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92)
러스트 [RUST]-592
마루와 기순이 전후(?) 처리를 골몰하는 동안 김 양 또한 사후(?) 시식에 전념하고 있었다.
“여기 말씀하신 대로 끓여왔습니다.”
한참을 푹 고아서 뽀얀 국물이 우러난 ‘곰’탕 한 그릇을 먼저 눈으로 시식한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국물 색은 합격.
그럼 어디.
소금과 후추를 치기 전 국물 맛을 먼저 보는 김 양이었다.
후루룩-
뭔가 크아- 흐어- 캬아- 같은 탄성이 나와야 할 상황인데 나오지 않고 있었다.
미묘한 표정이 된 김 양이 다시 한 번 국물을 떠먹었다.
갸웃.
“이거 맛이 왜 이럼?”
요리사에게 바로 확인하는 김 양.
캐나다인 요리사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예? 알려주신 방법 그대로 끓였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곰’탕을 먹으면 막 힘이 불끈불끈하고 열이 확 오르고 시원하고 그래야 하지 않음? 이건 뭔가 맹숭맹숭하고 엑기스 다 빠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김 양의 클레임(Claim)에 요리사는 난감했다. 해달라는 대로 요리했는데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렇게 말씀하셔도···.”
“에잇. 이거 포장되지? 하나. 아니, 두 개 포장해줘.”
김 양은 새로 끓인 곰탕을 포장해 마루와 기순이 골머리 쓰고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오 그건 뭐냐?”
두 손에 묵직하게 들린 포장 용기를 확인한 기순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것 좀 먹어 보셈. 이번에 잡은 ‘곰’탕인데 뭔가 미묘함.”
“미묘해?”
마루가 미묘하다는 말에 국물을 조금 먹어보곤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김 양의 말대로 뭔가 좀 묘했다. 맛은 괜찮은데, 특유의 힘이 솟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할까?
기순도 그걸 느꼈는지 입맛을 쩝쩝 다시곤. 수저를 내려놓았다.
“맛은 있는데, 전에 먹은 거 같지 않네.”
“그렇지?”
김 양의 시선이 기순의 평가를 듣곤 바로 마루에게 향했다.
“그러네.”
마루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힘이 나지 않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전에 잡은 것들은 다 괜찮았는데 이번에 잡은 것들은 뭐가 문제일까?
‘덩치가 큰 놈이거나 능력이 강한 놈일수록 몸보신 효과가 좋았는데···.’
어쨌든 그렇지 않아도 배가 출출했던 터라 마루와 기순은 곰탕을 뚝딱 해치웠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야 몸이 조금 후끈해지는 것을 보니, 영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기순이 이마에 송송 솟은 땀방울을 소매로 슥-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 먹고 나니까 땀이 좀 나네.”
“진짜?”
“그래 한 반쯤 먹으니까 그때부터 느낌이 좀 있더라.”
“오-”
완전히 맹탕은 아니라는 말에 김 양이 반색했다.
“아무래도 이거 초(超)재생 때문에 에너지를 다 소모해서 그런 거 같다.”
사과 주스로 입을 헹군 마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벙커 버스터 맞고도 죽지 않고 다시 회복하려고 하면서 가죽과 털이 푸석푸석하게 변했던 걸 보면, 에너지든 뭐든 전부 소모했다고 여겨져.”
“그래서 보신 효과가 떨어졌다는 것임?”
“아마도. 어미 곰도 끓여보면 알겠지. 똑같은지.”
마루의 예상대로 전신이 너덜너덜해진 어미 곰도 마찬가지. 마루가 잡은 수컷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니, 가설이 옳다고 봐야 했다.
“그럼 작은놈은 괜찮겠네?”
새끼라고 해도 냉동탑차 크기인지라, 김 양은 옳다구나 확인해보자. 양고기도 램(lamb)이 맛있지 않던가?
무엇보다 근거리에서 전차 주포로 머리통을 날려서 재생이고 뭐고 할 시간이 없었으니, 엑기스가 빠져나가지 않았으리라.
“오- 역시 빨리 휘리릭- 잡는 게 좋음.”
새끼 ‘곰’탕을 흡족하게 먹던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효과가 떨어지는 어미 곰탕과 섞으면 어떻게 될까?
“그거 있잖음. 일본 음식. 어미랑 새끼랑 같이 한큐에 먹는 거.”
“오야코동?(親子丼 : おやこどんぶり, 오야코돈부리)”
“응. 그거. 그런 식으로 해먹는 게 좋을 것 같음.”
“······.”
“······.”
뭐? 왜?
힘들게 잡았는데 효율적으로 먹어야지.
전부 맛있게 먹으려면 그 방법이 좋은 거 아님?
