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89)
러스트 [RUST]-589
괴물 곰의 뒤를 조심스럽게 추격하는 그림자는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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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내리깐 짐승의 숨소리가 이루 형용하기 힘든 분위기를 자아냈다.
몸길이 10m는 족히 될 법한 거구가 움직임에도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는 괴이함에 스산할 정도.
‘···이놈 이거 미묘한데.’
곰의 움직임은 마치 고양잇과 동물과 흡사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갯과 동물은 그 특유의 활동성을 감추지 못하기 마련인데, 이놈은 달랐다. 철저하게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는 동작들.
[그쪽으로 가고 있다. 신형 지뢰 도로 양옆에 설치했다며? 괴수 놈이 숲으로 들어갔는데 터지지 않고 있다.]마루의 말에 김 양이 어리둥절 답을 못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도로 옆에 설치하고 작동시킨 거 맞지?] [분명히 확인했음.] [일단 거기서 빨리 피해. 이놈 이거 바로 그쪽으로 가고 있다.] [추적 회피하게 최루탄 깔까?] [그래 까···. 잠깐.]최루탄을 까라고 하려는 순간 느껴지는 찝찝함에 마루가 말을 멈췄다.
어째서 기분이 찝찝할까.
최루탄으로 괴수의 후각을 마비시키는 방법은 자주 사용했었던 방법인데 말이다.
‘······.’
마루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멀리 트레일러가 세워져 있었고, 그 주변에 피어오르는 최루탄 연기가 보였다. 이리저리 흩어지는 최루탄 연기···.
잠시 스쳤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최루탄에 내성이 생긴 놈이라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이어지는 전개. 트레일러 뒤편으로 접근했고 이어서 박격포로 쏘아진 최루탄이 터졌다.
그 최루탄 냄새가 리퍼 슈트에 뱄을 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최루탄 냄새가 밴 리퍼 슈트의 위치가 발각될 게 분명했다.
‘···놈이 최루탄에 내성이 있다면.’
김 양과 친위대가 최루탄을 까고 도망치는 것은 명백한 악수였다, 최루탄 냄새가 오히려 흔적을 남길 테니까.
‘놈이 놓칠 리 없어.’
[조짐이 좀 이상하니까. 곰이 최루탄에 내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피해라. 최루탄 미리 까지 말고 타이머를 써.] [최루탄에 내성? 타이머? 알겠음. 그럼 어떻게 할 생각임. 혼자 잡을 수 있겠음?]최루탄에 내성이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후각을 피해 기습하는 건 불가능했다. 마루가 수월하게 사냥할 수 있었던 건 첫 일격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초격(抄擊)이 성공하기 쉽게 원거리 지원 공격이 필요한 데, 그거 없이 홀로 싸워야 할 판인 지라 김 양이 걱정했다.
[붙어봐야지. 일단 다른 곰들이 남쪽이나 동쪽으로 빠지지 못하게 묶어 두고 있어. 그리고 이것들 하는 짓을 보니까 박격포로 지뢰밭에 몰아넣기는 어렵겠다.] [그럼?] [힘으로 잡아야지. 전차와 기갑병을 모두 동원하는 게 좋겠어.]디트로이트에서 싣고 온 전차는 모두 3대.
기갑병은 처음 다섯 기 가운데 하나가 부서져 이젠 넷 남았다.
인공지능으로 굴리던 기갑병 가운데 하나를 수동으로 변환시켜 로이 스턴이 조종하고 있는 중.
[각개 격파당하지 않게 모두 모아서 화력을 집중해. 어미 곰은 새끼들이 있으니 조심스럽게 움직일 거다. 그러니까 그쪽은 우선 견제만 해도 괜찮을 거 같다.] [도망친 놈부터 잡으라고?] [그래. 네이팜 불바다를 뚫고 도망친 놈. 그놈부터 잡아.] [알겠음. 도망친 놈부터 확실히 끝내고 오겠음.]김 양과 대화한 그 짧은 순간, 곰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져 있었다. 덩치가 큰 만큼 이동속도도 엄청났다.
