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09)
러스트 [RUST]-609
김 양의 엑소슈트 전술 카메라에서 보내온 영상에 중간중간 일그러짐이 심해졌다.
‘이 정도로 전파 방해가 심하다면 괴수가 바글바글하다는 뜻인데.’
그러니까 뉴욕 지하수로에서 마주쳤던 바퀴벌레나, 쥐떼 정도. 최소한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마주쳤던 뱀떼라든지. 그때 통신도 그렇고 전술 카메라 영상도 구겨졌었다.
‘아니면 방해 전파를 발산하는 괴수가 있다거나.’
어느 쪽이든 좋지 않았다.
영상 속 김 양은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그렇게 도달한 보급창고는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부서진 벽과 지붕, 여기저기 터지고 불탄 흔적.
리퍼 슈트를 장비한 채 영상을 보고 있는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치이익- 봤-음? 칙-] [치직- 삐—–]김 양 엑소슈트 후방 센서가 높은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영상이 끊겼다. 간호사가 화들짝 놀라 ‘에에엣-’ 소리를 내도 마루는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김 양이 위험할 정도라면 감각이 움직였을 터, 기분이 평온하다는 건 그녀가 잘 극복할 수 있는 사태라는 뜻이겠지.
“지금 나가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갑자기 영상이 끊겼는데”
간호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했다.
흠-
마루는 조금 더 기다려볼 심산이었지만, 간호사의 긴장한 얼굴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나간 뒤엔 차를 뒤로 빼.”
“뒤로요? 얼마나요?”
“털리도 밖으로.”
“에에? 그렇게 멀리요?”
빼려면 확실히 빼는 게 좋았다. 어설프게 뺐다가 설상차가 공격받으면 피곤했다. 무엇보다 적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은 데, 간호사에게 방어를 맡기는 건 위험했다.
“보조 인공지능 자율방어 최고 단계로 설정하고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마.”
“저. 절대로요.”
“그래. 절대로.”
“아. 알겠어요.”
마루는 은신 기능을 활성화하고 밖으로 나갔다.
뽀득-하고 눈 밟는 소리와 동시에 김 양이 있는 건너편 보급창고 방향에서 묵직한 총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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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이-
후방 센서의 고음.
김 양은 앞으로 발라당 누웠다. 이렇게 눕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어도 그녀는 거리낌 없었다.
콰득-
무언가가 먹잇감의 뒷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가, 실패하곤 다시 그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드득-
김 양은 뒹굴 몸을 뒤집어 재차 피하곤 등 댄 포복(匍匐, crawl) 자세로 20mm 체인건을 겨눴다.
?
그 짧은 순간 총구 앞에서 사라진 무엇.
[조금 전 녹화 영상 재생] [영상 재생합니다.]보조 인공지능이 HUD 한쪽 구석에 녹화 영상을 올렸다. 그곳에는 보호색으로 위장한 낯선 괴수가 있었다.
[뭐지?] [아메리카 오소리의 아종일 확률 90% 이상입니다.]삑-삐이이익—-
측면 센서 소리에 반응해 총을 겨누면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실로 놀라울 정도의 반응 속도에 은신에 가까운 보호색까지. 보고 반응하면 늦을 뿐.
후훕
김 양은 눈을 감았다.
떠올린 것은 마루의 움직임.
그 옛날 작업하다 죽을 뻔했던 일들.
보고 쏘면 늦었던 순간들을 끄집어내자 ‘생각하고 쏘자.’는 구호 아래 묻어뒀던, 쏘고 보는 본성이 살며시 기지개 켰다.
소리도 없고 보이지도 않았기에, 그저 텅 빈 눈밭을 향해 김 양이 방아쇠를 당긴 채 총구를 옆으로 틀었다.
위이이잉-
두두두두-
전기모터 소리와 뒤섞인 총성이 뚝뚝 검붉게 번지는 핏방울을 만들고야 말았다.
‘20mm를 버텨?’
김 양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버펄로나 무스, 곰이었다면 20mm 탄을 버텨도 그러려니 했을 거다. 어깨높이만도 4~5m에 달하는 괴물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20mm 탄을 맞고도 버틴 오소리의 크기는 고작 2m 안팎이었다. 쥐새끼들 시원하게 잡으려고 20mm 체인건 들고 왔는데, 저딴 게 있을 줄은 몰랐다.
