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86)
러스트 [RUST]-586
생명체가 산 채로 고깃덩이가 되는 광경은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공포를 넘어선 경외심.
로이 스턴의 부하들은 빈 탄창을 특수탄으로 채워 넣고서도 쏠 생각을 못했다. 그건 로이 스턴 소령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조종하는 기갑병은 팔이 찢기고 여기저기 부서져 수리 불가 상태에 가까웠다. 목숨 걸고 싸웠지만 어그로 유지하기에도 벅찬 괴수가 버펄로 괴수였다.
나중에는 어그로를 끄는 걸 알아챘는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지뢰지역을 탈출하려고 까지 했던 놈들이었다.
‘······’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괴수 버펄로가 1분 언저리에 마트 포장육처럼 분리되는 모습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오직 김 양만 눈을 빛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전공을 살리니까 얼마나 좋은가? 국왕이자 최고 존엄도 좋지만, 가끔 저런 모습을 보면 그저 빛이었다.
[다들 뭐함? 고기 챙기지 않고. 피부터 쏙 빼야 하니까. 빨리 준비들 하셈. 그거 피도 아까우니까 빨리빨리 움직이고.]잘하면 선지해장국도 가능했다. 사골곰탕도 좋지만 선지해장국도 끝내주는 계절 아니던가? 김 양의 지휘 아래 친위대와 병사들이 장비를 챙겼다.
‘저건 전기톱? 설마?’
지금 뭣들 하는 거지?
괴물 버팔로를 먹겠다는 건가?
로이 스턴 소령과 부하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지만, 김 양과 친위대를 비롯한 신성 왕국 사람들은 전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 무슨.’
덜 익힌 괴수 고기는 변이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충분히 익히면 문제가 없다고는 했지만,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고 굳이 찜찜함을 감수하고 먹을 건···
로이 스턴이 망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동안, 10여 마리의 괴수 버펄로는 순식간에 옮겨져 방혈이 시작됐고, 이어서 해체됐다.
인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동료들을 소분하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보면서도 살아남은 버펄로들은 오줌을 지린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오-
모오오오-
그저 낮은 울음 소리를 낼 뿐.
애절한 소리가 울려퍼짐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마루는 이클립스에 붙은 피와 지방을 털어냈다.
‘12마리 남았나?’
산책이라도 하듯 표표히 괴수 버펄로를 향해 다가서는 마루.
그리고 그런 마루를 피해 도망치지도 못하는 버펄로들. 마치 석화의 저주에 당한 것처럼 굳어 버린 채 낮게 울음을 울었다.
모오오
움머어어어
흉흉했던 눈빛은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 순한 한우처럼 변해있었다.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있는 모습에 마루가 피식 웃었다.
[야. 다시 눈 치켜떠. 뿔 들이밀고.]좋다고 포효하더니 어디서 감성팔이.
작업을 다시 시작하려는 마루를 김 양이 통신을 보냈다.
[근데. 저거 다 잡으면 우리 못 싣고 가는데. 지금도 두 번? 세 번? 그쯤 왕복해야 할걸. 그리고 여기서 전부 다 잡으면 신선도도 그렇고 여러모로 좀 그렇지 않겠음?] [흠-]그건 그랬다.
[어쩔 것임? 지금 잡은 것만 하더라도 우리 냉동창고에 차고 넘치는데. 아- 요즘엔 날씨가 추우니까 실외 보관해도 괜찮을 것도 하고.]마루는 잠깐 고민한 뒤, 사이코메트리 에리카를 불렀다. 우선 이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그걸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비행선 왕복할 때 간호사도 데려와.] [간호사?]‘1호기는 어째서?’ 하는 김 양의 눈빛에 마루가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하는 버펄로를 가리키며 답했다.
[저것들과도 소통 가능한지 보려고.] [-알겠음.]김 양이 1차로 소분한 고기를 가득 싣고 디트로이트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 마루는 사이코메트리와 함께 괴수 버펄로가 어디서 왔는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아주 멀리서 왔는데요?”
“어딘데?”
“우드 버펄로 국립공원이요.”
“우드 버펄로?”
“예.”
지도를 확인한 마루의 표정이 굳었다. 괴수들이 왔다는 우드 버펄로 국립공원은 이곳 오타와 북부와 무려 4,500km가량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어쩌다 이쪽으로 온 거지? 인간이 개입했나?”
정신계 능력에 당했다거나 아니면 간호사처럼 동물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에게 사주 받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아주 큰 곰과 늑대 무리를 피해 온 것 같아요.”
이층 단독주택 크기의 버펄로 무리가 도망칠 정도로 큰 곰이라고?
‘곰’탕을 만들었던 괴수 곰도 장난아니게 컸었다. 늑대들도 SUV정도로 컸고. 근데 그보다 더 큰 곰과 늑대라고?
“사슴? 무스? 그것들도 곰이랑 늑대를 피해 도망친 것 같아요.”
“우리 애들과 비교하면?”