마루는 굼실굼실 멀어지는 곰의 뒤를 뒤쫓기 위해 전속력으로 뛰어가다시피 해야 했다. 김 양과 친위대가 박격포를 쏜 거리는 7~8km나 떨어져 있었지만 곰은 순식간에 거리를 줄였다.
그리고 그 7~8km 동안 김 양이 말했던 최신형 지뢰 포탑은 작동하지 않았다. 최신무기라고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마루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치이이익- 아마 센서 문제일 거다. 삐익-]기순의 해석에 따르면, 설치해 놓고 엉뚱한 타겟을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크기 이상, 일정 무게 이상, 일정 진동 이상 작동하도록 했을 거라고.
괴수 버펄로와 무스를 기준으로 잡았으니, 곰이 소리를 죽이고 진동도 일으키지 않고 움직인다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니. 인공지능 좋아졌다며? 좋은 인공지능 두고 무슨 센서 어쩌고.] [삐이이익- 그렇게 성능 좋은 인공지능을 설치하는 건 삐이익- 위험하지. 삐이이— 네가 말해 놓고도 잊었냐? 그게 엉뚱한 놈들에게 넘어가면 어쩌려고? 치이익-]아니. 그럼 자폭장치든지 뭐든 껴 놓으면 되지 않나?
할 말이 많았지만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래서 무기체계 바꾸고 신무기 도입할 땐 보수적으로 해야 하는구나. 깨달았을 뿐.
[됐다.] [치이이익- 이럴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 보완하면 되지. 삐이익-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우리 쪽 연구진 다들 이제 초짜잖냐? 아군에게 오발 사고 나는 것보다는 낫지. 치직-치직-] [그 이야긴 나중에 하자. 수동 전환은 가능하지?] [치칙- 그래 그쪽은 언제든- 칙-]마루는 바로 수동 조작 코드를 받아, 미사일 포대를 수동으로 작동시켰다.
기이이잉-
16발의 미사일과 지뢰 모듈이 들어있는 자동 포대가 작동을 시작했다. HUD에 표시된 목표를 설정하자. 대전차 미사일과 도약 지뢰가 한꺼번에 거대 곰을 향해 쏟아졌다.
하늘로 치솟았던 도약 지뢰가 하방을 향해 강력한 자탄을 날렸고, 인공지능의 유도에 따라 움직이는 대전차 미사일이 급격한 방향을 꺾으며 곰의 옆구리와 엉덩이를 노렸다.
남은 미사일들이 전부 괴수 곰의 널따란 등판을 노리고 달려들자, 깜짝 놀란 곰이 허겁지겁 몸을 웅크렸다.
쾅! 콱!
쾅쾅!! 콰악!
괴이한 소리와 함께 단 하나의 탄도 빗나가지 않고 괴물 곰의 전신을 두들겼다.
끄우어어어어엉!
고통에 찬 곰의 울부짖음에 텄다는 걸 알아챈 마루였다. 수동으로 조작해 사정거리 안쪽에 있는 지뢰 모듈을 전부 작동시켰는데 고통에 찬 울부짖음? 심지어 쌩쌩하기까지 했다.
‘안 뒈졌다는 소리잖아.’
폭발로 피어오른 먼지와 연기가 걷히자 드러난 곰의 모습. 전신에 원형 탈모라도 온 것처럼 흉한 모양이었지만 그뿐.
상처에는 핏방울이 방울방울 맺혔을 뿐 치명상은 보이지 않았다.
전차의 측면을 격파할 정도의 미사일로는 변이를 일으킨 곰의 가죽을 완전히 관통하지 못했다.
피가 맺힌 부분은 괴수의 부산물로 만든 탄두의 흔적이 남은 것으로 보아, 특수하게 제작한 미사일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뭔 방어력이···.’
