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19)
러스트 [RUST]-619
나루 클론들의 가출모의(?)는 희연에게 걸리고야 말았다.
유 이사의 전투 기억이 있다고 한들, 가출계획의 중심이 되는 기억은 본체 나루의 기억이었기 때문.
잠입을 반대로 하면 탈출이겠지, 일단 몰래 나가면 되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바리바리 싸 들고 있는 짐이 문제였다.
혹한에 대비하겠다고 꾸역꾸역 챙기다 보니, 자기 몸통보다 더 큰 군장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아무리 엎드려도 볼록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북이 등딱지처럼 톡 튀어나온 군장 넷이 옹기종기 기어나가는 모습이 급하게 링크한 희연의 눈에 들어왔다.
“전부 동작 그만!”
꾹꾹 눌러 담긴 분노의 외침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군장을 봇짐처럼 짊어진 채 슬금슬금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고 있던 나루 클론들이 우뚝 멈췄다.
!!!
어째서 걸렸는지 모르겠다는 혼란한 표정들. 그 모습을 본 희연이 분노를 터뜨렸다.
“다들 미쳤구나?”
“······.”
“······.”
“······.”
“······.”
입을 꾹 다물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을 보니 속이 콱 막히는 느낌. 그도 그럴 것이 나루 클론들의 관리를 희연이 맡았기 때문.
“그냥 뒈지고 싶으면 그냥 총을 입에 물지, 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려고 해. 응?”
희연이 ‘무좀 가득한 신발련들.’을 보는 눈빛으로 나루 클론들을 바라봤다.
‘어쩌다 걸렸지?’
‘감시가 있었던 거야.’
‘무슨 감시?’
‘왜?’
“그렇게 혹한을 몸으로 경험하고 싶었냐?”
““······””
“그랬으면 좋게 말로 하지 누구 엿 먹일 생각이야!”
그게 아닌데···. 나루 클론들은 그냥 이 자리가 죽을 맛이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렇게 밖으로 나가서 혹한을 느끼고 싶었단 말이지.”
희연이 링크한 클론의 눈빛이 음험하게 변했다. 유 이사의 기억에 따르면 언제고 제대로 된 혹한기 훈련을 하긴 해야 했다.
그래. 너희들 너무 편하게 지냈지.
“매일 밤 꿀잠 자게 해 줄게.”
아무 생각 없이 잠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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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에 얼어붙은 제국.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은 다른 의미로 잠들 수 없었다.
사각사각사각
크득크득크득
시멘트를 때려 부어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때려 막았지만, 지하 깊은 어둠 속에서 갉아대는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연말연시였지만, 사람 하나 없는 거리. LED 전광판의 화려한 광고가 인기척 없는 거리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덴 브라운 총통은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버나드 그린이 왔을 때 살짝 엄살을 피운 감도 있었다.
체면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익이 중요한 게 외교니까. 그렇게 엄살을 피워 블라디나루 칼린 본체의 시신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나 시궁쥐의 창궐이 문제였지, 그보다 작은 도시에서는 창궐하기 쉽지 않다는 게 연구결과였다.
쥐가 번식하려면 충분한 먹이와 공간이 있어야 했다. 아니면 동족 포식 끝에 스스로 자멸하는 게 쥐라고 생각했다.
‘일정 숫자까지는 늘더라도. 결국에는 자멸하리라 봤는데.’
쥐와 공간에 대한 실험은 이미 오래전에 있었다. 존 B 칼훈의 사회적 밀도 실험이 바로 그것.
실험의 내용은 간단했다. 160마리가 안락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에 물과 먹이를 충분히 공급한다.
최대 3,840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4쌍의 쥐로 시작한 쥐 무리가 어떻게 되는지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공간에 여유가 있고 식량이 충분할 때 쥐는 매우 빠르게 번식했다. 4쌍의 쥐가 55일마다 2배로 증가할 정도로 엄청난 번식력을 보였지만, 315일이 지날 즈음 620마리로 늘어난 뒤에는 증가속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자 쥐들의 출산율은 급격하게 감소했고 2,200마리까지 증가한 뒤부터 새로 태어나는 쥐들이 사라졌다.
쥐들 사이에 폭력 사태가 증가했다. 공간을 차지하려는 경쟁, 먹잇감과 암컷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좁고 부대끼는 공간에서 수컷은 자신의 암컷과 새끼를 지킬 수 없었고, 암컷들은 수컷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무리가 생기면 우두머리가 생기기 마련인 쥐 사회에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서열 높은 수컷 쥐가 새끼를 낳더라도 그 새끼가 정상적으로 성장해 다시 번식하는 사이클이 깨진 것.
질서가 무너지면서 수컷 쥐들은 교미에 흥미를 잃고, 자신의 몸을 가꾸거나, 동성에 관심을 표했고. 암컷 쥐들은 기껏 낳은 새끼를 죽이거나 내쫓고 심지어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쥐 무리는 자멸해 버렸다는 실험 결과. 덴 브라운은 뉴욕의 지하를 봉쇄함으로 실험을 재현하고자 했다.
