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23)
러스트 [RUST]-623
붉은 점이 총포상 2층 방 안쪽에 들어와 박히기 시작했다. 사냥감을 노리는 늑대처럼 레이저 조준선이 깨진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배회하는 모습.
까마귀의 날개를 찢고 피를 빨아먹는 괴인의 등장에, 뚱뚱한 주인은 그 자리에 굳은 채 눈을 굴렸다.
“클리어!”
“Clear!”
1층에 진입한 부대가 순식간에 1층을 확인하고 2층을 향했다.
삐걱-삐걱-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도 가만히 서 있던 남자가 슥- 입에 묻은 피를 닦고는 공포에 질려 헐떡이는 상점 주인을 바라봤다.
“지방질이 많은 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 불길한 음성에 상점 주인이 소리를 높였다.
사. 사람
“버리기는 아까워서 말이지.”
뭣보다 여기서 드잡이질하는 건 수지(收支)가 맞지 않고.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사. 사. 살···.”
쉬- 조용히. 그러면 살살해주지.
‧
‧
‧
쾅!
나무 문짝이 터지듯 열리며 완전무장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꼼짝 마!”
“손들어!”
“······.”
부대원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날개가 찢겨 죽은 까마귀 사체. 그리고 하얗게 질려버린 덩치 좋은 남자의 주검이었다.
“까마귀?”
“젠장···.”
사람이 죽었다는 것보다 까마귀의 죽음이 더 문제였다. 까마귀는 신성 왕국 소속이었기 때문.
“다른 흔적이 없습니다.”
“감식반 불러.”
대기하고 있던 감식반이 들어와 현장을 기록하고 분석했다.
“이상합니다.”
“···확실히 이상하군.”
현장을 자세히 관찰한 감식반원들이 숙덕거렸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장.
“어떻게 된 겁니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이해할 수 없는 현장이라서 말이지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신성 왕국의 까마귀가 둘이나 죽은 상황. 정황상 금을 밀수하려고 한 것으로 보였지만, 신성 왕국의 특수탄과 거래하려던 금괴 모두 현장에 남아 있었다.
그럼 까마귀와 총포상 주인은 왜 죽였다는 말인가? 금괴를 노린 범행도 아니고, 특수탄을 노린 범행도 아니었다.
더 황당한 것은 까마귀가 총포상에 들어간 뒤, 부대가 주변을 포위하고 진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5분 내외였다는 것이었다.
까마귀를 추적하던 감시 인력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10분 전. 10분이라는 그 짧은 시간에 신성 왕국의 까마귀를 두 마리나 죽이고 총포상 주인까지 죽인 뒤 사라진 범인이 있다는 이야기.
“까마귀 한 마리는 목뼈와 척추가 으스러져 죽었고. 다른 한 마리와 총포상 주인은 과다출혈로 죽었습니다.”
“과다출혈이요?”
부대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면 사방이 피바다여야 했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 깨끗한 현장.
게다가 총포상 주인은 반항한 흔적조차 없었다. 눈에 띄는 총상이나, 날붙이에 찔린 상처도 없었고.
‘목이 졸린 것도 아니었지.’
신성 왕국 까마귀가 두 마리나 죽은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 그놈들도 엄연히 변이 괴수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놈들이었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에 칼날 같은 깃털까지. 놈들도 어지간한 화력은 씹어 먹을 것들인데, 현장을 보면 반항도 못 해보고 죽었다.
‘독약도 아니고.’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은 모두 넷. 코코아, 청주 계열의 술, 우유, 생수. 시체는 셋. 그럼 하나가 범인이거나 현장에서 도망쳤다는 건데.
범인은 아니었다. 이곳으로 온 까마귀는 모두 셋. 신성 왕국제 특수탄이 들어있는 가방도 모두 셋이니 까마귀 하나가 살아서 도망쳤다는 이야기였다.
“···이상한 점은. 사인(死因)이 과다출혈인데, 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목격자를 찾아야겠군요.”
이 경우에는 목격오(烏-까마귀)가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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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으로 올라온 보고서를 읽던 덴 브라운 총통은 가라앉았던 두통이 다시 도지는 느낌이었다. 신성 왕국의 까마귀들이 금을 밀수(密輸)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
언제부터 밀수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밀수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제국이 가진 패 가운데 제일 큼지막한 패가 금이었는데 그게 줄줄 새고 있었다는 이야기였으니.
총포상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전방위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결과는 참담했다. 민간에 유통되고 있는 특수탄은 거의 전부 밀수라고 봐야 했고 금 밀수도 그만큼 큰 규모인 것이 밝혀졌다.