그렇게 곰고기는 전부 하나로 뒤섞여 가공육 처리가 됐고, 뼈도 한 번에 끓이는 통합 곰탕 베이스로 만들어졌다.
산더미처럼 쌓인 고기들이 디트로이트를 비롯해 새로 재건된 도시들로 분배됐고, 기온은 점차 하강하기 시작했다.
“요새 월동 준비는 끝났으면 돌아가자.”
열흘 가까이 갈린 덕에, 귀환병들의 병력 재배치를 시작으로 보급 계획까지 전부 끝낸 마루와 기순이었다.
로이 스턴과 부하들은 캐나다 북부 보급 요새에서 지원대대로 활동하기로 했으니 괴수 곰이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쉽게 무너질 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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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디트로이트는 다시 폭설에 묻히기 시작했다.
“우리 작년에도 이랬었나?”
“그랬음.”
5m 넘게 쌓였던 기억이 떠오른 마루가 학을 뗐다.
두 사람의 만담을 지켜보던 기순이 아련하게 가늘어진 눈으로 창밖을 봤다. 소복하게 쌓인 초밥들이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모습.
“울릉도도 장난 아니었는데. 여기도 만만치 않네.”
“한국도 날씨가 맛이 갔냐?”
“날씨만 맛이 간 게 아니지.”
기순이 씁쓸한 표정으로 하늘을 봤다.
굵직굵직한 함박눈이 쏟아지는 하늘은 온통 하얀 솜사탕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정부가 그렇게 미쳐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계엄을 선포할 줄도 몰랐고, 200만 넘게 뽑은 예비군을 굴려서 반대하는 동네를 싹 밀어 버릴 줄도 몰랐다.
“그걸 예측한 나주연이 오진 그룹을 들고 울릉도로 도망쳤는데, 결과는 뭐 다들 알다시피 그렇게 끝난 거지.”
“식인귀네. 지휘부가 그놈들이거나, 그놈들에게 홀렸거나.”
편하게 말한 김 양이었지만, 가벼운 내용은 아니었다. 정부와 군부가 전부 식인귀가 됐다는 소리였으니까.
“남부연맹의 입김이 닿았겠지?”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죠.”
나주연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중국과 일본?”
“그쪽도 변이 바이러스를 이용한 연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중국은 변이 바이러스 사태의 발생지고 일본은 약을 만들기 위해 바이러스 확산을 의도했던 나라니까 식인귀와 관련된 연구가 있다고 보는 게 맞죠.”
7개로 쪼개진 중국은 ‘사실상 내전 상태나 마찬가지.’ 라는 게 공식적인 의견이었지만, 속으로 가면 뭐가 있을지 몰랐다.
망해버린 일본도 마찬가지.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과 방사능 오염까지. 일본이라는 나라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일본열도가 없어진 건 아니었다. 중앙정부는 사라졌지만, 각 지방정부는 살아있었다. 지방정부마다 독자적으로 생존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생긴 갈등이 커져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정보는 어떻게 알았지?”
“샬롯 그룹 정보부를 통해서 알았어요. 여기 중요한 자료를 따로 모았으니 나중에 한 번 살펴보세요.”
그녀는 오진 그룹 회장 자리를 딱지치기로 얻은 게 아님을 보여줬다.
마루가 샬롯 그룹을 흡수하고 캐나다 북부 문제로 자리를 뜬 동안, 나주연은 샬롯 그룹 연구원들을 면담한 뒤 흡수했고, 정보부처 관련자들도 전부 확인한 후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해놨다.
“···수고했다.”
“아니에요. 저보다 더 많이 고행하셨잖아요.”
그런 나주연의 모습에 김 양이 흐린 눈이 됐다.
무섭도다 마연시.
분명 저년 마연시로 돌려본 뒤 하는 짓이리라.
‘누구 맘대로 샬롯 애들 면담하고 빼가고 그럼?’
나는 너를 그냥 둘 수 없다는 김 양의 무기질적인 눈빛에 나주연이 바로 대응했다.
‘마연시 Ver. 2.0 나왔어요. 성능 확실합니다.’
‘확실함?’
‘그럼요. 일단 한 번 해보시고 결정하세요.’
‘······.’
두 여자가 마연시로 다시 뭉치는 동안 마루는 나주연이 올린 자료를 훑었다.
확실히 샬롯 그룹이 억울할 만도 했다. 일본에서는 한국 기업이라고 까이고, 한국에서는 일본 기업이라고 까이고.
근데 지금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보니 일본 기업이 맞았다. 세금이나 그런 부분에서 외국 기업으로 혜택받고 있었으니까.
샬롯은 일본 기업이었기 때문에 일본 내각정보국에서 야마츠키 제약과 다카이치 신약에 투자하기를 제의했을 때 빠질 방법이 없었다.