입구를 틀어막고 지하로 내려가는 모든 구멍을 봉쇄했다. 피난민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길게 본다면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병력이 충당되기 전에 쥐떼가 지하 밖으로 넘쳐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혹한이 닥치기 직전 외곽에 배치한 병력을 일부 소집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지상으로 올라오는 모든 구멍을 막고 간혹 빠져나오는 쥐만 잡아 죽이면 되는 일이었다.
길어야 4년에서 5년이면 자연스럽게 지하에 갇힌 쥐들은 자멸하리라. 덴 브라운을 비롯한 제국 수뇌부는 그렇게 생각했다.
“놈들이 도로를 뚫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남은 예비대가 없습니다.”
“바스 비치(Bath Beach), 그레이브샌드(Gravesend), 벤슨허스트(Bensonhurst)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7방위 사단 2선으로 퇴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뉴욕의 지하는 알려진 것보다 거대했으며, 뉴욕의 지하를 점령한 쥐는 존 B 칼훈이 실험했던 쥐처럼 약하지 않았다.
철근콘크리트를 갉아낼 정도로 강력한 이빨. 어지간한 장비는 난도질할 정도로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돋아난 엄지손가락 마디.
작게 돋아난 엄지손가락은 이빨과 발톱보다 위험한 것이었다. 쥐가 인간이 만든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줬으니까.
“탄약고. 쥐가 탄약고를 폭파했다고 합니다!”
“······.”
“······.”
“7방위 사단 보급창고가 기습당했습니다. 창고 전소! 물자 소실!”
“······.”
“······.”
머리가 좋아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작년만 하더라도 놈들이 전력망과 통신망을 끊을 정도였으니.
놈들이 전력망과 통신망을 끊는다는 걸 몰랐으면 모를까 알면 대응 가능했다. 특수소재로 만든 전선을 깔고 근거리 무선 통신망을 구축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탄약고 폭파와 보급창 기습은 이야기가 달랐다. 보급창을 폭파했다는 건, 기폭장치를 다룰 수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다른 무엇보다 보급고를 먼저 노렸다는 건, 인간의 전술을 어느 정도나마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베라자노-내로스 교(Verrazzano-Narrows Bridge)교 붕괴, 7방위 사단 고립됐습니다.”
2선으로 후퇴한 7방위 사단의 구명줄인 다리가 끊겼다. 사단 병력 8천 명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스 비치, 그레이브샌드, 벤슨허스트에 이르는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이 통째로 쥐의 먹잇감이 될 판이었다.
“7방위 사단과 통신 두절!”
“21연대, 42연대, 통신이 끊겼습니다.”
“레이더 장애!”
“센서 작동 오류로 지하탐지가 불가능합니다.”
“유선 통신망은?”
“통신제어기, 중계기가 공격받았습니다.”
특수소재로 만든 통신선이 끊어지지 않으니, 데이터 중계기를 공격했다는 이야기.
“맙소사.”
“중계기를 알고 있다고?”
“······.”
덴 브라운 총통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긴급 보고에 어금니를 물었을망정,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삼면으로 몰고 다리를 끊었다. 포위 섬멸을 노리겠다는 건가?’
어이없었다. 포위 섬멸을 해도 모자를 판에, 포위 섬멸당하게 생겼다니.
‘레이더와 동작감지기가 동시에 고장이라.’
변이체의 밀도가 높아지면 통신 장애가 발생하는데, 통신 장애를 넘어 전자기기까지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위로 올라온 숫자가 상당하다는 뜻.
‘최소 만 단위 이상이 움직였다는 의미다.’
‘어쩌면 10만 이상.’
남부연맹의 식인귀, 늑대인간과 싸우기 위해 제국은 클론 부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신성 왕국에서 수입한 엑소슈트와 열압력탄 그리고 괴수의 부산물로 만든 특수탄을 쓴다면 인간을 벗어던진 놈들이라도 잡을 수 있었다.
“블러디 메리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당장 가동 가능한 숫자가 몇이지?”
“2,752명입니다.”
나루를 베이스로 클론 병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
“전부 출동시켜.”
“아직 안정성 검증이···.”
본체를 공격하고 도주한 전력이 있는 클론을 바로 실전 투입해도 괜찮을 걸까? 덴 브라운이 판단하기엔 ‘괜찮고.’, ‘괜찮지 않고.’가 중요하지 않았다.
“상관없다. 쥐새끼들이 퍼지지 못하게 외곽부터 정리해 몰아넣은 뒤, 열압력탄으로 날려버려.”
남부연맹 식인귀 놈들을 날려버리겠다고 모아둔 열압력탄이었지만, 지금 당장 쥐새끼부터 막아야 할 판이었다.
“전술핵 대기한다.”
“총통 각하!”
