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79)
러스트 [RUST]-579
로이 스턴이 정장 사내를 보자마자 총을 먼저 찾았던 것은 특유의 느낌 때문이었다. 괴수들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 존 포렌이 그랬듯 정장을 빼입은 사내는 인간의 모습을 한 무엇이었다.
태연하게 물병은 건네준 그것은 분명 사람의 모습을 한 인간이 아닌 무엇이었다. 부하들을 어이없게 잃었기에, 로이 스턴은 허무하게 죽을 수 없었다.
죽어선 안 됐다. 최소한 허무하게 죽은 부하들의 복수를 해야 했다. 복수하기 전까지는 어떡하는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 앞에서 로이 스턴은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지를 골라야 했다.
존 포렌은 영입을 거절하자마자 죽이려고 했었다. 정장 입은 놈이라고 그러지 않을까? 놈은 자신이 존 포렌의 영입을 거절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짜고짜 존 포렌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묻는 것을 보면, 대답하는 순간 죽일지 몰랐다. 로이 스턴은 생존할 확률이 제일 높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복수할 기회를 얻을 테니.
‘복수를 위해서라면···.’
‘살아야 남아야 한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문득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부하들과 함께 치안을 유지했던 일들, 갱단과 카르텔 대가리들이 식인귀였기 때문에 목숨까지 약탈당하던 사람들을 구했던 사건들.
그렇게 돕고 구했던 자들과 그 친구들이 그들의 가족들이 부하들을 죽인 것이었다. 그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닐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민병대가 공격한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항복할 틈도 주지 않고 몰살시켰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무엇 때문에? 샬롯 그룹의 물류창고 때문이겠지. 지진과 쓰나미에 무너지고 파묻힌 물류창고 때문에 사람을 죽인 것이다. 23명이나 되는 군인을.
그게 사람 새끼들이 할 짓인가?
로이 스턴은 이곳에서 죽을 수 없었다. 그것이 설령 눈앞에 있는 괴물과 손을 잡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영입제안. 아직 유효한가?”
기관지와 폐가 긁히는 느낌이 들었다.
킁. 킁.
그 긁힌 목소리에 담긴 피 냄새를 음미한 정장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짙은 복수의 냄새라.”
“······.”
“남부연맹에 합류한 걸 환영하네. 로이 스턴 소령.”
정장 사내가 팔을 내밀며 나직하게 물었다.
“그럼 로이 스턴 소령. 존 포렌은 어떻게 된 거지?”
“···그는 블라디마루 칼린이 죽였다.”
“하아- 신성 왕국의 살왕이 직접 움직였다면 어쩔 수 없었겠군.”
“······.”
로이 스턴의 깁스한 손을 마주 잡고 흔든 정장 사내가 나지막하게 속닥였다.
“우리는 앞으로 친해질 것 같아. 안 그런가?”
“······.”
“우리 모두 복수에 관심이 있으니까 말이야.”
“······.”
인간에 대한 복수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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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디트로이트까지 밤낮으로 실어 나르는 비행선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일반적인 항공기라면 이륙 착륙 후 확인해야 할 것이 많았지만, 비행선은 상대적으로 덜 민감했다.
퍼어엉-
콰아아앙-
“저거 뭐 터지는 소리 같음. 자주포는 아니고 박격포?”
“까마귀들 그쪽으로 보내봐.”
폭발음이 거의 5분 가까이 끊이지 않고 들려 그쪽으로 까마귀 정찰을 보냈는데 엉뚱한 게 걸렸다.
[에- 까마귀들이 샬롯 물류창고를 찾았다는데요?]“물류창고?”
[네. 인간들이 무너진 창고에서 물품을 빼내고 있다고 해요.]“무슨 물건들인데?”
[아- 총도 있다고 하고. 옷, 신발, 돌돌 말린 매트리스?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하다고 해요.]“정찰 영상 이쪽으로 보내줘.”