“많이 차이나요. 아주 많이요.”
그러니까 지금 괴수 웨이브 사태는 북부에 있는 육식 동물들 때문에 초식 동물들이 도망치면서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짐승 머리였으면 그 주변 영역에서 배회했을 텐데, 머리가 똑똑해진 초식 동물들이 대 이주를 했다는 뜻.
“하필 왜 지금이고 어째서 이쪽이지?”
“어- 그러니까, 작년에 출발해서. 지금 도착한 거 같아요.”
남쪽으로 도망치다가, 인간이 만든 도로를 발견하곤 그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덩치가 크다보니 하루에 먹는 양이 장난 아니게 많았고, 결국 계속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도로를 타고 가면 인간이 있고, 인간의 집과 건물을 부수면 인간들이 시간을 끌어주니까 공격한 것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놈들이 요새를 공격한 이유가 건물을 부숴서 뒤따라 오는 곰과 늑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어 사이코메트리로 읽힌 바로는 그런 것 같아요.”
“미친. 그럴 거면 차라리 요새 근처로 유인해서 서로 상잔하게 하지, 건물은 왜 부수고 요새는 왜 공격하는 건데?”
“요새나 건물이 건재하면 늑대와 곰이 인간과 싸우지 않고 회피해서 일부러 그랬네요.”
“하-?”
그러니까 곰과 늑대가 상잔하려는 걸 알아채고 회피했다는 소리였다. 조개껍데기가 깨져 속살이 드러나지 않으면 먹지 않겠다고 한 것. 버펄로와 무스들은 그걸 알고 인간의 건물과 요새를 공격했다는 이야기.
머리가 좋아진 초식동물들은 건물이 부서져도 곰과 늑대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인간 무리를 탐색했고 그렇게 당첨된 지역이 신성 왕국 북부였다.
“이것들이 서로 머리를 썼다는 거네.”
“네.”
초식동물들은 인간과 포식자들이 상잔하기를 노렸고, 인간과 상잔을 유도한다는 걸 알아챈 육식동물은 회피했다. 육식동물이 인간을 피해서 달려들자, 초식동물들은 먹기도 좋고 맛도 좋은 인간을 던져주는 것으로 시간을 벌려고 했고.
그리고 인간들 던져주는 게 먹히자, 육식동물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기 위해 강한 인간들이 모여있는 지역으로 진출했다.
전선을 길게 펼치지 않고 깊게 뚫고 들어온 이유도 뒤따라 오는 곰과 늑대들이 인간 영역에 깊게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된 거였군.”
늑대 부대가 전멸한 이유가 이거였다. 덩치 큰 육식동물들이 버펄로나 무스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으니, 정찰을 나갔다가 당한 것.
그날 저녁 추가 병력과 간호사를 싣고 김 양이 돌아왔다. 즉시 회의를 소집한 마루가 에리카가 알아낸 상황을 요약해 전달 한 뒤, 현황판에 표시했다.
“-현재 상황은 초식 괴수들을 잡는다고 끝이 아니다. 이것들을 따라 육식 괴수들이 오고 있으니까.”
작전이 수정됐다. 초식동물이 변형된 괴수를 죽인다고 끝이 아니었다. 그뒤를 따라 내려오는 것들까지 한 번에 잡아야 했다.
“나나에 버펄로와는 의사소통이 가능한가?”
“에- 가능한 것 같은데 대화하긴 어려워요.”
“왜? 죽고 싶다고 하던가?”
“에엣- 그게 아니라요. 공포에 질려서 의사소통이 힘들어요.”
그러니까 PSTD가 강하게 와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간호사의 설명에 마루가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가서 말해. 대답 똑바로 하지 않으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현재 살아남은 버펄로는 14마리. 4마리는 중상이었지만 서서히 회복 중이었고 경상을 입은 10마리는 거의 다 회복된 상황이었다.
“뭐라고 할까요?”
“산채로 도축당할 지 아니면 육식동물과 싸워볼 건지.”
버펄로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쪽은 육식동물과 싸우는 쪽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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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를 일으킨 무스(Moose)떼가 짓밟고 간 곳은 폐허 그 자체였다. C구역 11번 요새와 C구역 18번 요새엔 인기척이 없었다.
괴수들이 모일수록 강해지는 전파장애를 회피하기 위해 까마귀 편대가 동원됐다. 작은 중계기를 들고 일정 거리마다 자리 잡은 까마귀 덕에 최북단 요새까지 통신이 연결됐다.
[치지직- 블라디마루 칼린 폐하께서 친정하셨나니—. 삐이이익— 중앙으로 파고든 괴물 버펄로를 잡으셨고, 이제 북으로 진격하고 계시도다! 치익- 삐이이익- 이제 곧 폐하께서 북부 요새 지역에 오실 것이니. 삑-삐이익- 제군들은 헛되이 자신의 생명을 소모하지 말고 치직- 자리를 지키도록 하라. 삐이익–]“오오오오-”
“신성왕국 만세!”