[아메리카 오소리는 상당히 질긴 가죽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덩치가 커지는 방향으로 변이를 일으킨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순발력과 내구력, 회복력 중심으로 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예측됩니다.]보조 인공지능의 분석처럼 뚝뚝 떨어지던 검붉은 핏자국이 사라져있었다.
마지막 흔적 근처에 남은 것은 움푹 파고 들어간 자국. 눈과 얼음으로 깔린 바닥을 몇 초 만에 파고 들어갔다는 소리였다.
김 양은 움푹 들쑤신 공간을 향해 투시 센서를 작동했다. 막힌 입구를 지나, 길게 이어진 통로가 희미하게 잡혔다.
‘입구를 막았어?’
놈은 도망치면서 굴을 막았다.
신경가스탄이나 네이팜탄을 던지려면 막아 놓은 부분을 뚫어야 할 판. 그 짧은 시간에 뚫고 들어가면서 구멍을 막다니.
‘이거 대체 뭐임?’
이런 놈이 있다는 보고는 없었다. 그런데도 마치 구멍에 폭탄이 던져진 경험이 있는 것처럼···.
‘폭탄 공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김 양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신성 쥐, 불꽃 쥐들이 이것과 싸웠다면?
필사적으로 약을 먹고 폭탄을 던져도 잡을 수 없었다면?
쥐떼를 유린하는 오소리의 모습을 떠올리자, 독립하는 쥐떼들이 생긴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윗세대가 말한 죽음의 신?
신앙의 증거인 약과 폭탄?
그딴 거 전부 의미 없잖아.
신세대 쥐들에게 있어 눈앞의 오소리야말로 항거하기 힘든 괴물이었을 터. 세대를 거친 쥐들의 신앙은 그 정도로 얄팍할 따름이었다.
삑-삑삑-삑삑삑-
오소리가 사라진 공간을 채우듯 붉은 반점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이 간나 새끼들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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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에게 있어 1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긴 시간이었다. 그림책으로 전해지는 죽음의 신은 1년이 지났을 무렵 4~5세대 전의 이야기가 됐다.
변이를 일으키면서 수명이 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 마루를 직접 겪었던 쥐들은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 최전선으로 빠졌고. 그만큼 많이 죽었다.
그 뒤를 잇는 2세대 쥐들까지는 약과 폭탄이라는 은혜의 위력을 신성한 무엇으로 생각하고 믿었지만, 지능이 점점 더 발달하고 엄지손가락이 돋기 시작한 다음 세대는 달랐다.
머리가 좋아지면서 약이나 폭탄은 인간의 물건일 따름이라는 생각이 든 것. 덩치가 커봐야 몸통 크기 40~50cm인 1~2세대에 비해 4세대 이후부터는 60~70cm까지 커졌다.
항생제와 향정신성 효과가 뒤섞인 약물도 4세대쯤 가서는 내성이 생겼다. 항생제의 극적인 효과가 줄어든 대신 생체치유력이 올라갔고 중독에도 내성이 생기자, 1~2세대가 느꼈던 신의 은혜 같은 느낌도 사라졌다.
1~2세대가 압도적인 능력이 있었다면 달라졌겠지만,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똑똑한 4세대 이후 젊은 쥐들이 권력을 잡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인간이 주는 약과 폭탄을 사용해 세력을 넓히면 되겠네. 인간과 굳이 싸울 필요는 없지. 그렇게 PD가 보급해주는 약과 폭탄을 받아먹고 꿀을 빨고 있을 때 괴물이 나타났다.
아직도 죽음의 신을 믿고 있는 1~2세대 쥐들은 약과 폭탄으로 괴물과 싸웠다. 죽음의 신을 부르짖으며 온몸을 불살랐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그 괴물은 폭발에도 끄떡없고 잘 꺼지지 않는 불길로도 잡을 수 없었다. 제일 무서운 건 1~2세대의 경험과 전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괴물이 도시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뒤, 식량 사정이 급격히 나빠진 쥐떼는 분열하기 시작했다.
몇몇 쥐들은 무리를 이뤄 도시를 떠났고 다시 몇몇 쥐들은 실체가 불확실한 죽음의 신을 믿기보다, 눈앞에 있는 실체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 괴물은 말이 통했다.
하루에 2마리씩 공양을 바치면, 그것으로 보호해주겠다는 이야기에 쥐들은 둘로 갈렸다.
죽음의 신. 이제까지 약과 폭탄의 은혜를 준 존재를 계속 믿는다. 그룹과 새로운 지배자를 따르겠다는 무리로. 그리고 새로운 지배자를 따르는 무리가 점차 늘어났다.
