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9)
러스트 [RUST]-59
최 전무는 자신의 오른쪽 발등을 노려봤다. 쪽팔리고 쪽팔렸다. 그것보다 더 짜증 나는 건 놈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눈으로도.
마지막 ‘퇴격 머리’가 아직도 아른거렸다. 분명히 최고의 일격이었다. 헌대, 그놈은 그마저도 피하고 발등에 칼을 박아 넣었다. 그것도 알록달록 장미가 그려진 식칼을···. 능욕이었다.
‘씨발. 칙쇼. 좆같은 고노야로.’
최 전무는 일본 유학 시절에도 느껴보지 못한 굴욕감과 치욕감, 분노에 몸서리쳤다. 같이 내려간 직속 부하들이 거의 전부 녀석에게 썰렸다. 축차 투입된 결과였다. 기다렸다가 한 번에 갔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놈이었는데, 그랬다가는 자기가 죽었을 거다.
“썅! 빌어먹을! 개 좆같은 백정 새끼한테.”
본능으로 칼질하는 새끼를 잡지 못하다니, 그놈의 재능은 인정했다. 하지만 고작 ‘본능’이었다. 근데 그걸 못 잡아? ‘퇴격 머리’도 아쉬웠지만, 직속 애들이 썰려가며 만든 기회를 날린 것도 아쉬웠다.
그래도 놈의 사지에 칼이 닿기는 했는데···. 치명상은 아니겠지? 놈이 콱 쇳독 올라서 뒈지면 좋겠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쇳독이라니. 아무래도 다음에는 같은 수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도 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지 않는데, 짐승 같은 놈이 그럴 리 없었다.
후- 미치도록 술·담배가 당겼다.
디디디디딕
디디디디직
회사에서 온 개톡이었다. 최 전무는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폰을 열자, 곱상하게 생긴 새끼의 상판이 하나 떴다.
‘뭐야 이건?’
유 이사가 보낸 톡이었다.
‘이걸 어쩌라고?’
[이놈이, 부산 로열 마리나에서 본 놈인가?]?!
잠시, 잠깐만.
놈의 얼굴. 현장에서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놈이 방탄 마스크를 쓰기 전, 잠시 드러난 녀석의 얼굴. 곱상하게 생겨서 회도 못 먹을 것 같이 생긴······. 이놈 맞는 거 같은데? 정면 사진이랑 측면에서 본 것이라 한눈에 바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계속 볼수록 이 새끼가 그놈 같았다.
근데, 유 이사 년은 어떻게 이놈을 알고 있지? 사진까지 떡하니? 설마?
[이놈의 사진은 어떻게 구했습니까? 본래 알던 놈입니까?] [···최 전무, 당신이 이기영이에게 찾으라고 했던 마루라는 놈이다.]아- 씨발- 근데 그놈이, 아- 씨발.
입에서 욕만 나왔다.
[놈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 가능한가?] [···로열 마리나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이후 샬롯과 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바로 정리하느라 그 이상의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녀석은 배에 타고 있을 확률이 높겠군.]유 이사와 같은 생각이었다. 출항하는 배마다 꼬리를 달아놓거나, 마리나 관리실을 이용해 위치추적기를 붙이거나. 아니면 아예 마리나에 정박하고 있는 배의 식별 코드를 몽땅 받은 뒤 하나씩 확인하는 방법도 있었다. 놈이 만약 배에 타고 있다면 계류하고 있는 배 전부를 뒤집으면 됐다. 있다면 걸리겠지.
지금 바로 당장은 힘들었다. 부산지부는 사실상 폐쇄, 살아남은 직원들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리할 것도 넘쳤는데, 자신도 부상이었다.
[내일까지 위치 확인하겠습니다.] [···내일?] [현재 가용인원 모두 후속 처리에 투입되었고 나머지는 치료받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알고 있지.]씨발 이럴 거면 전화로 하든가. 톡질은 무슨.
