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10)
러스트 [RUST]-610
굳게 닫힌 해치.
가만히 귀를 기울여봐도 소리가 없었다.
“······.”
······
그건 단순한 고요함이 아니었다.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고 공기마저 숨죽이고 있었다.
품에 안겼을 때의 느껴졌던 온기가 거짓인 것처럼.
표현할 수 없는 공포심이 감각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오노 나나에는 축축해진 의자 위에서 끅끅 새어 나오는 소리를 삼켰다.
그 흐느낌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처럼 동공이 활짝 열렸던 까마귀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오는 모습.
움찔- 경련을 일으키더니 푸드덕- 숨을 내쉬던 까마귀가 갈라진 울음소리를 냈다.
까으악
까윽-까윽
죽는 줄 알았다며 깔록거리는 까마귀 때문에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놀란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자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을까?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다.
변한 것은 오히려 그녀 자신이었을 뿐.
그때.
요새처럼 생긴 낡은 교회에서 있었던 일.
사람들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쥐떼는 교회를 둘러싸고 있었고, 가늘게 피어오른 불꽃만이 힘겹게 삶을 붙들어주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었다.
어둠과 공포, 죽음이 교회 밖을 거닐었고, 그 모든 것이 꿈인 것처럼 그는 사람들을 구했다.
그래.
그는 구원했다. 그녀를 구원했고 모두를 구원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라.
그분에 대한 감사함과 걱정보다,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다니.
부끄러웠고 부끄러워해야 했다.
간호사는 습기 가득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죽겠니 어쩌니 까으악거렸던 까마귀도 조용히 부리를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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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차 주변은 전부 쥐떼로 가득했다.
군데군데 아직 꺼지지 않은 네이팜 불꽃이 눈과 얼음을 녹이는 모습은 너무 이질적이어서 지구가 아닌 것 같았다.
마루는 리퍼 슈트의 은신 기능을 활성화 한 채 주변을 살폈다.
검게 타오르는 네이팜 불꽃 사이로 녹았던 얼음이 다시 빙판으로 변하고, 피어오른 수증기가 다시 얼어붙어 자욱한 안개를 만들었다.
저 건너편에서 꿈틀거리는 쥐떼의 살의는 오직 설상차를 향해 있었다. 잔불이 꺼지면 일제히 달려들 모양인지, 뒤에서 찍찍이며 독려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덩치가 많이 커졌군.’
이렇게까지 커졌다면 PD도 경계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을 보면 이놈들이 머리를 써 크기가 작은 쥐를 앞장세웠다는 이야기였다.
중간중간 독전대 역할을 하는 쥐와 더 뒤쪽에 있는 쥐들은 덩치가 조금이나마 더 컸다. 예전 마을 하나를 잡아먹은 쥐떼와 비슷한 진형.
처음에는 숫자로 밀어붙여 탄약과 네이팜을 소모하게 강요한 뒤, 정예가 달려들어 끝내겠다는 심산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찌이이익-
아직 잔불이 남았음에도 쥐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수구 물이 역류하듯 밀려드는 쥐떼들. 우글우글 와글와글 뒤엉킨 쥐들은 맨 앞으로 밀려나지 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불꽃이 약해졌다지만, 불길은 불길.
밀려오는 순서대로 타죽는 쥐들이 끔찍한 소리를 냈다. 앞이 타죽는 동안 뒤가 올라서는 모습.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광경을 보며 마루는 그 자리를 지켰다. 삽시간에 설상차를 둘러싼 쥐들이 서로 밟고 뒤엉켜 올라 반원 모양을 만들었다.
은신한 마루 때문에 자리를 잡지 못한 쥐가 ‘여기 뭔가 있다.’며 찍찍거렸지만
까작까작
까득까득
장갑이 갉히는 소리에 묻혀 헛되이 사라졌을 따름.
찌이이익!
아니 진짜 여기 뭐가 있다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물어뜯자, 은신모듈이 깨지며 치직-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이것 봐!
이것 보라고!
뭐가 있었잖아!
그 순간 터진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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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형언할 수 없는 공포였을까?
죽는다는 공포를 넘어선 무엇이 그 자체로 죽음이 됐다.
······
······
······
동산처럼 수북하게 뒤엉켜 우글거리던 쥐떼가 그 모습 그대로 빳빳하게 굳었다. 동시에 반경 25m가 넘는 공간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
······
······
그토록 시끄럽게 찍찍거리던 공간이 일순 적막에 빠졌다.
찌이이익!
