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45)
러스트 [RUST]-645
딕 헤롤드는 고택이 멀리 보이는 언덕 위에 진지를 구축했다. 120mm 견인 박격포 9문과 미스트랄 미사일까지 가져오느라 등골이 빠졌지만, 이 정도 화력이면 든든했다.
‘고택을 수색하는 데 많이 갈 필요는 없지.’
그는 용병 하나당 병사 10명을 묶어 3개 분대를 고택으로 보냈다.
[치이익- 신호가 잡히기는 하는데, 치이익- 위치가 확실하지 않아.] [치익- 신호가 움직이는 것 같은데?] [치이이이익- 신호가 움직인다. 안-삐이이익-들어 삐치지직]‘전파방해가 강해졌다?’
딕 헤롤드는 바로 수색하러 들어간 분대를 퇴각시켰다.
“어이. 퇴각이다. 돌아와!”
[삐이이이이-] [치이이이익-]“돌아오라고! 후퇴해!!!”
[치지지지직-] [띠이이이이-]“박격포 조준. 목표는 고택. 신호하면 바로 발포하도록.”
“박격포 발사 준비!”
“목표는 전방 고택. 거리 2.8km”
“발사준비 완료.”
여러 차례 시도한 무전이 전부 불발로 돌아갔다.
비상신호기의 신호는 잡히는 데 무선통신은 끊겨?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인가?
“거. 한 번에 밀고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소?”
“여자들은 어떻게 하고?”
“한 20~30명 남아서 통제하면 될 것 같은데.”
“···지휘권을 갖고 싶나?”
딕 헤롤드의 대답에 듀이가 두 손을 올리곤 펄쩍 뛰었다.
“아니 말도 못 허우? 그게 그렇다는 거지, 지휘권은 무슨 지휘권.”
“······.”
이 새끼.
저번에도 그러더니 책임은 미루고 결정권만 지가 갖고 싶은 게 분명했다. 물론 성공하면 성공보수 지분을 높게 부르겠지, 실패하면 책임은 결정권자 책임이고.
실패하면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고 성공하면 자기 말을 들어서 성공한 것이라? 이 바닥이 아무리 밑바닥이라지만 이딴 식으로 나가는 놈을 그냥 두기는 위험했다.
너스레를 떨고 있는 듀이를 바라보는 딕 헤롤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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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났음에도 고택으로 들어간 수색대는 연락이 없었다. 무선은 계속 끊긴 상태였고 비상신호기에서 나오는 구조 요청만 반복됐다.
딕 헤롤드는 생존자를 나르고 있는 22척의 비행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비행선에 달린 신형 통신기라면 현재 상황을 보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듀이는 그렇게 뭉그적거리는 딕을 속으로 비웃었다. 자신에게는 책임을 지니, 지지 않니 그러더니 지가 그러고 있는 모습.
‘내로남불이여. 내로남불.’
수색대가 위기에 처했다면 전부 뒤지고도 남을 시간이 흐름에도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고 본국에 보고하고 그 방침에 따르겠다는 것 아닌가? 그건 책임 회피 아닌가?
게다가 용병 다섯 가운데 자신과 친한 애들로만 콕 집어서 수색대로 넣은 게 우연일까? 듀이는 넉살 좋게 일반 병사들과 어울리며 웃었다.
서쪽 하늘에서 점점이 다가오는 비행선이 듀이의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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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대가 실종됐습니다.]마루는 딕 헤롤드가 보낸 문자 보고를 읽곤 눈살을 찌푸렸다. 내심 지휘관 감인가 싶어 기회를 주고 있었는데, 여러모로 아쉬웠다.
[저택을 포격해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120mm 박격포로 고택을 포격. 안에 뭐가 들었든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은 기색이었다.
‘서른 명 넘게 들어간 수색대가 당했다면, 슬러그 식인귀의 숫자가 그 이상이라고 봐야겠지.’
이제 실종자는 38명의 용병에 더해 33명의 수색대를 합쳐 71명이었다. 중대 규모를 잡아먹은 현장이었다.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슬러그 식인귀의 습성을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놈들은 생포한 먹잇감을 바로 죽이지 않고 저장한 뒤, 싱싱하게 먹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니 고택 어딘가에는 생존자가 있을 확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현장 지휘자인 딕 헤롤드의 판단은 포격이었다.
