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15)
러스트 [RUST]-615
핵보다 신앙을 주장하는 PD의 주장에 다들 ‘뭐래?’하는 표정이 됐다.
털리도(Toledo)에서 확인했듯 쥐들은 세대교체가 빨라, 4대를 넘기지 못하고 지랄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신앙?
“칼린 님께서 분기마다 죽음을 보여주셨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쥐들이 신앙을 잃었을까요?”
교회, 성당, 사찰 같은 주요 종교세력이라면 일주일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정신교육에 들어갔다.
“그래도 소용없지요. 어떤 종교나 문명이든 범죄를 없애는 데 성공한 건 없었으니까요.”
나주연의 목소리는 어쩐지 차가웠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루에 5번씩 기도하도록 해서 정신교육을 했어도, 살인자는 살인하고 도둑놈은 도둑질했죠. 심지어 도둑질한 자의 손목을 잘랐음에도 도둑질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인간의 역사를 보면 종교세력이 아무리 강성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힘을 잃었습니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세대교체가 빠른 쥐였기에, 믿음이 사라지는 속도도 빨랐다는 걸 털리도에서 확인하지 않았었나요?”
후드가 나주연의 이야기에 동의했음에도 PD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분기별로 증거를 보이시면 다릅니다. 초월적 존재가 친히 강림했는데 믿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믿는 건 의미 없다는 이야기랍니다. 그런 식으로 믿는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오래가겠어요.”
PD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깔렸다.
“설령 한시적이라고 해도 해 볼만 한 일이 아닙니까? 신앙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를 핵을 쓰자는 소리입니까?”
그게 문제였다.
“까마귀와 늑대가 우리와 같이 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머리가 좋아졌으니까 그런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머리가 좋아진 쥐떼들은 어째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다른 여러 육식 동물들이 인간을 공격할까요?”
“······.”
“인간은 비교적 쉬운 사냥감이니까요.”
“사람을 잡아먹으면 강해지니까요.”
“까마귀와 늑대들은 그걸 모를까요? 이쪽에 합류하기 전에 사람을 공격해봤을 텐데 말입니다.”
“그 이유가 신앙 때문이라고 하고 싶은 건가요?”
“네. 블라디마루 칼린 님의 위력을 경험한 뒤, 신앙심이 생겼기에 우리와 공존을 선택한 겁니다.”
PD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리눌렀다.
“다른 인간을 공격하는데 거리낌 없는 까마귀와 늑대들이 어째서 신성 왕국의 규칙을 지키고, 신성 왕국 시민들을 지키라는 명령에 따를까요? 뭐가 무서워서 그럴까요? 누구 때문일까요? 블라디마루 칼린 님 때문이죠. 아닙니까?”
사실이 그랬다. 만약 마루가 없었다면 까마귀나 늑대들이 인간과 공존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
“신이나 신의 대리인이거나 그런 추상적인 것을 제외하더라도. 지금까지 우리가 생존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적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았기에. 앞으로도 살아남고 싶어서 블라디마루 칼린 님을 믿기로 한다면, 그게 문제가 됩니까?”
후드와 나주연은 할 말이 있어도 침묵을 선택했다. 반론을 제시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100만이 넘는 들쥐를 통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침묵에 김 양은 어쩐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옳은 말이야. 믿어야 옳게 된 나라지. 최고 존엄이 친히 다스리는데 믿어야지. 암.’
PD는 100만이 넘는 들쥐가 모였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신앙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직감했다.
“신앙으로 들쥐를 장악해 그들을 이용해 털리도의 지하를 공략한 뒤, 다시 뉴욕의 지하까지 밀어버려 폭발적으로 증가한 쥐떼를 전체적으로 줄이는 게 제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신앙의 대상이 된다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PD의 생각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핵을 쓴다고 해도 전멸시킨다는 보장이 없어.’
핵을 썼다가 살아남은 놈이 생겨 사방으로 퍼지는 것보다, 들쥐를 이용해 도시 지하를 장악한 시궁쥐 세력을 무너뜨리는 게 오히려 가능성이 컸다.
“디아나 지금 날씨는 어떻지?”
[현재 기온 영하 47도입니다.]결정을 내린 마루는 바로 캐나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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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은 각 요새에서 병력을 차출해 몬트리올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영하 45도에서 50도를 넘나드는 맹추위였기 때문에 병력을 모으기 힘들었다.
“최소한 3만은 있어야 해. 몇 명이나 모였고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리지?”
[현재까지 14,775명이 몬트리올에 집결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모인다면 최소 5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너무 오래 걸려.’
몬트리올에 집결 D 구역으로 이동하는데 다시 5~7일은 잡아야 했다. 그럼 아무리 빨라도 10일 이상 걸린다는 이야기.
‘위험한데.’
100만의 들쥐가 10일 이상 한곳에 머물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쥐는 신진대사가 활발했기 때문에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20%에 달하는 먹이를 먹어치웠다. 체중이 10kg짜리 괴물 쥐라면 하루에 2kg을 먹는다는 이야기.
