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52)
러스트 [RUST]-652
건물 외벽에 구멍을 뚫는 순간 생체반응 센서에 잡히는 붉은색 점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삑-삑삑–
마치 붉은 점이 증식이라도 한 듯 생체반응 센서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삑삑삑삑-
삐이이이이—–
HUD 화면을 전부 붉게 물들일 정도로 가득한 모습에도 마루는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쿠직-
우드드드득-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닌 것 같은 기이한 감촉이 칼날을 타고 올라왔다. 마치 생명체를 자르는 듯한 감각에도 마루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기이한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생명체의 뼈를 자르던 감각도 철근콘크리트를 자를 때의 감각으로 서서히 돌아왔다.
‘가짜인가? 생체반응 센서를 어떻게 속였지?’
감각이 해결됐으니 남은 문제는 맛이 간 센서. HUD 화면이 붉게 물들어 버려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보조 인공지능과의 연결이 끊겼고.’
생체반응 센서뿐만 아니라, HUD 장치 자체에 오류가 생겼다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헬멧의 제어 시스템도 위험하다는 뜻이었으니까. 만약 제어 시스템이 터진다면 은신 기능도 깨진다는 소리였으니, 시간이 없었다.
마루는 우선 HUD를 정지시켰다. 삑삑 울리며 붉게 물들었던 화면이 꺼지며, 기본적인 센서들이 전부 멈췄다.
적외선 감지, 동작 감지, 음향 증폭, 진동 감지 등과 같은 다양한 보조 센서들과 광학 센서들이 정지하자, 마루 자신의 시각만 남았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정돈한 마루가 감각을 퍼뜨렸다.
‘역시 전부 가짜였군.’
건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도. HUD가 붉게 물든 것도 전부 거짓. 예민해진 감각을 앞세운 마루가 복도를 따라 걸었다.
일부러 전원을 차단했는지, CCTV와 비상 탈출구 표시등도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야시경이 없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한 복도였지만 마루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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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시간, 조명을 받은 백금발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끼이익- 두툼한 문이 열리고 깜깜한 복도에서 솟아나듯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머리에 쓰고 있던 야간투시경을 벗고는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여자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여자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맨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카메라가 방향을 돌리자, 사내가 여자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녀님 창녀들 쪽에서 반응이 없습니다.”
“반응이 없다고요? 그년들이라면 제가 이쪽에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움직일 줄 알았는데 말이죠.”
몸이 달아오른 창녀들이 달려들 거라 예상했는데 반응이 없다고?
“설마. 우리 계획이 새나간 건 아닌가요?”
“그럴 리 없습니다. 모두 성녀님이 보여주신 희망에 목숨을 건 자들입니다.”
위대한 프랑스는 숨이 끊겼다. 파리에 있던 정부는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 틈을 타 식인귀가 군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정국. 중앙 정부가 사라지자 서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반란이 터졌다. 그리고 군을 장악한 임시정부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반란 진압에 군대를 동원한 것이었다.
임시정부의 명령대로 반란지역을 밀어 버린 부대가 있는가 하면, 총부리를 돌려 반란에 합류한 부대도 생겼다. 그것은 끝없는 유혈사태의 시작을 의미했다.
중앙 정부가 무너지면서 지역, 인종, 종교, 경제 갈등이란 모든 갈등이 동시에 터져버렸다.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고 법이 통용되지 않게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남은 것은 하나였다. 먹느냐, 먹히느냐. 갖느냐, 뺏기느냐. 그렇게 프랑스는 괴물들의 천국으로 변하고 말았다.
“프랑스를 위해. 프랑스 인을 위해. 우리는 이곳에 자리를 잡아야 해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창녀들이 낌새를 알아챘다면, 총독에게 알렸겠죠?”
“그랬을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를 사교도로 몰았겠군요.”
“무엄하게도 그랬을 겁니다.”
사교도를 토벌한다며 군대를 보낼 것이 분명했다.
“총독이 군대를 보낸다면, 그 군대를 장악해야겠습니다.”
그 군대로 창녀들을 잡고, 총독을 잡아 몬트리올을 장악하겠다고 생각한 여자였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야간투시경을 다시 고쳐선 사내가 깜깜한 복도로 사라졌다.
