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21)
러스트 [RUST]-621
약과 폭탄 그리고 싱싱한 신앙으로 무장한 들쥐들은 말 그대로 미쳐 날뛰었다.
이제 여기 있는 이교도를 죽음으로 인도하옵니다.
죽음의 신이시어 부디 이 초라한 죽음을 받으시고 낙원으로 인도하소서.
콰아아앙!
찌. 찌이이익! (미쳤다. 이것들은 미쳤어!)
찌이익! (입구 막아!)
찍찍찍이익! (지원! 지원 요청해!)
전투자극제에 폭탄까지 들고 날뛰는 들쥐를 막기 위해 뉴욕 토박이 쥐들도 인간에게서 노획한 수류탄을 사용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퍼어엉!
수류탄이 터지며 들쥐 네다섯 마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수류탄 핀에 실을 매달아 부비트랩을 만든 시궁쥐가 살짝 머리를 내밀었다.
찌이? (죽었나?)
수류탄이 터지면서 천장과 벽까지 튕겼던 들쥐들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는 모습.
향정신성 물질에 급속 치료제의 찌꺼기와 아드레날린 촉진 약물까지 뒤섞인 전투자극제를 맞은 들쥐들은 가히 괴물 같았다.
그렇다.
엄지손가락 마디가 생긴 쥐들은 주사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우주전쟁 게임에 등장하는 해병이 사용하는 전투자극제처럼 자기 몸에 주사를 놓고 기괴한 소리를 내는 들쥐.
찌흐아-
찌익예-
지이이이-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뭐. 뭐야 저것들은···.’
그렇지 않아도 단단했던 가죽은 단시간에 엄청난 숫자의 동족을 포식하면서 한 단계 더 질기고 단단해진 들쥐들이었다. 거기에 약까지.
뉴욕의 쥐들은 협상하려고 했지만, 들쥐들은 강경했다. 죽음의 신께서 이르시길. 모조리 죽이라고 명하셨으니 그대로 따를 뿐.
차근차근 인간의 병사들을 줄이고 줄여 인간을 말려 죽이려고 했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뉴욕의 쥐들은 다시 지하로 후퇴했다. 그리고 지하수로를 무너뜨려 들쥐들의 침입을 막았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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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각료들은 회의장 테이블 위에 올라온 3마리의 들쥐들을 보고 쑥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인 남성의 허벅지 크기와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들쥐가 회의장에 있었으니까.
“들쥐군요.”
“신성 왕국의 그 쥐인가요?”
“신성 왕국이라고 하더니 까마귀에 늑대, 이제는 쥐까지. 동물 왕국이라고 불러도 되겠군요.”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는 갈매기까지 있다고 하니까 그 말이 맞습니다.”
덴 브라운 총통은 들쥐를 회의실에 데려온 기순을 바라봤다.
“이게 무슨 경우지? 들쥐를 회의실에 데려오다니?”
“그냥 들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전조작이라도 했나? 아니면 자네가 동물을 다루는 드루이드 같은 능력이라도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인가?”
“전 그런 능력은 없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제국이 알아야 할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유했던 전과는 달리 각료들이 내뿜는 기운은 옅은 흑색이었다. 짙은 경계심. 어쩌면 적의에 가까울 정도의 부정적인 감정.
소모전을 계속했다면 결국 버티지 못해 핵폭탄을 썼을 상황에서 구해줬는데 저런 색깔이라니. 심지어 덴 브라운 총통도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이었다.
‘수십만 단위의 들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쳐도 과한데.’
아마도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고작 쥐 따위와 베트남전, 아프간전 급으로 치고받았으니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기 때문이겠지.
“제국을 가르치시겠다?”
“원하지 않으시면 들쥐들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러자 각료 가운데 하나가 소리를 높였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상의도 없이 테이블 위에 들쥐를 올려놓더니 이제는 치운다? 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계약의 이행과 현실의 직시입니다.”
나루 클론을 뽑고 또 뽑아서 간신히 전선만 유지할 뿐이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렇게 클론 고기 방패로 구멍 난 둑을 막는 것도 잠시, 새로운 쥐구멍이 뚫리면 인간 병력으로 구성된 예비대를 밀어 넣어야 했고 그건 소모전을 의미했다.
쥐떼와 소모전을 한다는 건 병신 짓거리임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혹한의 겨울이라 시민들을 대피시킬 수도 없었고, 사실상 대피가 불가능했다.
어지간한 추위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평균 영하 45도 최저 기온 영하 7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였다. 이런 상황에서 천만 인구가 도시를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블라디나루 클론에 대한 연구자료, 본체의 시체 그리고 생존한 클론 전부의 양도였지. 당연히 계약을 어길 생각은 없네.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지.”