몇 마리 없었다면 그 정도 소비량은 큰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지금 뭉친 들쥐의 숫자는 무려 100만 단위.
하루에 200만kg을 먹어치운다는 소리였다. 1톤 트럭으로 2천 대 분량을 매일 먹어댄다는 뜻. 그것도 최소로 잡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체온 유지에 칼로리 소모가 많을 테니, 그 이상 먹을 거다.’
11번 요새는 끝났다고 봐야겠지.
‘요새를 공격해 식량 창고를 털어봤으니, 다른 요새도 그냥 지나치지 않겠지.’
12번 요새와 10번 요새를 시작으로 D 구역에 건설한 임시 요새에 전부 철수 명령을 내린 기순이었다.
‘전술핵을 쏘려면 최대한 모였을 때 쏴야 해. 그렇다고 내가 바로 전술핵 사용권을 요구하면 PD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어. 마루 녀석이 잘 알아먹기를 바랄 수밖에.’
그래서 비상지원요청을 보냈다. 마루라면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대충 알아먹을 테니 허락해주기야 하겠지만, 이왕 해줄 거 빨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최대한 한쪽으로 모아야 해.’
D 구역 북부로 유인, 전술핵을 때려 박은 뒤, 잔존 들쥐는 몬트리올에 집결한 병력을 이용해 모조리 청소해야 했다.
작전의 핵심은 들쥐를 한 곳으로 유인하는 것.
‘어떻게?’
최소한 5일 이상 버텨주면서 유인해야 하는데. 일반병이 지금 같은 날씨에 가능할까?
‘젠장. 하-’
클론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기순의 출동 명령에 나루 클론들은 보글보글 시끄러웠다.
“그린 순도 할 때는 하네.”
“-들쥐를 유인해라.- 목소리 깔았어.”
“은근 목소리 좋더라.”
“좋아? 난 별로. 목소리는 왕님이 최고지.”
“오라버니?”
복작복작 무장을 챙긴 나루 클론들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무표정한 유 이사 클론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근데 이쪽은 왜 가는 거야?”
“우리만 가도 충분한데.”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유 이사 클론 가운데 하나가 고개를 휙 돌리곤 말했다.
“적당히 떠들고 빨리 준비해. 들쥐들이 옆으로 빠지지 않도록 번갈아가면서 유인한다.”
“명령권 누구?”
나루 클론 하나가 발끈하자, 유 이사 클론이 즉답했다.
“내가 통솔한다.”
“너 누구인데?”
“유희연 중위다.”
“희연이?”
“꼬마?”
“어. 그럼 갑자기 큰 거?”
“아니야. 저거 링크인가? 빙의? 여튼 그런 거래.”
“뭐야 그거. 무서워.”
“전부 닥치고 준비해! 싫어? 불만인 년은 그냥 닥치고 집이나 지키고 있어!”
“와- 박력-”
“오- 쩔어-”
복작복작 나루 클론들과 유 이사 클론들이 설원을 행군하기 시작했다.
클론들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강화 인간이었다. 유 이사 본체를 이용한 유 이사 클론은 말할 것도 없고, 나루 클론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병사였다면 영아 45도에서 5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를 뚫고 12시간 행군은 불가능했지만, 이들은 거뜬하게 해냈다.
“동상 걸린 년?”
“없어요-”
“없습니다.”
“없고요.”
“······.”
“좋아. 위력 정찰하고 있던 우리 정찰대가 들쥐 정찰대에게 포위됐다고 한다. 구조하라는 명령이다. 3분 안에 출발 준비하도록. 이상.”
구보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클론들은 순식간에 위력 정찰대와 들쥐 정찰대가 교전하는 지역에 들어섰다.
푸확-
눈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들쥐가 나루 클론의 발목을 노렸다.
꺄앗- 외친 클론이 군화로 들쥐의 턱을 걷어차자, 옆에 있던 클론이 송곳처럼 생긴 대검으로 들쥐의 눈을 찔러 헤집었다.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이어진 결말.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2인 1조로 대응한 나루 클론을 본 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동작들이 보였지만, 당연한 이야기. 유 이사를 기반으로 한 전투 정보를 습득했으니 그럴밖에.
“그쪽은 3시, 이쪽은 9시에서 동시 공격해 포위를 푼다. 지금 봤지만, 들쥐 새끼들 눈 속에 매복하고 있다. 유의하도록.”
간단하게 명령을 내린 희연이 유 이사 클론을 인솔해 9시 방향으로 떠나자, 나루 클론들은 3시 방향에 자리 잡고 저격을 준비했다.
[저격 준비 끝.] [치이이익-발사. 삐이이익-]길게 이어진 총성에 따라, 들쥐들의 머리통에 붉을 꽃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찍!
찌이이익!
들쥐들의 반응은 굉장히 빨랐다. 겹겹이 포위한 채 인간들을 공격하던 들쥐 정찰대가 순식간에 둘로 나뉜 것.
