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54)
러스트 [RUST]-654
까아악? (성녀?)
까악- (그렇다고 하더라-)
까악? (그게 뭔데?)
깍깍까아악. (신님에게 우리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거라고 하더라.)
“그것만 있는 게 아니죠. 지금처럼 꾀부리고 있는지 확인하는 역할이지요.”
콰기이인? (확인?)
“그럼요. 지금처럼 모여서 노닥거리는 거 신님이 아시면 많이 안타까워하실 텐데요?”
퍼더덕-
까마귀들이 재빨리 일하러 나갔다. 여러모로 자질이 풍만한 간호사였다.
간호사가 성녀의 지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HOLLY 교는 담담하게 인정했다. 그분이 선택한 성녀인데 토를 달 이유가 없었다.
“성녀라. 그분이 선택하신 것이라면 뜻이 있겠지요.”
“성녀로 간택되신 분을 먼발치에서 본 적 있습니다만, 과연 성스러우신 분이었습니다.”
“흠- 이번 예배에 참석하신다고 하니 지켜봅시다.”
“궁금해하는 교도들도 많았으니까요.”
성녀가 예배에 참석한다는 당일, 중앙교회는 인파로 북적였다.
“에-또 반갑습니다. 이번에 성녀로 임명된 오노 나나에라고 합니다.”
그녀가 꾸벅 고개를 숙이는 순간, 교도들은 은혜롭다는 게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
“······.”
인사 한 번에 좌중을 침묵시킨 성스러운 파괴력. 그렇다. 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히도록 성스러운 분이셨다.
“HOLL–Y- Sh-Spirit.”
“Oh- My··· Might.”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성녀였다.
HOLLY 교도들은 그녀를 환영했다. 열렬히.
‧
‧
‧
“봤지? 타고난 성녀인 거.”
기순은 의기양양했다. 마루도 간호사가 생각보다 잘하고 있어서 살짝 놀랐다. ‘에에엣.’ 했던 것과는 달리 까마귀와 늑대를 잘 다루고 있었다.
가끔 관리하는 들쥐들도 간호사의 말을 잘 따르는 걸 보면, 나름대로 마루를 잘 써먹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분께서 지켜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찍-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다고 기뻐하셨습니다. 여기 그분께서 내리신 축복입니다.’
찌이이익-
간호사는 들쥐들에게 필요한 보급을 신의 뜻에 따라 제공하는 것으로 말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PD가 경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했을 때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다.
말이 통하는 성녀가 들쥐들에게 직접 이야기한다는 것은 들쥐들에게 잘 먹혀들었다.
‘몬트리올에서 도망치는 자들을 처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찌-찍- 찌이익?
‘도시 밖으로 나간 자들은 인간인데 죽여도 됩니까?’ 라는 들쥐의 물음에 간호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분의 뜻입니다.’
찍-
‘그분의 뜻이라면.’ 고개를 조아리는 들쥐들이었다.
찍-찌이익- (그래도 이번에 몸보신 좀 하겠어.)
찌이이익– (후딱 처리하자고.)
몬트리올에서 도망친 사교들은 그렇게 들쥐의 밥이 되고 말았다.
찌이익- (성녀가 있어서 다행이야.)
찌익- 찍- (그분께서 우리에게 뭘 원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
경전을 통해 신의 뜻을 해석하는 건 아무래도 시간이 걸렸다. 옳게 해석했는지 확인하기 장담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래도 대화가 통하는 인간 암컷이 성녀가 됐기에 들쥐들은 마음이 놓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보다 말이 통하는 암컷이 성녀가 됐으니, 자신들의 생각을 죽음의 신에게 전달할 소통 창구가 된 것 아닌가?
들쥐들은 자발적으로 간호사의 주변을 지키기 시작했다. 수만의 동포들이 핏덩이가 됐던 걸 기억하는 들쥐들이었기에, 성녀는 중요했다.
“봤지? 들쥐들이 간호사 밖으로 나갈 때마다 알아서 지키는 거.”
순식간에 쥐심을 휘어잡는 간호사의 모습에 기순이 저것 보라며 고개에 힘을 줬다.
“네가 절대 불가침 신성의 상징이라면, 성녀는 곁에서 대화할 수 있는 신성의 상징이 되는 것이지.”
“굿 캅, 배드 캅이 아니고?” (Good Cop, Bad Cop)
“그것도 노린 거고. 너를 두려워하면 할수록, 너와 직접 이야기하기보다 성녀를 통해 이야기하려고 할 테니까. 너도 솔직히 그게 편하잖아.”
“그러다가 문제가 터지면?”
“리스크 헤지(risk hedge)도 자연스럽게 되는 거지, 시련의 이유를 먼저 성녀한테 물을 테니까.”
“······.”
“성녀가 아니라 성자가 죽었다고 생각해봐라. 교황이나 교주가 썰렸다고 생각해보고.”
