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8)
러스트 [RUST]-58
유 이사의 호출에 안 박사는 재빨리 관련 자료를 정리했다. 혹시 모르니 준비하는 게 맞았다.
회사에 있는 의사 가운데 외상에 있어서 만큼은 안지성 박사를 따라갈 의사가 없었다. 당연히 김수현 실장의 집도의도 안 박사였다. 미친년·놈들이 넘치는 회사지만, 유 이사는 다섯 손가락 아니, 세 손가락에 꼽을 사람이었다.
“그래 안 박사. 김수현 실장은 어떻지?”
“사실. 현장에 복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양쪽 안구가 모두 터졌다. 광대뼈도 내려앉았고 사실상 코는 무너져서 없어진 상태, 턱도 관절까지 으스러져 유리턱으로 교체해야 할 판이었다. 교체한다고 씹을 수 있냐 하면 그것도 가봐야 아는 상황이었고 머리에 입은 상처만으로도 사실상 뇌사 판정을 내리기 부족함 없었다. 실제로 의식이 없었고.
머리에 입은 상처도 중상인데, 몸통에 입은 상처도 만만치 않았다. 방검복과 방탄복을 껴입었어도, 장기와 뼈가 상하는 걸 막지 못했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렀고, 간장은 뱃속에서 뭉개져 있었다. 소장과 비장을 비롯해 정상인 장기를 찾기 어려울 지경.
말 그대로 의학의 힘으로 목숨을 붙여만 놓은 상태였다.
“솔직하게.”
“안락사를 권유하는 바입니다.”
유 이사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약으로도 힘들까?”
“조금 전까지 그걸 실험하고 있었습니다만, 사실 무서울 정도입니다.”
“뭐가?”
“효능에는 빠른 재생능력, 재생 보조 능력이라고 적혀있었지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계속.”
“약을 쓰면 상처 입은 세포 조직이 재생하기는 합니다. 근데 재생한 세포 조직이 치료되기 전의 세포 조직과 다르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심지어 일률적으로 같이 변하는 게 아니라 랜덤으로 변합니다. 이래서는 약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랜덤으로 변한다는 말의 의미가 뭐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그러니까 상처 입은 세포 조직을 치료했는데, 그 치료된 세포 조직이 암세포가 됐다든지 그런 식입니다.”
“랜덤이라는 건 뭐로 변할지 모른다는 소리고.”
“예, 바로 전에도 세포 변이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약을 만든 놈은 미친놈이 확실합니다.”
유 이사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김수현 실장.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헤어진 여동생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였다. 가족이라는 거, 웃기지도 않게 생각하는 유 이사였지만, 우연히 알게 된 조카는 제법 능력이 좋았다. 밀어줘도 문제없을 정도로.
그렇게 지켜보면서 잘 자라라고 이렇게 저렇게 밀어주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자 유 이사는 매우, 아주, 많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럼 지금 안 박사 의견대로라면, 김 실장을 안락사시키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건가?”
“부작용을 각오하고 유 이사님이 가져오신 약을 쓰는 게 아니라면, 그렇습니다. 김 실장은 현대 의학으로도 생명을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방법이 없군. 그 약을 쓰지.”
유 이사의 결단에 안 박사가 눈을 빛냈다.
======
======
유 이사가 수술실에 들어오자, 안 박사는 부정맥이 뛰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아니라 벌러덩벌러덩 뛰는 느낌이랄까? 대체 왜 수술실에 완전무장을 하고 들어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모를 일이 아니라, 설마 김 실장이 죽으면 나도 바로 처리하려고?’
안 박사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김 실장의 바이털로 보아, 이대로 넋 놓고 있으면 뭘 해보기도 전에 향부터 피우게 생겼다. 일단 폐를 찌른 갈비뼈부터 해결하고, 다음으로는 얼굴이었다.
