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11)
러스트 [RUST]-611
김 양은 고개를 갸웃했다.
HUD(Head Up Display)가 맛이 갔나? 분명히 칼로 푹 찌르니까 떨리는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까 또 아닌 것도 같고.
영하 40도의 혹한은 바닥에 널려있는 쥐의 사체를 동태처럼 얼려버렸다.
꾸득-짓밟고- 끼융-한 발짝.
꾸득-뭉개고- 끼융-두 걸음.
그러니까 분명히 헛것을 본 게 분명했다. 바싹 얼어붙었는데 핏방울은 무슨.
어?
그래서 김 양은 늦게 알아챘다.
이 넓은 공간이 전부 얼어붙은 쥐떼로 널려있다는 것을.
씩씩하게 걷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통째로 얼어붙은 쥐도 있었고 마치 믹서기로 갈아버린 듯한 잔해들도 있었다. 여기저기 거뭇하게 터진 자국은 자폭의 흔적이 분명했다.
쥐새끼들이 약까지 먹고 달려든 게 분명했다. 그런 쥐들의 사체가 수백 수천도 아니고 대충 훑어봐도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널려있었다.
김 양은 눈을 깜빡였다. 예전에 실내경기장에서 까마귀 잡았을 때도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건 그냥···.
예전에도 ‘이게 사람 새끼인가?’ 싶은 적이 가끔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 깊이 최고 존엄으로 인정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이 풍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칼 한 자루 달랑 들고 만들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그놈의 ‘살!’까지 포함해서 고려해도 마찬가지.
마연시 2.0에서 살기를 겪어봤기에 대충은 알 수 있었다. 마루가 쓰는 살기는 집중력과 정신력 그리고 체력이 소모되는 엄연한 기술이자 능력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써봐야 몇 번 쓰지 못하는 게 ‘살’이었다. 근데 지금 이 광경을 보라. 엄청 많이 쓸 수 있다거나 아니면 범위가 열나 늘어났거나, 둘 가운데 하나였다.
‘······.’
시가전 시 평균적인 교전 거리가 10m~15m 안쪽이었다.
그러니까 살기로 15m 날리는 것도 사기였는데, 지금은 얼추 봐도 반경 40m~50m는 초토화했지 싶었다. 말이 반경 40m에서 50m지 지름으로 따지면 80m 100m라는 소리.
김 양은 의기양양 열심히 끌고 온 괴물 오소리가 어쩐지 하찮게 느껴졌다.
[어. 왔냐? 그건 뭐냐?] [괴물 오소리. 쥐새끼들이 이놈이랑 편 먹고 그랬음.]김 양의 이야기에 마루가 안다는 듯 반응했다.
[아- 그거.] [?]쥐새끼 심문했을 때 언급된 놈인 듯싶다는 마루의 이야기에 늘어졌던 김 양의 어깨가 다시 으쓱 올라갔다. 그러니까 쥐새끼들이 새로운 신으로 떠받든 걸 혼자 잡았다는 소리였으니까.
[흐응-] [신까지는 아니고 뭐 적당히 공물 주고 타협하기로 한 괴물인 거 같더라.] [공물?]그러고 보니, 쥐새끼들.
언제부터인가 공물 소식이 없었다.
‘역시 쥐새끼들. 진작부터 딴 주머니 찬 거였어.’
김 양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근데 쥐새끼 사체에는 왜?]이클립스로 주검을 찔러댄 이유가 궁금한 김 양이었다.
까득- 단단한 두개골에 이클립스를 박아 넣던 마루가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번에 대왕 쥐 잡았을 때, 피딱지 생겼던 게 생각나서 해보는 건데. 효과가 있나 실험해 보는 중이야.]그녀가 보기에도 뉴포트 뉴스 조선소 때 산성 공격에 당해 여기저기 망가졌던 이클립스가 멀쩡해 보였다. 우둘투둘 피딱지가 졌었는데 그것도 다 떨어져서 깨끗했고.
[효과 있는 거 같은데?]흠-
바로 확 눈에 띌 정도로 변한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확실히 재생? 복구? 그렇게 된 건 분명했다.
대왕 쥐를 잡았을 때 변화가 있었으니, 자잘한 놈들 말고 큰놈으로 골라서 해보자는 김 양의 의견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큰놈에게 하려고 했었기 때문.
꾸득-
우우우우우-
작은 것들이 삽시간에 얼어붙은 것과는 달리, 큰놈들은 꽁꽁 얼어붙지 않고 있었다.
