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28)
러스트 [RUST]-628
다섯 마리의 들고양이 가운데, 하나는 잡았고 나머지 네 마리가 무얼 했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곧 밝혀졌다.
찌이이익!
외곽을 정찰하던 들쥐들 몇 마리가 사라진 것.
9mm 총탄도 버티고, 철판을 갉아대는 시궁쥐의 이빨과 발톱에도 내성이 있는 들쥐였지만, 길고양이의 발톱에는 버티지 못했다.
[치이익- 지금 들고양이들 있는 곳에 네 마리 나왔다. 저놈들 눈 속에 굴을 팠는데?]들고양이가 굴을 팠다고?
쥐나 토끼도 족제비도 아니고 고양잇과 동물이 굴을?
나무를 타고 이동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지만, 눈 속에 굴을 파서 이동하는 고양이라니. 땅도 아니고 눈이었다.
차가운 걸 싫어하는 고양이가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사냥을 위해서라면 본능도 어느 정도 거스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위험하네.]여러모로.
마루는 느낌이 왔다.
동물들이 본능을 넘어서는 조짐이 있기는 했다. 초식동물이라는 무스(Moose)와 버펄로(Buffalo)들이 했던 짓거리들, 겨울잠을 자야 하는 곰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 그랬다.
그 가운데 제일 위험한 동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쥐였다. 짧은 수명, 잦은 번식에 걸맞게 빠른 변이가 일어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변이가 진행되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일까?
[치이이익- 야- 씨- 저거 우두머리에게 산 채로 잡아갔다. 영상 보낼 게.]HUD(Head-Up Display)에 떠오른 영상. 우두머리 들고양이가 들쥐의 머리통만 쏙 뜯어먹는 장면에 텍사스 북부에서 마을에서 마주쳤던 변종 쥐가 떠오른 마루였다.
‘위험해.’
마루의 감각이 조금 더 날카롭게 경고하기 시작했다.
텍사스 북부 지역에 있던 두뇌가 발달한 쥐는 인간의 뇌를 파먹고 지식을 흡수했었다. 당시 특성을 계승한 새끼 쥐들은 낱말 카드를 읽었던 것으로 보여 완전히 쓸어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거 지금 산채로 머리만 먹고 있는 거지?] [치이이익- 아- 들쥐 머리만 먹는 거? 그거 본래 야생 고양이들이 그래.]고양이 세계에서는 머리. 그러니까 사냥감의 머리가 별미이자, 필수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는 부위로 취급된다고.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어두육미(魚頭肉尾)라고.
[뭐?] [삐이이이- 은혜 갚은 고양이 그런 이야기 나왔을 때, 머리까지 다 주느냐? 아니면 머리를 빼먹고 몸통만 주느냐? 그런 거로 얼마나 고마움을 느꼈는지 판단하고 그런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우두머리 들고양이가 들쥐 머리만 잘라 먹은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네 마리를 혼자 먹는 게?] [치이익-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그랬으면 좋겠지만, 마루의 촉이 계속 경고하고 있었다. 기순의 말과는 달리 저 우두머리 놈 사로잡은 들쥐 머리만 골라서 먹은 이유가 따로 있다고.
마루는 뇌를 먹고 똑똑해진 쥐 이야기를 설명했다.
[삐이이- 텍사스 북부에 그런 쥐가 있었다고? 좋지 않네···. 그래서 죽일 생각이냐?] [그래.]우두머리 들고양이의 특성을 계승한 새끼들이 증가하기 시작한다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치이이익- ······. 들쥐나 까마귀를 견제할 만한 동물로는 고양이가 제격인데.] [그게 지금 저 들고양이는 아니야.]스르르릉-
마루가 칼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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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두머리 들고양이는 먹잇감의 습성을 알게 되었다.
먹잇감이 어디로 도망치는지, 둥지가 어디인지. 어떻게 대응하는지. 자연스럽게 알아챘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빠른 변화.
먹잇감의 머리통을 먹을 때마다, 먹잇감이 가진 기억의 파편을 흡수한다는 것을 알게 된 우두머리 들고양이는 집중적으로 머리를 먹었다.
그 뒤로 사냥 성공률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야생에서 잉여 자원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그걸 노리는 적들이 생긴다는 뜻이거나, 무리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였다.
똑똑해진 들고양이는 그렇게 우두머리가 됐다.
