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16)
러스트 [RUST]-616
비행선에서 뛰어내린 건 분명 사람이었다.
???
희연과 나루 클론, 칼잡이 여자의 시선이 동시에 그 검은 인영을 향했다. 스르륵-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지는 그림자.
“리퍼 슈트?”
희연이 제일 처음 반응했다. 리퍼 슈트라면 마루가 주로 사용하는 장비였다.
‘그래도 저렇게 높은 상공에서 뛰어내리는 건 위험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제트엔진 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위이이이잉!
상공에서 터져 나온 제트엔진 소리에 쓰나미처럼 밀려들던 들쥐가 멈춰 섰다.
“머. 멈췄어.”
“오- 저거 지금 어그로 끈 거지?”
“대단하다.”
“제트팩은 연료통 작은데.”
저쯤에서 제트팩 써버리면 들판을 완전히 뒤덮은 들쥐 범위를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추가 연료통 있겠지.”
“아니면 다시 비행선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나루 클론들이 두런두런 분석하는 소리를 뒤로한 희연이 바로 지휘했다.
“지금이다. 들쥐 주의가 하늘로 쏠렸을 때 후퇴한다.”
“아직 본부에서 후퇴 명령이 오지 않았습니다. 병력 전개가 끝나기 전까지 유인, 지연하는 게 작전 목적인 걸 잊은 건 아니겠죠?”
칼잡이 여자와 위력 정찰대가 희연의 명령에 반론을 제기했다.
“개소리하지 말고. 변이 괴수들이 뭉치면 통신 장애 터지는 거 몰라? 본부에서 후퇴 명령이 떨어졌어도 100만 단위 들쥐 근처라면 통신이 터지겠나? 이후 책임은 내가 진다. 소위. 닥치고 후퇴 준비해.”
“···예.”
칼잡이 여자와 위력 정찰대를 누른 희연이 멈춰선 쓰나미를 바라봤다. 그 많은 들쥐가 하늘을 노려보는 모습이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저기. 저쪽.”
나루 클론이 가리킨 방향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영하 45~50도에서 제트팩을 썼으니, 뜨거운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만나 생긴 기류가 선명했다.
들쥐 쓰나미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움직여 들쥐를 멈춰 세운 제트엔진 소리가 뚝 끊겼다.
“끊겼다?”
“어?”
잔잔한 호수에 물방울이 하나 똑 떨어진 것처럼. 짙은 회색으로 가득한 들쥐 무리 중간에 동그란 파문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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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600m는 족히 떨어진 곳에서 느껴지는 무언가? 희연과 나루 클론, 외팔이 여자의 고개가 동시에 그곳을 향했다.
“어? 어어?”
위력 정찰대원 한 명이 달달 떨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한 명이 무너지자, 그 옆에 있던 대원들 전부가 동시에 힘이라도 빠진 것처럼 풀썩 앉았다.
“뭐. 뭡니까?”
“이. 이게. 뭐죠?”
위력정찰대원 하나가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저 멀리 벌어지는 일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동그랗게 파문이 흔든 자리엔 들쥐의 사체만 남았다.
그 주검들 끝에서 피어오른 매화 가지. 서예 명인이 커다란 붓으로 먹을 찍어 길게 매화 가지를 그리기라도 한 것처럼 들쥐로 만들어진 들판에 커다란 자국이 생겼다.
“아?”
“어?”
“······.”
“······.”
보이는 건 커다랗게 그어진 선이지만, 귓가에 가죽이 찢어지고 뼈가 잘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검은 실선 사이로 갈려버린 들쥐의 고깃덩이와 핏방울이 빨간 매화처럼 피어올랐다.
시각이 청각으로, 죽음을 만든 소리가 다시 붉은 시각으로 변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비현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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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 더 강하게 터진 무엇이 스치고 사라졌다.
인간의 마음이랄까? 아니면 무의식이랄까? 그 깊은 곳까지 긁어내리는 듯한 무엇에 위력정찰대원 몇이 지리고 말았다.
그것은 항거할 수 없는 공포였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여파가 있다면 가까이 있던 것들은 어떻게 됐을지···.
동그란 파문 모양대로 시체로 변해버린 들쥐들, 즉사의 범위 밖에 있던 들쥐들도 쇼크를 먹었는지 빳빳하게 굳은 채 나무토막처럼 변해버렸다.
그 굳어버린 들쥐를 사뿐하게 즈려 밟은 죽음을 위해 길게 붉은 카펫이 깔리자, 그 위로 피륙으로 만들어진 장미꽃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칙칙한 회색 속에 감춰진 붉은색이 드러나면, 바닥에 깔린 뻣뻣한 나무토막에 죽음이 싱그럽게 피어오르는 광경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했다.