[네-]비행선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척 날개를 펼쳤다가 접고는 고개를 숙였다. 의외로 정중함과 기품이 느껴지는 자세였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데?’
마루는 고개를 끄덕여 까마귀의 인사를 받곤 목에 걸려있는 정찰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교체했다.
까마귀가 다시 날아오르는 것을 멈춰 세운 마루가 간식으로 가지고 있던 특품 육포를 봉지째 건네주자.
까악! 깍!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는 울음소리를 내는 까마귀에게 ‘괜찮아.’, ‘가져가.’ 하며 주자, 발톱으로 슬며시 움켜쥐곤 기분 좋게 날갯짓하는 까마귀였다.
그러고 보니 비행선이 24시간 쉬지 않고 왕복하니, 호위하는 까마귀들도 교대로 쉬지 않고 동원되고 있을 터. 특식부터 간식까지 챙겨주는 게 맞았다.
“그냥 특별수당 더 쳐주는 게 좋지 않겠음? 까마귀랑 늑대들도 알아서 상점 이용하던데.”
“특별수당도 줘야지. 간식이랑 특식도 챙기고.”
마루는 일하면 일한 대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사람이든 짐승이든. 태블릿에 메모리칩을 넣고 화면을 켜자, 반파된 물류창고가 보였다.
쓰나미로 밀려든 잔해와 진흙탕에 엉망이 된 물류창고에는 백 단위는 족히 될 법한 사람들이 개미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저기 물류창고에도 물건이 많아 보이는데. 애들 보낼까?”
김 양의 눈빛이 탐욕으로 물들었지만, 마루가 제지했다.
“됐어. 여기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지.”
샌프란시스코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최소 몇십만은 될 텐데, 저런 물류창고에서 건진 물품이라도 있어야 긴 겨울을 버틸 것이다.
“근데 저기 저건 엑소슈트 아님?”
탐욕스러운 매의 눈으로 화면을 분석하던 김 양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 있는 건 분명 엑소슈트가 맞았다. 그것도 연방군에서 사용하는 엑소슈트.
그 엑소슈트를 보자 마루의 직감이 슬슬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똥을 누다 만듯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쯧-
혀를 찬 마루가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김 양에게 말했다.
“저 엑소슈트가 왜 저기 있는지 확인해봐.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연락하고. 난 주변 한 번 훑어보고 갈 테니까.”
“알겠음.”
어쩐지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김 양의 시선은 영상 속에 아주 작게 드러난 다양한 총화기를 향해 있었다.
금장, 은장, 보석과 상아로 장식된 다양한 총기가 들어있는 상자가 한쪽으로 치워지는 모습을 뚫어지게 보던 그녀가 친위대를 소집했다.
본래대로라면 엑소슈트 한 두기가 민간인들 사이에서 굴러다닌다고 내려갈 일은 아니었지만, 마루는 직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미적지근한 느낌인 것이 큰 위험이 아닌 것 같아도 마찬가지. 근질근질한 느낌을 그냥 뒀다가 변비처럼 되면 곤란했다.
“그래서 직접 가겠다고?”
“어야- 그래서 이제 얼마나 남았냐?”
기순의 바가지에 마루가 화제를 돌렸다.
“휴- 보름은 더 옮겨야 할 판이다. 사람들 나르고 벙커에 있는 물자까지 챙기려면 6주는 잡아야 할 거 같다. 더 길어질 수도 있고.”
“그렇게나?”
벙커 창고가 넓다고는 생각했지만, 비행선을 총동원했는데도 앞으로 6~7주를 왕복해야 한다니.
“비행선 전부 합쳐봐야 대형 컨테이너선이 옮기는 분량에는 턱도 없어. 그런 컨테이너선을 20척 넘게 운영해서 쌓은 물자인데 우리가 너무 만만하게 본 거지.”
“······.”
