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88)
러스트 [RUST]-588
까마귀들이 보내온 곰 영상은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저건 확실히 문제네.”
기순도 마루의 후퇴 결정에 동의했다.
덩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놈들이 망가진 트레일러를 끌고 내려오고 있다는 것. 심지어 트레일러에 쌓인 고깃덩이는 바짝 건조한 느낌이 드는 육포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곰이 먹이를 건조해서 저장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트레일러를 짐수레처럼 끌고 다닌다녀? 일단 후퇴해서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근데, 저거 새끼 곰 이상한 거 아님?”
저격수답게 눈썰미가 좋은 김 양이 포착한 장면. 새끼 곰 두 마리가 거칠게 장난치고 있는 모습.
“뭐가 이상한데?”
“저거 가죽이 따로 노는 것 같은데?”
김 양의 말에 기순과 마루가 반응했다.
“가죽이 따로 논다고?”
“거기 영상 스톱. 확대해봐.”
인공지능 보정으로 화질을 선명하게 바꾸자 확실히 뭔가 이상한 느낌. 마치 가죽이 두 겹으로 겹쳐진 것 같은 모습.
“저거 이상한데?”
“?”
새끼 곰 2마리가 서로 장난치는 장면 속 울룩불룩 우그러지는 가죽. 자세히 보니 확실히 새끼들의 몸통과 다리 가죽의 색과 결이 따로 놀고 있었다.
“가죽을 걸친 건가?”
“···미쳤네.”
“미쳤음.”
엉성한 가죽 포대 같은 모양이지만 분명 가죽을 걸친 게 분명했다. 이제까지 변이를 일으킨 괴수의 종류가 많았어도 인간이 만든 도구와 장비를 활용한 경우는 없었다.
인간과 괴수 사이의 생물학적 구조학적 차이가 났기도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려오고 있는 곰들은 달랐다.
“변이를 일으킨 동물들이 인간을 먹고 갑자기 지능이 좋아진 경우가 있었지.”
고립된 마을을 통째로 잡아먹은 쥐 떼가 그랬고. 일본 도난 병원에서는 고양이 괴수가 그랬었다.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는 뱀이 머리를 썼었다.
“앞으로는 쥐가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쥐들 가운데 엄지가 돌기처럼 자라난 종이 있었다. 낱말카드를 보며 인간의 언어를 공부하는 듯한 쥐들도 있었고.
“이젠 그 문제에 곰이 들어가겠군.”
“곰과 늑대, 개는 친척이니까 난리 나겠군.”
새끼들을 위해 가죽을 덮어준 어미 곰이 나왔고, 먹이를 싣고 저장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트레일러를 수레처럼 끌기 시작한 곰이 나왔다.
만약 이렇게 변한 이유가 인간을 먹어 지능이 활성화된 것이라면. 인간을 먹지 못하게 해야 했다. 먹은 것들은 반드시 처분해야 했고.
기순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날씨도 지랄인데 이젠 인간과 동물이 생존 경쟁해야 할 판이네.”
“이거 위험하지 않음? 우리만 이러는 것도 아닐 텐데?”
신성 왕국이야 마루의 의지대로 사람을 잡아먹은 변이 괴수를 근절하려고 하겠지만, 다른 동네는 어쩔지 몰랐다.
괴수들이 사람의 말을 배울 수 있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아마도 군사 쪽에 써먹겠다고 하겠지. 그럼 그 괴수들은 인간의 군사 운용 방식과 편제를 알게 될 테고.
“동물을 조련해 전쟁에 동원하려고 한 사례는 넘치도록 많으니까.”
김 양의 생각대로 위험해질 게 뻔했다. 인간을 먹을수록 똑똑해지는 것 같다. 어떤 인간은 먹으면 몸이 더 좋아지는 것 같고? 어떤 괴수가 그걸 마다하겠는가?
그리고 그 위험의 증거가 영상 속에 있었다. 북슬북슬한 털, 굼실굼실 씰룩이는 걸음걸이로 느긋하게 내려오는 거대한 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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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명령에 따라 전선은 바로 후퇴했다.
“C 구역 23번 요새도 비웁니까? 거긴 최신 장비도 있는데 말입니다.”
“C 구역을 전부 비우라고 말씀하셨지 않나? 우리는 명령대로 한다.”
병사 하나가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C 구역을 전부 비우는 건 손해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한다고?”
“···명령대로 한다.”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말하지. 너희 모가지 위에 달린 건 생각하라고 달린 게 아니다. 행동하라고 달린 거지. 알겠나?”
변이 괴수와의 싸움은 인간과의 싸움과 달랐다. 특히 지금처럼 초식동물을 추격하는 육식동물의 경우엔 더 그랬고.
“현장에서 말이 많이 나오냐?”
“안 그렇겠냐? 무적의 국왕 폐하께서 친정하셔서 버펄로와 무스, 거대 늑대까지 싹 쓸어버려서 사기충천했었는데 갑자기 다 비우고 퇴각하라니 더 그렇지.”
