 마루를 향해 그물처럼 펼쳐지는 촉수.
!
점프?
아니,
아래!
바닥을 뚫고 촉수가 나올 수 있음에도 마루는 직감대로 움직였다. 그물처럼 퍼진 촉수 아래로 슬라이딩해 들어간 마루가 미끄러지는 마찰을 이용해 몸을 틀었다.
헤드업 슬라이딩 자세에서 옆으로, 옆에서 다시 크라우칭 스타트(Crouching start) 자세로 그리고 이어진 폭발적인 대시(Dash).
눈에 보이지 않고 감각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무엇이 달려오고 있었다. 뒤에 길게 이어지는 먼지가 그 증거.
한 걸음-
퍽-
가속—
두 걸음–
퍼어억–
가속의 가속.
보안팀장과 심은영의 의식 모두 경악했다.
‘으아아악!’
‘어어어엇.’
심은영의 모습이 뭉개지며 보안팀장의 모습이 드러나려고 했다. 그 위에 겹쳐 해파리나 말미잘처럼 등판과 얼굴에서 촉수를 뽑아내지도 못하고 검은 실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서걱-
심은영의 머리가 잘리며 지나간 후폭풍으로 멀리 굴러가는 머리통. 다시 반대로 지나가며 잘린 보안팀장의 얼굴 반쪽이 반대로 날아갔다.
이어진 난도질.
스각- 그것의 팔을 자른 뒤 걷어차 버리는 마루.
반대쪽 팔과 다리도 마찬가지. 자르는 순간 걷어차 사방으로 흩어버렸다.
꾸물꾸물
뿔뿔이 흩어진 조각들이 스르륵 녹아들며 서서히 촉수로 변하기 시작했다.
마루는 그걸 뒤로 하고 냅다 달렸다.
칙-
타오르는 허벅지에 중화제를 꽂아 넣은 마루가 향한 곳은 지휘 본부.
부릉- 부다다다다
오토바이에 올라탄 마루가 폐허가 된 도로를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2분이나 달렸을까?
엉망이 된 도로를 무시하고 달린지라 오토바이가 순식간에 너덜너덜하게 변해버렸다.
두근-
두근두근-
마루의 심장이 경고하기 시작했다. 촉수들이 다시 모였다고.
사방으로 흩뜨렸는데 고작 2분? 3분도 못 버텼다고?
부아아아앙!
덜컹- 덜컥-
덜커덕- 콰직!
늦어.
이대로는 늦어.
꼬꾸라진 오토바이를 버리고 전속력으로 내달리던 마루가 방향을 꺾어 큰 빌딩 지하실로 뛰어내리며 외쳤다.
[지금 터뜨려!]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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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 보이(Little Boy)의 2배 가까운 위력의 핵폭탄이 거대한 버섯구름을 피어 올렸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빌딩 지하까지 전해지는 진동.
!!!
그와 동시에 삐릿삐릿 경고하던 직감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