“뉴욕에 핵은···.”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소형 탄두라고 하지만 방사능 오염을 피할 수 없습니다.”
“너무 과도한 화력입니다.”
각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커짐에도 덴 브라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블러디 메리 프로그램이 실패하면 전술핵을 사용한다. 놈들이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게 강력한 화력이 필요해.”
“해당 구역에 네이팜을 뿌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네이팜?
좋지 네이팜.
그런데 네이팜 공격을 여러 번 경험한 쥐들이었다. 지금도 네이팜이라면 무작정 두려워할까? 머리가 똑똑해진 쥐들이?
놈들은 잠시 피한 뒤 불길이 잦아들면 다시 올라올 게 뻔했다. 아니면 다른 지역에 새로 굴을 뚫거나.
“블러디 메리를 이용해서 쥐구멍을 찾으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쥐구멍을 찾아 네이팜을 사용하면 가능성 있습니다.”
블러디 메리로 쥐구멍을 찾아 네이팜을 터트리자고? 가능성? 무슨 가능성? 덴 브라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예측대로라면 놈들의 숫자는 80만이 넘는다. 그 반의반만 올라왔다고 해도 20만이다. 거기에 또 절반을 한다고 해도 10만이고. 설마 그걸 뚫고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가?”
“······.”
“······.”
그런 회의 속에서 2,752명의 클론이 전장에 투입됐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치솟는 불꽃! 이어진 충격파!
9mm 탄과 일반 소총탄을 씹어 먹는 쥐새끼들도 강한 화염과 충격파를 버티지 못했다. 충격파에 내장 터졌는지 주둥이와 귀에서 피를 흘리는 쥐새끼.
중심을 잡으려 허우적거려봐도, 사지가 풀려 제자리에서 버둥거릴 뿐. 그런 쥐새끼들의 숨통에 틀어박히는 긴 대검.
푸극-
살아보겠다고 발작하던 쥐새끼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쪽 정리.’
‘이쪽도.’
‘SMAW-NE 이동.’
‘재장전. 대기.’
시가전에서 열압력탄은 효과적이었다. 본능적으로 은폐, 엄폐를 자유자재로 하는 쥐새끼들도 열압력탄에 걸리면 뭉텅이로 날아갔다.
작전대로 쥐떼가 퍼지지 못하도록 외곽을 돌며 동선을 차단하기 시작한 클론들이었다. 쥐들은 집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을 까먹느라 바빴는지 넓게 퍼지지 않고 있었다.
‘지하로 뚫린 구멍 확인.’
문제는 중심부에만 있으리라고 예상한 구멍이 외곽에서도 발견된 것.
‘현재 상황 보고할 것. 출발.’
통신이 끊겼기 때문에 한 명이 보고를 위해 빠지고 나자, 클론들은 익숙하게 공격준비를 마쳤다. 5층 건물 4층 베란다에서 도로 한쪽 구석에 뚫린 쥐구멍을 노리는 클론들.
‘경계병 쥐부터 날린다.’
‘네이팜 대기.’
‘NE 발사.’
콰아아앙!
열압력탄이 출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계병 쥐를 날려버리고 곧이어 네이팜탄이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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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을 꽉 채울 것처럼 치솟는 불꽃. 길게 뿜어지는 검은 연기 속엔 불타 죽는 쥐의 비명이 섞여 있었다.
‘이동···.’
다음 작전지로 이동하려는 클론의 머리 위 5층이 무너지며 파편과 함께 쥐떼가 쏟아져 내렸다.
와르르 무너져 내린 파편에 두들겨 맞은 클론이 몸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발목과 손목을 노리는 쥐떼들.
전신을 뜯겨 먹히던 클론 하나가 열압력탄을 터트려 주변을 날려버렸고, 구석에 있던 다른 하나는 네이팜의 신관을 때려 자폭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아직 죽지 않은 클론은 차가움을 느꼈다. 전신이 얼어붙는 것 같은 차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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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이 나루 클론들을 굴리고 있었다.
“아주 팔자가 폈지? 폈어? 가출? 얼어 뒈지는 게 무섭지 않으시다?”
영하 45도를 넘나드는 강추위 속에서 시작된 혹한기 훈련.
‘아- 도망치고 싶다.’
‘쏠까?’
‘미쳤어? 저거 링크잖아. 본체는 멀쩡하다고.’
‘꼬마 본체 귀여웠는데.’
‘겉보기만 귀엽지. 속은 악마년이야 악마년.’
‘······.’
말이 없던 7호가 우두커니 멈췄다.
“야. 너 왜 그래?”
“빨리 가. 또 지랄하는 거 보고 싶어?”
“정신 차려.”
“······.”
‘야. 얘 뜨거운데?’
‘열이나?’
‘의식을 잃었어?’
“그- 악- 악-”
“악! 아악!”
“여기 악입니다. 악!”
할 말이 있으면 악으로 하라는 걸 떠올린 나루 클론들이 악악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