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2)
러스트 [RUST]-62
기순과 투닥거리던 마루가 주변을 살폈다.
호텔에 가서 진료받고 몇 시간을 병실에 있다 와서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보여야 할 게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읽고 씹?
“야. 김 양은?”
“아이 씨- 분위기 잡지 좀 마. 무슨 김/양 할 기세냐? 왔어. 왔다니까. 아까.”
아니 이냔이? 기순이 지키고 있으라 그랬으면 밖에 나와서 사주경계를 하고 있어야지. 마루가 슬쩍 보위 나이프 손잡이에 손을 댔다. 그 손등을 기순이 찰싹 때렸다.
“뭐야? 뭐! 뭔데? 그냥 칼부터 뽑으려고 해? 너 씨발- 그거 중화제 한 번 더 먹어라. 먹는 거 아니고 주사처럼 맞는 거냐? 그럼 일단 한 번 더 꽂아봐.”
기순의 호들갑에 마루가 ‘아이 진짜.’ 한 소리와 함께 칼에서 손을 뗐다. 김이 팍 샜다. 잡도리할 기회였는데, 김빠지고 하면 뭔가 군대 생각나서 그런데. 빡- 감이 왔을 때, 조져야 하는걸.
“에이- 그래서 언제 왔는데?”
“너 호텔 가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래도 오기는 금방 왔네,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특별한 일은 없고?”
“없기는 왜 없겠냐. 대체 너랑 김 양이랑 진짜 죽고 죽이려다가 엮인 거냐?”
“그렇지.”
“와- 진짜 이렇게 세트로 뭐 같기도 쉽지 않은데, 혹시 서로 마음이 좀 있기는 하고?”
마루가 조용히 보위 나이프로 손을 뻗었다.
“아니- 뭐만 하면 칼이야. 김 양은 뭐만 하면 총이고. 쌍으로 왜들 지랄인지, 너는 칼 갈고, 지랄이더니, 김 양은 방에 들어가서 총 가지고 완전분해 놀이하고 있더라. 내가 씨발 진짜 허허하하하! 미친. 틈을 안 줘요. 틈을.”
기순의 넋두리에 마루가 ‘그런가?’ 했다.
“뭐가 그런가야 그런가가. 수륙양용 아르고랑 쿼드스키 오면 싣고, 출발하기 전에 모여서 이야기 좀 하자. 진짜 대화가 없어요. 대화가.”
“뭔 대화는 뭔 대화. 그냥 일단 뜨고 나중에 해, 바다에서 뭐 하겠어? 시간도 넉넉한데.”
“아니, 뜨기 전에 의견이든 뭐든 조율을 해야지. 바다에서 서로 어긋나면? 어쩌려고?”
“어쩌긴 뭘 어째.”
“순리대로 가는 거지.”
마루의 담담한 대답에 기순은 목이 막히는 것 같았다.
‘순리대로 하는 게 아니라 간다고?’
“아- 진짜- 아- 일단, 짐 오고 나면, 김 양 올라오라고 할 테니까, 그때 지금 상황 설명해주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어디까지 함께 할 건지 정해서. 서로 불편하지 않게 하자고.”
“안 불편하다니까. 불편할 게 뭐가 있어.”
“내가 불편하다. 내가. 그러니까 짐 다 싣고 그러면 출발하기 전에 김 양 불러올 테니까 같이 이야기 좀 하게 눈깔에 힘 좀 빼고 있으라고. 중화젠지 뭔지 하날 더 빨든지 꽂든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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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조금 소란스러웠다.
뭔가 짐이 온다고 하더니 그걸 싣는 소리였다. 수륙양용 머시기라고 하던데, 첨 듣는 거였다.
김 양은 초집중한 상태. 조금 시끄럽지만 지금 이 빛나는 기운을 놓칠 수 없었다.
아래로부터 4개 3개 2개 1개 쌓인 금괴 피라미드. 그렇다. 이것이 바로 금괴 피라미드였다.
노랗게 빛나는 피라미드 아래 삼각대, 스코프, 소음기 포함 길이 155cm 무게 16.5kg 크고도 아름다운 자태가 12.7mm 탄환을 물고 있었다. 크고 아름답다. 강력하고 숭고했다.
커스텀한 모델이라서 그런지 알고 있던 기본형 스펙보다 길고 무겁고 완벽했다. 그러니까 본래 기본형이 144cm에 14kg이었던가? 그보다 크고 무겁잖아. 개 좋아.
하아- 하아- 하아-
김 양은 약간 벅차올랐다. 오른팔 깁스가 원통하고 절통했다. 이 두 손으로 금괴를, 바렛을 영접했어야 하는데, 마루가 원망스러웠다.
아-
순간, 연기 속으로 슥- 사라졌다가 휙- 회치는 그림자가 떠올랐다.
공기가 차가웠다.
문득.
정말 문득.
죽음이 스치고 지나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호흡이 조금 가빠졌다.
춥다. 차갑다.
그래
그렇게 차갑고 허무한 죽음이 있었다.
