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5)
러스트 [RUST]-65
기순은 레이더를 보고 당황했다.
작은 크기의 점들이 앞에 깔려있었다. 깜깜한 밤바다 달도 없어서 가시거리가 짧았다. 어두운 바다 저쪽에 분명 불빛은 없었다. 불을 켜고 야간운항하고 있다는 표시를 낸 배는 이 요트 하나뿐이었다.
“씨발. 뭐야 쟤들.”
밤낚시를 해도 불은 켠다. 근데 저 앞에 있는 배들은 불을 끈 채, 아주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방향은 확실히 이쪽이었다.
“불 끄고 어쩌자는 거지? 충돌하자는 거냐? 미친 거야?”
무려 6척이나 되는 배들이 불을 끄고 진형을 짜서 접근하는 모습은 확실히 이상했다. 해적 어선이랑 지랄 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확실히 이상하군요.”
‘아니 씨발 누님 갑자기 튀어나오면 심장이.’ 표정으로 기순이 휙 돌아봤다. 어느새 다가와 레이더를 살펴보던 자칭 심 사장님이 깜깜한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접근하게 두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장이 마루를 보며 물었다. 기순은 큼-하고 입을 다물었다. 마루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숙인 뒤, 기순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야. 왜?”
“알잖아.”
‘저 사람 위험한 사람이라는 거.’
‘그렇지.’
마루의 속닥임에 기순도 작게 대답했다.
재벌은 위험했다. 허허허 웃고 서민 코스프레하는 걸 보고 마음을 놓고 살짝 나댔다가 빠따 맞고 묻히는 수가 있었다.
마루에게 잘 대해줬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재벌 서자의 삶을 산 기순은 알고 있었고, 나름 중견기업으로 유명한 회사 아들이었던 마루 또한 알고 있었다.
“알지. 그래서 그러냐?”
“그래.”
마루가 직접 사장과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해, 기순의 활용도가 운전 밖에 남지 않는다거나, 기순을 딴지 거는 장애물 정도로 인식해 버리면 어쩔지 몰랐다. 마루를 봐서라도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기순을 리타이어 시킬 방법은 많고도 많았다.
마루가 짙은 어둠으로 출렁이는 바다를 보며 말했다.
“네 생각은 어때?”
“어떻긴? 샌 거지.”
기순이 확언했다. 샜다. 정보가. 그렇지 않다면 이 해역에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은 제로였다. 샬롯 본사일까? 월드하고는 4년 정전 협정을 맺었다고 했으니, 그쪽이 아니라면 남은 건 확실히 샬롯 본사였다. 서울 샬롯과 부산 샬롯의 싸움이라.
저쪽 무장을 알 수 없었다. RPG라도 가지고 있어서 펑펑 쏴버리면 어쩔 건가? 바다 위인데. M60 같은 기관총을 달고 있는 건 아니겠지? 혹시 몰랐다.
“어쩔 수 없네. 어차피 한 번은 해봐야 했어.”
“괜찮겠냐?”
생각하고 있던 것.
‘후발 선제’가 있다면 반대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선발 후제.’
먼저 썰어서 뒤가 없게 만드는 방법. 생각해 보면 자신은 자연스럽게 그걸 하고 있었다. 최 실장을 보냈을 때도 그랬었다. 백 실장과의 싸움에서도 먼저 공격했었다. 홍 과장을 치웠을 때도. 김 양과 싸웠을 때도. 선공은 자신이 했었다.
그래 그러니까 최고의 일격을 처음에 날린다. 그걸 해본다.
“괜찮게 해야지. 이따 보자.”
마루가 기순의 어깨를 툭-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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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3층 콕핏 뒤쪽에 바렛을 거치하고 자리 잡았다. 서치라이트를 깨고, 보트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을 저격하는 게 임무였다. 파도에 배가 흔들리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어디 이런 거 한두 번 해보나?
김 양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쩐다.’
일단 일본에 가서 호텔 사장인지, 사장 대역인지 내려놓고 신분 파고, 백정이 도쿄 아케이드 보관함에 최소 80억 박았다고 했으니까 그거 찾을 수 있으면 챙기고, 없어도 야쿠자 아지트 몇 개 털면 그거보다 많이 나오면 나왔지 적을 거 같지는 않고.
안갯속 그림자와 연기 속 그림자가 겹치는 느낌은 정말 더러웠다. 하필 그딴 기억을 되새김질하게 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백정을 생각하면 소름 돋았는데, 이젠 소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랄병 나게 생겼다.
짐승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백정인지라. 땅에서는 그렇다지만 바다에서는 어떨까? 스코프로 백정의 뒤통수를 봤다. 백정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김 양을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쳤다? 밤인데? 살짝 봤는데?
김 양은 순간 몸이 떨렸다. 우연이 아니었다. 이거 실화냐? 서울에서 저격했을 때 느꼈던 감각이 맞았다. 저건 슥- 피하고 휙- 와서 서걱- 할 그런 거였다. 소름이 오도독 돋았다. 지랄 같은 과거를 떠올리게 했든 어쨌든 저건 아니었다.