“벙커 창고들이 생각보다 넓더라고. 정말 무슨 미친 수준이다. 샬롯 자료 확인해 보니까 외부 물류창고도 4개나 굴리고 있었더라고. 항구와 가까워서 지진과 쓰나미에 휩쓸렸겠지만, 거기서 절반만 건져도 십만 단위는 이번 겨울 지나는 데 문제없겠더라.”
“그 정도냐?”
기순의 실눈이 더 가늘어졌다.
“직접 가겠다는 이유가 물류창고 때문이라면 갈 필요 없다. 거기 물자 없어도 우린 이미 풍족해. 아주.”
“알아. 여기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지. 물류창고 털려고 가는 게 아니라, 느낌이 좀 안 좋아서 확인해 보려고.”
마루의 대답에 기순의 실눈이 살짝 커졌다.
“또? 아니 무슨 느낌인데?”
“똥 쌌는데 속이 시원하지 않은 느낌?”
기순이 화들짝 놀랐다. 마루의 직감이 상당하다는 걸 온몸으로 겪었기에 절로 반응이 커진 것.
“설마 촉수 같은 게 남은 거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랬으면 느낌이 더 지랄 같았을 테니까.”
“혼자 가는 건 아니지?”
“김 양이랑 친위대는 물류창고로 보내고 난 까마귀들이랑 한 바퀴 돌아보려고.”
“문제 있으면 바로 연락해라. 통신 장애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으니까 대비하고.”
“어야. 너도 수고하고.”
‘압수다! 압수!’ 김 양이 친위대와 함께 물류창고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마루는 까마귀들과 함께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까아아악!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주변 낮게 날면서 이상한 흔적이라든지, 행동이 수상한 자들 있으면 알려줘.”
까악! (알겠습니다!)
“위험하면 바로 빠지고.”
깍! (넵!)
까마귀들은 순식간에 박격포로 포격 당한 곳을 찾아냈다. 여기저기 흩어진 핏자국과 마저 치우지 못한 고깃덩이가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한 쪽에 쌓인 작은 무덤. 철근과 금속 파편을 묘비 삼은 곳엔 인식표가 걸려있었다. 슬쩍 무릎 꿇은 마루가 바닥에 있던 핏방울을 손끝으로 찍었다.
끈적임을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았다.
‘흠- 생존자가 동료들의 무덤을 만들어 줬다는 건가?’
아까 울려 퍼졌던 포성이 이곳이었다는 뜻. 문제는 박격포로 공격당한 자들이 인식표를 가진 군이라는 것인데.
박살 난 엑소슈트 파편을 보며 마루가 생각에 잠겼다.
까악- 까아아악!(근처에서 수상한 놈들 찾았습니다.)
마루는 바로 정찰 카메라 메모리칩을 빼 스마트폰에 연결했다. 과연 수상한 놈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인원은 모두 다섯. 짙은 색상의 정장을 입은 놈들 넷과 연방군복을 입은 사람 하나. 개판 난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장 차림이라니. 확실히 수상한 놈들 맞았다.
리퍼 슈트의 은신 기능을 활성화한 마루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짙은 색 정장을 입은 사내가 우뚝 멈춰 섰다.
“거의 다 왔다. 냄새가 나. 더러운 인간들의 냄새가. 구질구질한 개돼지들의 냄새지.”
로이 스턴의 복수를 해주겠다며 무너진 물류창고로 향한 그 남자와 요원들이었다. 무덤을 만들고 난 뒤 거의 전속력으로 달려왔기 때문인지 로이 스턴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에 반해 그 남자와 요원들의 호흡은 고요했다. 호흡을 간신이 안정시킨 로이 스턴이 쓰게 웃었다. 역시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큼. 로이 스턴 소령 복수를 하려면 감정의 순도가 높아야 해. 그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복수의 맛이···.”
킁- 킁-
갑자기 조심스럽게 공기 중의 냄새를 맡던 사내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죽음? 죽음의 냄새라고?”
사내의 말과 함께 조용히 앉아 있던 요원 3명이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네 명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하늘을 향했다.