차가운 공기를 색색 들이쉬며 두려움에 떨었던 아이가 있었다.
늪처럼 질척한 강변을 따라 걸을 때가
서늘한 안갯속으로 숨어 들어갔을 때가
여기 있었다.
짙은 안개 너머 검은 그림자가 손을 뻗어왔다. 피 묻은 손이 따라왔다.
아이는 도망쳤다. 휙-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 안개 저편에서 죽음이 손짓했던 때가
여기에 있었다.
하-아-
목에 건 얇고 가는 금반지.
때가 꼬질꼬질 묻은 금반지를 목에 걸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김 양은 텅 빈 가슴께를 뭔가 쥐는 것처럼 했다. 심장이 쥐어진 것 같았다.
척-
처그덕
착-
테이블에 놓인 발터 P22가 순식간에 조립됐다.
철커덕.
김 양의 총구가 문을 향했다.
“아! 깜짝이야. 어? 지금 뭡니까? 김 양? 김 양씨? 눈동자가 왜 그렇죠?”
기순이 깜짝 놀라 두 팔을 번쩍 들었다가 살며시 내렸다.
아무 말 없는 김 양. 뭔가 찐득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뭐지 진짜? 미쳤냐?
그 순간 기순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뭔가? 그건 뭔가였다. 알 수 없는 뭔가.
덜덜덜. 기순의 다리가 자기도 모르게 떨어 댔다. 슬쩍 뒤를 돌아본 기순이 한숨을 푹 쉬었다.
마루가 씨익 웃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언제 총을 겨눴냐는 두 손을 공손하게 한 김 양이 보였다.
“거기, 김 양? 지금 바쁘지 않으면 우리 같이 이야기 좀 하죠.”
김 양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으- 기순은 히터를 틀어야 하나? 다리는 왜 갑자기 떨린 거지?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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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간단하게 끝났다. 분위기가 살벌한 것도 없었고, 의견이 갈린 것도 없었다. 기순이 설명하고 마루와 김 양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기순은 ‘이게 뭐 하는 짓이지?’를 두 번 연속하더니, 두 손을 하늘로 들었다.
그렇게 김 양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마루와 기순이 선미에 걸터앉아 별을 봤다.
“야- 너 내가 반쯤 미쳤을 때 기억나냐?”
기순의 말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일이었다. 기순의 배다른 형이 물살이 센 계곡으로 기순을 밀었다.
당시 마루는 반사적으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기순을 향해 뛰어들었고, 허우적대는 기순을 힘으로 끌고 나왔다. 그렇게 기순과 마루는 천만다행으로 살았지만, 그 뒤 몇 년 동안 기순은 물 근처에도 가지 못했었다.
“씨발 장난? 장난으로 발로 차냐? 물살이 센 계곡으로? 그 새끼가 고3이었을 땐데 중2짜리 애를 발로 차 놓고 실수? 장난이라며? 나중엔 실수? 아- 지금 생각해도 빡치네.”
마루는 예전처럼 조용히 기순의 말을 들었다.
“설마 그랬다. 정말 설마. 그 일 이후 아버지가 내 명의로 유산 잘라 놓고, 나 죽으면 바로 형들 재산 n빵으로 뜯어, 내 유산이랑 합쳐서 공공재단 만든다는 유서 공개한 뒤 사고 없어진 거.”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 특히 초등학교 고학력 무렵부터 중학교 2학년 계속 사건까지. 기순이 죽을 뻔한 일이 잦았다. 기순과 같이 놀던 마루도 같이 붙어 있던 시간이 긴 만큼 덤으로 겪었었고.
그러고 보면 진짜 기순이도 그렇고 자신도 악운 하나는 끝내주는 편이었다.
“그러다 울 엄마가 돌아가셨지.”
기순의 목소리가 음울하게 변했다.
“그 뒤 내가 몇 년 미쳤었잖냐. 눈에 보이는 거 없이 지랄했던 거. 그러다 병원에도 좀 실려 가고, 개판이었지. 뭐 따지고 보면, 네 덕에 중학교 졸업했으니.”
기순이 미쳐 날뛰던 시절, 마루도 옆에서 당당히 날뛰었다. 마도중 작은 하마룰 건드리면 좆된다는 별명에 기실은 기순의 지분이 상당히 있었다.
“하- 씨발 그래서 까치인 거야. 까치. 머리 깨지고 뒈지는 엔딩. 은혜를 갚으면 뭐 하나? 자식새끼 다 굶어 뒈지는걸.”
그랬다. 기순의 엄마도 은혜를 갚는다면서 결국 첩이 된 거 아닌가? 은혜 갚겠다고 하다 죽고, 자식새끼도 죽게 생겼고, 기순의 아버진 그런 자식 살리고, 사랑하는 여자 살린다고 했다가 가버렸다. 근데 하는 짓을 보면 자기도 까치과였다.