한쪽은 그대로 포위하고 다른 한쪽은 저격이 온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들쥐의 대응을 바라보던 희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나루 년들 쪽으로 절반 가까이 갔네. 지금!’
그리고 그렇게 둘로 나뉜 포위망을 희연이 지휘하는 클론들이 급습했다.
“이쪽으로!”
희연이 지휘하는 클론들은 12.7mm 구경의 Rsh 리볼버와 Ash 돌격기관단총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들쥐의 포위망을 꿰뚫었다.
일단 포위망이 뚫리자, 위력 정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송곳처럼 뾰족한 진형 맨 앞엔 칼을 휘두르는 여자가 있었다.
콰지지직-
20kg짜리 쌀 포대 급 덩치인 들쥐가 부드럽게 토막 나는 모습.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받은 들쥐들이 진형을 고쳐 다시 포위하려고 했지만,
투다다다다당
탕- 탕-타탕-
변종 늑대에게도 먹히는 12.7mm 특수탄을 들쥐가 견딜 수는 없었다.
[치직- 너무 많아요-삐] [삐익- 진짜 많다고-칙]그쪽으로 간 들쥐 숫자가 제법 많았는지, 나루 클론들이 아우성쳤다. 시원시원하게 칼질하는 칼잡이 여자에게 시선을 뒀던 희연이 무전을 보냈다.
[작전 성공. 퇴각. B 포인트에서 합류한다.] [치익-옙-옙-삑]나루 클론들이 내던 총성이 점점 멀어지며, 희연이 지휘하는 클론들과 탈출에 성공한 위력 정찰대도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거의 한 시간 넘게 빠진 뒤에야 들쥐 정찰대의 추격이 멈췄다.
“추격 없습니다. 잠시 휴식합니다.”
“헉-헉-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반나절 정도는 도망칠 각오를 했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나가떨어진 들쥐 정찰대였다.
‘포기가 빠르네.’
희연은 방심하지 않고 경계를 세운 뒤, 나루 클론에 무전을 보냈다.
[B 포인트에서 휴식 중. 언제 도착하나?] [치이익- 거의 도착했습니다. 삑-] [칙- 왔어요. 치익] [삐익- 왔습니다.-삐]야트막한 언덕을 옆으로 끼고 돌고 있는 나루 클론들이 보였다.
붕붕 손을 흔드는 나루 클론들의 모습에 희연은 고개를 저었다. 이쪽과 거의 비슷한 전투 기억을 가졌을 텐데. 저런 모습이라니.
희연이 나루 클론과 통신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칼잡이 여자가 가까이 다가섰다.
“장거리 통신 가능한가요?”
“정해진 시간에는 가능합니다만.”
이유를 묻자, 칼잡이 여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보고해야 합니다.”
“확실합니까?”
“예. 그걸 확인하느라, 너무 접근했다가 정찰대에게 발각됐으니까요.”
“어느 방향입니까?”
“몬트리올 방향입니다.”
“······.”
희연은 HUD(Head Up Display)에 떠오른 지도를 확인했다. 기순의 명령은 들쥐 본대의 이동을 지연시킬 것. 그리고 정찰대 구조였다.
“들쥐의 이동속도는 어떻습니까?”
“하루에 25km 정도 됩니다.”
들쥐 본대가 있는 곳에서 몬트리올까지 거리는 대략 140km~150km. 하루를 지연시켜야 했다.
그렇게 지연전이 시작됐다.
희연과 나루 클론 그리고 합류한 외팔이 칼잡이 에릴린과 정찰대까지. 화력으로만 따진다면 화기 중대급 화력을 가졌지만, 그것도 100만 단위 들쥐 무리에게는 의미 없었다.
“이걸 어떻게 유인하라고 한 거죠?”
“기순 바보.”
“기순이가 잘못했네.”
“병기순.”
총알을 때려 박아 유인하려고 해봐야 소용없었다. 대충 2만 정도가 뚝 떨어져 달려들고 나머지 98만 내외는 가던 길을 갔으니까.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유인될 것이라는 예측도 깨졌다. 들쥐들은 다친 쥐와 늙은 쥐를 잡아먹고 계속 몬트리올 방향으로 직진했기 때문이었다.
“미친 쥐새끼들.”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방향을 잡은 거지?”
그렇게 4일간, 만 단위 가까운 쥐를 잡았어도 본대는 몬트리올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몬트리올을 40km 정도 앞두자, 들쥐의 이동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우스스스스스
우르르르르르
주변 들쥐들까지 다 모여들었는지, 세력이 더욱 커진 들쥐들이 일순간에 달리기 시작하면서 내는 소리.
뭐야 이거.
언제나 시끌벅적하던 나루 클론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럭비공처럼 생긴 신형 비행선이 스쳐 지나갔다.
어라?
신형 비행선이 왜?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들쥐떼 상공에 멈춰선 비행선에서 톡- 사람이 하나 뛰어내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