순간적으로 멈췄던 쥐의 물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꾼처럼 볼록하게 쌓인 시체 덩이를 뜯어먹고 밀어낸 쥐들이, 다시 드러난 설상차의 장갑을 갉아댔다.
그리고 다시 설상차를 중심으로 죽음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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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더미를 뚫고 지나간 파형이 보이는 듯했다.
그 소름 돋는 무언가가 휩쓸고 지나간 뒤에 남은 것은 시체뿐이었다.
입을 크게 벌린 모습, 앞발로 기어오르던 모양, 빳빳하게 머리를 세운 자세 전부 그대로 굳어버린 무리.
주. 죽었어?
이유도 모른 채 연속으로 수 천마리 넘게 죽어버리자, 독전 쥐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건 뒤에서 명령을 내리는 귀족 쥐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쏘는 총알에 죽었다면 두렵지 않았다. 뜨거운 불길에 죽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탄약은 떨어질 것이고 불꽃은 꺼지기 마련이니까.
근데 지금 이건 뭔가?
아무런 전조 증상도 없고, 반응도 없었다.
신경가스?
내성이 있는데?
미지의 공포가 수만 마리 쥐떼를 덮었다.
쓰나미처럼 밀려들던 쥐떼가 멈춘 순간, 무덤처럼 쌓인 시체 더미를 뚫고 나온 마루가 내달렸다.
???
!!!!!
쥐들이 보기엔 갑자기 시체 더미가 갈라지더니 속에서 뭔가 나온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본 3세대 쥐 한 마리는 1~2세대 쥐가 했던 말과 경전이 떠올랐다.
인간의 그림자 모습을 한 죽음의 신이 쥐들을 덮쳤다는 태초의 기록.
찌익? (죽음의 신?)
술렁거리며 죽음의 신이 퍼지자, 뒤에서 강력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찌이이익!(죽음의 신 따윈 없다!)
죽음의 신이 있었다면, 괴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백색 괴물이 우릴 도륙하고 다녔을 때 죽음의 신은 무얼 하고 있었나!
죽음의 신이 인간의 탈것을 타고 다닌다고? 그저 인간일 뿐이다. 여기서 인간을 붙잡고 있으면 괴물이 와서 인간을 죽일 것이다!
지배력을 듬뿍 발산하며 외치던 쥐의 머리통에 이클립스가 떨어졌다.
콰직-
단단한 머리뼈를 파고들던 이클립스가 중간에서 멈췄다. 능력을 각성한 왕 쥐를 죽였을 때와 비슷한 느낌에 마루가 살짝 찌푸렸다.
콰뜨드드득-
중간에 멈춘 칼날을 억지로 내려긋자, 삐뚤삐뚤 반쪽으로 쪼개진 쥐가 좌우로 나뉘었다. 그 곁에 있던 쥐들이 바로 마루를 향해 달려들었다.
찌이이이익!! (저기다 죽여!!)
군데군데 깨진 은신모듈과 귀족 쥐를 반으로 가르면서 튄 핏방울로 흔적이 드러나자, 용기백배했던 것. 그리고 그건 마루가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여기서 최대한 죽인다.’
찌이이이익!(뇌는 내 것이다!)
찌이! 찌이! (내장! 내장!)
그리고 그렇게 달려드는 쥐들을 향해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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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에 손길에 닿기라도 한 듯, 달려들던 쥐떼가 그대로 시체로 변했다. 점프했던 놈은 공중에서 죽어 그대로 떨어졌다. 앞발을 휘두르던 놈도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구 내달리던 쥐떼가 우뚝 멈춰 섰다.
인간이라며?
이게. 인간?
그렇게 움찔하고 멈춘 순간 쥐떼가 둘로 갈라졌다. 마치 붉은 카펫이 깔리기라도 한 것처럼 절단된 토막들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하는 모습.
???
은신모듈이 부분부분 깨졌고 핏방울까지 군데군데 튀었기에 쥐들은 흐릿한 잔상을 볼 수 있었다. 그게 지나가는 곳은 오직 죽음만 남았다.
똘똘 뭉쳐있기라도 하면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 자리에서 시체로 변했다. 그렇다고 뭉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토막 날 따름이었고. 이게 말이 되는가?
아-아-
그래 그것이었다.
죽음의 신은 있었다.
이것이 죽음의 신이 아니라면 무엇이 죽음의 신이란 말인가?
5세대 쥐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토막.
절단.
내장.
핏물.
그 위를 거닐고 있는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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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분노했다.
‘이 새끼들이!’