“똑같지 않나?”
죽음은 공평했다. 성녀의 죽음이든 성자의 죽음이든 죽음은 죽음 아닌가?
“아니. 전장에서 성녀의 죽음은 바로 희생이나 순교와 쉽게 연결되기 마련이지, 반대로 교주나 교황, 성자가 전장에서 죽으면 신앙심이 흔들리기 쉽고.”
“이상하네. 성녀가 신에게서 버림받아서 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그게 교황이든 성자든 마찬가지고? 패배한 이유가 신이 버려서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마루의 반박에 기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네 말대로 그렇다고 치면 이번에 성녀(?)가 죽고 나자 발광한 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능력 때문이지, 정신계 능력.”
“정신계 능력이었으면 그 여자가 죽자마자 세뇌가 풀렸어야 하잖아. 근데 목숨을 걸고 날뛴 건 어떻게 생각하는데?”
“세뇌에 종교가 섞였다고 봐야겠지.”
기순이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바로 그 부분이 성녀의 특이점이다. 종교적 믿음이 파고들기 쉽게 심리적 장벽을 낮춰주는 역할을 성녀가 한단 말이지.”
성녀, 성모 이런 개념이 대상을 파고들기에 효과적이라는 기순의 말에 마루는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그래. 할 말이 많지만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성녀를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뭉치게 한단 말이냐?”
“성녀가 딴마음을 먹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간호사가 그럴 여자는 아니지 않냐?”
성녀를 하라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에에엣’ 소리 높일 간호사였다. 종교적인 권력을 갖겠다고 설칠 여자는 아니었다.
“···그렇지.”
“무엇보다 간호사는 동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잖아. 동물과의 의사소통은 성녀라는 역할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능력이지.”
역시 기순이 다운 답변이었다. 눈도 실눈인 것이 말이다.
“성녀가 자리를 잡아서 한 시름 놨지. 이제 어지간해서는 신앙이 흔들리지 않을 거다. 서열도 자연스럽게 잡히고”
“흔들리지 않고 서열?”
큼- 작게 헛기침한 기순이 설명을 계속했다.
“그래. 성녀가 존재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너의 위치가 확실히 그 위에 있게 되는 거니까.”
성녀를 통해 신과 소통하려고 할 테니, 마루는 자연스럽게 신이나 현인신으로 인식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신의 대행자, 구원자, 사도 같이 불확실한 존재에서 확실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 죽음의 신. 현인신. 뭐 그렇게 말이야.”
“하- 그래. 뒷감당은 네가 하는 거다?”
일을 벌였으니 책임을 지라는 말에 기순의 실눈이 휘어졌다.
“그럼요 왕님.”
“공식적으로는 왕으로 하자. 신은 좀 그렇지. 덴 브라운 총통이 뭐라고 생각하겠냐?”
‘제국도 어안이 벙벙할걸.’ 그냥 동물들 관리하느라고 죽음의 신 찾는 것과 대놓고 사람들이 믿는 죽음의 신 이야기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에이- 이제 성녀도 생겼는데 약한 소리는 하지 않기로 하죠, 왕님. 섬나라는 간판만 현인신이었지만, 우리 신성 왕국에는 홀로 도시 하나쯤은 거뜬하게 보낼 수 있는 죽음의 신님이 실존하는 데 말이죠.”
“닥쳐.”
마루가 발끈하자, 기순이 끅끅- 웃었다.
“웃지 마. 새꺄. 빌어먹을···.”
죽음의 신은 너무했지.
동물들이야 죽음의 신이 먹히겠지만, 사람들에게 죽음의 신이 먹히겠나?
“걱정하지 마라. 다 생각이 있으니까. 몬트리올 밖으로 도망친 사람들은 들쥐로 잡았고, 안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싹 잡아야지.”
이런 건 손을 댔으면 끝을 봐야 하는 법. 다른 것도 아니고 종교로 뭉친 자들을 어설프게 남겨둘 생각이 없었다.
마루의 단호한 대답에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확실히 ‘죽음의 신’다웠다.
‧
‧
‧
새끼 너구리같이 작은 여자가 주변을 살폈다.
종종종 이쪽으로 도도도 달린 뒤, 힐끔. 다시 저쪽으로 도도도 달린 뒤 힐끔. 그렇게 뻔히 움직이는데도 경계를 서는 병사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세인트 앤듀르스 교회와 근처 빌딩은 노란색 접근 금지 테이프로 둘려 있었다.
‘교회 쪽엔 사람들이 많으니까 빌딩부터.’
금지 테이프 안쪽으로 쏙 들어가자 긴 복도가 나왔다. 복도 한쪽은 천이 덮힌 시체들이 가득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의무병과 구급대원들이 뒤섞인 복도를 종종걸음으로 걸어감에도 아무도 작은 여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인식 저해능력. 일종의 정신계 패시브 능력.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었다.