단단한 뼈와 차갑게 식지 않은 고깃덩이 속으로 이클립스가 파고들자, 반질반질했던 털가죽이 서서히 윤기를 잃어갔다. 미약한 변화지만, 마루와 김 양 모두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변화.
[봤음? 지금 변하는 거?] [어- 봤어.]둘은 신나서 이클립스의 먹잇감으로 삼을 만한 쥐새끼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찔러본 결과 확실히 효과 있었다. 미세했지만, 소실된 부분이 차올랐고. 우둘투둘했던 칼날도 점차 메꿔지기 시작했다.
[이것도 해보면 어떰?]김 양은 흔쾌하게 괴수 오소리를 넘기자, 마루는 사양하지 않고 이클립스를 박았다. 20mm 철갑탄도 뚫지 못했던 오소리의 머리뼈에 쑥 들어간 칼날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차이 나는 반응에 김 양이 ‘오-’ 감탄사를 내뱉었다.
넝마가 됐을지언정 윤기를 잃지 않았던 오소리 가죽이 서서히 푸석푸석하게 변할 무렵, 이클립스의 날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미세하게 삐뚤삐뚤했던 칼날이 예리하게 다듬어진 것.
언제나 이클립스를 끼고 살았던 마루는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무게도 조금 묵직해졌어.] [근데 곰이랑 버펄로 잡았을 때는 안 이러지 않았음?] [박아놓고 흡수할 시간이 좀 필요한 거 같다.] [그냥 처분한 것들 좀 아깝네.]곰 잡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아까워할 건 아닌 것 같았다. 재생력을 전부 소진한 곰이나 버펄로는 에너지를 다 썼는지 효과가 떨어졌었으니까.
[그럼 최대한 힘 빼지 말고 잡아야겠네.] [그렇겠지.]‘다음부터 어지간한 건 우리가 잡자.’
김 양이 원거리에서 유인했을 때 마루가 바로 멱을 따버리면 될 일. 힘을 빼지 않고 잡으면 먹을 때 효과도 좋고, 칼에 밥도 줄 수 있게 되고. 여러모로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알겠음.’
눈빛으로 합의를 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르르르르륵!
하늘로 치솟는 불길의 끝엔 검은 연기가 가득했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날씨에도 1,500도까지 타오르는 네이팜 불꽃이 주변을 뜨겁게 달궜다.
마루는 널브러진 사체를 그냥 두지 않고 태워버렸다. 만 단위가 훌쩍 넘는 주검을 그냥 두고 가면 쥐떼의 먹이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쥐들은 어떻게 할 생각임?”
“잡아야지.”
쥐새끼들이 애물단지라는 게 밝혀졌는데 어쩌겠나? 잡아야지. 지금 당장 죽음의 신을 찾고, 울어서 신앙을 증명한다고 하더라도 몇 세대가 지나면 또 이럴 확률이 높았다.
“아깝네.”
“어쩔 수 없지.”
몇 마리 잡아서 심문을 해봤지만, 전부 비슷했다. 의사소통이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었어도 까마귀나 늑대, 버펄로와 무스 같은 애들과는 달랐다.
“세대가 지나갈수록 의사소통이 잘 되는 것 같아요.”
3세대보다는 4세대가, 4세대보다는 5세대가 미약하게나마 의사소통이 더 잘 됐다는 이야기.
간호사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할 일이고 이곳에 있는 쥐새끼들과는 별개였다.
“그래도 끝이야. 어설프게 대화로 어쩌고 넘어갔다가 숫자 불려서 올라오면?”
‘10만 단위가 와도 길목만 잘 막으면 최고 존엄 혼자서 다 죽일 것 같은데?’ 하는 김 양의 눈빛이었지만 마루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10만이 아니라 100만이면? 1천만이면? 1억이면?
먹이만 있다면 무한정하게 늘어날 수 있는 게 쥐떼였고, 1만 마리의 쥐떼가 1천만까지 증가하기까지 길게 잡아야 5년 안팎이라고 봐야 했다.
“에에? 그렇나요?”
“먹이가 넉넉하다는 전제지만.”
“이 동네는 텅 비었는데?”
“그래서 문제다.”
텅 빈 도시에서 뭘 처먹고 이렇게 쥐새끼들이 많을까?
“어?”
생각해보니 그러네? 김 양이 눈을 깜빡였다.
“동족 포식이라면 숫자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많을 수 없어. 몇 마리 잡아다가 심문해봤어도 제대로 대답하는 놈이 없었고.”