안 박사가 폐와 장기 쪽을 어떻게든 기워 넣고 있을 무렵, 김 실장의 바이털이 극도로 나빠졌다. 순식간에 심정지로 치닫고 말았다. 결국 제세동기(AED)까지 사용해서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데 성공했지만, 어떻게든 했던 갈비뼈는 다시 나갔고, 김 실장은 언제 다시 심정지가 올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됐다.
약의 효과로 볼 때, 얼굴을 어떻게든 맞춰 놓고 하지 않으면 엉망인 채로 치료될 가능성도 있었다.
“유 이사님, 지금 약을 쓰면 얼굴이 이대로 치료될 가능성도 있어서···.”
“나중에 성형하면 되잖아. 그냥 해.”
어차피 떡이 된 얼굴 까 뒤집어야 할 판이었다. 나중에 고생이야 하겠지만, 그것도 살아있어야 하는 고생이었다.
투명하고 붉은 액체가 링거를 타고 김 실장의 몸에 들어갔다.
부르르르 덜덜덜덜덜
전신을 진동하던 김 실장이 뚝- 굳었다.
화아아아아-
몸통에 가득했던 멍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간을 되감는 것처럼 상처가 치유되는 모습에 유 이사와 안 박사, 그리고 수술실 안에 있던 스텝 모두 경악했다.
그렇게 약 기운이 얼굴로 효과가 올라가나 했더니, 뭉개진 눈구멍에서 눈알이 재생됐다. 재생된 눈알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안 와 밖으로 밀려 나왔다.
“아-ㅆ-”
“어어어엇- 저거- 저기-”
간호사가 김 실장의 눈을 보고 자지러졌다.
눈알이 또 재생되어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 다시 또 재생되던 눈알에 눈동자가 둘로 늘어났다. 시신경이 살아있는 촉수처럼 눈구멍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씨발- 이게 뭐야.”
뿌득- 뿌득- 반대쪽 눈에서 소리가 났다. 뭉개진 눈구멍 속으로 작은 눈알들이 거품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작은 유리구슬 정도 크기의 눈알들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그렇게 수술실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을 때, 김 실장의 뻣뻣했던 몸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격렬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하는 김 실장.
더더더더덕
드드드드득
사지를 구속한 몸뚱이가 펄떡이는 참치처럼 몸을 튕겼다.
탕! 탕! 탕!
어느새 유 이사의 손에 들린 콜트 파이슨이 불을 뿜었다.
“톱- 전기톱-”
빙글 콜트 파이슨을 허벅지 홀스터에 넣은 유 이사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예? 예!”
안 박사가 부랴부랴 절개용 원형 전기톱을 가져왔다. 두개골에 구멍이 뚫린 김 실장이 유 이사를 쳐다봤다. 머리통에 뚫린 구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차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구슬 같은 눈동자들의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유 이사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미안하다. 복수는 해주마.”
꺄아아아악
흐어어어어
수술실에 있던 사람들이 자지러졌다. 기절한 간호사, 비명 지르며 주저앉은 간호사, 안 박사도 기괴한 소리를 내다 들고 온 절개용 원형 전기톱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착-
유 이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 잘라.”
허으어으어
“안 박사. 목 잘라. 아니면 이걸 붙잡고 있다 위험해지면 쏘든지.”
유 이사가 콜트 파이슨을 내밀었다. 내려다보는 차가운 눈동자에 안 박사는 엉거주춤 전기톱을 들고 김 실장의 목을 향해 걸어갔다.
또그륵- 수십 개의 눈알이 안 박사를 노려봤다.
허으어허엉
기괴한 소리를 내며 안 박사가 전기톱의 전원을 켰다. 위이잉 소리와 함께 목이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크뤠에엑- 피가 튀었다. 걸쭉한 피가 사방으로 퍼졌다.
우어어어엉
안 박사가 비명을 지르며 전기톱을 밀어 넣었다.
투깡- 목을 자른 전기톱이 수술대 바닥을 긁었다.
목이 잘렸음에도 김 실장의 사지는 펄떡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목이 잘린 부분에서 조개 다리같이 생긴 뭔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유 이사의 콜트 파이슨이 다시 불을 뿜었다.