복도 끝 넓은 공간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참상.
‘히유우- 2층이 무너진 건가요?’
엑소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무너진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조각을 치울 때마다 뭉개진 고깃덩이들이 드러났다.
“거기. 머리가 온전한 시체는 따로 챙겨.”
“하반신이 뭉개졌습니다.”
“그럼 머리만이라도 보존해.”
“알겠습니다.”
머리를 잘라 보존용기에 담는 모습에 작은 여자는 눈을 찌푸렸다.
‘머리는 왜?’
작은 새끼 너구리같이 연약해 보이는 여자였지만, 현장에서 목을 자르는 장면을 코앞에서 목격했음에도 피하지 않는 것을 보니, 피를 보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찰칵- 찰칵-
카메라로 여기저기 부지런히 촬영하기 시작하는 여자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나 많이?’
보존용기에 들어있는 머리통들이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종종종- 가까이 가서 확인해봤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말 그대로 보존액에 담긴 머리통일 뿐.
흐응- 뭐지?
머리통에 흥미를 잃은 그녀가 관심을 보인 건, 천장에 남은 흔적이었다. 무너진 천장은 뭔가 이상했다.
‘매끈하게 잘려서 무너졌다? 그게 말이 되는 건가요? 전혀 모르겠네요.’
찰칵- 찰칵-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작은 여자를 향한 목소리.
“여기서 뭐 하냐?”
“예?”
인식 저해능력은 정상인데?
반사적으로 목소리 방향으로 사진을 찍는 여자.
찰칵-
셔터 소리와 동시에
긴 실선이 여자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두 쪽으로 쪼개진 카메라 사이로 쑥 들어온 칼날.
쿠직-
검붉은 칼날이 여자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끼아아앗!
“너 뭐하는 년이냐고?”
라쿤 새끼처럼 울먹이는 여자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 어떻게(엥)?”
인식저해능력은 정신계였다. 그러니까 인식할 수 없었을 텐데.
알아챘다고 해도 이렇게 다짜고짜 칼로 찔러? 그녀는 최대로 능력을 펼쳤다.
‘통하지 않아?’
능력을 최대한 써도 마루의 인식을 돌릴 수 없자, 작은 여자는 가녀린 울음을 터뜨렸다.
“흐윽- 흐윽- 아. 아파요. 아아아-”
서럽게 우는 여자를 향해 마루가 말했다.
“하아- 지랄하네. 능력 쓰더니, 머리통 굴리냐?”
여자의 어깨에 박힌 이클립스가 90도로 비틀어졌다.
우직-
끄아아아아앗!
‧
‧
‧
“왜 칼을 뽑고 그러냐? 네가 칼을 뽑으면 그냥 가슴이 벌렁벌렁한다니까. 무슨 일인데 칼을 뽑았어? 테러냐?”
기순은 칼을 든 마루를 보고 실눈을 찌푸렸다.
“이거 안 보이냐?”
“뭐가?”
어깨에 칼이 박힌 채 끌려온 작은 여자가 움찔거렸다.
“피 흐르는 게 안 보여? 피 냄새도 안 나고?”
“피? 무슨 소리야?”
“능력 꺼.”
“으읏-”
기순의 눈앞에 갑자기 피투성이가 된 작은 여자가 나타났다.
“어뭬- 씨발.”
실눈이 둥그렇게 커진 기순이었다.
“호오- 놀랐어?”
“놀라지. 아오. 너라면 안 놀라겠냐? 이거 뭐야? 은신이냐?”
“은신이랑은 다른 거.”
“미쳤네.”
인식저해는 은신과는 결이 다른 능력이었다.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도 그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왜 여기까지 데려온 건데?”
“자기는 사교도가 아니고, 그쪽과 싸웠던 조직원이라는데? 총독이라면 자신들을 알 거라고 해서 데려왔지.”
“그걸 믿냐? 알기는 뭘 알아.”
“지. 진짜예요(ㅇ). 우리 아시잖아요-. 저 진짜 사교도 아니에욘. 거기랑 싸웠어영. 우리는.”
“너희가 그쪽인지 그걸 어떻게 믿고 어떻게 알겠어?”
“우리가 사교도 있는 곳을 알려줬잖아영. 세인트 엔듀르스 교회. 그 정보 전해준 게 우리예요(오온).”
필사적인 작은 여자의 말에 기순의 입꼬리가 실룩 움직였다.
“들었지?”
“어.”
“우리를 엿 먹이려고 했던 것들이네.”
“그러게. 차도살인, 어부지리 노린 것들이 현장을 확인하러 왔다. 그런 거지.”
“오- 왕님께서 잡아오신 이유가? 혹시?”
“그래. 그런 거다.”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던 두 사람이 움츠러든 여자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너희 거점이 어디지?”
“사교도와 싸웠을 정도면 능력자들이 많겠네?”
그 악당 같은 눈빛에 작은 여자가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