‘아니야. 저건 아니야. 진짜 아니야.’
김 양은 마음을 완전 착하게 먹었다. 무조건 아닌 건 아니었다. 착한 생각. 진짜 착한 생각. 완전 착한 생각. 김 양은 아무것도 몰라요. 김 양은 그냥 지나가던 원 딜 쩌리랍니다. 백정과 함께 방긋 웃어요. 고개를 갸웃한 마루가 다시 무장을 챙겼다.
‘그래, 열심히 일하자.’
백정이랑 같이해서 돈 많이 벌지 않았는가? 앞으로도 돈 많이 벌 거 같다. 그래. 충성. 착한 생각. 응. 충성.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김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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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탄 쿼드 스키가 파도를 뚫고 내달렸다.
시속 80km를 넘나드는 속도. 바다에서 시속 80km라는 것은 43~44노트의 속력이라는 소리였다. 파도를 타고 점프해서 다음 파도 위에 올라탈 수 있는 속도.
새벽 3시 적막한 바다를 꿰듯 내달리자 6척의 배 가운데 한 척이 방향을 살짝 틀어 쿼드 스키가 접근하는 쪽을 견제하려 했다.
찡-
서치라이트가 켜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멀리서 불꽃이 튀었다.
펑!
서치라이트가 터지면서 다시 암흑이 닥쳤다. 아주 잠깐 빛이 들어왔지만, 그 빛으로 인해 암순응이 깨진 상황. 보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쿼드 스키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그 틈을 탄 쿼드 스키가 쏜살같이 보트에 접근했다. 클립 튀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수류탄.
“수류탄!”
“뛰어!”
가을 바다로 한 명이 뛰어내리기가 무섭게 수류탄이 폭발했다. 유폭이라도 됐는지 아니면 휘발유 통에 불이 붙었는지, 커다란 폭음과 함께 보트가 불꽃에 휩싸였다.
진형을 갖춰 요트로 접근하던 배들이 서치라이트를 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총성.
펑!
쨍!
펑!
서치라이트들이 깨지고 보트 조종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그렇게 몇 척의 배들이 잠시 멈춰 서자, 제일 큰 배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씨발 그렇겐 못 가지.’
마루는 액셀을 최대한 당겼다.
웨에에에엑 쿼드 스키가 비명을 질렀다. 액셀과 핸들을 로프로 묶어 고정한 뒤, 서핑하듯 쿼드 스키에서 몸을 일으킨 마루였다.
‘하나. 두-울. 셋!’
마루가 쿼드 스키를 박차고 점프하자, 엔진이 터져라. 달린 쿼드 스키가 이제 막 가속을 하려고 하는 요트의 후미와 충돌했다.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요트의 스크류와 방향타가 박살 났다.
끼기긱- 후면이 찌그러져 앉은 배 위로 마루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충돌의 여파로 출렁이는 요트.
어어억
우어엇
충돌로 인해 쓰러진 사람들 사이로 뛰어든 마루가 보위 나이프를 휘둘렀다.
픽- 피이이익-
공기가 썰리는 소리.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 공기를 꿰뚫는 소리가 보트 갑판을 치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갑판은 펄떡거리는 팔다리와 꿈틀거리는 몸통으로 피바다가 됐다.
“아악- 쏴! 쏘라고!”
“씨발씨발씨발 안 맞아! 안 맞아! 안 맞는다고!”
투두두둑
탕 탕타당
권총과 기관단총의 불꽃이 마루를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총구가 돌아간 그 순간 마루는 반 박자 빨리, 혹은 엇박자로 사선을 피했다. 마치 총구가 오는 것을 알고 피하는 것처럼.
최 전무가 움직였던 움직임에 마루 자신의 기동력을 더한 듯한 움직임. 낙엽이 흔들리며 떨어지다 바람을 타고 역으로 휘날리는 듯한 불규칙한 움직임.
총알이 스쳤다.
불꽃이 튀고 사방으로 유탄이 흘렀다.
총소리로 귀가 먹먹했다. 그러나
‘간다.’
후- 차가운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뜨거운 심장과 폐가 전신을 달궜다.
이젠 안다. 이렇게 달궈지는 이유가 뭔지. 몸이 왜 이렇게 뜨거운지.
뿌드득.
힘을 줘 잡은 보위 나이프. 칼이 신체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하아아-
고함을 지르듯 폐에 담긴 뜨거운 공기를 뱉어냈다. 입김이 증기기관차에서 뿜어지는 수증기처럼 새어 나왔다.
‘간다.’
콱! 진각을 밟듯 구른 발. 갑판이 찌그러지며 출렁였다.
수평으로 칼을 휘두르는 모습 그대로 쏘아진 몸.
스컥!
사람의 몸통이 통째로 분리됐다.
가가가가각!
반을 가른 칼날이 그대로 요트의 외벽을 썰기 시작했다.
