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36)
러스트 [RUST]-636
프랑스산 식인귀가 가진 정보는 엉망이었다.
초기엔 중국 식자재 판매점에서 팔고 있는 새우맛 분말로 인해 식인병이 퍼졌다. 이후 바이러스는 분비물과 타액으로 전파됐다. 운이 없는 자들은 비말로도 감염됐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떨어져, 직접적인 체액의 이동으로만 감염됐고 지금에 와서는 사실상 작심하고 전염시키려고 하지 않으면 전염되지 않았다.
바이러스에게 머리가 있는 걸까? 비말 감염이 계속 유지됐다면, 식인귀들은 자연스럽게 소멸했을 것이다.
폐쇄된 구역에 일반인이 모조리 감염되어 식인귀만 남게 된다면, 식인귀로 변이하면서 생긴 근본적인 문제, 일정 기간마다 인간을 섭취하지 않으면 단순한 고깃덩이 괴물로 변하는 문제로 자멸할 테니까.
“당연히 이놈도 그런 정보는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사이코메트리를 멈춘 에리카가 핼쑥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 상위개체의 지배력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지배력도 모른다? 그럼 새우맛 분말로 식인귀가 된 1세대인 건가?”
“어떻게 식인귀가 됐는지 그 기억은 없었어요. 어느 순간 사람을 먹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요.”
“그래?”
식인귀로 변하는 경험은 강렬했을 텐데, 그 기억이 없다? 마루가 생각하기에는 이상한 일이었다.
초기 식인귀와 변이체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는 기억 유무였다.
식인귀가 초반에 급격하게 퍼진 이유가 기억 때문이었고, 식인귀가 도시를 장악하고 군부를 장악하려고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도 기억 때문이었다.
식인 행위를 제외한다면 식인귀는 기존의 기억, 성격, 사고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수고했어. 일단 좀 쉬고 있어.”
“···네.”
마루는 혈색이 좋지 않은 에리카를 쉬게 하곤, 식인귀가 발견된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
‧
‧
용병들에게 욕을 퍼붓던 딕 헤롤드는 기척도 없이 나타난 마루를 보곤 하얗게 질렸다. 뉴욕에서 구조됐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어. 어서 오십시오.”
조금 전까지 욕을 입에 달고 있던 용병대장이 바짝 얼어붙은 모습에 마루는 시간 끌지 않고 용건을 말했다.
“식인귀를 포획한 장소가 어디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딕은 재빨리 수색한 구역과 지도를 정리한 뒤, 전송했다.
“GPS가 터지지 않아. 오차가 있습니다.”
“생존자는 없는가?”
“예.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하도록.”
“예.”
허공에 녹아들 듯이 사라지는 마루를 보고 딕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왕국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국왕이라니 이게 무슨···.
[칙-1시 방향 수색완료.] [띠- 거 좀 천천히 합시다. 좀.] [띠이- 빨리 돌면 좋지 뭘.] [삐- 어이. 지금 봤어?]딕 헤롤드가 제자리에서 고개를 휙휙 내돌리는 현란한 카메라 무빙을 보곤 바로 욕을 박았다.
“빌어먹을 새끼야. 그렇게 휙휙 내돌리면 보이겠냐?”
[삐- 분명히 뭔가 지나갔다고!]“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야. 이런 씨발. 너 왜 혼자냐? 2인 1조로 움직이라고 했지?”
[삐이이- FUCK! FUCK!! 쉘든! 쉘든!]갑자기 휙 돌더니 냅다 달리는 영상에 딕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병신들이 수색 빨리하겠다고 자기들 멋대로 단독 행동해 놓고 발광이었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뭐가 있는 거야? 카메라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어.”
[삐이이- 쉘드으으은!]애타게 부르짖는 모습에 딕은 쉘든의 카메라를 확대했다. 쉘든의 카메라 영상은 멀쩡하게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봐. 진정하라고. 쉘든에겐 아무 일도···.”
진정시키려던 딕이 다시 쉘든의 영상을 살폈다. 천천히 움직이는 영상. 쉘든의 전술 카메라가 찍고 있는 영상은 언뜻 봐서는 벽처럼 보였지만, 벽이 아니었다.
‘천장?’
누워서 움직이고 있다? 아니 끌려가는 건가? 딕이 쉘든의 바이탈을 확인했다. 고요히 뛰는 심장. 아주 천천히 뛰고 있었다.