정보추출기를 사용해서 뽑아봤어도 마찬가지였다. 진한 갈색 덩어리 같은 것이 있어 그걸 먹는 내용만 있었을 뿐. 그게 어디서 어떻게 생겼는지, 누가 가져왔는지 뚜렷한 정보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대충 지나가면, 다른 곳에 있는 쥐들까지 흔들릴 수 있다.”
한 번 이빨을 들이밀었으니 대충 넘어갈 수 없다는 게 마루의 생각이었다.
마루의 척살 결정에 따라 털리도와 인근 지역에서 쥐새끼들을 밀어버리는 게 결정됐다. 제일 처음은 미끼로 유인하기였다.
미끼가 된 간호사 ‘에에엣.’ 놀랐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설상차 위에 앉아 쥐떼를 유인한 간호사가 차 안으로 대피하면, 마루가 살기를 이용해 쓸어버리는 방식.
나중에는 설상차 진행 방향에 함정을 파기 시작한 쥐들이었지만, 마루가 몰이 사냥으로 끝내버리자, 아예 설상차와 간호사를 피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김 양의 원거리 저격.
홀로 떨어진 김 양이 멀리서 저격하자, 처음에는 우르르 몰려들었다가 중간에서 마루가 몰살 끊어먹기를 시작한 뒤로는 그냥 도망치기에 바빴다.
찌이이익!
찌익찌익!
복수를 외치며 덤벼들었던 쥐떼도 마루를 마주하는 순간 질서와 통제가 무너졌다.
‘죽음이다!’
‘살려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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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름 40m에서 50m는 생각보다 엄청난 범위였다. 숫자가 얼마건 무슨 함정을 팠건 마루의 범위에 들어온 쥐떼는 그대로 죽거나 굳어버렸다.
일단 마루의 범위에 들어온 것들은 결코 도망칠 수 없었다. 늦든 빠르든 이클립스의 먹이가 될 뿐.
까악!
까아악!
정찰을 위해 날아올랐던 까마귀들은 그 참혹한 현장을 보곤 바로 신실해졌다.
파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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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거리에 억눌린 총성이 낮게 울려 퍼졌다.
투웅-
맨 앞에서 서성이던 쥐의 몸통에 12.7mm짜리 구멍이 뚫는 것과 동시에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는 쥐새끼들.
김 양의 저격 뒤에 죽음이 있다는 걸 학습한 쥐새끼들이 즉각 반응했다.
찌익!(산개!)
눈 속을 파고 들어가는 놈부터. 점프해서 전봇대나 가로등을 타고 도망치는 놈. 전력 질주를 해 건물 속으로 들어간다거나 바로 맨홀 아래로 들어가 버리는 놈까지.
속사 능력이 뛰어난 김 양인데도 두 발째를 쏘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 쟤들 움직임 봤음?]재장전하던 그녀는 어이없었다. 난다긴다했던 조직원들 뺨치는 산개 속도를 보여주는 쥐새끼들이었다.
[······.]김 양 앞에서 매복하고 있던 마루도 어이없긴 마찬가지.
배우고 대응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비슷한 함정에 짧게는 2~3번 많게는 5~6번 걸리고 나면 이후부터는 거의 통하지 않게 됐다.
쥐새끼들 잡기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얼마 없어도 살기를 그냥 때려버리는 마루였다.
그리고 김 양은 그게 조금 걱정스러웠다.
저번에도 그랬었다.
최고 존엄이 혼자 따로 다녔던 이유가 뭐였나?
살기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반경 15m 효력 범위였을 때만 하더라도 홀로 움직여야 했는데, 이제는 40m~50m였다. 게다가 하도 살기를 써서 그런지 살기의 밀도라고 할까? 흉흉함이 점점 더해지는 것 같았고.
간호사 말로는 처음에는 그냥 지렸고 까마귀는 너무 놀라 심정지까지 왔었다는데.
세상에나.
두툼한 장갑으로 떡칠한 설상차 안에 쏙 들어가 있었는데도 그 정도 여파였다면, 밖에서 살기 권역 근처에 있었다간 그냥 죽는다는 소리였다.
살기를 연속해서 쓸 수 있는 횟수도 마찬가지. 3~4번 쓸 수 있었던 횟수가 이제는 10번 넘게 쓸 수 있게 됐다.
친위대고 기사단이고 곁은 고사하고 근처에도 접근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
강해질수록 혼자여야 하다니.
최고 존엄의 고독함을 그녀 말고 누가 알겠는가?
김 양은 그래서 더욱 의지를 불태웠다.
‘위대한 옆자리.’
응.
그렇게 다짐하는 그녀의 귓가에 마루의 통신이 들어왔다.
[이 새끼들 지하에서 안 나오는 것 같아.] [······.] [아무래도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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