낮은 고도로 소리 없이 유영하는 까마귀가 있었다. 날갯짓도 없이 글라이더처럼 조용히 원을 그리고 있는 까마귀의 모습에 짙은 양복 사내 침을 탁- 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꼬리를 밟혔다.”
로이 스턴은 사내의 눈동자를 보고 알았다. 다른 3명에게 눈알을 굴려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처거걱-
네 사람이 동시에 한 방향으로 총을 겨눴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타다다다당!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때린 총탄이 불꽃과 함께 튕겼다.
‘이게 무슨.’
언제 나타났는지 허공에 돋아난 검이 다시 쑥 사라지는 모습. 정신 나갈 것 같은 로이 스턴과는 달리 짙은 양복 사내의 입가엔 기다란 미소가 찢어져 있었다.
총탄을 날붙이로 막는 독특한 행적.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짙은 죽음의 냄새.
그 모든 것이 알려주는 건 하나뿐.
“블라디마루 칼린이다!”
그 외침과 함께 요원들의 기세가 변했다.
“여기서 잡는다.”
다시 없을 천고의 기회였다.
그에게 죽은 요원들만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이지스함을 털리고, 중요한 연구센터가 습격당한 것만 몇 번이던가.
그랬음에도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고 개새끼처럼 꼬리를 말고 있어야 하나? 타조처럼 머리를 박고 있을 거면 뭐가 신인류고 뭐가 진정한 귀족이란 말인가?
“로이 스턴 소령. 당신의 복수를 해주기 위해 왔는데, 우리가 먼저 할 수 있겠군.”
으직-
크직-
찌지지지직-
그의 곁에 있던 요원 3명의 몸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며 관절이 순식간에 뒤틀렸다. 거친 털이 뻣뻣하게 솟아오르고 입이 삐죽한 주둥이로 변하는 모습.
‘느··· 늑대인간?’
로이 스턴은 자신의 느낌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역시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사내도 마찬가지로 괴물이겠지.
아우우우우우-
긴 하울링과 함께 3마리의 늑대인간과 정장을 입은 사내가 허공을 노려보며 이를 드러냈다.
“은신해봐야 소용없다. 그 냄새를 지울 수는 없을 테니.”
그림자만 아른거리는 공간에서 팅-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뭔가 툭 떨어졌다.
데굴데굴—
크르?
크륵?
“수류탄 따위는 소용없다!”
그 남자의 외침을 비웃듯.
푸화아아악-
최루가스가 폭발했다.
“F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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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깨깽.
크에엥.
늑대인간들이 코를 부여잡고 개소리를 내는 모습에 로이 스턴은 고개를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돌리고 재빨리 옆으로 돌았다.
그 짧은 순간 파일럿 특유의 동체 시력이 최루가스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렁거리는 그림자를 포착했다.
최루가스가 갈라진 끝에 있는 것은 괴로워하는 늑대인간이었다.
푸극-
낑낑대는 소리 속에 묻힌 작은 소리. 늑대인간의 눈을 뚫고 들어간 칼날이 뒤통수로 삐죽 나왔다가, S자 곡선을 그리듯 머리통과 몸통을 해체하고 나왔다.
핏방울이 옆에서 튀었음에도 최루가스에 코가 마비되고 시야를 잃었는지 버둥거리는 늑대인간의 모습에 로이 스턴은 늑대인간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민해진 감각은 지금처럼 최루탄이 터진 전장에서는 뚜렷한 약점이 된 것.
크직-
늑대인간의 목이 둥실 떠올랐다 떨어졌다. 그제야 마지막 하나가 날카로운 발톱을 새워 허공을 휘저었지만 그뿐.
부욱-
배를 긁고 지나간 칼날에 내장을 쏟아내곤 바닥에 엎어졌다.
키잉-끼잉 키이잉
애처로운 소리도 잠시, 허공에서 떨어진 칼날에 마지막 늑대인간의 목이 잘려나갔다.
꿀렁꿀렁-
세 구의 늑대인간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붉은 진창을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