후- 톡을 끝낸 최 전무가, 가용인원을 확인했다. 샬롯과 협약을 맺은 뒤, 위로 올라갈 애들이 올라가 버려서, 인원이 정말 부족했다.
‘용역이라도 써야 하나?’
======
======
김 양은 짱박혔다. 아주 콕. 나름 구경하기 좋은 위치를 찾아서 짱박았는데, 초반에는 별 의미 없었다. 연막탄까지고 화염병 터지고 총소리 나고, 그럼 뭐하나? 연기 때문에 제대로 보이는 게 없는걸.
그나마 구경한 거라곤 저 멀리 마루 놈 근처에서 벌어진 김수현과 이기영의 1:1 대결 정도? 쌍안경으로 봐서 딱히 웅장한 느낌은 없었지만, 비장미는 제법 있었다. 그 뒤에는 다시 연막과 화염병 터지는 소리, 기관단총에서 총알 토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15명 넘는 사람들이 레펠 강하를 했다. 뭔데? 뭔데! 뭐야?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봤지만, 역시나 시야를 절반 이상 가리는 연기. 연막탄 좀 작작까지.
하지만 확실한 건 백정은 백정이라는 거, 언뜻언뜻 스치는 그림자만 봤는데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연막+백정 조합은 어지간한 애들은 몰살이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루가 다르고, 한 시간이 다르게 살벌해지는 백정이었다.
어쩐지 백정이 칼 들고 있는 것만 생각해도 금괴로 웅장해진 가슴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아그작-
어?
버릇대로 깔아놨던 깨진 유리 조각이 밟히는 소리. 설마 회사?
김 양은 바로 몸을 숨겼다. 잠시 뒤, 전신을 갑옷 같은 걸 입은 남자가 바렛을 들고 들어왔다. 바렛? 바렛이었다!
회사에 그렇게 요청해도 주지 않았던 바렛.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씹혔던 바렛. 심지어 존나 뚱뚱한 소음기까지 달린 바렛!
12.7mm 탄환이었다. 주로 썼던 7.62mm 총알이랑 비교하지 마라!
김 양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바렛 무겁지. 그래, 무거워. 어쩌면 개 무거울지 몰라. 소 무거워도 좋아.
남자는 김 양이 관찰하던 바로 그 자리에 자리를 잡더니, 연막 속에서 불꽃이 보이는 곳을 향해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낮고 묵직하고 큰 소음. 딱 들으니 알겠다. 신형이다! 아싸!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쏘다 말고 노가리 까는 것을 보니 슬슬 파장하는 분위기였다.
펑! 펑!
약쟁이들의 머리통이 정말 수박처럼 터졌다.
역시 12.7mm! 김 양은 이제까지 자기가 크기에 집착하는 여자는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저걸 보라. 저 화끈한 결과를 보라!
다 개소리! 커야 한다. 모름지기 커야 한다. 저 바닥까지 진동하는 것을 보라! 김 양은 두 손 가득. 바렛을 껴안고 싶었다.
‘참아야 해. 참아야 해.’
김 양의 다짐과는 달리,
스윽- 왼손의 발터 P22가 바렛을 쏘고 있는 직원의 뒤통수를 향했다.
퉁! 퉁퉁!
======
======
씨발-
마루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뚝을 지혈했다. 팔뚝뿐 아니라, 어깨와 허벅지 부분에도 자상이 있었다. 제일 심한 곳은 팔뚝. 잘못했으면 팔목이 날아갈 뻔했다.
다 같이 한 번에 덤비는 것도 무서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인 자들이 축차 투입되는 것도 무시할 게 못 됐다. 처음 몇 명은 어렵지 않게 처리했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집중력은 떨어졌고, 끝없어 보였던 체력도 결국 끝이 보였다.
체력이 떨어지자 순발력도 떨어졌다. 집중력이 떨어지자 반응 속도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썩소 아재가 달려들었다.
