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91)
러스트 [RUST]-591
강철 냄새 풍기는 인간들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어미 곰은 여유가 흘러넘쳤다. 그간의 경험상 장갑차라 불리는 깡통을 타고 온 인간들도 별거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들어있는 깡통 3개가 긴 총을 달고 있었지만, 저것보다 더 큰 것에도 맞아봤었다. 대포라 불리는 인간의 무기였는데 많이 아프기는 했지만,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그보다 작은 건데 위험할 리 없었다. 걱정인 것은 생각보다 인간이 적게 와서 아이들이 배불리 먹지 못할까 싶은 것일 뿐.
아무리 적게 왔어도 40~50마리는 왔겠지. 어미 곰이 전차와 기갑병이 다가오는 쪽으로 속도를 높였다.
[곰이 옵니다.]김 양은 전차병의 외침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당연한 거 아니겠어?
그나저나 새끼를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곰이 달려드네.
그러니까 곰도 이쪽을 노리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누가 누굴 먹는지 해보자고.’
120mm 55구경장 전차 주포의 최대 유효 사거리는 3km 지금은 막 2km대로 가까워졌으니 새끼들에게 인사하기엔 충분한 거리였다.
[계속 전진. 새끼에게 조준 즉시 발사.]유인하지 않아도 어미 곰이 달려들고 있는데 꼭 새끼에게 쏴야 하느냐는 신병의 반응에 김 양이 대답했다.
[저것들이 사람을 얼마나 잡아먹었을 줄 알고. 뒈지고 싶음? 쏘셈.]새끼가 처맞아야 눈깔이 휙 돌아서 달려들 것 아닌가?
[발사!!!]쾅! 쾅! 콰앙!
전차 3대가 동시에 발포했다.
어미가 시킨 대로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새끼들은 훌륭한 표적이었다. 한 발은 빗나갔고 두 발이 각각 적중했다.
폭음과 함께 새끼에게 둘렀던 가죽이 찢어지며 애처로운 소리가 숲에 퍼졌다.
께에이이이이에에-
전차를 향해 달려들던 어미는 인간의 공격이 자신이 아닌 새끼들을 노린 것을 확인하곤 포효했다.
■■■■■■■■■■■■■■■■!!!
말 그대로 눈이 돌아가 달려드는 어미 곰. 울퉁불퉁한 비포장 숲을 후두두두- 달려오는 어미 곰이 숨겨진 올무에 걸렸다.
쿵-
달리던 가속도 그대로 올무에 걸려 엎어지자, 굵은 나무 뒤와 빼곡한 잡목에 숨어있던 기갑병이 금속 케이블을 들고 엎어진 어미 곰을 향해 달려들었다.
쿠우어어어어어어어어!
곰의 외침과 몸부림에도 4.5m에 달하는 금속 거인 넷이 몸을 일으키려는 어미 곰을 향해 케이블을 던져 엮기 시작했다.
끼기끼깅-
[What the Fu···.] [케이블이 끊어집니다.]부하들의 외침에 로이 스턴이 더 크게 소리 질렀다.
[계속 감아. 둘둘 감으라고! 3분. 아니 2분만 버틸 정도면 돼!]감고 엮고 묶고 그게 실시간으로 끊어지는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끊깁니다!!!] [씨발. 한 번만 더 엮어봐!]티디디디딩–
[오른쪽 앞발 끊겼습니다!] [뒷다리에 집중한다. 뒷다리!] [앞다리는 포기해! 뒷다리만 엮어!]어미 곰의 몸부림은 실로 대단했다.
다급하게 가져온 견인 케이블이 버티지 못하고 끊어지기 시작했고, 끊어지지 않은 케이블에 엮인 굵직한 나무는 통째로 뽑히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다시 풀려날 판.
[소령님!] [!]로이 스턴 소령이 조종하는 기갑병과 그에 반응한 AI 기갑병이 발악하는 곰을 향해 끝이 뾰족한 메이스를 꼬나쥐고 달려들었다. 목표는 머리와 눈.
곰의 눈과 콧잔등을 향해 뾰족한 메이스 끝으로 찌르고 휘두르자, 어미 곰은 복싱의 위빙(Weaving)하듯 상체를 흔들어 공격을 피하곤 풀려난 앞발을 벼락같이 휘둘렀다.
인공지능 제어 기갑병이 긴급 회피 동작을 펼쳤지만, 어미의 공격이 더 빨랐다. 기갑병의 머리통과 왼쪽 어깨가 통째로 박살 난 기갑병이 주저앉았다.
강철 거인 하나를 터트린 어미 곰이 흉흉하게 로이 스턴의 기갑병을 노렸다. 입으로 물려고 하는 것처럼 속인 뒤, 바닥을 깔 듯 휩쓰는 앞발 공격.