김 양은 곰을 온전히 잡기 원했지만, 지금 저걸 볼 때 그딴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마루는 바로 기순에게 신호를 보냈다.
[벙커 버스터! 쏴!] [치이익- 발사.- 삐익]전신을 두들겨 맞아 웅크렸던 곰이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벙커 버스터 탄두를 단 순항 미사일이 괴수 곰의 머리통을 때렸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불꽃과 폭발이 끝나자, 옆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곰이 머리를 흔들어댔다. 줄줄 흐르던 피가 실시간으로 멎어가는 모습. 그 짧은 시간에 직격을 피해 흘려낸 것.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놈은 초(超)회복 능력이 있었다.
버펄로와 무스 가운데 재생력을 가진 개체들이 있다는 게 떠오른 마루. 그리고 지금 이 괴수 곰은 그보다 더 강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사일 전부 쏴!]타우러스를 기초로 만든 벙커 버스터 순항 미사일이 수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큰 덩치를 요리조리 움직여 수직으로 떨어지는 미사일을 피해대기 시작하는 곰.
마치 서커스의 한 장면 같았다.
곰이 아슬아슬하게 피하면 그대로 땅에 박힌 벙커 버스터가 폭발하고 다시 미사일이 떨어지고 놈이 둥글둥글 몸을 말아서 피하고.
[······.] [삐익······.] [······.] [······.치이익]마루와 기순, 김 양과 친위대까지 그 모습을 보곤 할 말을 잊었다. 말 그대로 묘기 그 자체였다. 막강한 방어력에 재생력 거기에 순발력과 판단력이 총동원된 묘기.
신경가스를 쓸까?
통하면 좋은데 만약 그것도 적응해 버린다면?
이미 최루가스에도 적응한 놈이었다. 이전에 독가스를 사용한 인간과 마주쳤다면? 가스에도 내성이 있을지 몰랐다.
괴물들이 인간을 먹을수록 강해지고 똑똑해진다는 가설은 이제 사실이라고 봐야 했다. 식인귀 놈들이 그랬으니, 늑대인간과 흡혈귀도 그렇겠지.
그리고 지금 등장하는 변이 짐승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저 모습은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 먹는 것들은 모조리 초반에 잡아야겠군.’
마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삐이익- 와- 저거 뭐냐- 진짜. 치익-]기존의 무기체계와 교전 교리로는 잡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괴수 전용 미사일이나 포탄, 지뢰, 레일건 따위가 필요했다.
그런 특수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저딴 괴물 곰 같은 게 도시로 밀고 들어온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빌어먹을 무스와 버펄로.’
이것들이 자기들 살겠다고 인간들을 미끼로 던져준 결과가 이거였다.
[치이이익- 일단 자리를 피하는 건 어떻겠냐? 삐익- 놈도 움직임을 멈췄는데. 칙-] [아니. 여기서 끝을 본다.]머리까지 좋아졌으니, 시간을 줄수록 까다롭게 될 게 분명했다.
[삐익- 아니 그래도 예상과 너무 다르잖아. 칙-] [어차피 안 먹히면 칼질하려고 했어.]순항 미사일 피하는 놈을 잡을 수 있는 희망이 칼질이라니. 세상에나, 망조가 들어도 이렇게 망조가 들 줄이야···.
‘아. 망했지.’
기순은 할 말을 잃었다.
[치익 ······. 치이-] [놈이 다시 이동한다.]도망치지 않고 본래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괴물 곰은 어느새 박격포가 있던 공터에 도착했다. 박격포탄을 쏘면서 피어오른 장약 냄새를 맡았음에도 놈은 뛰어들지 않았다.
크게 원을 그리며 공터를 살핀 놈이 인기척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벌떡 일어서며 분노의 포효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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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그 울림소리가 멈추기 전, 곰의 후방을 점하고 달려들었다.
