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40)
러스트 [RUST]-640
나주연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반적인 식인귀라면 상위개체든 하위개체든 일반적인 성인 남성보다 더 강한 신체능력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뿐이죠. 영하 40~50도에 육박하는 혹한을 버틸 수 없어요. 그런데 슬러그 식인귀는 버틸 수 있고요.”
“······.”
“겉으로 보기에는 슬러그(slug-민달팽이)와 비슷하지만, 사실 더 흉악해요. 점액질도 그렇고 체액과 근육도 고온과 저온 양쪽 모두 견딜 수 있게 변했거든요.”
“······.”
점액질도 문제였다. 단순히 미끄덩거리는 게 아니라, 점액질 자체가 일종의 기관과 같아서 필요에 따라 점성이 강화될 수도 있고 윤활제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벽에 달라붙어 움직일 수 있죠. 피부도 마찬가지예요. 겉으로 보기에는 반질반질한 피부 같지만, 사실은 표면이 미세한 섬모거든요.”
점액질에 점착성을 높여 여기저기 달라붙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피부의 섬모를 이용해 스르륵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
“다행인 것은 지능은 오히려 퇴화했다는 점이죠. 아마 식인귀에서 변이를 일으킬 때, 신체가 무너지기 직전까지 몰려서 그런 것 같아요.”
그렇다면 슬러그 식인귀의 위험도는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아무리 변이를 일으켰어도 지능이 떨어졌다면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슬러그 쥐였다.
나주연도 그 부분을 언급했다.
“쥐는 조금 다르더군요. 파리를 한 번에 점령할 정도로 숫자가 많을 뿐 아니라, 일부라도 슬러그 형태로 변했다면 굉장히 위험해요.”
당장 지능 문제가 있더라도 세대가 빠르게 바뀌면, 결국 똑똑한 놈 위주로 남게 될 것이다.
“확실히 쥐가 문제군.”
확실히 문제였다. 몇만 단위.
그래. 한 20~30만 단위라면 잡을 수 있겠지만 그게 천만이나 억 단위면 이야기가 달랐다.
마루가 몇만을 죽이는 동안, 옆으로 샌 수천만의 쥐떼가 휩쓸어 버린다고 생각해보라. 마루는 살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네. 이대로 가면 쥐가 문제에요.”
변이 바이러스 사태 초기에 있던 일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변이 바이러스 사태를 피해 외딴 섬으로 이주하고자 했다.
그렇게 인간의 배를 타고 들어온 쥐는 작은 섬에서 폭발적으로 번식하기 시작했다. 쥐가 무리를 이루는 동안 작은 조류와 설치류, 소형 육식 동물을 비롯해 다양한 동식물이 균형을 이뤘던 생태계는 삽시간에 무너져버렸다.
새가 줄어들고 소형 포유류의 숫자가 줄어들 때도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쥐덫이나 쥐약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정 숫자 이상 번식한 쥐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변이한 쥐들은 머리가 좋아졌고, 엄지손가락이 생긴 쥐들은 인간의 덫을 분해해 먹이만 빼먹었다.
쥐약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는 효과가 있나 싶었지만, 금방 내성이 생겼고. 쥐약을 이용해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데 써버리는 쥐들이었다.
쥐를 잡는데 특화된 동물인 고양이 숫자를 늘려봐도 속수무책. 작은 섬에서 수천 마리의 쥐떼가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죽이는 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말과 소, 개 같은 동물들도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갓 태어난 새끼는 쥐떼에게 습격당했고, 새끼를 죽인 쥐떼는 호시탐탐 어미를 노렸다.
어떤 동물도 잠들지 않을 수는 없었으며, 잠이 드는 순간 눈알과 항문, 성기를 파먹고 들어가는 쥐떼를 견딜 수 있는 동물은 없었다.
결국. 외딴 섬에서 변이 바이러스 사태를 피하고자 했던 인간들은 최후를 맞이했다.
“섬에 있던 고양이가 변이를 일으켰다면 달랐을 텐데.”
고양이도 변이를 일으키면 덩치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아지고 가죽과 털, 발톱이 변했다. 그랬다면 쥐에게 그렇게 허무하게 밀리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변이가 유독 빨리 일어나는 쥐가 위험한 생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봐요.”
이런 사례까지 언급하는 걸 보면 나주연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예측할 수 있었다.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은 위험해. 변이 바이러스도 사실상 유전자 조작으로 생긴 것인데. 거기에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로 쥐를 줄인다고? 만에 하나 그것까지 극복한 유전형질이 생긴다면 정말 감당할 수 없게 될 거야.”
“섭식을 통해 변이를 일으키게 확실한 상황이에요. 이미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유전자 드라이브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고 봐야 해요.”
“먹어서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하는 게 퍼지고 있다고?”
“네. 슬러그 식인귀, 슬러그 쥐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마루도 알고 있었다. 생각도 했고. 나주연이 말하고 있는 건 뉴포트뉴스의 산성 쥐와 산성 갈매기 이야기였다.