“블라디마루 칼린 폐하께 영광이 있으라!”
“조용. 다들 들었지? 우리가 할 일은 쥐 죽은 듯이 버티는 것이다. 버티기만 하면 된다. 버티기만.”
외성벽과 내벽이 뚫리고 이제 남은 건 지하 벙커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괴물 무스들은 요새만 부수고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했다.
“저렇게 그냥 내려갈 거면 대체 왜 우릴 공격한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저런 대형 괴수라면 30mm 기관포로 막는 건 어렵습니다.”
“재블린 미사일도 제 위력을 내지 못했습니다.”
대전차 미사일이라면 전차 장갑도 관통할 위력이었다. 당연히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괴물 무스에게는 잘 먹히지 않았다.
“괴수 부산물로 만든 특수탄만 효과적이었습니다. 철갑소이탄과 철갑폭발탄 같은 것도 미미한 효과는 있었지만, 저지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후- 일단 통신이 유지되는 동안 교전 정보를 전송하도록 하지. 늑대 부대 쪽은 아직도 소식 없나?”
“까마귀 편대와 연계해서 위치를 파악 중이지만 흔적이 없습니다.””까마귀 편대로부터 긴급 영상 들어왔습니다.”
“화면에 올려.”
까마귀들이 촬영한 영상은 저 멀리서 느긋하게 접근하고 있는 늑대무리였다.
“늑대부대가 아니군. 저정도 규모의 무리가 이 근방에 남아있다니 이상한 걸”
신성 왕국에 귀의한 늑대들이 상당한 거리까지 위력정찰을 하고 있던 터라, 요새 주변에 서식하던 늑대들은 다른 곳으로 쫓겨나거나 아니면 합류했다.
“그냥 늑대가 아닙니다. 거리. 거리를 보십시오.” “?”
거리?
사령관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그러니까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저 크기라고?
괴물 무스(Moose)만큼은 아니더라도 왕국군 늑대 부대보다 최소한 3~4배는 더 큰 덩치의 늑대들이 설렁설렁 다가오고 있었다.
킁-킁-
냄새를 맡으며 다가오는 늑대 무리가 폐허 속에 감춰진 지하 벙커 방향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그대로 모니터에 떠올랐다.
그 불길한 모습에 지하 벙커 속 병사들이 소리를 죽였다.
느긋하게 지하벙커로 다가온 늑대들은 개뼉다귀 묻어 놓은 걸 찾듯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거대한 발톱이 달린 앞발을 굴삭기처럼 이용해 쑥쑥 파고 들어와 벙커의 철근 콘크리트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설마설마했던 병사들이 최루탄과 소스 후춧가루를 뿌리며 맹렬하게 저항했지만, 늑대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고 교대로 벙커를 압박했다.
쾅! 화르르르륵!
“최루탄!” “최루탄 빨리!”
“다 떨어졌습니다.””Fuck!!! 화염방사기는?”
“연료가 없습니다.””그럼 핫소스라도 뿌려! 후춧가루라도 뿌리라고!”
벙커 천장을 뚫고 들어온 주둥이에 핫소스가 뿌려졌다.
케에에엥. 켘. 케엥!
콧잔등과 주둥이가 핫-소스 범벅이 된 늑대가 화들짝 머리통을 밖으로 뺐다.
켕켕켕
크륵크륵크륵-
매워서 발광하는 늑대를 보며 다른 늑대들이 사람처럼 웃었다. 마치 사람처럼 웃는 늑대들의 모습에 벙커 속 병사들 마음이 꺾일 것만 같았다.
“버텨라. 버티기만 하면 오신다고 했다.”
“후아! 후아!-”
소총탄은 소용없었다.
12.7mm 철갑탄도 소용없었다.
괴수용 특수탄은 떨어진 지 오래.
그래도 병사들은 버티고 버텼다.
그렇게 병사들은 버텼지만, 벙커는 버티지 못했다.
콰직- 콰드드득-
여기저기 구멍 뚫린 벙커 천장이 통째로 뜯겨나가는 소리.그리고 독 안에 든 쥐를 보듯 입맛을 다시는 괴물 늑대들의 모습이 느린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주둥이를 벌렸던 늑대가 머리를 치켜들었다.
솟아오른 늑대의 귀가 쫑긋거리며 좌후로 움직였다.
옆에서 지켜보며 배를 깔고 누웠던 늑대들이 전부 몸을 일으켜 남쪽을 바라봤다.
크르?
크르르르르-
삽시간에 변해 버린 늑대들의 분위기, 병사들은 그 틈에 바리케이드를 다시 쌓았다. 그렇게 쌓인 바리케이드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두두두-
?
두두두둑-
두두두두두두두-
덜그럭덜그럭 조악하게 쌓은 바리케이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오오오오오!
무오오오오오!!
소 울음소리?
까마귀 정찰 카메라에 잡힌 형상은 버펄로 떼가 늑대 무리를 향해 돌격하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