어두운 파랑.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이성적이라는 느낌.
“시간이요? 계약에는 즉시 넘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우리도 자료를 정리해야 하니까.”
이것도 비슷하니까 다른 의도는 없이 사실이겠지. 기순은 덴 브라운의 색에서 전해지는 느낌을 읽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갈 수는 없었다.
“정리할 것 없이 서버, 하드디스크 통째로 주시면 됩니다. 정리는 알아서 하면 되니까요.”
“신성 왕국이야 서버, 하드디스크 같은 저장 매체가 흔한지 모르겠지만, 불행하게도 제국은 그렇지 않아. 그래서 서버와 하드를 통째로 주는 건 어려워.”
이것도 사실이지만, 어두운색이 조금 더 진해졌다는 건. 아무래도 부정적인 감정이 강해지는 것 같았다. 기순은 덴 브라운 가만히 바라봤다.
‘적이 될 건가?’
그건 아니었다. 어둡지만 회색이 기본색. 중립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중립이라···.’
좋은 말이다. 중립. 하지만 기순은 알고 있었다. 중립이란 다른 말로 이익이 되는 대로 행동하면서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이야기라는 걸.
‘마루 앞에서는 무슨 색을 보일지 궁금한걸.’
색을 보려고 집중해서인지 미약한 두통이 생긴 기순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서버와 하드를 달라는 걸 거절해서 인상을 쓴 것으로 착각했는지 덴 브라운의 표정도 나빠졌다.
“골치 아프군요. 이런 건 빨리 끝내는 게 좋은데 말입니다.”
“그래. 그건 그렇지. 그래서 저 쥐들은 무엇 때문에 데려왔나?”
서버와 하드를 통째로 넘기지는 않겠다는 말을 돌려서 한 덴 브라운이었다. 기순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곤, 쥐들에게 말했다.
“지금 상황을 알려줘.”
찌이익-
쥐 두 마리가 태블릿을 양쪽 끝을 붙잡고 기울였다.
“지금 말을 알아들은 건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들었다고?”
“다들 진정하지. 개도 말을 알아듣고 고양이도 그래.”
까마귀나 앵무새, 거위 같은 조류도 말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쥐가 알아듣다니···. 쥐떼가 방어 사단의 보급고를 폭파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관찰에 의한 것이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추론한 결과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메모리 카드를 꺼내 태블릿에 꽂아넣는 쥐. 이후 태블릿의 전원을 켜고 터치펜을 이용해 메모리 카드에 들어있는 영상을 재생시켰다.
“······.”
“······.”
“······.”
“······.”
너무 충격을 받으면 말이 나오지 않는 법.
쥐새끼들이 전술을 쓴다. 함정을 팠다. 보고서로 올라오는 것만 들었지, 막상 태블릿 PC를 다루는 들쥐를 눈앞에서 본 장관들은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들쥐가 태블릿을 다룬다고?’
‘터치펜을 사용해?’
‘양쪽에 있는 두 마리는 잘 보여주기 위해서 태블릿 각도를 조절하고 있는 건가?’
‘미쳤네. 미쳤어.’
장관들은 입을 열 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컴퓨터였다.
현대문명의 결정체 컴퓨터. 이걸 다룰 수 있다는 건 데스크 톱 PC, 스마트폰을 비롯해 전자장비 전부를 다룰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메모리 카드에 담긴 영상은 들쥐가 시궁쥐를 추격해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지하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곧 매복 공격이 이어졌다.
시궁쥐가 만든 수류탄 부비트랩이 터지고, 들쥐들이 주사약으로 응급처치하고 반격하는 영상. 매복, 기만, 전격전, 우회공격, 포위섬멸, 돌파···.
이것이 정녕 쥐의 싸움이란 말인가?
각료들은 태블릿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CG(Computer Graphics)가 아닐까 하는 의심은 없었다. 지금 태블릿 PC를 실시간으로 다루고 있는 들쥐들이 있었으니.
장관들의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걸 지켜보던 기순이 들쥐들에게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태블릿을 끄고 정리하는 들쥐들.
“아-”
“크흠.”
“험. 험.”
작은 탄성과 탄식 속에 숨겨진 감정의 색깔은 ‘두려움.’이 분명했다. 기순의 가느다란 실눈이 나긋하게 휘어졌다.
“보셨다시피. 뉴욕의 쥐떼들이 방어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쥐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 이상 다시 기어 나올 일은 없을 겁니다. 아마 최소한 몇 개월은 숫자를 불리겠죠.”
덴 브라운 총통의 날카로운 눈빛이 기순을 향했다. 그의 빛은 어두운 남색에 가까웠다.