산성 갈매기가 쥐를 잡아먹었고, 쥐는 산성 갈매기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두 종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다. 산성 갈매기는 머리가 좋아졌고, 쥐는 산성 타액을 획득해 산성 쥐가 됐다.
슬러그 식인귀는 인간뿐만 아니라 벌레와 쥐까지 잡아먹었고 쥐는 슬러그 식인귀를 잡아먹으면서 슬러그 쥐가 생기게 됐다.
“대체 변이 바이러스라는 게 뭐지? 아직도 분석되지 않았나?”
“너무 많이 변이를 일으켜 원형이 무엇인지 불확실해서 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불안정성이 크다는 것은 인위적이라는 의미와 같았다. 지금까지 찾은 자료로는 중국의 시설에서 일본의 기술과 미국의 자본이 들어가 만든 바이러스였다는 것.
“하- 그래. 어쨌든 유전자 드라이브로 쥐를 죽이는 건. 저번에도 말했지만, 성공률이 거의 100%에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하지 마.”
“알겠어요. 하지만 이미 인간들에게도 유전자적 변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건 아셨으면 해요.”
“······.”
“짐작하고 계셨잖아요. 곰고기를 먹고 몸이 든든해진다. 무스와 버펄로를 먹고 체력이 좋아지는 것 같다. 그랬잖아요. 실제로 그걸 먹은 병사들이 잔병치레가 없어지고 신체능력이 좋아졌으니까요.”
“······.”
“작은 변화지만, 변한 것은 변한 것이고, 변이는 변이지요.”
마루의 침묵에 나주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변화나 변이를 꼭 나쁜 것으로 생각할 건 아니에요. 세상이 변하는 데 인간만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니까요.”
“······.”
마루는 끝까지 입을 다물자, 나주연이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리고 수상 도시 기초가 되는 기본 모듈이 제법 많이 쌓였는데요. 완성된 모듈을 지금부터 옮겼으면 해요.”
“날씨 때문에 대형 비행선은 쓸 수 없어.”
작은 모듈이라고 해도 최소한 200톤은 거뜬히 나갔다. 대형 비행선이 아니면 옮기기 힘든 무게. 소형 비행선 4~6척이 모듈 하나를 들고 옮긴다면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비효율적이었다.
“무게 분배만 잘하면 얼어붙은 호수와 강을 이용해서 옮기는 게 가능할 것 같아요. 현장 근처에 옮겨 놓으면 나중에 편할 테니까요.”
“수상 도시 건설 건은 위임했으니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마루의 신임을 받는다고 생각해서일까? 나주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알겠어요. 그럼 슬러그 식인귀 샘플 추가로 정리해서 자료 올리도록 할게요.”
“그래.”
나주연 내보내자, PD와 후드가 들이닥쳤다.
두 사람의 눈빛이 노랗게 빛나는 것이, 금을 얼마나 가져왔는지 그게 궁금한 듯싶었다. 마루는 얼마나 가져왔는지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결과부터 알려줬다.
“가져온 양이 대충 1,200톤가량 됩니다.”
“오- 정말 다행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네요.”
PD와 후드가 한 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녀온 지 고작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다들 왜 노랗게 떴는지.
“통화량에는 여유가 있지 않았습니까?”
마루는 의아했다.
“제국에서 하자고 한 경제 회의 있지 않습니까?”
PD가 허탈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랬죠.”
프랑스로 떠나기 전, 덴 브라운 총통이 경제 회의를 하자고 했었다. 마루는 기순에게 전권을 주고 굴리기로 했었고.
“제국이 이번 경제 회의에 다른 주들과 남부연맹, 멕시코 연합까지 불렀다고 합니다.”
“······.”
예상외의 이야기에 마루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불렀다?
그럼 예전부터 경제 관련 관련된 이야기를 했었다는 소린데.
그것도 독립한 주와 남부연맹 그리고 멕시코에 있는 연합까지 불러 모아서 했다는 건.
“···혹한에도 이동할 수 있는 교통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겠군. 아니면 우리에게 교통편을 제공하라고 했거나.”
“예.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마루의 생각은 다른 곳까지 이어졌다.
‘신성 왕국 화폐로 인한 문제도 문제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덴 브라운 총통이 주제로 하자고 했던 안건은 그쪽이었다. 그런데 남부연맹과 멕시코까지 불러들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까지는 나올 수 있는 구성이었다.
남부연맹은 군사적으로는 강대했지만, 봉건제로 회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귀족과 식인귀 늑대인간이라는 신인류가 다수의 일반인을 안전하게 사육하는 형태.
당연히 삶의 질은 점차 하락할 것이고, 불만이 쌓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쌓인 불만을 해소해 주지 못하면 무장 저항 운동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총기를 회수한다면 외딴 마을에서는 괴수를 막을 수 없을 터. 제국이 먼저 손을 내밀어 무역을 재개하자고 하면 남부연맹은 따를 게 분명했다.