기순이 고개를 돌려 철수 준비를 하는 병사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래서 절대적인 영웅 1명에 의존하는 나라가 위험한 거야.”
“절대적인 영웅은 개뿔. 난 영웅으로 살 생각 없으니까 그딴 소린 하지 말고.”
기순의 말대로 영웅을 표방하면 그랬겠지만, 마루는 영웅왕이 될 생각이 없었다.
“과연 그럴까? 신성 왕국 사람들이라면 널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을걸.”
“그만해라. 영웅이 되려고 나라 세운 거 아니니까.”
미국이 건재할 때 했던 짓이 떠올랐다. 영웅 프레임을 씌워 휘두르려고 했던 일. 마루 생각에 영웅이라는 말은 족쇄나 다름없었다.
영웅이라 칭송하던 왕이 냉혹한 결정을 내리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얄팍한 나라가 되는 건 사절이었다.
무엇보다 신성 왕국을 세운 이유가 자유롭기 위해서 아니던가? 개인이나 소규모 세력으로는 여기저기 휘둘릴 상황이라서 왕국으로 규모를 키웠던 것이었다.
왕국을 건국했기에 일이 많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그게 아니었다. 만약 아크 타워 하나만 가진 용병 신분이었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쯤 제국이니 남부연맹이니 하다못해 인근 주(州)에서 달달 볶았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굴려지다 못해 나중에는 자기들 세력에 합류하라고 협박받았을 테고, 거절하면 클론이나 흡혈귀 실험소재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위험을 피하려고, 신성 왕국을 세운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기 위해서 세운 게 아니라.
“후퇴하려면 아주 확 뒤로 물려버리지 애매한 거리는 또 뭐냐?”
“병사들도 봐야 하니까. 어째서 후퇴를 시켰는지. 후퇴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니까.”
“예이. 왕님. 그래도 병사들에게 이유를 설명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미리 알려주는 건 의미가 없어. 직접 보는 게 제일 오래가지. 그래야 객기 부리는 사람도 줄어들 테고.”
“그놈의 객기는 참···.”
기순의 말을 끊듯 김 양의 목소리가 울렸다.
[자리 잡았음.]그녀의 보고에 마루가 리퍼 슈트의 헬멧을 뒤집어쓰곤 일어섰다.
“예이.”
마루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기순의 가느다란 실눈이 모니터를 향했다. 거대한 곰이 서서히 지뢰 지역으로 들어가는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제 포격 준비!]상황을 보고한 김 양은 바로 친위대와 함께 박격포를 쏠 준비를 마쳤다. 곰이 지뢰를 알아채지 못하게 최루탄을 미리 쏘려는 것.
[최루탄 발사 후 바로 네이팜탄.]곰이 뒤로 물러서지 못하게 후방을 불바다로 만들 생각이었다. 두꺼운 가죽의 버펄로와 무스도 네이팜 불꽃을 꺼렸으니 곰도 마찬가지일 것.
‘이래저래 사냥했던 곰보다 더 크긴 하지만, 곰은 곰.’
김 양은 슬며시 입맛을 다셨다. 덩치가 클수록 푹 고아 탕으로 만들었을 때 효과가 좋은 느낌이랄까?
까마귀와 늑대들도 큰 곰으로 만든 육포니 수육이니 그런 걸 좋아하는 걸 보면 마냥 느낌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동물들도 좋은 건 안단 말이지.’
[타겟 접근.] [지뢰지대에 접근합니다!] [발사!!!]120mm 박격포탄이 굉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잠시 뒤 최루탄이 안개처럼 퍼지며 목표물 인근을 뒤덮었다.
자욱한 연기 때문에 괴물 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김 양은 추가 공격을 감행했다. 머리가 좋다고 했으니 예방 차원이었다.
[네이팜으로 바꿔. 바로 퇴각로를 막는다.] [네이팜탄으로!] [발사!!!]120mm 네이팜에 대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1,500도에 달하는 맹렬한 불길이 지뢰밭 방향을 제외하곤 전부 불바다로 만들었다.
12.7mm가 아닌, 20mm 전용 저격라이플을 겨눈 김 양이 조그맣게 속닥였다.
‘와라. 앞으로.’
그런 김 양의 기대와는 다르게 곰은 불바다로 뛰어들었다. 네이팜이 피워낸 진득한 불꽃이 삽시간에 곰의 가죽에 들러붙었다.
거대한 횃불로 변한 곰은 아랑곳하지 않고 1km에 달하는 불바다를 건너 저 멀리 뒤로 빠져나갔다.
‘뭐임 저거?’
순식간에 야트막한 언덕 너머로 사라진 곰의 뒷모습을 보며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마루는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다시 말해봐. 그러니까 곰이 열어 놓은 앞으로 가지 않고 불바다를 뚫고 뒤로 퇴각했다고?] [응. 그랬음. 몸에 불이 붙는데 상관하지 않고 뒤로 도망갔음. 그것도 언덕을 넘어서.]마루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감이 좋지 않았다. 머리가 좋아졌어도 곰은 동물이다. 이건 인간도 마찬가지.