오소리처럼 생긴 괴물이 도망치더니 그 자리를 쥐떼가 채워? 그러니까 약도 먹고 폭탄도 받아가더니 충성은 괴수 오소리한테 하고 있었단 말이지?
[전파장애로 송수신 불가능.]변이 괴수의 밀도가 증가하면 어쩐지 전파장애 현상이 생겼다.
[도망친 하얀 놈 그거 흔적 찾을 수 있어?] [센서 오작동 가능성 있어 불확실합니다.]통신 기능뿐만 아니라 레이더와 일부 센서도 오류가 떴다.
[대충이라도.] [3시 방향이 유력합니다.]일단 쥐새끼들은 무시한다. 노리는 건 그 오소리 같은 놈. 대가리를 잡아 죽이면 나머지는 흐지부지 무너지는 법이니까.
회사에서 작업할 때도 그러지 않았던가? 두목만 잡으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김 양은 몰려오는 쥐떼를 향해 20mm 탄환을 뿌리기 시작했다. 총성이라기보단 말벌떼가 날아다니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삭제되는 쥐떼.
20mm 체인건이 향한 쪽은 말 그대로 지워지고 있었다. 눈이 쌓인 얼음덩이든, 그 속에 잠든 자동차건 할 거 없이 구멍이 숭숭 뚫려버렸다.
‘이것들 뭐임?’
그랬음에도 쥐들은 꾸역꾸역 김 양의 엑소슈트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럴 리 없지 않은가?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은 상상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상상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죽음이 두려워지는 법.
‘근데 이 새끼들 왜 안 쫄아?’
설마. 약?
김 양은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준 약을 먹고 공격하는 거라고?
[네이팜 분사 준비] [분사 준비했습니다.] [방화]화르르르륵!
주변을 불태우고 그 자신도 불덩이가 된 김 양의 엑소슈트가 3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발걸음마다 떨어지는 불꽃.
[에이 씨-]그렇게 불똥을 튀며 달려간 방향에는 하얀 놈의 흔적이 없었다. 약 먹은 쥐들도 불길은 싫은지 달려들지 않고 떨어져 포위만 하는 모습.
김 양은 위화감을 느꼈다. 쥐들이 먹은 약은 그랬다. 일단 먹으면 휙 돌아서 공포를 잊게 하는 약. 그걸 먹었는데 불구덩이에 뛰어들지 않는다?
‘이상하잖아.’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지만, 김 양은 일단 HUD(Head Up Display)에 뜬 시각정보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일그러진 센서 정보 속. 붉은 점으로 표시되는 쥐떼에 휩싸인 그녀를 중심으로 느릿하게 움직이는 게 있었다. 빽빽하게 뭉쳐있던 붉은 점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모습.
‘놈이다.’
김 양은 일그러지는 시작정보 건너편에서 움직이는 놈을 노렸다. 20mm 체인건이라고 하더라도 신형 엑소슈트인지라 반동제어는 문제없었다.
‘놈이 들켰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게.’
매처럼 번뜩이는 눈빛으로 김 양은 기회를 노렸다. 너무 많은 시각정보를 한 번에 처리하려고 하니 떽떽 두통이 생겼다.
참다못한 김 양이 끙- 앓는 순간 붉은 점 사이에 있던 놈의 흔적이 사라졌다.
눈을 파고 아래로?
아니면 점프?
김 양은 즉시 총구를 하늘로 올렸다.
논리적 판단보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
공중에는 덩치가 2m 정도 되는 오소리가 사뿐하게 뛰어올라 있었다.
철컥-
오소리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마치 인간처럼 풍부한 표정.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긴 새끼야. 잘.]김 양이 질끈 방아쇠를 당겼다.
둔탁한 총성과 충격음이 허공에 떠 있는 흰색을 붉은색 넝마로 만들자, 구겨지고 일그러졌던 센서들이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삑삑삑-삑삑—삑——
‘쥐새끼들···.’
우두머리 치니까 바로 런하는 거지?
총알만 넉넉했다면 도망치는 것들 뒤통수에 20mm를 박아줬을 텐데. 20mm는 다 좋은데 탄약 부피가 너무 컸다.
후후훗-
그녀는 새로 잡은 오소리 괴수의 뒷다리를 잡곤 질질 끌었다.
경쾌한 발걸음
끼융-
오늘도 보람찬 발걸음
끼융-
그런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쥐새끼 사체에 칼을 꽂아넣고 있는 마루였다.
쿠직-
조금 덩치가 크다 싶은 쥐새끼 머리통에 칼날이 박히자, 부르르 살짝 진동하는 느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