여러 카르텔에 분할된 멕시코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라는 국명은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서로 경쟁하고 적대하는 카르텔이 모인 연합체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한쪽에는 가전 생산 공장이, 다른 쪽에는 옥수수 농지가, 어떤 곳에는 마약만 있는 상황에 서로 죽이고 죽은지라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제국을 중심으로 무역을 다시 시작한다면? 최소한 적대 카르텔과 직접 교역할 수는 없어도 제국에 수출, 제국에서 수입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되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겠지.’
독립적으로 주를 이루고 있는 나머지 주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치고 제국의 진정한 속내는 뭘까.’
먹고 살기 힘든 애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다시 분업하자고?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서 비용이나 시간을 절감한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유통은?
무엇으로 어떻게 유통하겠다는 거지?
‘그러니까 신성 왕국의 비행선을 이용해 운송하고 뱃길은 아직 건재하니까 뱃길을 쓰겠다?’
‘더 큰 그림은 아마 무역의 회복 그 자체겠지.’
북미에 한정이겠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회복하려는 심산이라고 봐야겠지.
“제국을 중심으로 교역을 다시 시작하겠다?”
“거의 확실히 그렇습니다.”
PD가 단언했다.
“신성 왕국의 비행선과 까마귀를 이용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겠군.”
“저도 그리 생각했습니다.”
마루가 어떻게 할지 생각 중에 디아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슬러그 식인귀에 대한 분석 자료가 올라왔습니다.]인공지능 디아나의 보고에 마루가 잠시 양해를 구했다.
“이것부터 확인하고 하지요.”
나주연은 샘플을 분석해 가상현실에 넣어 돌리고 돌렸다. 그렇게 변이 가속 실험을 하자 나온 것은 기괴한 결과였다.
섬모가 돋은 피부를 이용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굳이 다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 그 결과 두 다리가 하나로 붙어 하체가 민달팽이처럼 변했다.
어차피 벽과 천장, 진창과 빙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려면 두 다리보다 소리 없이 움직일 수 있는 형태가 유리했을 터.
시뮬레이션의 결과로 예측된 슬러그 식인귀 변이체의 모습은 하체는 달팽이, 상체는 인간인 형태였다.
“이건 뭡니까?”
PD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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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헉-
“뭐야? 봤어?”
“몰라. 모른다고!”
“FUCK! 닥치고 뛰어!”
블라디마루 왕이 잡은 것들은 점액질로 뒤덮였어도 인간의 모습이었다. 털이 없고 회색빛 피부였어도 인간의 형태였다. 그런데 천장에 붙어있는 저건 뭐란 말인가?
저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식인귀도 인간의 형태였다. 그런데 저건 대체 뭐라고 해야 하지?
츄락-
고무줄 튕기는 소리와 함께 옆에서 뛰던 한 명이 천장으로 끌려갔다. 비명도 없었고 전조도 없었다. 그냥 갑자기 없었던 것처럼 쑥 사라졌다.
“개 썅!”
“나가! 다들 나가!”
“습격이다!”
“밖으로 나가라고!”
여기저기 누워있던 용병들이 허겁지겁 건물 밖으로 내달렸다.
랜턴이 걷어차여 바닥에 깔린 조명이 흩어졌다. 얼룩덜룩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순간 한 명이 구석진 그림자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모습.
“씨발- 뭐야 저게?”
츄릭-
뭐에 잡혔는지 모르게 휙 빨려 들어가는 모습.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맞는 순간 마비된다는 건가?
그딴 게 어딨지? 마취제든 독이든 몇 초는 필요하잖아.
츄륵-
그렇게 생각하던 한 용병의 척추에 붉은 무언가가 틀어박혔다.
‘끅-’
끔찍한 고통이 뜨겁게 달궈지며,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그의 눈동자엔 물고기처럼 낚이는 동료들의 모습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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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헤롤드를 중심으로 한 7명의 용병은 낭트(Nantes) 인근에 도착했다.
“후- 거 참.”
“괴물들에게 걸리지 않고 오다니.”
“그러니까 대장이지.”
듀이의 말에 다른 용병들도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딕 헤롤드를 바라봤다. 전속력으로 달리자는 딕의 판단이 옳았던 것.
시속 25km~30km의 속도로 140km 거리를 5시간에 주파한 것. 그것도 영하 40도의 강추위를 뚫고 달린 보람이 있었다.
안도하는 분위기에도 딕 헤롤드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여기서 쉰다.”
“허허벌판인데 괜찮겠소?”
“조금만 더 가면 낭트 외곽인데, 건물 튼튼한 거 잡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듀이와 용병들의 말에 딕의 이마에 혈관이 툭 돋았다.
“지금 같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멀쩡한 건물이 더 위험해. 식인귀가 있든 반군이나 정부군이 있든 뭔가 자리 잡고 있을 테니까.”
영하 40~50도의 맹추위. 근처에 내전이 터졌음에도 멀쩡한 건물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미끼나 사냥터일 확률이 높지 않을까?
“······.”
“그건. 그렇겠수.”
“그렇다면야.”
듀이와 용병들이 오호라-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쪽에 줄을 댄 게 빙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