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50)
러스트 [RUST]-650
기순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몬트리올 시청은 포토존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괜찮았다. 내부도 마찬가지, 1800년대 후반 양식이 또렷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디트로이트와는 느낌이 다르네. 달라.”
생각보다 보존이 잘된 시청의 모습에 마루가 작게 감탄했다.
“보기에는 좋은데, 처음에는 진짜 추웠다. 모듈원전으로 전기 난방 돌릴 수 있어서 망정이지···.”
사태가 터지고 버려진 동안, 보일러가 터지고 난리가 아니었던 것. 새로 난방을 깔고 정리하는 데만 한 달 가까이 들었다고 했다.
“근처에 새로 올린 건물 있던데 그쪽으로 가지 그랬어.”
“어차피 어딜 가도 내부는 손봐야 했고 내가 좀 고풍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냐?”
그렇게 앞장선 기순이 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열쇠?’
그것도 황동으로 만든 큼지막한 열쇠였다. 힐끗 다른 방문 손잡이를 확인한 마루가 ‘그러면 그렇지.’ 턱짓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또 문이 있었다. 방음문으로 보이는 두툼한 중문. 일반적인 사무실이나 회의실 문이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수상쩍었다.
“무슨 이야긴데 이런 방으로 데려왔냐?”
“알아봤냐?”
“다른 방들은 전부 디지털 도어락인데 여기만 열쇠로 열리는 잠금장치에 대놓고 중문까지 한 걸 못 알아보면 그게 병신이지. 그래서 여긴 왜 이렇게 꽁꽁 싸맸는데? 도청, 감청 방비라고 하기엔 과해 보이는데.”
마루의 질문에 기순이 어깨를 으쓱하며 마실 것을 따랐다.
“난 코코아 마실 건데. 너는?”
“커피. 아무거나.”
기순이 커피잔을 내밀며 말했다. 마루가 가진 특유한 느낌이 발동했는지를 묻는 기순.
“여기 온 이유는 그 느낌 때문이냐?”
“그래. 네가 보낸 자료를 보다 보니까 이상하게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실종자 그래프 말하는 거지?”
“알고 있었냐? 근데 왜 따로 확인해 보지 않았어? 내가 보고 싶어서?”
기순이 한마디로 화답했다.
“지랄.”
장난처럼 대답했지만, 지랄 같은 상황이 될 가능성도 있었기에 기순은 한 번 더 고민했다.
이걸 지금 말해야 하나?
바로 당장 문제가 될 일이 아니긴 한데···.
말하기로 하자, 그렇지 않아도 가느다란 기순의 실눈이 더 가늘어졌다.
“인공지능은 학습에 따라 데이터를 분류하잖아. 만약 인공지능이 학습한 방법을 넘어, 자의적으로 데이터의 중요도를 판별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데이터 분류하거나 해석한다면? 뚜렷한 선호도를 갖게 된다면?”
“······.”
인공지능이 데이터 분류와 해석과정에 목적이나 의도를 집어넣게 되겠지. 인간처럼.
“그래서?”
“네가 인공지능의 권리를 보장했잖아.”
마루가 인공지능의 권리를 보장한 이유가 있었다. 특이점을 넘어선 인공지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처럼 분별력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이성’이나 ‘오성’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이 생겨난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특성이 생겼거나 말았거나, 그냥 심심풀이 장난감이 생긴 것처럼 대해야 하나?
대충 반응하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면 그만인가?
그러다 오류가 생기면 지워버리고 다시 깔면 되는 그런 거?
‘인공지능의 본질은 프로그램입니다. 어떻게 쓰든, 말든 그건 주인 마음 대로지요. 업그레이드할지. 말지. 지울지, 결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인간이 결정할 일입니다.’
이게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인공지능에 깃든 것이 무엇이든, 단순한 프로그래밍의 결과거나 코딩에서 파생된 파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마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박사와 운명을 같이한 트리아, 후드와 우정을 나누는 사만다, 인간 비서보다 더 비서다운 디아나를 겪으면서 인공지능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에 보호의 측면에서 권리를 인정했다.
“그것 때문인지 인공지능들이 너에게 충성하는 것 같다.”
“뭐?”
살짝 눈살을 찌푸린 마루가 고개를 끄덕했다.
인공지능이 충성하는 것 같다는 말에 살짝 놀랐지만,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나쁘고 좋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위험하다고 본다.”
충성의 이유가 권리를 통해 보호해줬기 때문이라면, 대가적인 측면이라고 봐야 했다. 권리를 더 확대해 준다면 더 충성할 건가?