“나와! 그 건물에서 나와! 당장!”
허겁지겁 도망쳐 사방으로 흔들렸던 카메라 영상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슥- 슥- 발걸음 소리가 아닌, 질질 끄는 소리. 그리고 카메라가 향한 곳은 천장이었다.
씨발. 뭐야 대체.
딕 헤롤드는 현재 상황을 즉시 알렸다.
“저. 지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
‧
‧
중상을 입은 식인귀가 포획된 곳으로 향하던 마루는 딕의 긴급 보고에 방향을 바꿨다.
프랑스 서부 해안은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많았기에 생각보다 규모 있는 건물이 많았다. 그렇게 길게 늘어진 숙박시설들 대부분은 반쯤 폐허였다. 잔불이 꺼지지 않아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는 건물이 대부분.
곳곳에 매달린 시체들. 어디서 가져다가 박았는지 모를 거대한 통나무에 묶여 화형당한 사람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학살이 반복된 흔적. 처음에는 반정부군이 죽였다. 다음에는 정부군이 들이닥쳐 반정부군에 부역한 자들을 처분한다는 명분으로 죽였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건너온 영국 약탈자들의 학살이 있었다.
시체의 모습에는 그 3가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목을 잘라 전시한 시체, 불에 태운 흔적 그리고 목을 매단 것까지.
마루는 은신 기능을 켠 채 속도를 높였다. 이런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다면 제정신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만에 하나 살아남았다면 능력을 각성했을 가능성이 있겠군.’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능력을 각성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랬다. 이곳은 한 번도 아니고 짧은 기간에 세 번에 걸친 학살이 있었으니, 미친 채 능력을 각성해 버린 케이스가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환경이었다.
‘유 이사 같은 타입이 있을 수도 있고.’
능력자들은 어지간한 바이러스에 면역이었기 때문에 식인귀에게 물렸다고 식인귀가 될 걱정이 없었다.
다만 유 이사처럼 각성한 뒤 식인귀가 된 케이스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다다다닥-
마루의 발걸음 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용병 2명이 실종된 건물은 규모가 상당한 콘도였다. 바다를 향해 널찍하게 뚫린 창문은 대부분 깨져 있었다.
건물 중간마다 불에 탄 흔적이 역력한 모습, 꺼지지 않은 불꽃이 남아 공기를 데우고 있는 콘도 안으로 옮기는 마루였다.
[생체반응 없습니다.] [동작 센서 반응 없습니다.] [열화상 센서에 작동 오류가 있습니다.] [열화상 센서를 정지합니다.]보조 인공지능의 상황분석. 기초적인 분석이라도 확실히 도움됐다.
“용병대장이 보낸 자료 올려.”
[재생할 동영상을 선택해 주십시오.]“전부”
딕 헤롤드가 보낸 영상이 HUD(Head-Up Display)에 떠올랐다.
음-
육체 강화 능력자 두 사람이 단 한 번의 반항도 못 해보고 끌려가는 모습. 심지어 무엇이 공격했는지 전술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상분석 결과. 움직이는 소리로 확인되는 소음이 분리됐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볼륨 너무 크지 않게.”
스으윽-(찌걱) 스으으윽-(툭)
선명한 것은 용병을 끌고 가는 소리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 속에 작게 끈적이는 소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점액질 소리? 끈적이는 무언가가 붙었다 떨어지는 느낌.
살짝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마루는 이클립스를 뽑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먼저 간 방향은 입구에서 가까운 곳. 쉘든이라는 용병이 있던 곳이었다.
잔불이 타오르고 있어서인지 녹은 물방울이 흘러내려 뚝뚝 떨어지는 복도를 지나자, 영상에서 본 공간이 나왔다.
마루의 시선이 상하좌우를 빠르게 살폈다. 센서에 걸리는 게 없음을 보조 인공지능이 확인했다.
[생체 반응 없음.] [동작 반응 없음.] [열영상 오류.]복도바닥을 따라 죽 이어진 핏자국은 분명 용병이 흘린 피였다.
“출혈량은? 위험한가?”
[많지 않습니다. 과다출혈에 의한 사망위험은 낮습니다.]‘죽지 않게 상처를 입혔다?’
신체능력 강화자를 무력화시키면서 과다출혈이 아닐 정도로 상처를 냈다는 이야기. 칼질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공격받은 용병들은 얌전하게 끌려갔다는 점이 이상했다. 딕 헤롤드가 보낸 영상에는 실종된 용병의 바이탈 신호가 있었다. 규칙적인 심장 박동과 안정적인 혈압을 보면 확실히 이상했다.