발등에 칼이 꽂혔던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걸음걸음 피가 흘러 붉은 발자국을 만들면서, 자기 부하들을 고기 방패로 써가면서 칼질을 해댔다.
마루도 질세라 총질과 칼질을 번갈아 해가며 싸웠지만, 역시 제대로 배운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진이 빠져서 그런지, 지친 상태에서는 빠른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강한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중학교 시절 2년 배운 검도로는 턱도 없었다.
“야- 이 새끼- 상처 났잖아. 씨발 상처도 크잖아!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당장 병원에를 가야지.”
기순이 마루의 상처를 보더니 팔딱팔딱 호들갑 떨기 시작했다. 그에 마루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병원에 가자고? 미쳤냐? 조직 새끼들이야 자기들이 관리하는 병원에 가서 치료받겠지만, 내가 칼 맞은 상처 가지고 병원 가면 그냥 경찰에 신고야. 그래서 경찰 오면 전부 칼질하고 탈출하라고?”
“아니. 씨발!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당장 상처부터 치료해야지. 이거 꿰매야겠는데? 너 씨발 백정이라며? 칼 좀 쓴다면서 백정이니 뭐니 하더니, 말하자마자 이 지랄이냐? 엉?”
“붕대나 집어줘. 압박이나 하게.”
마루의 말에 기순이 등짝 스메싱으로 화답했다.
“붕대? 압박? 씹새꺄 닥쳐. 일단 병원 가자. 병원에서 꿰매고 바로 런하자. 어차피 오늘 튀기로 했잖아. 지금 당장 가기는 식량이 많이 모자란 데, 제주도를 가든 여수를 가든 해서 구하는 거로 하고 치료받고 튀자.”
기순의 말에 마루가 끄응차 몸을 일으켰다.
“아니, 잠깐. 이게 지금 상황에서도 먹힐지는 모르겠는데, 이기영 과장이라고 호텔 샬롯 보안과장이랑 이야기를 좀 했었어.”
“호텔 보안과장이랑 말 한 게,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인데. 아 빨리 병원 가자고!”
“시꺼- 이 정도는 걍 스친 거야. 뼈 안 다치고 근육, 신경 토막 나지 않았으면 됐지. 일단 우리가 호텔 샬롯을 적대하지만 않으면 호텔 샬롯에서 최대 예우를 해준다고 했으니까 치료랑, 우리 필요한 물자. 호텔 샬롯에게 문의하자. 그게 제일 낫겠다.”
마루의 말에 기순의 실눈이 살짝 커졌다.
“그래? 그럼 후딱 연락하자. 내가 전화할까? 바로 사장한테 하는 건 그렇고, 이기영 과장이라고 했지? 그 아재한테 먼저 하자. 지금 바로 한다? 아 맞다. 하는 김에 차도 보내 달라고 하고.”
“그래. 그래.”
마루는 압박붕대로 일단 꽉 틀어 묶었다. 몸도 마음도 가슴도 쓰라렸다. 역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곱씹어볼 말이었다.
기순이 주변을 휙 둘러보더니 말했다.
“근데 김 양은 어디에 있냐?”
“뭐. 어디에 짱박혀있지 않았을까?”
마루도 힘들고 귀찮았다. 연막탄 때문일까? 전 같았으면 멀리서 지원사격도 좀 있고 그랬을 텐데, 그러고 보니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썩소 아재 조질 때, 좀 도와줬으면 칼침 맞지 않고 그랬을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진짜 버리고 가기가 애매했다. 원거리 지원이 있고 없고 편한 거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어떻게 두고 가겠는가? 어디서 김 양 만한 원거리가 뚝 떨어질 것도 아니고.
‘아- 그래도 한 번 잡도리 하긴 해야겠다.’
말도 없이 짱박혀? 존나 다구리 당하고 있었는데?