다만 그런 판단에 따른 책임을 피하고 싶어 할 뿐.
‘좋지 않은 방식인데.’
현장 지휘관을 세운 목적이 뭐란 말인가? 급변하는 전장 상황에 적극적으로 판단, 대응하기 위함이 아닌가?
‘흠. 보안 팀장에게 기회를 주는 게 나을까?’
웰링턴 지하 실험실 보안 팀장. 현재 블러디 아크 타운 전체의 보안을 담당하고 있는 사내가 떠오른 마루였다.
신성 왕국에는 대규모 병력을 지휘할 지휘관이 필요했다. 중대급을 운영하는 건 유 이사의 기억을 흡수한 희연이와 나루 클론이 있으니 됐지만, 대대나 연대급을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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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콰쾅!
120mm 박격포 9문이 쉴새 없이 불을 뿜자, 2.8km 떨어진 오래된 건물이 박살 나는 모습이 선명했다. 계속된 포격을 견디지 못한 3층짜리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계속 쏴.”
“발포!”
딕 헤롤드는 HUD(Head-Up Display) 화면을 확대했다. 무너진 건물 속 꿈틀거리는 슬러그 식인귀가 보였다.
“네이팜, 소이탄 계열로 발사!”
“탄종 교체!”
“탄약 교체!”
이어진 포격에 무너진 건물과 그 주변까지 불바다가 됐다.
끼에에에에-
끼이이이이-
슬러그 식인귀들이 내뱉은 비명이 2.8km나 떨어진 언덕에까지 울려 퍼졌다. 귀로 듣는 것이라기보다 뇌에 직접 꽂히는 것 같은 소리.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음파에 일반 병사들과 생존자들이 패닉에 빠졌다. 불에 타 죽는 괴물의 단말마에 생존자와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질 판이었다.
“생존자들 진정시켜!”
“전부 제자리에!”
“거 닥치고 앉아!”
영향을 받지 않는 건 능력을 각성한 딕과 듀이 그리고 두 명의 용병뿐. 고작 넷이 수천 명의 인파를 통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보조 인공지능이 실시간 문자로 상황을 보고했다. 저렇게 흩어지면 주변에 숨죽이고 있던 괴수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게 해야 했다.
어떻게?
마루는 즉시 대응했다.
“혁명가를 틀어.”
22척의 비행선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Allons enfants de la Patrie,
Le jour de gloire est arrivé!
일어나라 조국의 아이들아,
영광의 날이 왔도다!
하늘에서 들리는 그 소리에, 패닉에 빠졌던 생존자들과 병사들이 고개를 들어 비행선을 바라봤다.
어느새 하나둘씩 따라부르는 노래. 저 멀리 울려 퍼지는 슬러그 괴수의 비명이 수천의 사람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Aux armes, citoyens!
무기를 들라, 시민들이여!
Formez vos bataillons!
Formons nos bataillons!
대열을 갖추라!
대열을 갖추라!
도망치던 자들,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딕 헤롤드와 듀이가 혁명가(La Marseillaise, 라 마르세예즈)가 울려 퍼지는 언덕을 바라봤다.
흩어지는 양 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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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Montréal)로 옮겨진 생존자들은 처음에는 별문제 없었다. 살아남은 것에 기뻐하고 그들을 구원해준 블라디마루 칼린 국왕을 찬양했다.
그것도 잠시. 생명의 위협이 사라지자, 이상행동을 보이는 여자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PTSD로 보이는 현상이었다.
‘집에 누가 몰래 들어온 것 같아요.’
‘절 미행하는 사람이 있어요.’
‘애인이 절 버렸어요. 바람을 피웠다고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어요.’
강박증, 집착증, 우울증, 거식증, 폭식증, 도벽, 수면 장애를 비롯해 음주와 약물까지. 그렇지 않아도 용병들과 인근에서 들어온 피난민들의 콜라보(collaboration)로 향락의 도시가 된 몬트리올에 프랑스산 퇴폐까지 뒤섞이게 됐다.
식인귀에게 잡아먹힐 뻔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것처럼 문제를 일으켰다.