훈련받지 않은 인간은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눈에 보이는 데로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그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공격에 당한다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최루탄으로 후각까지 마비시켰으니 당연히 시각에 의존해 도망치는 게 당연했다.
‘최루탄으로 고통스러움에도 비어있는 정면으로 가지 않고 굳이 불바다를 뚫고 도망쳤다?’
자기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 도망치다가 야트막한 언덕을 올랐다고 했다. 언덕을 넘어버려 저격할 수 없었다고.
[다른 놈들은 어때?] [귀가 좋은지 아니면 네이팜 냄새를 맡았는지, 새끼 곰 두 마리랑 어미 쪽은 남하를 멈췄음. 트레일러를 끌고 있는 놈은 그대로 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중.]마루는 HUD에 지도를 띄우곤 확인했다. 지도상으로 봤을 땐, 어미 곰이 냄새를 맡았다면 트레일러 곰도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법한 거리.
‘냄새가 아니더라도 저 정도 위치면 박격포 터지는 소리를 들었을 거고.’
곰과 늑대, 개는 친척이었다. 후각과 청각이 비슷하게 예민하다는 이야기. 여기에 변이를 일으켰으니 더 민감할 터.
늑대들이 땅속에 묻혀 있는 벙커를 찾아냈던 걸 생각해 보면 지금 트레일러 곰도 충분히 상황을 짐작할 게 분명했다.
‘회피하지 않고 내려온다는 건 자신 있다는 이야기겠지. 인간의 무기에 익숙하다는 뜻일지도···.’
[지뢰 깔았지? 트레일러 곰 쪽엔 U자형으로 깔아봐. 안으로 들어가면 뒤에도 깔아서 뒤로 퇴각하지 못하게 해보고.] [그쪽은 최신형 지뢰로 깔았음. 일반 대전차 지뢰는 도로 위에 깔면 티가 많이 나서.] [최신형?] [도로 옆에 설치해 놓으면 대전차 미사일처럼 위로 날아가 전차 상부를 때리거나, 공격 위치 설정하면 측면, 후면으로 돌아서 공격할 수 있는 거. 그걸로 깔아서 화력은 충분함.]양자컴퓨터와 포도송이 그리고 가상현실에 공돌이 본능 폭발한 연구원 조합은 실시간으로 무기를 개량하고 있었다.
김 양이 말한 도로 옆에 설치해 놓았다는 대전차 지뢰는 러시아의 신형 지뢰 PTKM-1R를 응용한 지뢰였다.
단발식인 러시아 지뢰와는 달리, 네모난 상자처럼 생긴 본체 속에는 4X4 배열로 들어있는 작은 미사일이 들어있었다.
상자 하나당 16발의 대전차 미사일과 폭발 모듈이 지뢰처럼 반응하는 무기. 말이 지뢰지 사실상 자동 미사일 포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걸 10개 깔면 160발. 40개를 깔면 640발인데도 마루는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어차피 최루탄 쓰면 연막 생기니까 기존 쓰던 지뢰도 도로에 깔자. 위장 제대로 하고. U자로 깔고 뒤도 막고.] [···알겠음.]김 양에게 추가작업을 시킨 마루가 은신한 채로 트레일러 곰을 향해 이동했다.
칙칙- 인공물 특유의 냄새를 지우는 스프레이를 뿌린 뒤 곰이 끌고 있는 트레일러 뒤편으로 다가가는 마루가 살짝 견적을 잡았다.
‘많이 실하네.’
초겨울이라 그렇지 않아도 덩치가 큰 곰은 겨울을 나기 위해 털을 갈고 체중까지 한껏 불린 상태였다. 살과 지방이 꽉 차오른 모양.
[U자로 막았음. 양쪽 측면에는 최신형. 앞을 막은 건 폭발력 높인 신형으로.] [그래. 그럼 시작하자. 최루탄부터. 네이팜은 쏘지 말고 기다려 봐. 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게.] [알겠음.]잠시 뒤 휘유우우우 하는 높은 소리와 함께 최루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트레일러를 끌고 내려가던 곰이 심사가 불편하다는 소리를 한 번 낸 뒤, 주변을 살폈다.
퍼어어엉!
푸화아아아아아악!
독한 최루가스가 안개처럼 퍼지기 시작하자. 곰의 낮은 으르릉거림이 강해졌다.
쿠르르르르르—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아니라 낮고도 작게 울리는 소리. 분노를 삼키는 듯한 울림.
‘이 새끼 이거 최루탄에 내성 있는 거 아니야?’
끌던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두리번거리던 곰의 머리가 한 방향으로 고정됐다. 박격포탄이 날아온 방향이었다.
곰의 얼굴에 표정이랄 것이 생겼다.
잔혹하고도 무자비한 사냥꾼의 미소.
씰룩-
그 커다란 덩치가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이 향하는 곳은 박격포탄이 날아온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