순식간에 3발이 쏘아지고, 탄피가 바닥을 굴렀다. 스피드 로더로 순식간에 재장전을 한, 유 이사가 처리반을 불렀다.
“여기 수술실. 생화학 오염 가능성 있는 시신 처리다. 방호복 착용하고. 사체는 완전 소각. 수술실 전부 까뒤집고. 증거 확보해.”
안 박사는 조금 진정이 됐는지, 아직도 버둥거리는 김 실장의 시체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안 박사. 다른 생각하지 마. 쪽발이들이 뭔 짓을 어떻게 해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를 봤잖아.”
“그래도. 몸을 치료하는 걸 보셨지 않습니까? 안정성만 확보된다면···.”
유 이사가 피식- 웃었다.
“샬롯에서 뭐라고 했는지 아나? 심가 혈족만 쓸 분량만 남았다고 하더군, 그럼 심가 혈족이 이딴 걸 쓸까? 안정성이 확보된 게 있겠지, 그런데 이런 걸 줬다는 건, 좆 먹으라고 뒤통수 친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어쨌든, 새끼들이 통수를 쳤으니, 내가 뱉은 말을 지켜야지.”
4년 동안 건드리지 마라?
이렇게 뒤통수치고?
======
======
수술실 CCTV 영상을 본 조만덕 사장이 동글한 안경을 벗었다.
“씨발 더럽게 엮였군.”
유 이사가 ‘조지는 데 이의 없음?’ 표정을 지었다.
“안 돼. 이미 여의도에도 협정이 들어갔고, 정부와 군부에도 들어갔어. 최소한 4년 동안, 지랄 같은 정보 통제 없을 거라고. 샬롯 그룹 내전이 터져도 우리가 개입하는 일을 없을 거라고 이미 다 들어간 상황이야. 여기서 밥상 엎을 수는 없다.”
크흐흐흐하하
“아니, 조 사장님.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시원하게 불 지르던 모습은 어디로 가시고 지금 이게 뭡니까?”
유 이사의 말에 조 사장이 안경을 닦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울 불바다를 우리 손으로 하자? 너 돌았니?”
“굳이 서울 불바다까지는 아니어도, 샬롯 그룹 임직원 멱을 따는 건 가능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내전에서 부산 샬롯 호텔을 도와서 샬롯 그룹이 씹창이 나도록 하는 가능하고요. 요는 그럴 의지의 문제인데···.”
조 사장이 쓰게 웃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의지가 없다?”
“뒤통수 친 새끼는 조진다. 그게 새끼든 그룹이든 다른 나라든 그게 우리 회사가 커온 방법 아니었습니까? 은혜는 잊어도 원수는 10배 100배 갚는다. 근데 지금 샬롯에게 통수를 연달아 맞고 4년을 닥치고 있으면 영향력이 유지되겠습니까?”
“유 이사.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너는 임원이 아니라 그냥 현장에서 구르다가 뒈졌어야 할 년이 맞나 보다. 지금 네 밑에 애들이 말아먹은 인원이 100명이 넘어 200명에 육박해 막말로 시큐리티랑 PMC쪽이 씹창 났어, 뭐로 복수할 건데? 사람이 없는데. 너 혼자 가서 쏴 죽일 건가? 그럼 가서 하고. 당장.”
유 이사의 눈이 조금씩 하얀 흰자를 보이자, 조 사장이 서류철을 던졌다.
“샬롯하고 협정을 맺으면서, 방금 부산 샬롯이 통신 방해를 해제했다. 최 전무 거기서 반쯤 죽다 살았다고 하더라. 직속으로 데리고 다니던 새끼들도 거의 다 뒤졌고.”
최 전무가 죽다 살아? 좆같은 새끼지만, 칼질 하나는 제대로 하는 새낀데? 유 이사가 서류철을 받아 읽자, 조 사장이 설명했다.