반강제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왕에 투자한 김에 더 많이 투자해 연구 자료를 볼 수 있는 위치까지 지분을 확대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니 억지로 투자했고 나중에는 팽 당했다며 억울하다고 했던 것도 반쯤은 구라였다. 전대 회장이 한 일이라 현 회장이 책임 없다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 아니던가?
‘무엇보다 샬롯이 만든 약들은 전부 두 회사에서 나온 기술을 응용한 것이었으니.’
버서커 폴과 급속치료제, 중화제까지 전부 그랬다. 알토란 같은 제약 기술 챙겼으면 팽이라고 그랬던 것.
마루는 자료를 읽으며 살짝 어이없었다.
‘대단하네. 여러모로.’
미국 서부로 자리를 옮긴 샬롯 그룹이 급속도로 연구분야를 확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도쿄의 제약회사에서 챙겨간 백업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 전역에서 모여든 피난민 가운데 고급 인력을 흡수했기 때문.
일본은 예상보다 화학, 약학, 의학, 생물학, 유전학 분야 강국이었다. 연구 인력을 확보한 샬롯이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던 분야는 강화 인간과 각성한 능력자 쪽이었다.
인간을 강화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검은 촉수를 이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으니, 어지간하기도 했다.
‘특이 능력자만 따로 모아서 관리 중이었군.’
공기를 정화하는 능력자만 해도 그랬다. 밀폐된 공간에서 호흡하면 산소가 줄어들고 이산화탄소가 증가해 결국 질식해 죽고 만다.
하지만 공기 정화 능력자가 능력을 사용하면 이산화탄소가 줄고 산소가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졌다.
심지어 미세먼지나 가스탄의 연막도 바로 깨끗 정화했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현상.
물 정화 능력자나, 토양 정화 능력자도 마찬가지. 이들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면 방사능에 오염된 도시도 정화할 수 있을지 몰랐다.
‘능력자들의 능력을 증폭하는 연구라.’
목록은 계속됐다.
식물의 성장을 가속하는 능력.
땅속에 있는 물을 찾는 능력.
소금물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능력.
그리고 이어진 한 줄에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전기기계의 제어권을 뺏는 능력.] [전기장치를 고장 내는 능력.]이어진 실험 영상을 재생하자, 마치 거짓말 같은 내용이 있었다.
능력자로 보이는 꼬마가 컴퓨터 본체에 손을 대는 순간 모니터 화면이 자기 멋대로 바뀌며 프로그램이 작동되기 시작했다.
모니터와 마우스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그게 해킹능력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이어진 영상 손에 장갑을 낀 할아버지가 장갑을 벗고 컴퓨터를 만지자, 그대로 나가버리는 컴퓨터.
컴퓨터뿐만 아니었다. 휴대폰이든 뭐든 칩을 이용한 가전제품은 손을 대는 순간 고장 나 버렸다.
‘EMP도 아니고.’
저런 능력자가 양자컴퓨터나 인공지능 슈퍼컴퓨터에 손을 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피해를 볼 게 분명했다.
“능력자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지?”
“대부분은 외성 구역에서 관리하고 있어요. 자료에 있는 특수 능력자들은 별도로 내성에서 관리하고 있고요.”
“능력자들은 불만 없고?”
“네. 아직은 별다른 불만이 없어요. 아- 그 예전부터 있던 능력자들은 좀 그래요.”
나주연의 말에 마루의 한쪽 눈썹이 작게 씰룩였다.
“예전부터 있던 능력자?”
“제국이 되기 전 뉴욕에서 도망쳐 나온 능력자들이요. 유 이사의 배아를 가진 능력자들인데. 처우에 불만이 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때 뉴욕에서 구해준 사람들 말하는 거였다.
국토안보국 비밀 실험실 폭파하고 거기서 연구하던 유 이사 배아를 몸에 품고 도망친 여자와 그 일행.
“처우에 불만?”
“네. 감옥처럼 갇혀 지내는 게 더 이상은 싫다고.”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보안에 신경 쓴다고 하더라도 혹시 모를 일이었으니까.
만약 이쪽에서 비밀연구실 박살 내고 유 이사 배아 탈취한 자들을 데리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 좋을 게 없었다.
“애를 낳았겠네?”
“조금 됐어요.”
하긴. 진작 낳았겠지.
어쩌다 보니 유 이사와 유전자가 똑같은 자들이 넘치게 됐다. 일단 마루가 이름을 붙여준 희연이를 시작으로 제국에서 만든 클론들에 또 하나가 늘어났으니까.
쯧-
“애한테 문제는 없고?”
“네. 별다른 문제는 없어요. 그···. 유희연과 클론들이 애를 자주 찾아오는 것만 빼고요.”
“희연이랑 클론이 찾아갔다고? 클론 하나도 아니고 클론들이? 언제부터?”
어쩐지 기분이 묘해진 마루가 확인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