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12)
러스트 [RUST]-612
우리의 최고 존엄은 또다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려는 건가···.
위대한 옆자리란 얼마나 힘든 길이란 말인가?
김 양은 탄식했다.
이렇게 최고 존엄을 또 홀로 보내야만 하는가?
이런 모순을···.
이런 괴로움을 견뎌야 하는 것이 위대한 옆자리에 있는 자의 숙명.
그렇게 먹먹한 느낌으로 마루의 통신을 듣는데 뭔가 이상했다.
[너무 깊게···. 말고 정보추출기에서 봤잖아.]가슴이 절절하게 미어져 무슨 소리를 하는지 놓쳤다.
‘응?’
[입구 근처에 보급창고처럼 만들어 놓은 거. 거기까지만···.]김 양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뭐라고 했는지 다시 물어봐야 하나?
분위기상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중간에 이가 또 빠졌다.
[···바로 입구에서 기다릴 게.]‘누가···?’
누가 기다린다는 거지?
[아래로 내려가면 반응이 있겠지.]‘잠깐!’
???
[신형 엑소슈트라면 무너진다고 해도 버틸 수 있고···.] [자. 잠깐···.]김 양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일시 정지 요청에도 마루는 설명을 계속했다.
[다시 말하지만, 욕심부려서 깊게 들어갈 생각하지 말고 적당히 들어가서···.] [······.] [놈들이 뭘 먹는지···.]위대한 옆자리를 향한 가열찬 의지가 호로록 식어버리는 김 양이 육성으로 말했다.
[진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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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처절하게 저항했지만, 마루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나? 최고 존엄이 대놓고 까라는데.
‘진심임? 뉴욕에서도 쥐새끼들 함정 때문에 조마조마했는데, 여기 놈들은 안 그렇겠음?’
‘그러니까 네가 들어가야 한다고 했잖냐?’
최신형 엑소슈트라면 하수도가 무너져도 구조할 때까지 버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녀가 들어가는 게 합리적인 이유가 나왔다.
레이더나 소나((Sound Navigation And Ranging, Sonar)처럼 살기를 돌리고 다닐 수 있다면 지하고 어디고 다닐 수 있었지만, 살기는 그게 아니었다.
일순 쏘아내는 방식인 데다가 벽처럼 가로막힌 곳을 지나가면 위력이 많이 상쇄됐다. 그도 그럴 것이 마루의 살기가 벽도 뚫고 장갑도 뚫고 들어갔다면, 김 양과 간호사도 진작 죽었을 테니까.
‘이번에 돌아가면 백정 전용 엑소슈트 만들자고 하자.’
김 양은 진지하게 다짐했다.
최고 존엄이 언제든, 자유롭게, 홀로, 행차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옆자리에 앉은 자가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마루 전용 엑소슈트가 생긴다면
흐응-
최고 존엄과 그 옆에 언제나 함께하는···.
응.
최고 존엄에 전용 엑소슈트를 입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방어력 짱짱하지, 힘 좋지, 모아서 ‘살!’ 터트린 뒤 쿨타임 돌 때까지 버티고 썰기만 해도 끝장 아니겠는가?
‘어라? 그럼 어째서 지금까지 엑소슈트를 쓰지 않은 거지?’
두둥-
그녀의 머릿속에 북소리가 울렸다.
아니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지금까지 최고 존엄이 설렁설렁 일하셨던 것이로구나. 최고 존엄이 그 자리의 무거움을 회피하고 계셨던 것이로다. 그리하여 옆자리를 이리 굴리고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야!
푹-
중계기를 하나 꽂아 넣은 김 양이 속으로 씹었다.
이번에 돌아가면 잊지 않고 엑소슈트를 이야기해야지.
푹-
중계기 박아가며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앞을 쥐떼가 가로막았다.
[쥐떼 확인.] [치이이익- 삐- 뒤에는- 치익- 없다. 앞으로 밀어버려- 삐이익.] [알겠음.]푸화아아아악-
화염방사기가 불꽃을 뿜자, 앞을 가로막은 쥐들이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김 양의 엑소슈트가 그 틈으로 파고들어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 새끼들···. 도망치지 않아?’
어디서 기어 나오는지 꾸역꾸역 나오는 쥐떼. 불에 타면서도 밀고 들어온 쥐떼가 자신들의 시체로 통로를 틀어막고야 말았다.
[이것들 하는 짓 봤음?] [치이이익- 봤어. 그 자리에 치익- 있으면 위험해. 삐이익- 뚫고 들어가. 치-익]전신에 불이 붙은 엑소슈트가 쥐의 사체로 만들어진 바리케이드를 밀어붙이기 시작해도 쉽게 뚫리지 않는 고깃덩이들.