콰직-
오도독- 오독-
들쥐의 머리는 확실히 별미였다. 먹는 재미도 있었고. 보통 이렇게 잡히면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마련인데, 바락바락 대들 듯이 외치는 게 신기하긴 했다.
본래 산채로 먹잇감을 먹으면, 공포와 관련된 맛과 기억이 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내는 맛은 달랐다.
기분이 둥실?
냐앙?
이건 뭐지?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불끈불끈 둥실둥실?
뭔가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감정.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캬아아아아앙!!!
돌격하라!
전투자극제. 그러니까 약 먹은 쥐를 먹은 우두머리 고양이가 울부짖었다.
냐아앙?
우리 기습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캬아아아아앙!!!
돌격!
마치 들쥐떼의 돌격처럼, 들고양이들의 돌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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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이익- 저것들이 미쳤나?]갑자기 뛰쳐나와 맹렬하게 돌격하는 고양이들의 모습에, 기순이 중얼거렸다. 인간처럼 매복하고 양동작전까지 했던 들고양이들이 갑자기 돌격?
[무슨 일이야?]들고양이들이 매복하고 있던 곳으로 우회해서 가던 마루가 발걸음을 멈췄다.
[치이익- 들고양이들 지금 돌격하고 있다.] [돌격?]HUD에 떠오른 영상. 매복을 풀고 뛰쳐나온 들고양이 무리가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미친.
각개격파?
마루가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나루 클론들은 분대 단위, 소대 단위로 흩어져 있었다. 들고양이들의 기습에 대비한 포진이었다.
“왕님은 어디 가셨지?”
“들고양이 잡은 거 보셨겠지?”
“직접 정찰 가신 건가?”
“기순 비행선 타고 있는데?”
물음표들이 동동 떠오른 나루 클론들은 피해 없이 괴물 들고양이를 잡았기에 사기가 충천한 상태였다.
그건 들쥐들도 마찬가지였다.
천적인 들고양이를 잡은 건 자신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옆구리 상처를 뚫고 들어간 건 자신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인간들이 도움된 건 사실이었다.
‘인간치고는 제법이네.’
들쥐들은 시끌시끌한 나루 클론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인간들 제법 쓸 만하다고.
찌이이익!
적이다!
정찰쥐가 소리와 함께 기순의 비상신호가 떨어졌다.
[치이이익- 놈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습격?”
“들고양이다!”
“온다!”
“후퇴하라고 해.”
순식간에 전투 준비를 마친 나루 클론들. 하지만 미끼 역할을 했던 분대가 복귀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부상병들로 이뤄진 분대였기에 빠른 이동이 힘들었던 것.
“방향?”
“바로 정면!”
“강을 타고?”
“그냥 돌격하고 있어?”
“화력이 분산됐어.”
“정면으로!”
고양잇과 동물 특유의 기습에 대응하기 위해, 사각을 없애는 방식으로 흩어져 포진하고 있었던 것이 악수가 됐다.
거기에 들고양이들은 허드슨 강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부비트랩을 설치할 시간도 없었지만, 설치할 수도 없었다.
“부비트랩!”
“안 돼!”
“바로 앞에서 얼음 깨지면 위험해!”
“저격조 앞으로.”
“화기 소대 시간 필요해.”
“들쥐들은?”
“강변 둔덕에 대기.”
들쥐들은 양옆으로 빠져있었다. 들고양이의 돌격을 나루 클론들이 막으면, 양옆과 뒤를 덮치겠다는 계산이었다.
“쟤들이 앞을 막아줘야지.”
“우리가 원거리인데 옆으로 가면 어떡해.”
“늦었어.”
“바리케이드 모자라.”
“썰매. 썰매로 막아.”
나루 클론들이 대처하기도 전에, 들고양이들이 가시거리에 들어왔다.
캬아앙!
캬아아–
들고양이의 돌격은 바람과 같았다.
치타에 빙의한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들고양이들.
“가운데. 크다.”
“저격조. 가운데 큰놈!”
“중앙에 우두머리!”
퉁- 퉁- 퉁-
12.7mm 탄과 7.6mm 저격용 탄이 화살촉 정 가운데 있는 우두머리 들고양이를 향해 쏟아졌다. 그걸 그냥 머리로 튕겨내는 우두머리 들고양이가 하악질을 했다.
캬아아아아아앙!