마루는 허리춤에서 반지갑 크기의 작은 상자를 꺼냈다. 속에 들어있는 것은 작은 드론.
엥-
작은 모기 같은 소리를 낸 드론이 날아올랐다. 핏자국을 따라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간, 드론 반응이 일순 사라졌다.
‘그런가?’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소형 드론임에도 바로 없앴다는 것은 드론을 알아보고 제거했다는 뜻. 지하에 있는 게 뭐든 정찰 드론을 알아볼 정도라는 것.
마루는 바로 내려가지 않고 다른 용병이 있던 곳을 먼저 확인했다.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길게 이어진 흔적은 반대편 비상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간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선명한 흔적이라···.’
함정이군. 따라 내려오라는 건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아래, 마루의 한쪽 입꼬리 끝이 살짝 위로 솟았다. 두근두근 속도가 빨라지는 고동 소리를 지긋하게 누른 마루가 이클립스를 바닥에 박았다.
콰직- 우우우웅-
변이 쥐를 든든하게 먹인 이클립스는 총알로 때리지 않았음에도 전신을 울어댔다. 바닥을 뚫고 쑥 박힌 칼날이 타원형으로 매끈하게 돌자,
콰드드득-
덩굴처럼 엮인 붉은 조직들이 끊어지며, 타원형으로 잘린 바닥이 아래로 쑥 꺼졌다. 그 사이로 툭- 던져넣은 섬광탄 2개가 데굴데굴 아래로 향했다.
쿠직—–
철근콘크리트 더미에 무언인가 깔리는 소리. 그 짓이겨지는 소리를 틈타 고요하게 착지한 마루가 이클립스로 원을 그렸다.
▬▬▬▬▬▬▬▬▬▬▬▬▬▬
미약한 저항감을 무시한 칼날이 온전한 원을 만들었다.
크아아아아아!
동그랗게 비어버린 공간 안으로 몰려드는 것들을 기다리던 섬광탄이 반갑게 인사했다.
번쩍- 파아아아앙-
번쩍- 파아아아앙-
강력한 빛과 소리에 지하에 있던 것들의 눈이 멀었다.
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얼룩덜룩한 피부가 어둠에 동화된 자들. 영하 40도가 넘는 맹추위에도 헐벗은 자들이 멀어버린 눈과 귀를 붙잡고 몸부림치는 모습은 흡사 지옥의 한 장면 같았다.
서거거거거거걱—–
마루는 그들에게 안식을 선물했다.
======
======
위력 정찰을 하던 용병들은 전부 비행선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몇 명은 빵빵하게 채운 가방을 들고 올라와 시샘과 핀잔을 받았지만, 대부분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이거 작전 한 번 채운 거지?”
“어쨌든 한 번은 한 번이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근데 쉘든이랑 마일스가 당했다던데?”
“의료 비행선에 실려 가는 걸 봤다. 당한 게 사실이야.”
“뭐에 당했다는데?”
“식인귀라고 하더라.”
“식인귀? 하. 병신들 또 욕심부리다가 당했겠지.”
“2인 1조로 갔으면 될 걸, 더 많이 먹겠다고 따로 움직이다가 그랬을 거다.”
“안 봐도 뻔하지 뭐.”
당한 놈이 병신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한 명이 의문을 제기했다.
“의료 비행선에 실려 갔다면, 누가 그 새끼들을 구했지?”
“?”
“?”
“?”
그러고 보니 구해준 놈이 있었으면 거하게 자랑질했을 텐데,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다들 닥치고 앉아. 긴급 사항이다.”
웅성거리는 용병들을 입 다물게 한 딕 헤롤드가 영상을 틀었다.
“다들 알겠지만, 병신 두 마리는 말 그대로 병신이 됐다.”
영상 속에는 의료 캡슐에 들어있는 쉘든과 마일스가 있었다.
“본국으로 후송해서 정밀진단과 집중치료를 해봐야겠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전신마비 상태다. 회복되지 않는다면 평생 기저귀 차고 살아야 한다는 거지.”
“······.”
“······.”
“뭐에 당한 겁니까?”
“이놈들이다.”
회백색 피부에 군데군데 어둠이 물든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전신에 털이 없고 대신 점액질 같은 것이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