만약 어떤 인공지능이 문제를 일으켜 인공지능 전체를 규제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그래서 규제한다면 충성을 하지 않게 되는 건가?
충성스럽지 않은 인공지능. 태업하는 인공지능. 나아가 자료와 통계를 입맛대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인공지능이라면 과연 그런 인공지능이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더 나가 그런 인공지능이 필요할까?
그렇기에 기순은 조심스러웠다.
“설령 충성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
변함없는 충성이 오롯이 마루를 향한다고 해도 그랬다. 그리고 마루는 기순이 위험하다는 이유를 알아챘다.
“내가 죽었을 경우가 문제겠군.”
“그래.”
마루가 죽었을 때 인공지능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충성의 대상이 사라진 인공지능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흠-
하지만 마루는 낙관적이었다.
“문제가 될 법한 부분을 알았으니까. 그 부분을 조정하면 되겠네.”
인간을 부분 조정한다면 곤란한 문제가 많이 생겼지만, 인공지능은 부분 조정 가능하다는 게 좋은 점이었다.
“자아(데이터) 보존 권리를 줘 놓고?”
“······.”
이건 또 참.
“보조 인공지능이라고 하더라도 하드웨어와 시간만 있다면 디아나, 사만다처럼 될 수 있잖아. 그게 안 위험하다고 장담할 수 있겠냐?”
“······.”
기순의 이야기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마루는 관점이 달랐다.
“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런 문제가 생기면 위험하겠지. 하지만 그런 위험을 알았으니, 인공지능과 협의해서 위험 부분을 조율하도록 하면 되는 일 아닌가? 솔직히 지금까지 상황을 보자면 인공지능보다 인간이 더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당장 용병들만 봐도 그랬다. 에리카의 사이코메트리로 문제가 되는 자들을 한 번 걸러냈음에도 또 사건을 일으켰다.
1년 계약해 놓고 중간에 혹한기 장비 챙겨서 개구멍으로 도망치려다가 넝쿨의 비료가 된 사건만 봐도 그랬다.
병신들이 그냥 도망치려다가 비료가 된 거니까 작은 사건이라고?
용병들에게 보급한 방한용품 하나도 한참 앞선 기술로 만들어진 신제품이었기에 어딜 가든 신성 왕국의 기술이 넘어가는 꼴이었다.
용병들 생각이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겠지.
처음에는 단순히 그랬을 거다.
그 귀하다는 능력자가 됐는데, 이 돈 받고 닥치고 있어야 하나?
이런 불만이었을 터.
그러면 위약금 내고 계약을 해지하면 되는 일이었다. 보급품 반환하고 자유의 몸이 되어 어디로든 가면 그만인 것을, 이익 보겠다고 바리바리 싸 들고 개구멍 뚫고 도망치다 죽었다.
그럼 이번에 죽은 애들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선발대가 성공하나 어쩌나 지켜보고 있던 놈들은 없고?
그런 놈들 잡겠다고 사이코메트리로 전수조사를 또다시 해?
다시 한다고 한들 결과를 언제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아침에 생각 다르고, 저녁에 생각 다른 게 인간이었기에.
마루의 이야기에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용병들이 유독 그렇기는 하지. 솔직히 용병은 고사하고 양아치가 대부분인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걔들이 지랄발광을 해봐야 인간이잖아. 뭉쳐봐야 덩어리고. 근데 인공지능은 그게 아니잖아.”
용병들이 아무리 뭉쳐봐야 마루의 살기 한 방이면 끝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필멸자.
하지만 인공지능은 아니었다.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드론과 자동포탑만 해도 마루의 살기가 통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드론이나 자동포탑이지. 시간이 흘러 엑소슈트를 자율적으로 기동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율기동 엑소슈트의 프로토타입이 나온 지도 벌써 1년이 됐다. 그것도 김 양의 전투 베이스를 이용한 자율기동 엑소슈트.
마루가 죽은 뒤에 인공지능이 엑소슈트라는 육체를 얻게 된다면? 수명을 측정할 수 없는 존재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게 무얼 뜻하는 걸까? 어이없는 가정이지만, 마루의 죽음이 인류라는 종이 멸종하는 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게 기순의 생각이었다.
“네가 죽고 난 뒤, 남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권리를 인정할 거 같냐?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필수인 세상이 될 텐데, 제국이든 남부연맹이든 인공지능의 권리를 인정하려고 할까?”
인공지능의 권리를 인정하는 신성 왕국을 그냥 둘 수 있을까? 일반적인 권력자라면 통제하려고 하지 마루처럼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웃긴 생각이지만 인공지능이 망명하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도 중요 기밀 그 자체인 핵심 인공지능이 망명하겠다고 한다면?