덴 브라운 총통은 바로 기순을 호출했다.
‘밀수라니요. 금이 밀수 품목이었습니까? 아니, 애초에 밀수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무슨 소리지?’
‘뉴욕에서 금을 사다가 디트로이트에서 팔면 그게 밀수입니까?’
‘······.’
‘신성 왕국과 제국은 그전부터 거래하고 있었습니다. 신성 왕국과 제국으로 각기 독립적인 국가가 되기 전부터 말이죠.’
‘그래서 밀수가 아니라고?’
‘밀수와 관련된 조약도 관례도 없었고, 거래 시작부터 지금까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곤란해?’
당장 관련 조항을 만들고 금 밀수를 때려잡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밀수범(?)들이 까마귀였기 때문이었다.
비행선을 이용하려면 까마귀의 호위가 필요했다. 변이를 일으킨 새들이 비행체만 보면 달려드는지라 어쩔 수 없었다.
호위용 드론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부품 조달의 문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론과 관련된 부품 대부분이 중국제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제 부품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드론과 관련된 부품 공장은 거의 전부 서부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쪽에 있었다. 그리고 그쪽 지역은 전부 털리고 폐허가 됐고.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LA 인근에 드론 관련 회사들이 있었으니.’
단순히 무장 드론만 만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걸림돌.
변이 개체가 뭉치면 일종의 전자기 교란이 일어나는데, 통신 교란을 비롯해 전자장비가 오작동하거나, 심하면 고장이 나기까지 했다.
재밍(Jamming)을 비롯한 전자공격 (EA : Electronic Attack)에 대응할 수 있는 무장 드론이 필요했기에 생산과 실전 배치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공중 호위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전까지는 신성 왕국의 까마귀들이 밀수하고 다녀도 건드리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심지어 신성 왕국은 밀수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그게 밀수가 아니면 뭔가?’
‘민간 교역이죠.’
다시 말해 계속 밀수하겠다는 이야기.
언제부터 금을 밀수하고 있었을까? 아마 실물화폐로 전환했을 때부터 그랬을 게 분명했다. 사람도 아니고 까마귀를 이용해서 거래할 줄 몰랐던 것이 실수였다.
‘총포상 살인 사건의 범인은 잡았습니까? 신성 왕국의 까마귀를 둘이나 죽인 범인을 놓칠 리 없다고 믿겠습니다.’
수사에 진척이 없자, 수사관들은 유일한 증인을 요청했고 깔끔하게 거절당했다. 다만 까마귀의 증언은 넘겨줬기에 정황을 분석할 수 있었다.
현장 감식과 유일한 생존자인 까마귀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유력한 것은 남부연맹 스파이의 소행이었다.
강도나 빌런의 소행이었다면, 금괴와 특수탄이 그대로 있을 리 없었으니까. 심지어 사인이 과다출혈임에도 혈흔이 없었다는 건, 흡혈귀가 범인이라고 봐야 했다.
‘남부연맹 놈들 결국 흡혈귀까지 갔군.’
식인귀를 신인류라고 하더니 늑대인간을 만들어냈다. 그런 놈들이 기어코 귀족이라는 흡혈귀까지 성공한 것이었다. 불로불사(不老不死)까지는 아니더라도, 장생(長生)을 확보한 것.
장생(long life)을 확보한 놈들이 원하는 게 뭘까?
‘회춘(rejuvenation).’
남부연맹의 핵심 세력은 회춘을 추구하는 놈들이었다. 버지니아 랭리 놈들도 그쪽에 붙은 군부도, 보수의 탈을 쓴 놈들도 전부.
‘그리고 그런 남부연맹과 신성 왕국이 불가침 조약을 맺었고.’
제국과 남부연맹이 시애틀에서 치고받을 때, 신성 왕국은 남부연맹과 불가침 조약을 핑계로 한 걸음 떨어져 있었다.
U+ 프로그램을 가져간 신성 왕국. 블러디 메리 프로그램의 연구자료를 가져간 곳도 신성 왕국. 다시 말해 남부연맹이 그토록 원하는 회춘의 비밀이 신성 왕국에 있다는 걸 알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남부연맹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면서 중립국 놀이를 계속할 수 있을까?
덴 브라운 총통의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 스치고 지나간 것은 어떤 기대감이었다.
뉴욕에 있는 신성 왕국 대사관에는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금 거래를 하는 까마귀들이 습격당하고 있다고?”
“예. 벌써 4번째입니다.”
총포상 사건은 알고 있었으니, 그 뒤로 3번이라는 건데.
