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4)
러스트 [RUST]-64
기순의 얼굴은 붉게 달궈져 있었다.
“당신! 이게 뭐야? 엉? 그냥 엎드린 사람들이잖아? 애초에 싸울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잖아. 엉! 뭐야 당신!”
작은 여자는 기순이 뭐라고 하든, 지나가면서 쓰러진 사람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꼼꼼하게 확인 사살을 했다. 확인 사살을 마친 여자가 기순이 노려보든 말든 파쿠르 하듯 뛰어 2층으로 올라와 섰다.
“시체는 누가 치울 건데? 당신이 치울 거야? 씨발 난 못 치워!”
마루는 슬쩍 뒤로 몸을 뺐다.
기순의 상태를 보니 일단 시간이 좀 필요해 보였다. 그 시간에 남은 2명 찾는 게 편하지. 하고 뒤를 보니, 1층 계단에서 김 양이 발터 P22를 들고 후기인상을 쓰고 있었다. 남은 둘은 내려갔다가 김 양과 마주친 듯싶었다.
그렇다면 뭐···. 조금 피곤하겠지만, 내려가서 기순을 진정시키자. 마루는 식식거리며 2층으로 올라오던 기순을 다시 끌고 내려갔다.
“아- 왜? 사람이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그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살아야지.”
마루의 태연한 대답에, 기순이 갑갑하다는 듯 자기 가슴을 쳤다.
“내가 사람들을 전부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니잖아. 그냥 놀라서 엎드린 사람들이었잖아. 그렇게 엎드린 사람들을 그냥 쏘는 게 정상이야? 우리는 호위를 하겠다고 했지, 학살하겠다는 건 아니지 않았어?”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다 낮게 말했다.
“기순아, 불편한 건 알겠는데···.”
“불편? 이게 불편으로 끝날 일이냐? 아니지, 이건 아니야. 우리가 전쟁 중도 아니고, 설령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당장 우리가 전쟁 중인 군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단 말이야. 선이 있어야지, 최소한의 선이.”
마루가 음- 한숨으로 탄식했다. 기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래, 옳은 말이다. 맞는 말. 존나- 처맞는 말. 이걸 어쩌나. 마루가 입을 열기 전 뒤쪽에서 김 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이제 다 끝난 겁니까?”
약간 억양이 특이하게 나왔다. 김 양은 자다가 깼는지, 조금 예민했다.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 양은 쿨하게 돌아섰다. 기순의 말을 들었을 텐데, ‘그딴 거 신경 안 씀.’ 모드였다. 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모습에 기순은 할 말을 잃은 듯해 보였다.
마루는 아래로 몇이나 갔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쪽은 다 끝났고?”
“2명 들어왔습니다. 38구경 리볼버에 끈 달린 것을 봤을 때, 경찰이거나 경찰에게 뺏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리볼버 잡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을 보니, 경찰 같습니다, 모두 일본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일본 순시선이라도 만난 겁니까?”
마루는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순시선을 만나서 진짜 사복 경찰이 배에 탔어도 쐈다는 소리? 김 양은 마루의 눈빛에 그게 어때서라는 눈빛을 돌려줬다.
일본 경찰이든, 한국 경찰이든 김 양의 방에 놓인 금괴 7개로 만든 피라미드와 크고 웅장한 바렛을 보고 뭔 짓을 하겠는가? 압수? 구속? 그럴 수 없지. 김 양은 단호했다.
‘아니, 이런 뭐···.’ 하던 마루도 바닥에 쌓아둔 금괴나 현금 뭉치가 떠오르자, 바로 김 양을 이해했다. 서로 이해한다는 눈빛이 교환됐다. 갈등은 없었다.
“기순씨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책임은 질 수 있는 건가요?”
김 양의 등장으로 소강상태였던 기순에게 다시 사장님표 기름이 뿌려졌다. 사장님? 특유의 목소리에 어감.
“보편적인 책임과 도리를 외면하는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건, 태평양 전쟁에서 했던 짓을 정당화하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기순의 강력한 지적질에도 사장님은 평온했다. 누가 치우냐고 했더니 파도 소리와 퐁당거리는 소리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씨발.’
다르다. 달라야 한다.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한다.
기순은 그 최소한이라는 게 없는 집안의 서자로 태어났다. 그렇기에 어릴 적부터 죽음의 공포에서 살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다. 그 최소한의 선도 없는 자본주의적 동물들의 손에.
그렇기에 더 집착하는지 몰랐다. 마루의 얼타기와는 달랐다. 마루에게 제대로 하라고 했던 건, 그들이 마루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실컷 죽이겠다고 하다가 질 것 같으니까 무기를 버렸다고 달라지나?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아무리 죽고 죽이고를 대입하더라도 애들은 아니었다.
심사가 뒤틀리고 꼬인다는 게 기순의 얼굴에서 드러났지만, 사장님도 김 양도 그리고 갑판에 널린 시체를 퐁당퐁당하고 있는 작은 여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죠. 아시겠지만, 일본제국이 승리했다면 영국과 미국은 귀축영미로 기록됐을 거랍니다. 세계가 한국보다 일본을 더 선호했던 것처럼 말이죠.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하는 것에 동의했던 것처럼 말이죠.”