“마. 마···.”
“세상에.”
“HOLLY Sh···.”
짙은 회색 들판 한쪽이 붉은 정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정원을 짓뭉개기라도 하겠다는 듯, 멈춰 섰던 짙은 회색 쓰나미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찌이이이이이이익!
초음파처럼 날카롭게 퍼진 소리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친 들쥐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붉은 정원 중심을 향해 밀려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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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집의 살의, 집단의 의지와 마루의 살기, 죽음의 현존이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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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은 바람처럼 왔다가 번개처럼 사라진 마루의 뒤를 따랐다.
“아오- 같이 가자니까.”
기순이 쓰는 신형 비행선도 대단한 물건이었지만, 마루가 타고 온 비행선은 말 그대로 규격 외였다.
‘새끼. 말 붙일 시간을 주지 않네.’
나루가 텔레파시 능력자처럼 빙의(?)인지, 클론 신체강탈(?)인지를 했고 그런 나루를 자신이 끝냈다는 이야기.
언제고 알겠지만, 다른 루트로 알게 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말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마루 놈. 도착하자마자 안부 인사는 고사하고 현재 상황부터 파악했다.
‘들쥐 규모가 얼마나 되는 거냐? 오버하지 말고. 진짜 100만이냐?’
‘정찰대 보고대로라면 최소 100만 단위니까, 그 이상이 될지도 몰라. 그리고 지금도 근처에 있는 들쥐들이 무리에 합류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미친···.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비상지원 요청하면서 죽겠다고 징징거리면, 전술핵 쓰게 해주겠지 했지. 내 입으로 전술핵 통제권 달라고 하는 것보다 알아서 전술핵 쓸 수 있도록 통제권 넘겨받는 게 그림이 좋으니까. 그렇게 일단 전술핵을 써서 중심부 날려버리고 남은 들쥐는 병력 동원해서 처리하려고 생각했다.’
‘병력은 얼마나 동원할 수 있고?’
‘각 요새에서 차출하고 몬트리올에 있는 용병들 동원해서 3만 정도.’
‘바로 출동할 수 있는 거냐?’
‘그렇기는 해도, 야전은 힘들어.’
제일 큰 문제는 날씨였다. 밤에 기온이 떨어지고 칼바람이 불면 영하 60도를 넘나들었다. 방한 대책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비전투 손실이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었다.
화력도 문제였다. 보유하고 있는 장갑차, 전차, 자주포는 쓸 수 없다고 봐야 했다.
영하 40도까지라면 어떻게든 꾸역꾸역 굴리겠지만, 영하 60도는 미지의 세계였다. 끌고 갔다가 얼어붙어 버리면 오도 가도 못하고 끝.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자주포보다 다연장로켓포가 더 효과적일 터였다.
‘그래서?’
‘병력을 확충할 때까지 들쥐 본대를 유인하고 지연전 펼치고, 놈들이 하루 거리에 도착하면 전술핵 투하, 그리고 병력 투입. 이렇게 계획하고 있었지.’
‘방사능 변이 문제 때문에 전술핵은 쓰지 않기로 했다.’
‘뭐? 그럼 어떻게 하려고? 3만으로 100만 단위 막는 건 불가능해.’
들쥐 놈들 생각보다 덩치가 컸다. 뉴욕의 지하수로를 장악한 쥐들도 한 덩치 했는데, 이쪽 들쥐들도 만만치 않았다.
무게는 10kg 이상, 꼬리 길이까지 따진다면 사람의 하반신 정도 크기. 게다가 어지간한 총알은 무시하는 가죽까지.
확실히 쥐들은 변하고 있었다. 조금씩 똑똑해지는 머리, 커진 덩치와 방어력, 더 많이 모여 이룬 군집까지.
그런 쥐새끼를 잡는데, 신앙을 쓰기로 했다는 마루의 설명에 기순은 어이없었다. PD의 발상이라는데, 만 단위도 아니고 100만 단위와 칼 하나 달랑 들고 부딪친다고?
들쥐 무리에게 신으로 추앙받거나? 아니면 죽거나?
그딴 게 계획이라고? 미친 거 아닌가?
털리도에서 증명되지 않았나? 신앙을 만들어도 길게 가기 힘들다는 건.
‘그건 걱정하지 말고.’
‘아니. 걱정이 안 되겠냐고.’