그 어둠 속에서 백금발이 빛나는 여자는 프랑스에서의 삶을 떠올렸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비루한 삶이 이어졌다. 살아있다는 것은 싱싱한 먹이를 먹기 위한 괴물들의 기호 때문이었을 뿐.
그들을 구원한 것은 신성 왕국에서 온 군인들이었다. 여자들로 이뤄진 특수부대. ‘나루즈’라 불리는 부대가 사람들을 구조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신성 왕국에서 파견된 용병대장을 중심으로 프랑스 정규군도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프랑스에 남을 건가? 아니면 신성 왕국의 캐나다 지역으로 갈 것인가? 생존자들은 대부분 캐나다로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나? 그 말처럼 신성 왕국은 낙원이 아니었다. 언제 먹이가 될지 모르는 공포는 없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혹한의 겨울이기 때문에 일거리가 없다는 것은 변명이었다. 대부분의 행정 업무는 인공지능이 처리하기 때문에 인력이 필요 없었다.
대다수 업종도 마찬가지였다, 요리는 요리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계가 만들었다. 교육은 1:1 교육 관련 인공지능이 화상으로 교육했다. 상담은 인공지능 상담사가 해줬다.
프랑스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그저 신성 왕국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고 살면 그만이었다. 나쁘지 않은 삶이었지만,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삶은 아니었다.
‘신성 왕국에서는 인격이 있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라면 권리를 줄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생활하면서 접하는 여러 인공지능과 곁에서 여러분을 보조하고 있는 인공지능 역시, 권리가 있는 존재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리에 디바이스(device)를 장착한 까마귀와 목에 디바이스를 장착한 늑대들도 준시민으로 적법한 권리와 권한이 있습니다.’
‘까마귀와 여러분은 의사소통할 수 있습니다. 늑대들도 여러분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성 왕국은 기본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합니다. 다만, 종교의 자유도 국왕 폐하의 판단 아래 제한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성 왕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종교로는 HOLLY 교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성 왕국에서의 낯선 삶에 적응해야 했다. 살아남았다는 기쁨이 희석될 무렵 대부분 우울증에 빠지게 됐다.
‘세무사에서 일했습니다.’
[세무업무는 인공지능이 하고 있습니다. 다른 직업을 선택해 주세요.]‘변호사입니다.’
[변호 업무는 인공지능이 하고 있습니다. 다른 직업을 선택해 주세요.]‘공무원이었습니다.’
[행정 업무는 인공지능이 하고 있습니다. 다른 직업을 선택해 주세요.]‘포도 재배를 했습니다.’
신성 왕국에서 필요한 인력은 건설, 기계, 전자, 프로그램 관련 업종을 제외하면 군인이었다.
‘군인이요? 군인 말고 다른 직업은요?’
[현재 제일 빨리 취직할 수 있는 직종은 군인과 군대 관련 업종입니다.]다른 업종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식당, 미용실, 마트를 비롯한 서비스 업종은 이미 몬트리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전부 차지한 뒤였다.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원하는 직업을 얻을 수 없는 사회경제구조. 그러나 한창 원하는 것이 많을 나이인 여자들은 일종의 전문직(?)에 뛰어들었고. 기존에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여자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년들이 상도덕이 없네.’
‘여긴 우리 구역이라고.’
‘한 번만 더 여기서 알짱거리면 얼굴을 갈아버린다?’
경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고. 폭력은 전쟁처럼 변해버렸다. 그리고 각성한 여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식인귀에게 잡혀 죽기만을 기다렸을 때도 생기지 않던 각성자가 생긴 것. 이건 양쪽 다 마찬가지였다.
칙칙한 잿빛 머리카락이 찬란한 백금발로 변하고, 탁한 회갈색 눈빛이 시리도록 푸른 빛으로 변했던 순간이 떠오른 그녀였다.
정신계 능력을 각성한 그녀는 프랑스에서 넘어온 사람들에게 성녀로 추앙받았다. 업소녀에서 성녀로. 그녀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변했다.
‘신성 왕국의 바탕에는 HOLLY 교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심이야말로 종말의 시대를 헤쳐나갈 원동력입니다.’
디트로이트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신성 왕국을 건국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종교를 통해 합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성녀가 있습니다.’
‘신의 목소리를 듣는 성녀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겁니다.’