기순은 속이 불타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처먹을.’
“무엇보다 기순씨의 아름다운 양심적 행동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은 생각해 보셨나요? 마지막에 엎드린 사람들을 살려줬다고 하고, 일본 순시선을 만난다든지 한국 해경선을 만났을 땐 어떻게 할 생각이죠? 설마 순시선이나 해경선에 탄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이었습니까?”
“······.”
“아- 절 앞세워 피하면 된다고요? 좋아요. 그렇다고 치죠. 그럼 저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갈 생각이었습니까? 일본에서 목숨 걸고 도망친 사람들을 다시 일본에 데려다 놓고 살려줬으니 일본에서 죽어라? 일본인에 대한 증오가 넘치셔도 그건 좀.”
“······.”
“아니면 이대로 회항해서 한국에 사람들을 내려주고 다시 출발하자고요? 제가 왜 늦은 밤에 출발했는지 아시면서 그러시는 겁니까? 제가 배에 타고 출항했다는 걸, 해경이든 마리나든 절 감시하던 사람들을 통해서든 까발려진 상황에서 회항한다? 절 죽이려는 시도라면 진부한 시도군요. 절 지키기로 계약한 친구까지 같이 죽이려던 생각이었으면 그건 좀 참신하네요.”
“······.”
“아이라도 살려야 했다? 부모를 아이 눈앞에서 죽이고 아이는 살려준다? 갓난아이였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죠. 7~8살 먹은 아이를 살려준다? 그래서 그 아이가 어떤 배에 탔고 누가 부모를 죽였고 그렇게 열심히 진술한 것도 막을 수 있죠. 샬롯의 힘이라면 전부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막을 수 없는 게 있죠. 바로 복수심. 그리고 아이를 고아로 만들고는 아이의 진술을 묵사발 낸 샬롯에 대한 이미지는 어쩌시렵니까? 호텔 샬롯이 유무형으로 떠안은 손해는요? 기순씨는 상관없겠죠? ‘아이는 무슨 죄냐?’, ‘나는 태평양 전쟁 전범 일본인들과 다르다.’ 이게 중요할 따름이니까요.”
“하이고 사장 누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아- 머리에 열이 올라서 좀 흥분했었네요. 그럼 먼저 앞쪽 좀 살피러 가겠습니다.”
기순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변했다. 기순이 앞부분을 살피러 나가자 마루도 기순의 뒤를 따랐다. 기순이 놈 빡쳤을 때 저랬으니까.
마루와 기순이 밖으로 나가자 갑판의 시체를 전부 처리한 작은 여자가 살짝 다가와 작게 말했다.
[조용히 처리할까요?] [그냥 두세요. 생각보다 재밌는데요. 뭘.]여자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망가진 로브를 비닐백에 넣고, 새 로브를 꺼내 둘러썼다. 파칫- 작은 소리와 함께 점차 배경에 녹아 들어가는 작은 여자였다. 아주 작게 일렁이는 것이 밖으로 향했다.
“앞으로 가자, 왼쪽부터 돌 건데.”
“그러지 뭐.”
마루가 밖에 박힌 보위 나이프를 뽑았다. 호텔 샬롯이 이 배를 사서 다행이었다. 이걸 고치고 어쩌고 해서 돌려주려면 짜증 났지 싶었다.
물론 어차피 신분 새로 팔 거라 대충 버리고 째면 될 일이지만, 기순이랑 아는 선배인데 그렇게 하긴 좀 그랬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고치고 어쩌고 하는 게 짜증 날 뿐. 뭐 호텔 샬롯에서 법인으로 매입한 배가 됐으니, 알아서 고치고 알아서 하겠지.
작살도 박혔고 산탄총 자국도 좀 있고, 이거 낮에 보면 좀 그렇겠는데? 그래도 유리창이 깨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유리가 깨졌거나 금이 쫙 갔으면 보기 그랬을 텐데.
왼쪽 선수를 살펴보니 갈고리가 걸려있었다. 갈고리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배를 납치할 생각 만반이었던 것 같았다. 일반 낚싯배에 갈고리에 끈 사다리 같은 걸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려가 봐야겠지?”
마루의 말에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꾹 다문 기순.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보는 게 맞았다.
“저쪽에도 무장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할까?”
“우리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어.”
단단한 목소리로 기순이 말했다.
사장이 오리지널인지 가리지널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벌어진 일은 전부 공유될 거다. 그럼에도 기순의 생각은 샬롯의 입장을 굳이 배려하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죽일 거면 자기들 손으로 죽이든가.
“샬롯이 이익을 보든 손해를 보든 그걸 위해서 우리가 손에 피를 묻힐 필요 없어, 이유가 없으니까.”
기순의 대답과 함께 한쪽이 살짝 일렁거렸다.