갈고리처럼 휘어진 앞발톱에 발목이 걸린 기갑병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이어진 내려찍기를 반파된 인공지능 기갑병이 몸을 던져 대신 맞았다.
콰드드득-
로이 스턴은 그 틈을 타 곰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쿠직- 메이스의 뾰족한 끝이 어미 곰의 눈알을 아래에서 위로 꿰뚫었다.
꾸어어어엉!
퍼그극- 스치고 지나간 앞발에 기갑병의 팔이 뭉개지고 가슴 장갑이 찢어졌다. 가슴에 있는 조종석 앞부분이 드러날 정도로 강한 충격에 끈 떨어진 인형처럼 처박힌 로이 스턴의 기갑병.
[소령님!] [치이이- 쿨럭- 이쪽으로 오지 말고 묶어! 치직]그렇게 번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로이 스턴의 부하들은 곰의 하체를 단단하게 엮는 데 성공하고야 말았고, 이어서 김 양이 이끄는 전차가 도착했다.
[머리를 노려!]3대의 전차가 바로 코앞에서 주포를 쏴대자, 이미 한쪽 눈을 잃은 어미 곰은 머리를 가리고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웅크림이 어미 곰이 할 수 있던 마지막 움직임이었다.
[움직임 봉쇄했음!]김 양의 외침에 기순이 벙커 버스터 순항 미사일을 발사했다.
콰아아아아앙!
수직으로 떨어진 벙커 버스터가 어미 곰의 몸통을 파고 들어가 폭발했다. 먼저 잡은 수컷 곰과 마찬가지로 어미 곰도 초(超)재생 능력이 있어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그뿐.
재생에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 썼기에 가죽이 약해졌고 근육과 뼈가 약해졌다. 제대로 먹히지 않던 120mm 포격이 어미 곰의 몸통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고. 특수탄 하나가 곰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는 것으로 처절했던 사냥이 끝났다.
전차 위에 있던 김 양이 포탑을 탕탕-두들기며 말했다.
[전진.]새끼도 잡아야지.
묵직한 엔진음과 함께 신성 레오 전차가 냉혹한 전진을 시작했다.
새끼들은 어미 곰이 가만히 있으라는 곳에 있었다. 120mm 55구경장 전차포에 맞았음에도 걸치고 있던 가죽이 어느 정도 보호역할을 했는지 큰 상처가 없었다.
[새끼를 길들여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러시아계 캐나다인 병사가 새끼 곰을 길들여 보는 걸 권했다. 새끼니까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고.
[사람 먹어서 안 됨.]김 양은 냉정했다. 개도 사람에게 입질한 놈을 반드시 죽여야 하는 법. 하물며 적게 잡아도 백 단위 많게는 천 단위 넘게 사람을 먹은 짐승을 살려줄 순 없었다.
쾅! 쾅쾅!
끼에에에-
끼이이잉-
새끼 곰의 처절한 울음소리에도 120mm 주포가 묵묵히 불꽃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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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넘어 도망친 곰은 결국 놓치고 말았다. 까마귀 정찰대를 붙였지만, 갑작스러운 눈보라가 몰아쳐 추격을 계속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성과는 확실했으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제법 많은 성과가 있었다. 버펄로와 무스, 엘크를 잡고 영토 밖으로 쫓아냈다. 왕국에 귀의한 늑대들과는 달리 인간 사냥에 맛을 들린 거대 늑대도 마찬가지, 죽이고 쫓아냈으니 신성 왕국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으리라.
“도망친 곰이 문제긴 한데, 너 없어도 잡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됐으니까 그쪽도 별일 없을 거다.”
북부에서 시작된 변종 웨이브는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되기 전 마무리 됐다. 그쪽은 그렇다 치고 성과는 또 있었다.
이번 변종 웨이브가 무기체계를 점검할 계기가 된 것이었다. 신형 지뢰 모듈이 가진 오류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인공지능 파일럿의 유용성이 증명되기도 했다.
어미 곰과의 사투에서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기갑병이 로이 스턴을 감싸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터였다.
전부 캐나다 지역, 접경 지역에 인공지능을 투입하는데 적극적이었던 마루는 흡족했다. 전기 자동차 자율주행보다 기갑병을 조종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음에도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인공지능으로 기갑병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기갑병을 중심으로 북부 방어체계를 짜는 것도 괜찮아 보이지 않아?”
“저번에도 말했지만···. 전면적으로 인공지능 굴리는 건 위험해. 이번에 확실히 알았어. 진짜 위험할 수 있겠다 싶더라.”
같은 결과를 봤음에도 마루와 기순의 반응은 달랐다.