휙- 가까워지는 뒷발.
‘이대로 뒷다리의 힘줄을 하나 끊고···.’
이클립스를 휘두르려는 찰나.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섬찟섬찟함.
수면을 타고 비행하는 뇌격기처럼 달려가던 마루가 횡으로 휘두르던 이클립스의 각도를 바꿨다.
푹- 땅에 박힌 이클립스가 대지를 가르며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버린 마루가 뒤로 물러섰다.
텁-!!!
허공을 삼키는 거대한 주둥이가 빈 공기를 물어뜯곤 재차 입을 벌렸다.
크아-!
뒤로 물러서던 마루가 빙글 몸을 돌려 쭉 뻗은 침엽수를 밟고 올라가기 시작하자, 마루를 바짝 쫓던 곰의 앞발이 침엽수를 후려쳤다.
둘레가 2~3m는 될 법한 굵직한 나무가 한 방에 꺾여 나갔지만, 마루는 이미 옆 나무로 점프하며 침엽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긴 뒤였다.
‘놈이 알아챘나?’
아니. 놈은 알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분노의 포효를 한 게 유인이었다.
놈은 공터를 돌면서 자연스럽게 바람의 방향에 따른 위치를 바꿨고, 그걸 통해 마루의 위치를 특정했던 것.
괴수의 차력쇼에 정신이 팔린 것이 실수였다.
이에 더해 곰의 이동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빨라 김 양이 타이머를 맞춘 시간과 틀어진 결과 이런 틈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지금 저놈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영악스러운지 보이기 시작했다.
놈은 꺾어진 침엽수를 확인하는 것처럼 가지를 쳐내면서 슬금슬금 마루가 숨어있는 곳을 향해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쾅- 푸쉬시시시식-
타이머가 다됐는지 공터에서 최루탄이 폭발하며 매캐한 냄새가 사방을 채우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진 곰이 어벙한 연기를 집어치우고 마루가 숨어있는 나무를 향해 돌진했다.
파공음(破空音)이 날 정도로 맹렬한 돌진. 작은 건물 크기의 거체가 움직였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가속도를 죽이지 않고 휘둘러진 앞발.
횡으로 레프트 한 번, 몸을 일으키면서 라이트 대각선. 첫 방에 생나무가 뜯겨버렸고 라이트 대각선 공격이 나무에 올라서 있는 마루를 노렸다.
마루는 그 휘두름을 가볍게 피했지만, 물리적인 여파는 생각하지 못했다.
괴물 곰의 앞발이 휘둘러진 속도와 발바닥 면적이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경험도 상상도 해본 적 없었기 때문.
?
특유의 위기 감각이 가진 허점이 드러났다. 마루의 반응 속도를 생각하면 전혀 위험하지 않은 공격이었고, 슬쩍 피하면 그만이었기에 두근거림이나 섬찟함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약점이 됐다. 아무리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지만, 그 대각선 공격의 후폭풍은 아니었던 것.
거대한 강철 부채를 아음속으로 휘둘렀을 때 생길 법한 강풍이 마루를 덮쳤다.
‘미친···.’
몸이 붕 떠오르며 빙글 중심이 흐트러졌다. 그렇게 중심을 잃고 떠오르는 걸 노렸다는 듯 쩍 벌어진 입이 마루를 노렸다.
크와아아!
제트팩은 없지만, 비상용 자세 제어 가스 분사기는 있었기에.
푸식-
공중에서 자세를 되잡은 마루가 벌어진 주둥이 위쪽을 향해 이클립스를 찔러 넣었다.
!
콧구멍 한쪽을 푹 찌르고 들어간 칼날.
비율로 보면 콧구멍 언저리가 작은 이쑤시개로 찔린 듯한 모습이었지만, 고통은 그렇지 않았다.
끄엉!!!
곰의 쩍 벌어진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