“최 전무 아래, 이기영이. 배신했다는 그 새끼가, 뒤통수치고 나가기 전 최 전무에게 보낸 자료다. 그건 또 그거대로 골 때리는 일이더라. 보면 알겠지만, 그 마루라는 새끼 운이 너무 좋아. 운이 좋은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그 새끼랑 엮인 일치고 제대로 된 게 없어.”
유 이사는 최 전무가 보낸 약식 보고서를 읽었다. 부산 로열 마리나 인근에서 만난 칼잡이 때문에 일이 틀어졌다는 내용. 그나마 시큐리티와 PMC 직원을 절반 정도 구하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의 직속을 거의 다 잃었고, 자신도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그건 칼잡이가 아니야! 그건 그냥 백정 새끼다. 더럽고 비열한 짐승 같은 새끼. 본능대로 칼질하는 새끼.’
약식 보고라 그런지 전화 통화 내용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유 이사의 눈이 같은 행간을 반복해서 훑었다.
백정이라. 인간 백정. 어쩐지 계속 반복해서 읽게 됐다. 어디서 들었지? 어디서 봤었지? 마루라는 이름도 익숙했다.
아? 홍 과장. 홍 과장이 그렇게 최고의 인재를 찾았다며 자랑했던 일이 떠올랐다. 떠난 사람은 잊어버리는 습관 때문인지 기억을 살리는 데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확실히 마루라는 이름이었다.
백정의 재능을 가진 놈, 그리고 부산 로열 마리나에서 최 전무랑 싸운 놈. 설마 동일 인물일까? 평생 검에 미쳐 산 최 전무에게 칼침을 먹일 정도라고? 일반인이? 만약 그렇다면? 마루라는 놈을 포획하려 했던 일들이 실패한 것이 설명됐다.
이성적으로는 아니라고, 일반인이 그럴 수가 있겠냐고 했지만. 감각적으로는 마루 놈에 대한 의심이 싹텄다.
만약 부산에 있는 놈이 마루라면, 왜 그놈이 부산으로 갔을까? 홍 과장 담당 구역이면 수도권인데, 로열 마리나? 설마 배를 타고? 어디로? 일반인이라면 지옥문 열린 일본으로 갈 리 없고, 홍 과장이 협력업체로 삼은 곳이 일본 어디였지?
“야- 가서 생각해 가서. 그리고 경고하지만 샬롯 건드리지 마라. 내 선에서 커버 가능한 상황이 아니야.”
김수현 실장이 부산에서 다친 이유는? 이기영과 1:1로 붙기 전에 이미 다쳤다고 했다, 칼잡이 때문에 다쳤다고 했는데, 그게 최 전무에게 칼침 넣은 놈이고, 그놈이 마루라면?
후흐흐흐흐흐
“에이 깜짝이야. 야 좀. 그렇게 웃지 말라니까. 너 진짜 여자냐? 아- 씨발 웃음소리가 그따위야. 정말 정떨어지게.”
“그럼 부산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지랄하지 말고, 내려가고 싶어? 모가지는 여기 두고 가. 그냥 가면 척살조 무한으로 돌린다. 너 뒈질 때까지. 어디 가서 사고 치지 말고 당분간 회사에 붙어 있어.”
“······.”
“눈깔 뒤집지 말고. 부산에 최 전무 있으니까 할 일 있으면 최 전무 시켜. 계속 말하게 하지 말고. 부디 나도 좀 쉬자, 제발 좀 쉬엄쉬엄 살자 이제.”
======
======
특수방역 차량
특수 방역복을 입은 직원이 운전하는 선배 직원에게 말했다.
“선배님 이거 처리하러 가는 길 아니었습니까?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요?”
“조용히 해. 우린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한다.”
“위라니요. 유 이사님이 확실히 소각 처리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처리반은 유 이사님 직속이고요. 선배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셔놓고는.”
“씨발 유 이사보다 위에서 직접 명령했으니까 좀 닥쳐. 그렇지 않아도 심란한데.”
하얀 간판에 커다랗게 빛나고 있었다. OJIN BIO & CHEMICAL 특수방역 차량이 서서히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