전신에 화상을 입었어도 변종 특유의 생명력 덕에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쥐새끼들이 짜부라지고 으깨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찌이이이익!
찌익!
‘이거 힘으로는···.’
김 양은 바로 신형 수류탄을 뽑아 육벽(肉壁)에 때려 박았다.
셋. 둘. 하나.
콰드드등!
엑소슈트의 팔꿈치까지 밀어 넣은 수류탄이 폭발하며 쥐새끼들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와르르 무너진 구멍을 화염방사기로 조지고 넓혀 안으로 들어서자, 쥐새끼들이 하고 있던 짓이 보였다.
찍?
찌이익!
통로를 막고 주변을 파내고 있던 것. 바로 뚫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바닥이 꺼지고 천장이 무너졌을 뻔했다.
허둥지둥하는 쥐새끼들을 화염방사기로 바싹 구워버린 그녀가 중간중간 전용 수류탄을 박아 넣으며 안으로 전진했다.
김 양은 마루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금처럼 그녀의 불꽃 돌격이 더 효과적인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놈들이 필사적으로 틀어막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공간에 도착한 그녀였다.
쥐의 머리통에 정보추출기를 박아 뽑아냈던 영상 속 장소. 사람 주먹만 한 다갈색 경단이 빼곡하게 쌓여있는 창고엔 불이 들어와 있었다.
‘전등?’
천장과 벽에 박힌 전등이 아닌, 전선으로 연결되어 바닥에 깔린 전등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할 때 쓰는 전등처럼 길게 방울방울 이어진 전등이 빛을 밝히고 있었다.
‘전선을 연결해서 불을 켰다고?’
덩치가 커진 쥐새끼들이 폭탄 주머니를 크게 고쳐 둘러맨 것은 그렇다고 넘어갔지만, 이건 아니었다. 전등이라니?
전등과 전선을 연결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이것들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 여기 봤음?] [치이이익-······. 삐이이-]김 양은 놀랐다. 쥐의 시점 영상으로 봤을 때와는 다른 규모. 게다가 이거 인간으로 따지자면 초대형 물류창고 아닌가? 쥐새끼 주제에 이런 식으로 보급 관리하고 있다니.
[치이익- 경단 챙기고···. 빨리 나와. 삐이익-] [알겠음.]그녀는 재빨리 근처에 있는 다갈색 경단을 챙긴 뒤, 불을 지르곤 물러섰다. 재료가 뭔지 모르지만, 불이 너무 잘 붙었다.
‘너무 잘 타는데?’
삽시간에 불이 번지는 모습. 그래도 한 번 더.
화염방사기로 다시 한 번 길게 훑은 김 양이 탈출을 시작했다.
눈이 돌아간 쥐떼의 대대적인 추격을 예상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추적이 없음에도 그녀는 미리 박아 놓은 수류탄을 원격 폭파해 통로를 틀어막고 밖으로 나갔다.
[수고했어.]입구 안쪽으로 들어와 지원을 준비하고 있던 마루가 김 양을 치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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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리도(Toledo)를 빠져나온 설상차가 디트로이트로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주간 기온 영하 40도 야간 기온 영하 50도에 달하는 추위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눈보라가 치지 않아 정속 주행에는 무리가 없었다.
“이것들이 안 쫓아 오네.”
“에? 그렇게 죽었는데 쫓아올까요? 당연히 쫓아오지 않겠죠.”
“요즘 쥐들은 근성이 없음.”
“그. 근성이요? 그게 근성 문제인가요?”
그분에게 걸리는 순간 시체인데, 쥐들이 따라와서 죽을 리 없지 않나? 그리고 빨리 가서 쉬고 싶다고 해놓고서는 근성이라니. 김 양이 뭘 원하는 건지 아리송한 간호사였다.
‘짐승 새끼들 전부 근성은 내다 버리고 약아 빠졌어.’
김 양은 냉정했다.
다음에도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려웠다. 마루야 ‘살!’이 있으니까 그렇다지만, 엑소슈트를 주요 무장으로 하는 자신은 달랐다.
천장이고 바닥이고 함정을 깔아 놓을 게 뻔했고, 보급창고에 전선을 연결해 불까지 켜 놓았던 것을 보면 여러모로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확실하게 조져야 할 것 같은데.’
근데 우리 존엄은 그놈의 경단이 무에 그리 중요한지 빨리 돌아가서 성분 분석하길 원했다.