마루는 갑자기 급 드리프트 하는 기순의 말에 조용히 침묵했다. 진한 슬픔과 회한, 분노가 삭아버린 한탄이 밤바다에 흩어지기까지 마루는 단지 곁을 지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순이 갑자기 마루의 등판을 때렸다. 찰싹-
“아야! 갑자기 왜 지랄인데.”
마루의 대응에 기순이 하하핫 웃음으로 답했다.
“그래. 씨발 지랄이다. 어쩔래? 그렇게 뜨라고 눈. 아까 존나- 너랑 김 양이랑 무슨 썩은 동태눈깔이었다니까. 내가 병원 다녀봐서 아는데. 그런 눈깔, 사고 치는 눈깔이었다.”
마루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 양의 동태눈 버전에 동의한다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야 오늘 하루 힘들었나 보다, 그렇게 넘어가기엔 둘 다 눈깔이 맛이 갔거든. 아무리 보고 생각해도 너희 둘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데···. 견적을 보아하니, 갈 년이 아니고 갈 놈도 아니고. 당장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하- 좋아. 어쩌겠냐? 이 킹기순님께서 집도하는 수밖에. 마루쉨 너부터 한다. 일단 충분한 수분 섭취 뒤, 정신교육 시작하자.”
아니. 진짜 왜 또.
“닥쳐. 차가운 물이나 처먹고 있어. 김 양 한테 다녀올 테니까.”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말을 끝으로 기순이 김 양을 찾아갔지만, 김 양의 철벽을 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올라서 흥분했었나 봅니다.’ 등의 말로 기순의 개입을 원천 차단한 김 양이었다.
“아 진짜 다들 양파도 아니고, 까도 까도 껍질이야.”
“······.”
“······.”
“뭐-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그래도 같이 살아 보자면서. 서로 칼질, 총질은 하지 말아야지 않겠냐?”
“······.”
“······.”
그렇게 아이엠 그라운드 서로 알아가기는 기순의 솔로 플레이를 마지막으로 끝나게 됐다. 기순이 원하는 대로 셋이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한다거나, 서로에 대해 아는 건 실패했지만, 최소한 김 양에게 김기순이라는 새끼는 입을 열면 정신공격이라는 건 확실히 인식시키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마루는 또 그게 불안했다. 눈이 맛이 간 여자는 뭔 짓을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기순의 필사적인 ‘우리는 동료임.’ ‘다들 착하게 칼은 넣어두고, 거기 총도 좀 내려놓고 스마일.’ 캠페인은 패인이 됐지만,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그 덕에 마루는 선선히도 김 양을 닭 보듯 했고, 김 양 역시 속은 알 수 없지만, 마루를 소 보듯 했다.
그렇게 늦은 밤.
일본으로 같이 떠날 샬롯 호텔 사장님 대역이 요트에 승선했다.
기순이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명이라고 하더니 요즘엔 1+1이 대세인가? 한 명이 왜 더 붙었데?”
마루와 김 양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없이 1+1은 선 넘었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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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샬롯 사장을 복사기에 넣고 돌린 것 같은 여자가 웃으며 인사했다.
“호텔 샬롯 사장님의 분신, 심은화라고 해요. 지금부터는 그냥 심 사장님 또는 사장님으로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호칭에서 실수하면 안 되니까요.”
나긋나긋하면서도 뭔가 미묘한 느낌. 호텔 사장님 느낌이었다. 전화 통화를 제법 오래 했던 기순은 ‘와- 레알- 실화?’라는 감탄사와 추임새를 넣으며 놀라워했다.
안면이 있다는 김 양도. ‘어라?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하는 표정으로 갸웃했다.
마루도 그랬다. ‘정말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쩐다고 해야 하나?
덤으로 온 경호원은 여자였다. 이기영 과장이나, 과묵한 아재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마루는 처음 보는 여자인지라 김 양에게 눈빛을 보냈다. 김 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 양도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소리.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몸을 두르고 있던 후드? 로브 같은 거로 작은 몸을 감싸곤 구석으로 향했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제 안전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제 안전에 이상이 없다면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심은화의 목소리에 잠시 주의가 환기됐다. 기순은 그래도 그렇지 통성명은 해야지 하는 표정으로 금방 구석으로 향한 여자를 부르려고 했다.
“어? 아까 그 경호원 여자분 어디로 갔지?”
기순의 말에 마루와 김 양 모두 구석을 살폈다. 없었다. 주변을 살폈다. 없었다. 보이지 않았다.
뭐지 이건?
마루와 김 양이 동시에 움직였다. 칼과 총을 뽑아 든 두 사람이 사방을 경계했다.
“아-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제 안전에만 이상이 없으면 일본에 도착할 때까지 어디 구석에서 나오지 않을 애랍니다. 아- 밥이랑 물은 따로 한쪽 구석에 두시면 돼요. 그럼 시간 더 늦기 전에 출발할까요?”
기순은 혹시 진짜 호텔 누님이 가짜 행세를 하고 탄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뭘 어떻게 할 상황도 아니었고.
위이이이잉-
흔들리는 물살을 뒤로하고 하얗고 매끈한 요트가 이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