“잠깐.”
치이이잉-이이잉
아재 칼이 투덜거리며 뽑혔다. 마루가 잉잉거리는 칼을 내밀고 간 곳엔 아무도 없었다.
‘하- 그냥 던졌어야 했나?’
던질 칼이 보위 나이프 하나라서, 그거 피하면 바다에 빠질 각이라 그랬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사시미나 군용 대검이라도 몇 개 챙겼을 걸 그랬다.
“뭔데?”
“아니. 내가 착각했나 보네.”
다음에도 이러면 순리대로 할 뿐. 마루는 평화주의자였고 동시에 순리주의자였다. 이 얼마나 선량하고도 보편적인 울림이란 말인가? 모든 것은 평화롭게 순리대로.
화르르륵
그렇게 신경이 쏠린 사이, 갑자기 왼쪽 선수 부분에서 불타는 소리가 들렸다. 끈 사다리와 갈고리 끝에 매달린 작은 어선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기순의 표정이 구겨졌다.
“일단 갈고리랑 사다리 끊자. 불 옮겨붙으면 좆된다.”
기순과 마루는 왼쪽에 매달린 낚싯배를 떼어냈다.
화르르르륵- 오른쪽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하- 진짜- 일 처리 하난 확실하네. 사장 누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일 처리 하나는 화끈하다며, 일그러진 얼굴로 감탄하는 기순이었다.
오른쪽에서 불타오르는 어선도 떼어낸 기순과 마루가 조종실에 들어왔다.
“그래도 너무 대놓고 그러지는 말고.”
“내가 애냐? 아깐 갑자기 확 열이 올라서 그랬어.”
어린 시절 죽을 뻔했던 일이 떠올라서였다. 그래 돌아가신 어머니가 감싸 안았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래. 그럼 됐고. 또 어선이나 배들이 달라붙으면 넌 그냥 선실에 들어가 있어.”
“좆까. 내가 애냐? ‘뭔 짓을 했든, 뭔 짓을 하든. 네가 가면 나도 간다.’ 왜 갑자기 오그라들어. 춥냐? 춥지? 너 씨발 중 2때 네가 한 말이다. 이거.”
기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썰을 풀었다.
“그나저나 이상하네, 대지진 터지고 꼴랑 며칠밖에 안 됐는데 사람들의 행동이 너무 과격해. 뭔가 아포칼립스라고 하더라도 먹을 거 떨어지고 물 떨어지고 막 그러기 시작해야 사람들이 과격해지는 거 아니었어? 근데 언제 해적질해봤다고, 무기 들고 넘어오는 것부터 이상해.”
“사람 생각을 어떻게 알겠냐? 작은 일로도 변하는 게 사람인데, 나도 내가 이렇게 칼 들고 설칠지 알았겠냐?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끝이.”
기순이 라디오를 맞췄다. 한국 방송이 잡히더니 조금 지나자 일본 방송이 잡혔다. AM 주파수로 쏘는 일본 재난방송이 잡혔다.
[···자위대 군복을 입은 자들이 약탈한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자위대 군복을 입은 자들을 집에 들이지 마시고···] [···지역 자체적으로 치안대, 자경대를 운용하는 곳이 늘면서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도로를 이용해서 대피할 때 국도와 고속도로를 이용하시고, 마을 길이나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는 해당 지역 자경대와의 마찰이 있을 수 있으니, 이용을 자제하시기 바랍니다.···]기순과 마루는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 하는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맞다. 이게 무슨 병신 같은···.
“일단 지진 여파로 보관하고 있던 전투식량이라든지 보급품이 유실됐다면 어쩔 수 없지. 추가 보급 없이 이틀 지났다면 당연히 근처에서 보급하려고 했을 테니까. 작은 편의점 같은 건 텅 비었겠고, 대형 마트나 할인점 같은 곳에서 보급하려고 했으면 약탈로 보일 수 있지.”
마루의 생각은 달랐다.
“난 진짜 약탈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데? 일단 재난방송에서 주의하라고 한 거잖아. 자위대 지휘권에 문제가 생겼거나, 자위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분명 사고를 쳤으니, 방송으로 조심하라고 때린 거 아니겠어?”
“지금 일본 상태 실화냐? 아니 대체 상황이 어떻길래 이래. 하긴 낚싯배들이 해적인데 뭐가 더 나와도 이상하지는 않겠다. 일단 아까 해경에게 신고하기 전에 경고음이 계속 나서 꺼놨는데, 레이더 다시 켜야겠어.”
“이거 레이더도 있던 거냐?”
“자동항해하는데 레이더는 필수지. 그물로 물고기 잡지 않아도 어군 탐지기까지 있다. 심지어 예전 이지스함에 들어갔던 어군 탐지기보다 최신형이야.”
어- 음- 이지스함에는 소나? 수중음파 탐지기? 그런 거 들어가는 게 아니었어? 그거나 어군 탐지기나 같은 건가?
기순이 레이더를 켜자.
삐익- 삐익- 삐익-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