“다음에는 이보다 훨씬 짜증 날 텐데 괜찮겠음?”
칼날이 날카롭게 다듬어진 이클립스를 요리조리 살피는 마루에 다시 한 번 권하는 김 양이었다.
“모조리 죽일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잖아. 지금은 정보를 분석하고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해.”
“···알겠음.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리퍼 슈트만 씀? 최신형 엑소슈트면 장갑도 튼튼하고 배터리도 빵빵하고 출력도 좋고 그런데.”
스르르릉- 이클립스를 칼집에 넣은 마루가 고개를 돌리자, 김 양이 물음표를 동동 띄운 채 초롱초롱 기다리고 있었다.
마루는 환히 보이는 김 양의 표정에 웃음을 참고 대답했다.
“좋지. 폭탄이 터졌을 때 파편에도 안전하고. 혹시나 놓칠지 모르는 총알 걱정도 덜하겠고. 그런데 두꺼운 장갑을 두른 엑소슈트를 입은 채 살기를 쓰면 어떻게 될까? 효과가 줄지 않겠어?”
그랬다. 살기는 무언가에 가로막히면 확 효과가 줄어들었으니까.
엑소슈트 입고 ‘살!’ 이거는 어렵다는 소리.
김 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방어력은 올라가겠지만, 다른 것들은?”
“다른 거?”
마루의 장점 가운데 중요한 것은 폭발적인 가속력과 기동력 그리고 순발력이었다.
한걸음에 10~12m를 움직이는 폭발적인 가속력.
벽을 수직으로 내달릴 수 있고, 벽과 천장을 박차 3차원 입체기동까지 가능한 기동력.
아크로바틱(Acrobatics)한 움직임으로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회피, 반격까지 하는 순발력.
“내 움직임을 따라올 정도는 아니거든.”
“······.”
마루의 이야기대로 최신형 엑소슈트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한들, 고유의 장점을 포기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를 모르는 여자.
김 양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래를 기약했다.
양자컴퓨터와 포도송이, 연구원들을 갈다 보면 마루의 움직임 가능한 엑소슈트. 하나쯤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디트로이트 아크 타워에 도착한 마루는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털리도에 자리한 쥐떼에 대한 통제권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았다.
“···제 불찰입니다.”
PD가 고개를 숙였다. 공물 쥐 부족을 통제, 관리하기로 했던 사람이 그였으니, 상황을 빨리 파악하지 못한 책임이 있었다.
“그 이야긴 나중에 하고, 일단 자료부터 확인한 뒤. 대응 방안을 이야기해봅시다.”
“······.”
통제력을 사실상 잃었음에도 상황을 빨리 파악하지 못한 원인, 문제가 커지지 않은 이유는 쥐떼가 북쪽으로 올라오지 않고 남하했기 때문이었다.
“쥐들이 머리를 썼군요.”
후드가 쥐떼의 이동 경로 자료에 화살표를 그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쥐들은 우리가 보급한 약과 폭탄을 이용해 세력을 넓힌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가 영상 파일을 콕 찍자, 쥐의 뇌에서 추출한 정보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내용은 멀리 호수를 낀 도시를 향해 몰려가는 쥐떼의 모습이었다.
“저기 있는 호수와 빌딩은 시카고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클리블랜드고요.”
공물 쥐 부족이 시카고와 클리블랜드를 점령했거나, 점령하기 위해 싸우고 중이라는 소리. 그리고 그동안 남부지역에서 전선을 유지하던 쥐떼가 영역 확장을 선택하고 신앙을 잃게 된 계기는 괴물 오소리의 등장 때문이리라는 분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안보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쥐의 천적인 괴물 오소리도 잡아 죽였고 몇만 단위로 쥐떼를 몰살시켰으니, 그걸 경험한 쥐들이 북쪽으로 얼씬하지 않으리라는 게 후드의 생각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영악한 쥐들이라면 굳이 북상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PD도 후드의 의견에 동의했다. 간호사와 사이코메트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영상 자료에는 마루가 만 단위의 쥐떼를 갈아버리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압도적인 살상력. 같은 인간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 영상으로만 봐도 닭살이 돋고 오금이 저리는 판국인데, 그걸 겪은 쥐들이 덤비리라 보긴 어려웠다.
마루는 생각이 달랐지만, 일단 찜찜한 것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그 경단의 재료는 뭐지?”
엄청난 크기의 보급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다갈색 경단. 나주연이 모니터에 분석 자료를 올리며 답했다.
“분석 결과 대부분을 차지한 건 바퀴벌레 조각이었고 소량의 진균류가 섞인 것으로 나왔어요.”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