대형 고양잇과 특유의 저주파가 나루 클론들을 덮쳤다. 그래도 한 번 겪은 경험이 있어선지 나루 클론들은 잘 버텼다.
우두머리 들고양이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 이렇게 소리 질렀다 하면 모여있던 먹잇감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뻣뻣하게 굳어 오줌을 지리기 마련이었다.
근데 이것들은 뭐지?
인간 따위가 도망을 안 쳐?
겁을 안 먹어?
다시 크게 울부짖으려는 찰나,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의 파편 때문이었다.
???
들쥐 네 마리 모두에게 있던 가장 생생한 기억은 하나.
???
그건 알 수 없는 무엇이었다.
따지자면 인간의 모습을 한 죽음.
죽음?
공포?
존재?
둥실둥실 약에 달아오른 들고양이의 뇌는 서서히 흡수되기 시작한 들쥐의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이 구역에서는 자신과 자신의 무리가 공포고 죽음이었다. 그런데 인간 따위가 무섭다고?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려주지.
캬아아아아아야—
그와 동시에 일그러지는 공간. 공간을 찢은 검은 실선이 들고양이의 목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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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덜미를 스친 실선이 우두머리 들고양이를 거쳐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내달리던 무리의 오른편에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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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서 내달리던 우두머리 들고양이의 목이 툭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우두머리 오른쪽에서 달리던 들고양이의 머리통이 줄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푸숫-
푸화아아아악-
투두두둑-
머리를 잃은 몸통이 뛸 때마다 치솟는 핏줄기.
목이 잘린 걸 모른 채 강하게 펌프질하는 심장.
대가리 없는 몸뚱이들이 순차적으로 무너지며 짙은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빙판.
“······.”
“······.”
“······.”
“······.”
총성이 멎고 하악질 소리도 사라졌다.
오직 고요함만이 얼어붙은 강 위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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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순 터지는 함성이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오빠아아아아아악!!!”
강변을 뒤흔드는 고성.
“끼야아아아아!!!”
“왕님이다!!!”
“오빠아아아아아!”
“쩌러러어어어어!”
“나 죽어요!!”
“아아아아!!!!!!!”
우두머리 왼편에 있던 들고양이들도 주춤주춤 물러설 정도.
마루는 순간 당황했다.
그의 칼질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두려움.’, ‘공포.’, ‘사신’, ‘죽음.’을 보는 듯한 반응과 질려버린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었고.
그런데 얘들은 뭐지?
단체로 불량이 떴나?
아니면 어딘가 안타까운 애들만 살아남았고 정상은 다 갈려버렸다거나.
‘그럴 수도 있겠군.’
고기 방패로 갈리는 판에서 제정신이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테니. 마루는 은신을 풀지 않고 남은 들고양이를 향해 다가섰다.
우두머리를 잃은 들고양이들은 미쳐 날뛰는 오빠 부대를 향해 달려들지 못했다.
저것들은 미친 인간이었다.
광기가 철철 흘러넘치다 못해 기이한 에너지가 뿜어지는 것 같은 느낌. 예민한 본능이 저기에 들이받는 건 아니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 경고가 현실이 됐다.
툭-
동료들의 머리가 실시간으로 잘리고 있음에도 들고양이들이 그걸 인식한 건 몇 초가 훌쩍 지난 뒤였다.
피비린내로 마비된 후각.
인간 암컷들이 내지르는 초고음에 먹통이 된 청각.
차가운 공기에 얼어붙어 기능이 약해진 수염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도륙되고 있었던 것.
꺄아아앙!!
뭔가 있다!
무언가 있었다.
그들을 죽이는 무언가가.
냥!
도망쳐!
살아남은 들고양이들이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도망치는 방향에는 어느새 왔는지, 들쥐 몇 마리가 가로막고 있었다.
둘둘 전신에 깡통을 둘러매고 있는 들쥐들.
그걸 본 들고양이들은 분노했다.
쥐 따위가 길을 막아?
먹잇감 따위가- 장난감 따위가- 감히-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도망치는 것이었고 살아남는 것이었다.
캬앙!
비켜!
복슬복슬한 앞다리에서 낫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삐져나왔다.
캬아아앙!
비키라고!
그 날카로운 발톱 앞에서 들쥐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찌이이이익!
신은 위대하시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미 죽었다.
커다란 폭음과 함께 빙판이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