[다들 미쳤나?]기순이 의도했던, 성비 불균형의 조정은 물 건너갔다.
가족이 없는 귀환병사들과 프랑스 여자들이 가정을 이뤄 행복했으면 하는 것은 꿈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일본에서 구르고 중국 전쟁에 참전한 귀환병사들도 내적인 상처가 많았는데, 거기에 PTSD인 여자가 붙어버리니 답이 없었다.
[진짜 왜들 이러는 거지?]생각은 그랬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보듬어주고 의지해 행복을 가꿔가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알고,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아는 법이라고. 서로 비슷한 아픔을 가진 자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었다.
상처 입은 여자들은 남자들이 돌봐주고 애정을 쏟아주기를 바랐고. 남자들은 가정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 머슴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종말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가정이 해체되는 경험을 한 사람들. 믿음, 신뢰, 사랑, 소망 같은 것들이 한낱 고깃덩이로 변하고 뻣뻣한 시체로 남는 것을 본 사람들이었기에, 단순한 다툼이 살해나 자살로 이어졌다.
“PTSD를 일으킨 기억을 지우는 건 어떨까요?”
나주연이 기억삭제 시술을 제의했다. 제국에서 가져온 자료에는 본체의 기억 가운데 일부만 추출해 주입하는 기술이 있었다. 이를 응용해 일부 기억을 제거하자는 의견이었다.
“PTSD를 없애겠다고 기억을 지우자고요? 그 기억이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누가 판단하죠? 변이 바이러스 사태가 시작이라면 2~3년 동안의 기억을 전부 지우겠다는 소린데, 그렇게 기억이 지워진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문제 될 거 없는 것 같은데요? 빈 시간 동안 신성 왕국에서 사는 데 필요한 기억을 넣으면 되니까요.”
나주연의 대답에 기가 막힌 후드가 딱딱하게 말했다.
“기억을 끼워 넣자고요? 당신···. 제정신이 아니군요.”
“어머. 그게 무슨 소리죠?”
“기억을 조작하겠다는 소리를 그렇게 쉽게 하다니. 당신. 인간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까?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존재?”
후드는 해커였다. 그녀가 해커가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 정보를 조작해 시민을 통제하려는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후드에게 있어 나주연의 주장은 사람들의 뇌를 해킹해 입맛에 맞게 주무르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이상한 소리를 하네요.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는 거고. 통증이 있으면 진통제를 먹는 거죠. 해열제(fever reducer)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가요? 진통제(painkiller)는요?”
열을 줄이고 통증을 제거한다. 마찬가지로 기억이 문제라면 기억을 절제하면 그만이고, 텅 빈 기억이 문제라면 채워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게 기본 아닌가?
뼈가 문제면 자르고, 자른 게 문제가 된다면 금속판을 박아 고정하는 게 치료였다. 정신이라고 다를 게 있나? 기억이라고 다른 건가? 나주연은 후드가 발끈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거라면 가상현실을 이용한 마연시도 하지 말았어야지. 마연시는 유사 경험을 하는 것 아니었나?
진짜 같은 가짜 기억, 진짜 같은 가짜 경험. 하지만 그를 이해하고 함께하는 경험을 쌓는 방법.
그건 괜찮고 직접 기억을 제거하고 넣고 하는 건 문제라고?
“약은 개인이 선택해서 먹는 거잖아요. 외과적 수술도 마찬가지고.”
“그럼 각자 선택하게 하면 되겠네요. 기억을 지울지, 말지 결정하게 하면 문제없죠?”
“기억은 인격을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에요. 그건 쉽게 지우고 말고 하는 게 아니라고요.”
“성별도 바꿀 수 있고, 파트너로 다른 종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기억은 선택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우습네요.”
“거기까지.”
마루는 두 사람의 언쟁을 멈췄다.
“기억을 지울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이 하는 것으로 하지. 단, 기억 제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중증의 PTSD가 진단됐을 경우로 제한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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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IMF(국제통화기금,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를 향해 출발한 김 양과 친위대가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다.
“빨리빨리.”
“정찰대 출발.”
“빌딩에 캠프 설치해.”
“기관총 포대 준비 끝.”
‘금. 금. 금.’
IMF에 얼마나 있을까?
많이 있겠지?
금을 향한 김 양의 탐험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