신앙을 박아 넣은 들쥐를 이용해서 지하수로에 있는 시궁쥐들을 쓸어 버릴 계획이라는 소리에 기순은 그냥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희연이는?’
‘나루 클론들이랑 같이 유인부대로 갔다. 본체는 몬트리올에 있고. 클론 제어로.’
대답을 듣자마자 현장으로 날아간 마루였다. 기순도 자기 전용 비행선을 타고 뒤따랐지만, 거리가 점점 벌려지고 있었다.
“무슨 비행선이···. 미친?”
비행접시 짝퉁처럼 생긴 마루의 비행선이 점점 더 가속해 결국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오. 몬트리올과 연결되나?”
[전파장애가 심해 연결이 어렵습니다.]“중계기 비행선은?”
[작전 현장 상공에 있습니다.]“몬트리올 말고 작전 지역으로 바로 간다.”
[목적지를 변경합니다.]“최고 속도로.”
[최고 속도로 운항 시작합니다.]우우우웅-
기순의 비행선이 속도를 높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진창인가? 눈이 녹을 날씨는 아닌데?’
한낮 기온이 영하 40도. 그러니까 들판은 하얀색이어야 했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짙은 회색 들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전부 어두운색으로 뒤덮여있었다.
‘설마. 저게?’
영상을 확대한 기순의 입술이 꾹 다물어졌다. 100만이 넘는. 100만 단위의. 고작 몇 음절로 표현된 그 숫자의 폭력이 그곳에 있었다.
짙은 회색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광경. 자연재해를 100만이 넘는 들쥐가 몸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우물우물 꾸물꾸물 움직임은 마치 물결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물결의 범위를 재기라고 한 것처럼 상공을 한 바퀴 돈 마루의 비행선이 있었다.
“마루한테 연결해.”
[연결되지 않습니다.]“중계기 비행선은?”
[진압군 상공에서 통신 교환 중입니다.]3만의 병력이 대기하고 있는 상공에서 통신 교환 중이었다.
“거기에 있다면 여기까지 중계할 수 있지 않나?”
[전파장애가 심해. 중계 범위가 대폭 감소했습니다.]변이 괴수가 뭉치면 발생하는 현상 때문이었다. 몇백 마리만 뭉쳐도 전파 교란 효과가 생겼는데, 백만 단위 들쥐들이 모여 생긴 전파장애는 어떨까?
“모스신호라도 보내. 일단 뒤로 빠지라고. 인근에 병력 대기하고 있으니까. 합동작전 해보자고. 유인작전 애들도 후퇴하라고 할 테니까 일단 빠지라고 해.”
[신호 보냈습니다. 응답 없습니다.]직접 보기 전에는 그저 100만 들쥐로 읽혔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니 이건 들쥐로 만들어진 쓰나미였다.
그래.
이건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핵밖에 답이 없어.’
기순은 마루를 설득해 핵을 떨굴 생각을 굳혔다. 만약 끝까지 반대한다면 핵을 떨궈 버리고 총독 자리 내던질 생각이었다. 하늘에서 본 100만 들쥐는 그만큼 끔찍했다.
“핵을 쓸 테니까 피하···.”
기순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 마루의 비행선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검은 그림자가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지는 모습.
리퍼 슈트?
그리고 들쥐로 만들어진 쓰나미에 동그랗게 파문이 일었다.
“······.”
기순은 숨이 턱 막혔다.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를 막는 걸 뭐라고 해야 하지?
마루가 싸우는 장면은 주로 영상 기록으로 접했던 기순이었다.
일본에서 탈출하면서 싸웠던 일들?
시발- 그런 게 아니었다.
당시에도 놀랐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기순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한 무엇이었다.
마루가 인간을 넘어섰다고 한들, 운동 능력만 따져보면 각성자나 식인귀와 큰 차이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다만, 근본을 알 수 없는 칼질에 이클립스라는 최적화된 칼까지 합쳐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전력이 됐을 뿐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거기에 특유의 촉인지 감각까지 고려한다면 대인, 대괴수에 있어서만큼은 전술 병기급 위력을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그래도 그건 능력자들이나 식인귀 따위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하는 것 아닌가?
수십만 마리가 똘똘 뭉쳐 만든 살의가 대기를 흔들었다.
집단의 살의와 공격성이 하나로 뭉쳐 마치 염력이나 정신계 능력을 발현하는 것처럼 주변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
그 파멸의 쓰나미가 마루를 향해 덮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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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자연재해를 실시간으로 분쇄해 버리는 무엇.
그래.
무엇.
기순은 처음으로 이해나 분석을 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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