“장소는?”
“그게. 2번은 거래처 2번은 숙소 앞이었습니다.”
“숙소 앞?”
“예.”
그렇지 않아도 실눈인 기순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칙- 총독님. 제국에서 범인과 관련된 정보를 보내왔습니다.]“바로 올려.”
“그래? 보관실에 보관하도록.”
기순은 우선 제국의 수사기록을 살폈다. 그동안 수사한 과정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부 기록된 보고서였다. 결과를 요약하자면 범인은 남부연맹의 스파이로 추측된다는 이야기.
‘남부연맹의 스파이라고?’
신성 왕국이었다면 스파이가 도시에 도착하기 전 끝날 문제였다. 들쥐의 일용할 양식이 되거나 까마귀나 늑대들의 별미가 됐을 테니. 하지만 이곳은 제국. 암중에서 치열한 첩보전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흡혈귀라···.”
기순도 흡혈귀와 관련된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흡혈귀가 어째서 까마귀를 노리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네. 신성 왕국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왜 까마귀를···.’
혹한의 겨울인지라, 까마귀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신형탄약과 금을 바꾸고 다니는 일 정도였는데.
‘···까마귀?’
까마귀들이 주로 하는 업무는 호위, 정찰, 감시, 폭격이었다. 그러니까 까마귀들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어디에 있는지 장소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장소나 사람을 찾고 있다는 이야긴가?”
까마귀를 잡는다는 건, 까마귀에게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장비나 능력이 있다고 봐야겠지? 4번이나 공격했다면, 원하는 것을 찾기까지 계속할 가능성이 컸다.
남부연맹의 흡혈귀가 찾으려는 장소나 사람이라면 뭘까? 식인귀, 늑대인간을 거쳐 귀족이라는 흡혈귀까지 갔으면서 찾으려는 게 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유 이사와 관련된 이야기.
‘회춘?’
남부연맹의 흡혈귀는 회춘과 관련된 걸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기순은 관련된 정보를 바로 아크 타워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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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까마귀들이 오가는 길목을 지키고 섰지만, 어제부터 깃털 하나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 답답했던 그는 저장해둔 피를 한 모금 빨았다.
‘이거 반응이 빠른데?’
신성 왕국 놈들 까마귀한테 감정이입이라도 하는 걸까? 감정이입을 하려면 키우는 정이라든지 뭐 그런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여기서 대기하고 있는 까마귀만도 수천 마리라서 몇 마리 사라져도 단순 손실로 볼까 싶었는데 말이지.
처음에는 제국의 클론 기술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 뒤에는 신성 왕국의 들쥐 통제 기술을 찾으려고 했고.
‘둘 가운데 하나만 걸려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대박이 걸렸다. 잡은 까마귀 가운데 하나가 가진 기억.
‘유 이사의 클론이라니···.’
신성 왕국 놈들 그런 걸 숨기고 있었다.
놈들의 본거지 디트로이트로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그림의 떡이었는데, 까마귀의 기억으로는 신성 왕국 놈들, 유 이사 클론을 밖으로 내돌리고 있었다.
‘시애틀에서도 그랬고 말이지.’
솔직히 이 정보만 하더라도 천금의 가치가 있었다. 회사에서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회춘이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유 이사 클론이 있는 구체적인 위치를 알아가면 어떻게 될까? 최소한 몇 단계는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개편 때 작위를 받을 수 있을 정도.
쭈읍-
지루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빨대를 빤 사내. 붉은 액체가 빨대를 타고 올라가 남자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에이- 퉷-”
고도 비만이었던 총포상의 피는 맛이 엉망이었다. 당뇨약, 혈압약, 고지혈증약에 무좀약까지. 그래도 현지 보급한 피니 먹기는 먹어야 하는데.
쯥-
눈 딱 감고 다시 빨대를 빨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보고 있다는 느낌. 관찰당하고 있다는 느낌.
?
귀족이 되고 난 뒤 몇 배는 예민해진 감각에 뭔가 걸렸다.
그쪽으로 감각을 집중하니 두근두근두근- 작은 심장 고동 소리가 엄청나게 빨랐다. 작은 덩치, 빠른 심장 박동. 인간이 아니었다.
‘쥐새끼?’
머리를 빼꼼 내민 쥐새끼 한 마리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뭘 봐? 씨-팍- 재수 없게.”
구멍 속으로 쏙 도망치는 쥐새끼.
“요즘엔 쥐새끼도 사람을 뻔히 쳐다보네. 세상이 어찌 되려는···.”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덜컥- 입이 굳어버렸다.
???
무언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