블라디마루 칼린과 그 추종자들이 디트로이트라는 버려진 도시에서 신성 왕국을 건국했듯, 그녀와 그녀의 추종자들은 몬트리올에서 신성 프랑스 왕국을 재건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선 돈과 물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음지에 있었다.
결국. 몬트리올의 밤을 지배하고자 하는 싸움은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입니다!’
‘미친년. 몸 파는 게 신의 뜻이냐?’
‘그런 모순을 견디는 것이 신성 프랑스를 초석이 될 것입니다.’
‘몸 팔아서 프랑스를 만들겠다고? 지랄하네.’
팔다리를 분지르는 것에서 그쳤던 싸움이, 서로 목숨을 노리는 혈투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녀님. 군과 용병대를 합쳐 700 전후의 병력이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준비하도록 하지요.”
그녀의 정신계 능력은 제한 조건이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거부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잘 듣지 않았고, 다른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도 잘 걸리지 않았다.
대신 장점도 있었는데, 정신계 능력에 세뇌된 자들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데 반해 그녀에게 세뇌된 사람들은 열성적인 신도(?)가 될 뿐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개종한 병력을 제외하면 전부 처리합니다.”
시간을 두고 개종시키면 좋겠지만, 여유가 없었다. 개종한 병력을 이끌고 창녀들을 몰아쳐 끝을 보고 군세를 늘린 뒤, 바로 몬트리올 시청에 있는 총독을 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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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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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D가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한 표시등이 깜박이더니 꺼졌다. 은신 모듈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어둠에 잠긴 복도 저편에 전자기기에 영향을 주는 뭔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이제껏 소리를 죽이며 걸었던 마루가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였다. 쿠직- 어둠을 꿰뚫은 그림자가 굳게 닫힌 문을 파고 들어갔다.
“총독을 생포해 개종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
“!”
두꺼운 문짝을 소리 없이 뚫고 들어온 침입자에 놀란 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은 마루가 그대로 기순이를 생포하니 개종시키니 어쩌고 주절대는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녀님!”
푸확-
옆에 있던 경호원이 사선으로 절단되며 무너져 내렸다. 사선으로 그어진 칼날이 방향을 바꿔 수평으로 뻗었다.
“머-엄-추-어-라!”
신체 가속 능력자라도 됐는지, 순간적으로 마루의 앞에 나타난 자가 나이프와 도끼를 교차해 수평으로 휘둘러진 이클립스를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서서걱-
나이프와 도끼를 잘라낸 이클립스가 앞을 가로막은 자를 상/하로 분리했다. 초단 위로 두 사람을 토막 낸 마루의 앞에는 백금발의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여자만 남아 있었다.
수평으로 휘둘러졌던 칼날이 어느새 수직으로 내려꽂힐 준비가 끝나있었다. 그 맹렬한 기세에 백금발 여자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무릎 꿇으세요!”
강력한 정신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마루를 막기 위해 달려들던 경호원들, 신도들이 제자리에서 무릎 꿇는 모습이 그녀의 파란 눈동자에 비쳤다.
그리고
무릎 꿇지 않은 죽음이 있었다.
아?
그녀의 정신계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
“거. 거기서!”
성큼.
다가온 것은 죽음이었다.
“멈춰!”
죽음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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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동공에 남은 잔상은 검은 실선이었다. 여자의 왼쪽 목덜미를 수직으로 파고 들어간 이클립스가 여자의 오른쪽 골반을 자르고 나왔다.
윙윙 사방으로 퍼진 강력한 정신파가 뚝 끊겼다.
세뇌의 주체가 사라졌으니, 이제 끝이었다.
사람들은 제정신을 차릴 것이고 정신계 여자를 중심으로 뭉쳤던 사이비 종교단체는 사라질 것이다.
마루는 핏물을 털고 이클립스를 검집에 넣었다.
“아-”
한 사람이 고개를 들고 현장을 바라봤다. 흩어진 백금발 사이로 붉게 흐르는 핏물이 고개를 든 한 여자의 눈동자를 채웠다.
“서. 성녀님···.”
그 애절한 소리에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성녀님!”
“맙소사!”
“신이시어!”
울부짖던 사람들이 마루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 악마가!”
“악마를 죽여!”
“성녀님을 모셔!”
마루는 순간 당혹스러웠다.
단순한 정신계 세뇌가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