찌이이이이익!(살려줘. 아니이이이- 죽여줘!)
설상차 밖으로 나갔던 마루는 금방 쥐 한 마리를 잡아왔다. 간호사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지금까지 심문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쥐새끼들이 둘로 나뉘었고.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 모를 괴물이 이쪽 쥐를 지배하고 있다는 거네.”
“예.”
마루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PD와 스치면서 지나갔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쥐를 통제하려면 신앙심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마루는 신 놀음할 생각이 없었다.
PD와 사람들이 자신을 무엇으로 보건 그건 그들 자유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이나 사도, 구원자 같은 건 아니었기 때문.
‘잘못 생각했나?’
고작 1년 남짓에 통제력을 잃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나마 뉴포트뉴스 조선소에 들어간 신성 쥐, 불꽃 클랜 쥐들이 1~2세대 주축이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지랄 났을 게 뻔했다.
까아악?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큰일 나요.”
“뭐라고 했는데?”
마루의 질문에 까마귀와 나나에가 동시에 시선을 피하곤 눈을 굴렸다.
“에- 또- 죽음의 신이 아니냐고.”
하-
마루는 속으로 욕했다.
까마귀들이 그에게 충성하는 이유.
늑대들이 마루에게 충성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한 것은 약해지기 마련이고 흥한 것은 망하기 마련이었다.
그가 그저 강한 생명체일 따름이라면 목숨을 걸고 충성할 필요가 있을까?
강했던 우두머리 늑대도 결국엔 흙으로 돌아가고
무리에서 가장 현명한 까마귀도 결국 날개가 꺾이는 법.
죽음의 신이 아니라면?
마루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그리 판단한다면?
까마귀와 늑대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삐삐삐삐삐이이—
설상차의 센서에 붉은 점이 빽빽하게 표시되기 시작했다. 마치 포위하듯 둥그렇게 몰려드는 붉은 물결.
드드득-
설상차 장갑을 갉아대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방어시스템 가동] [적. 변이 쥐떼.]보조 인공지능이 방어시스템을 가동하자, 자동포탑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장갑 손상 3%] [손상 4% ···5%]끼이이익-
바닥이 푹 꺼지며 설상차가 기울었다.
꺄앗-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마루의 품에 폭 안긴 간호사가 허버법- 굳어버렸다.
끼이이익-
뒷부분이 눈구덩이 속으로 푹 들어간 설상차가 이제는 앞부분까지 쑥 들어가면서 완전히 빠져버렸다.
[장갑 손상 11%··· 13%]설상차를 완전히 뒤덮은 쥐떼가 사방팔방 이빨을 들이대는 소리가 커지자, 보조 인공지능이 대응을 바꿨다.
[네이팜 방사합니다.]화르르륵-
찌이이익-
찌익찌익-
설상차에 달라붙은 쥐떼가 그대로 불타올랐다. 1,500도에 육박하는 불꽃이 얼어붙은 공간을 통째로 녹여버리기 시작했어도 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둥그렇게 만든 눈덩이를 불타는 구덩이 속에 밀어 넣기 시작하는 쥐떼. 불길과 눈덩이가 만나 끓어오른 수증기가 자욱한 안개를 만들었다.
단순한 안개가 아니라 수증기가 얼어붙은 안개. 미세한 결정형 안개가 설상차 주변을 완전히 감싸 안았다.
[총열 균열. 총열 교체 시작합니다.] [네이팜 잔량 30% 네이팜 방사 정지합니다.]달라붙은 쥐떼가 떨어지자 정비를 시작하는 보조 인공지능의 음성을 뒤로, ‘에-에.’ 굳어버린 간호사를 의자에 앉힌 마루가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섰다.
후화아악-
설상차 밖은 녹아내린 열기와 냉기 그리고 쥐떼들이 쏟아내는 살의로 가득했다.
스르르릉-
“원하는 대로.”
해치 너머로 사라지는 마루의 뒷모습을 간호사의 눈빛과 까마귀의 시선이 끝까지 따랐다.
그리고 묵직하게 닫힌 해치 너머로 느껴지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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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소리도 아니었고, 진동도 아니었다.
무언가 밖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근원적인 공포.
흐에에——
까아아아아아아
간호사가 앉은 의자가 뜨끈하고 축축하게 변했고, 괄약근이 풀린 까마귀는 눈도 같이 풀렸다.
죽는다.
죽어.
까아아아악—
그리고 뚝- 모든 것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