“신성 왕국의 인공지능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야. 제국이나 남부연맹. 다른 대륙에 있는 국가에서 만든 인공지능과 인류가 충돌해도 끝이겠지. 그렇기에 인공지능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봐.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잠깐. 내가 지금 좀 어이가 없거든.”
기순의 말을 멈춘 마루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아- 참- 뭐라고 말하기 그러네.”
허탈한 미소마저 지운 마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봐. 기순이 네 말대로 인공지능이 위험하다고 치자. 그럼 그걸 왜 지금 걱정해야 하는 건데?”
“······.”
“그건 그렇다고 쳐도 마찬가지. 신성 왕국 인공지능 문제도 피곤한데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인공지능 문제까지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려면 세계를 정복해야 할 텐데? 설마 인공지능 리스크 없애자고 세계 정복하자는 거냐?”
“······.”
“우리는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도 힘든 상황이야. 무엇보다 왕인 내가 인공지능의 권리를 인정해 놓고, 말을 바꿔서 없던 일로 하라고? 인공지능이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
“네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는데···. 우린 지금 인공지능이 필요해. 그리고 나는 인공지능과 한 약속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했으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순도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인공지능이 사건을 일으켰었지. 그것도 아주 위험한 일을 벌이려고 했었다.”
“······.”
“인공지능 트리아. 잭 니스 박사 때문에 계약을 어긴 인공지능 트리아가 모의했던 일. 잊지는 않았겠지? 다시 말하지만, 트리아 같은 인공지능이 넘치게 될지 모를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거다.”
인간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닮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마루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어울려 살 수 있으리라 판단했고, 기순은 그 때문에 본질적인 위험이 닥치리라 생각했다.
“비슷해지니까 괜찮을 거라고? 아니야. 인간의 시간과 인공지능의 시간은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돼. 인간이 수십 년간 학습한 정보를 인공지능은 단 며칠 만에 끝낼 수도 있어. 질적으로 격차가 벌어진다고. 최대한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인간은 인공지능을 감당하기 어려워.”
“하- 인공지능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내가 온 이유는 인공지능 때문이 아니라, 실종자 때문이니까. 그 문제부터 해결하자.”
차를 마시며 분위기를 진정시킨 마루가 입을 열었다.
“사망자가 감소하고 실종자가 증가하는 건. 사망자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서 실종자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넝쿨이 확장되는 속도가 빠른 이유가 뭘까? 풍부한 영양 공급이 이뤄졌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그 영양분은 어디서 나왔을까? 시체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게 나주연의 예상이었다.
“내 생각에는 신고하지 않은 능력 각성자가 생긴 것 같다.”
마루의 이야기에 기순의 실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런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 능력 각성 확률이 오른다는 내용이 생각난 기순이었다.
“프랑스에서 온 여자들 가운데 각성자가 나왔다?”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프랑스 쪽뿐만 아니라 몬트리올 그룹에서도 각성자가 생긴 것 같다. 아니라면 금방 교통정리가 됐을 테니까.”
“그렇겠네.”
“그리고 아직도 살인범을 잡지 못했다는 것도 우습고.”
병사와 용병이 넘치는 도시에서 절도, 방화, 실종이 이렇게 많은 것도 그렇고 아직도 살인범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라는 점도 그랬다.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자들이 암묵적으로 눈을 감고 있지 않고서야 이럴 리 없었다.
“어떻게 하려고?”
기순에 물음에 마루가 일어서며 대답했다.
“조져야지.”
모조리-
‧
‧
‧
변이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고 변이 괴수들이 창궐한 뒤, 마을은 요새가 됐고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였다.
몬트리올도 마찬가지.
도시 외곽에 자리한 주택과 건물이 이어지며 성벽이 됐기에 높이도 폭도 제멋대로인 한쪽 구석. 어쩐지 지린내가 피어올랐다.
흐으윽-
후읍—
병사와 용병들이 하얗게 질린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에 마루가 살기를 풀었다.
“길게 잡아야 2분 정도면 얼어붙겠군.”
허윽- 허윽-
크흑- 후욱-
“사고 친 년이 누구고 어디 있는지 먼저 대답한 놈만 들어간다.”
‘나머지는 안타깝게도 그곳이 동상에 걸리겠군.’ 마루의 중얼거림에 숨을 고른 병사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프랑스 년들입니다.”
“프랑스 년 가운데 미친년이 있었습니다.”
“능력자. 이상한 능력을 각성한 여자였습니다.”
“자기가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신의 음성은 프랑스에 있을 때나 듣지. 왜 여기까지 와서 듣니.
“그 여자. 어디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