“ 실험이라고 들어봤나?”
“쥐를 가지고 실험한 것이라면 압니다.”
“들쥐들 영상대로라면 뉴욕 지하를 완전히 폐쇄했다는 이야긴데, 그게 사실이라면 시궁쥐들을 가뒀다고 보면 되나?”
“쥐떼가 자멸하거나 세력이 약해지는 걸 기다릴 방침이라면 어렵다고 봅니다.”
“어째서지?”
기순이 자신의 머리를 검지로 톡톡 두들기며 답했다. 쥐들의 머리가 좋아졌다는 걸 잊지 말라는 제스처(Gesture).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엔 공간을 넓힐 테니까요.”
지하로 깊숙이 파고들거나, 옆으로 확장하거나.
“먹잇감까지 고려해도 그런가?”
공간은 그렇다고 쳐도 먹잇감은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기순이 고개를 저었다.
“털리도에 있던 쥐들은 바퀴벌레를 사육해서 식량으로 삼더군요. 버섯과 곰팡이도 재배했고요. 그렇게 해서 수십만을 유지했습니다.”
“······.”
쥐가 독자적으로 농작과 사육을 했다는 기순의 말에 덴 브라운이 당혹스러운 색을 뿌렸다. 기순은 덴 브라운 총통에게서 비치는 색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뉴욕 지하로 숨은 것들도 어떤 방법이든 찾겠지요. 그게 아니더라도 동족 포식이 있으니 일정 숫자는 유지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늙고 병든 쥐를 잡아먹고 숫자를 유지하리라.
“들쥐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네만.”
‘의사소통을 묻는다?’ 기순의 실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비치는 색과 질문이 미묘하게 달랐다.
“들쥐의 말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들쥐들이 인간의 말을 알아먹기는 합니다. 한 70~80% 정도.”
“쥐들이 태블릿을 이용할 줄 아니, 문자로 의사소통하면 되는 일이니까 문제는 없겠고. 지하로 숨은 쥐떼를 토벌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들쥐의 지휘권을 양도받을 수 있겠나?”
과연. 이쪽이 본론이었다.
“그건 들쥐들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테이블 위에 있던 들쥐들이 고개를 기울였다.
찌익?
덴 브라운과 장관들의 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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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빌딩 한쪽 외벽에 붙은 사내가 회색빛 물결을 보며 인상 썼다.
“제국 놈들. 이걸 이렇게 막네.”
변이 괴수들이 남부연맹의 중심 텍사스를 뒤흔들고 있었다. 제일 골치 아픈 적은 멧돼지 괴수. 이 잡식성의 괴물은 농작물이든 가축이든 가리지 않고 작살 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밴 정도의 크기였는데,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덤프트럭 크기가 흔했다. 커진 덩치만큼 먹어대는 양도 늘었기에, 피해를 본 농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
그래서 투입하기 시작한 신인류들.
정예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성인 남성의 3~4배에 달하는 신체능력을 보유하고서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병신들이었지만, 변이 괴수 잡는 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폐급이라고 해도 신인류는 신인류. 신체능력이 뛰어나니 당연한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이 오판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신인류들이 멧돼지 먹이가 된 뒤부터 시작됐다. 머리가 좋아진 멧돼지가 인간을 주로 탐하기 시작한 것.
잡식성이었던 멧돼지가 뚜렷하게 육식, 그것도 인간을 선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신인류와 본격적인 생존 경쟁에 돌입하게 됐다는 의미였다.
상황은 점점 좋지 않게 변했다. 괴수 멧돼지만도 골치 아픈데. 쥐와 조류도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
본래 텍사스에는 들쥐가 많았다. 그리고 그 들쥐를 주로 잡아먹는 맹금류도 많았고. 이것들이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하자, 사실상 기존에 있는 병력과 조금씩 숫자를 늘리고 있는 신인류만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상태까지 왔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남부연맹이 택한 방법. 제국의 클론 기술을 빼 오자.
남부연맹은 탈취 작전을 위해 귀족 요원을 파견했다. 숫자가 극히 적은 귀족 요원을 파견했다는 것은 그만큼 남부연맹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제국 비밀 실험실을 찾기 위해 암약하고 있던 귀족 요원이 본 것은 쥐떼의 습격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뉴욕이었고, 그 끔찍한 쥐떼를 몰아내는 들쥐였다.
“통제할 수 있는 들쥐떼라니···.”
비밀 연구실을 찾기 힘들다면, 들쥐를 조종하는 방법을 찾는 쪽으로 가는 것도 괜찮겠는데?
빌딩 외벽에 서 있던 그가 공중으로 몸을 던졌다.
휘리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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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이며 떨어지는 소리와 인영이 허공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