“로이 스턴을 구한 것도 인공지능의 선택 문제였잖아. 인간을 지킨다는 선택을 한 걸 보면 인공지능으로 기갑병을 굴리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적이 인간이라면? 예를 들어 다른 인간과 전쟁 중이라고 치자. 생포한 적을 이송하는 도중 괴수가 공격해왔다고 가정하면? 적을 죽도록 내버려둬야 하나? 아니면 적도 인간이니까 적을 지키기 위해 기체의 손상을 무릅쓰고 괴수와 교전해야 하나?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알겠는데, 말 그대로 인공지능이잖아? 판단 사례를 쌓고 학습시키면 될 일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문제라는 거야. 어떤 근거를 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저번보다 더 강경해진 기순의 태도에 마루가 두 손 들었다.
“인공지능 이야긴 다음에 하자.”
“그래.”
이번 작전으로 얻은 교훈은 많았다.
“변이 괴수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무기체계를 바꿔야 할 것 같다.”
거점요새에서 사용하는 주력 화기는 30mm 기관포와 12.7mm 기관총 그리고 81mm 박격포였다.
인간과 괴수 양쪽에 전부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고려한 끝에 나온 화력 구성이었지만, 이번 사태를 놓고 봤을 땐 기대 이하의 결과였다.
“그렇지. 아무래도 30mm 기관포나 81mm 박격포로는 먹히지 않았으니까.”
대(對)괴수용 특수탄이라고 해도, 어깨높이 6~7m짜리 버펄로와 무스의 돌격을 막긴 어려웠다. 81mm 박격포는 말할 것도 없었고.
“요새에는 해군 함선용 속사포를 도입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기는 한데.”
“함포를 달자고?”
“해군 함포를 쓰면 분당 20발까지 쓰는 포를 달 수 있으니까. 사격통제장치까지 그대로 이식하면 명중률도 괜찮을 것 같고.”
“그렇기는 하겠네. 근데 요새 하나당 최소 5~6문에서 많게는 9~10문은 있어야 할 텐데? 그거 당장 감당할 수 있겠냐?”
Mk. 45, 5인치(127mm) 62구경장 함포를 기반으로 생각한다고 가정했을 때, 북부지역의 거점요새의 숫자만도 1,000곳이 넘었다.
보급 거점과 중간 마을까지 합하면 물경 1,200곳에 달했으니, 포는 천에서 만 단위. 속사포를 쓰는 포인지라, 포탄은 천만 단위로 뽑아야 할 판이었다.
거기에 전차와 기갑병까지 배치하려고 하면···.
“······.”
“······.”
몇 년짜리 장기 계획이 될 상황이었다. 마루가 현실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일단 도로와 접한 요새부터 시작하자.”
“변이 괴수들도 도로를 이용하니까 그게 맞겠네. 그리고?”
“하나나 둘 건너 하나씩 교체하는 거로 하자. 요새에 포가 들어갔으면 들어가지 못한 곳에는 전차를 배치하고, 전차와 포가 없는 곳에는 기갑병을 넣고.”
“그렇게 하는 게 제일 현실적이겠네.”
기순이 동의했다.
“그건 그렇게 간다고 치고, 이쪽 동네 거점요새에서 까마귀가 더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요구하던데 방법이 없을까?”
현재 캐나다 북부를 비롯해 뉴포트뉴스 조선소 같은 열악한 환경에는 신성 까마귀들이 동원되고 있었다.
신앙과 약으로 무장한 신성 까마귀들은 혹독한 환경에 배치될지라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다른 까마귀들은 아니었다.
“일반 까마귀들은 워라벨을 중요시해서 어려워. 산성 갈매기 새끼들이 거의 다 자랐으니 조선소는 갈매기에게 맡기고 거기 있는 신성 까마귀들을 위로 올려봐야지.”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거둔 갈매기 알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거의 다 자라 교육 중이었다. 신성 까마귀들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으니, 날이 풀리면 충분히 한 마리 몫은 할 것으로 보였다.
“오. 그러면 얼추 빠듯하게 돌아갈 거 같다.”
기순이 보급 관련 서류를 보며 한시름 놓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번 겨울 고기 걱정은 없겠네.”
늑대와 잡다한 것들은 빼고 버펄로, 무스 고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양이었으니, 풍족한 겨울이 되리라.
아련한 기순의 표정을 본 마루가 슬그머니 자리를 뜨려고 하자, 가느다란 기순의 눈이 번뜩였다.
“왕님 어디 가시게? 여기 널린 일거리는 어떻게 하시려고?”
“······.”
서류가 눈처럼 쌓이는 겨울. 두 사람이 사이좋게 갈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