살롱 바깥쪽이 절단되면서 요트는 사람처럼 비명 질렀다.
그가가가각!
으직!
길게 그리고 깊게 요트 외벽에 흉터가 파였다.
갑판에 일렬로 서 있던 여섯 명의 사람들이 붉게 맺힌 핏자국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잠시간의 침묵, 툭- 쓰러지는 누군가의 하반신.
“으아악! 괴물이다!”
“닥쳐 씨발! 괴물은 무슨 괴물! 쏴!”
소리 지르는 사람을 향해 쏘아진 칼.
뻐걱- 두개골을 쪼갠 칼날 손잡이가 흔들렸다.
“죽어! 죽어! 죽으라고!”
총소리와 함께 갑판에 떨어지는 탄피.
팅- 티팅-
금속음을 내며 떨어지던 탄피 소리가 점차 변했다.
투둑- 칠펑- 툭-
옆구리를 길게 베인 요트의 갑판이 질척질척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
으직-
누군가의 마지막 탄성.
뭔가 토막 나는 소리를 끝으로, 총구에서 나는 불빛으로 번쩍였던 요트가 적막과 함께 어둠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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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외선 스코프로 보고 있던 김 양은 침묵했다. 옆에서 쌍안경으로 보고 있던 기순도 말이 없었다. 샬롯 사장 대역이라는 여자도 입을 다물었다. 일렁이던 그림자도 조용했다.
“씨발. 뭐냐 저거. 실화냐?”
제일 처음 소리를 낸 건 기순이었다.
내가 본 게 실화 맞음? 저게 내 친구 맞나? 아니 씨발. 흐허허허 씨발. 흐흐흐흐 씨발. 발광하던 기순이 갑자기 김 양을 물고 늘어졌다. 반쯤 패닉에 빠진 기순이었다.
“거기 김 양씨. 저런 거 알고 있었어요?”
김 양의 정신도 반쯤 풀려있었다. 내가 뭔 생각을 했던 거지? 저거 뒤통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었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 난 착한 생각만 했었어. 응. 맞아. 충성한다고 했었어. 열심히 일하자고 했었어. 김 양은 필사적으로 완전 착한 생각을 했다.
“아니 말 좀 해봐요. 김 양씨 킬러라며. 킬러 관점에서. 저게 가능한 건가요?”
김 양도 저건 못 봤다. 그냥 좀 휙-하고 촥-하는 건 봤지만, 저건 붕 하더니 촤촤작? 아니, 배를 갈랐잖아. 그 배가 아니라 요트. 요트한테 칼침 먹여서 옆을 갈랐잖아. 안개 그림자? 얼어 죽을···.
대답 없이 헤-하고 있는 김 양을 보자 속 터지는 기순이었다.
“저런 거 처음이란 말이죠? 아니 대답을 좀 하라니까.”
짤짤짤. 숫제 김 양의 목을 잡고 흔드는 기순이었다. 김 양은 그냥 헤- 했다.
그리고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샬롯 그룹은 한국과 일본에 수많은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제약으로 유명한 회사도 있었다. 다카이치 제약. 야마츠키 신약. 두 회사 모두 일본 내각정보조사실과 연이 닿아있는 극비 실험실을 보유한 회사였다.
거기서 행해진 실험. 슈퍼 솔저를 만들겠다고 선을 한참 넘은 실험들이 자행됐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반절의 성공이라는 게 배신자들에게 투약했던 약물이었다. 전투자극제와 마약을 섞은 버서커 폴, 일명 버폴이라고 부르는 약.
배가 찢겨 내장이 흘러나와도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는 약이었지만, 그 약의 할머니가 온다고 하더라도 방금 본 그런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럼 저 사람은 뭐지?
당장 무리하면 몸이 붕괴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저게 무리한 게 아니라고? 그럼 무리를 하면 어떻게 된다는 거야? 어디까지 할 수 있다는 거지? 로열 마리나 인근에서 찍은 CCTV 영상도 정상이 아니었는데, 지금 저건.
기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 인정 어, 씹 인정 씹. 저런데 아무런 리스크가 없다면 그게 인간인가. 아니 지금도 같은 사람 새낀지 싶었다. 저렇게 움직이는데 근육이 멀쩡하면 그게 마법이지. 씨발. 기순은 호흡을 골랐다.
이러니까 호텔 샬롯에서 저자세였구나. 어떻게든 적진에 떨구는 데 성공하면 바로 헬게이트 열리는 거 아닌가? 당장 로열 마리나에서 봤던 것도 ‘와 존나.’였는데 지금 본 건 씨발로 도배를 해야 할 판이었다.
끙!
이거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하지?
저쪽 요트 안에 CCTV가 있으면 어쩌지?
잘못하다간 친구가 51구역으로 이민 당하거나, 중국에서 인체의 신비를 탐구하게 될지 몰랐다.
적당히 하지.
뭔.
아···.
내가 적당히 어리바리하지 말고 확실히 하라 그랬었지.
몰라. 씨바···.
기순은 속이 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