마루가 칼을 집어 들었다. 썩소 아재가 튀면서 버리고 간 칼이었다.
슥- 슥-
날이 조금 상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야- 팔 다친 새끼가 칼은 왜 갈고 지랄이야. 정신 사나워. 좀 가만히 있어. 전화 좀 하자. 전화한다니까!”
슥- 슥-
심은영은 이기영 과장이 많이 다쳤다는 말에 기분이 불편했다.
그나마 의식도 있고, 주요 장기가 다친 게 아니라고 하니, 치료만 잘 받으면 복귀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자기가 처음으로 마음이 동해 받은 가신. 심가의 방계도 아니었고, 몇 대를 돈으로 묶인 가신 출신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기의 요구를 목숨 걸고 수행하려고 하다니.
심은영은 이기영 과장이 폰으로 보내온 김수현 실장을 조지는 영상에 기분이 좋았다가도, 그 영상 속 이기영 과장이 배신당해 중상이라니,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여러모로 그랬다.
복수를 찍은 영상은 곧 부산에 있는 우에노구미원들과 일본에 있는 구미원들에게 보내질 것이다. 본인 심은영은 반드시 복수한다. 너희가 모시는 나는 결코 너희들을 잊지 않는다. 이건 한국에 있으면서 일본 조직을 제어 해야 하는 심은영에게 있어서 중요한 메시지였다.
이런 메시지를 만들어준 이기영 과장에게, 그냥 넘어가는 것은 심은영의 자존심 문제였다.
딸깍-
열쇠로 잠긴 가운데 서랍을 열자, 충격 방지 처리된 보관함에 자그마한 금속 케이스 3개가 놓여 있었다. 심은영의 손이 케이스를 향할 때 전화가 울렸다.
“네. 호텔 샬롯 심은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전 하마루와 김 양의 동료 김기순이라고 합니다. 전화 통화 괜찮으신지요.]“네. 통화 괜찮아요. 실례지만 어쩐 일이신지···.”
[다름이 아니라, 마루가 이기영 과장님과 계약을 조율했던 건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기영 과장님에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떠서 사장님께 연락드리게 됐습니다.]“아- 그럼 저희 호텔 샬롯과 전속계약을 맺으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심은영 사장의 톤 높아진 목소리에, 기순이 살짝 놀라 답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요. 다른 제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다른 제안이라면, 호텔 샬롯에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군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호텔 샬롯에게 적대하는 일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기영 과장님께서 제안했던, 최대한의 예우를 지금부터 받고자 합니다.]“그럼요. 전속계약이 아닌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렇게 하나씩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또 좋은 일이 있지 않겠어요? 무엇을 부탁하시든지 호텔 샬롯, 저 심은영은 약속을 지킨답니다. 최대한의 예우가 무엇인지 보여드리지요.”
무언가 기백이 넘치는 심은영의 대답에 기순이 침을 삼켰다.
[그럼 우선 마루가 다쳤습니다. 상해 부위가 좀 커서 빠르고 안전한 병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스윽-]“네. 그리고요?”
[장거리 항행에 필요한 물자가 부족합니다. 로열 마리나에서 접전이 벌어져 선적하기 위해 쌓아둔 물품 중 상한 것들이 생겨서요. 사아아악-]“목록을 비서실로 보내주세요. 오늘 전부 선적해드리지요.”
[그리고, 수륙양용자동차나 오토바이가 필요합니다. 슥- 적재 가능한 공간이 있는 것으로 2대, 스으윽- 중고나 신품 상관없이 구하실 수 있는지요.]“부산에서 호텔 샬롯이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면 부산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는 소립니다. 수배한 뒤 결과는 비서실에서 알려드릴 겁니다.]
“[감사합니다. 사아아아아악- 사장님]
전화기 너머 기순이 꾸벅 배꼽 인사하는 것이 느껴진 심은영이 훗-하고 작게 웃었다.
근데 중간중간 나는 소리는 무슨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