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58)
러스트 [RUST]-658
김 양의 비행선 블랙 드레이크호는 벙커버스터와 네이팜탄으로 영국 중앙은행이 있는 지역 전체를 날려버리고 있었다.
네이팜으로 불타오르는 불꽃이 꺼질 때쯤이면 다시 한 번 불태우고, 다시 꺼질 때쯤이면 또 불태우는 모습.
폭격했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포격으로 추가 타격을 한다거나 특정 위치에 집중 폭격을 한다거나 한 뒤, 지상 병력을 투입하는 게 보통. 그런데 블랙 드레이크호는 1~2시간마다 광역 폭격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루 전용 비행선이 접근하자, 블랙 드레이크호를 자율조종하던 보조 인공지능이 정보를 보내왔다.
[안녕하십니까. 국왕 폐하. 블랙 드레이크호를 자율 운영 중인 ‘전A-703가’입니다. 현재 자율 교전 프로토콜에 따라 작전 기록 번호 20218873, 작전 기록 번호 20228874, 상황으로 연산. 지원 폭격을 하고 있습니다.]뭔가 학습이 덜된 느낌의 보조 인공지능의 보고에 마루는 속으로 한숨지었다.
전용 비행선이 건조되자마자 끌고 가더니, 보조 인공지능과 손발 맞춰보지도 않고 바로 실전에 들어간 것 같았다.
마루는 즉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세한 상황을 파일로 보내도록.”
[교전 상황 전송합니다. 전송 완료됐습니다.]모니터에 주르륵 올라가는 자료들. 김 양과 친위대의 전술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확인하는 마루였다.
김 양의 지휘는 속전속결이었다. 병력 분배와 작전 수행이 실시간으로 이뤄졌다. 저격팀 배치, 선행 정찰, 퇴각로 확보 등 흠잡을 데 없었다.
문제의 시작은 갑작스러운 통신 장애의 시작이었다. 통신 장애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바로 센서를 비롯한 전자 장비의 오류가 시작된 것.
[후퇴한다. 전원퇴각. 비행선으로 간다.] [치지직- 여기는 알파! 벽입니다! 놈들이 벽을 뚫고 –치지직!]김 양이 빠르게 퇴각을 지시했지만, 적들의 반응이 더 빨랐다.
‘센서 탐지 범위 밖에 있었던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영상을 보면 놈들은 철근콘크리트로 된 벽을 두부처럼 뚫고 나왔다. 검은색 타르처럼 뭉쳐진 형상에 길게 뻗은 촉수가 2개.
‘일본 촉수 괴물?’
언뜻 보면 비슷해 보였지만, 그것들과 근접전으로 드잡이질했었던 마루는 바로 다른 점을 알아챘다.
사람을 통째로 잡아먹고 촉수로 공격했던 것이 일본에서 겪은 촉수. 미국에서 심 회장과 제단의 파편이 뒤섞여 생긴 촉수는 쥐와 생명체에 달라붙어 촉수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영상 속에 있는 것은 아스팔트가 녹은 점액질에 촉수가 돋은 모양. 제대로 된 형체가 없이 흐물거리는 모양은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슬라임 같았다.
게다가 두 가닥 돋아난 촉수는 단순한 촉수가 아니라 입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촉수가 마치 코끼리의 코나 뱀처럼 움직일 뿐만 아니라, 주둥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타다다다당-] [치지지지- 총알이 먹히지 않습니다!] [삐이이이익- 대괴수탄이 파고들지 못합니다.] [칙- 타겟 접근.] [삐이익- 막아! 저지해!] [치지지직- 크레모아 격발!]폭발음과 함께 먼지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치지직- 센서 작동되는 사람? 띠이이-] [츠지직- 먹통입니다.] [삐이이이이- 이쪽도 전부 맛이 갔습니다.] [칙- 앞에- 삐익- 전방!]뿌연 먼지를 뚫고 나온 검붉은 부정형 생명체. 크기는 조금 커다란 접시 정도. 느릿하게 움직이는 비정형 물체가 꿈틀 전신을 쥐어짜듯 움직이자 촉수가 튀어나왔다.
[뻐억!]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엑소슈트가 튕겼다. 신형 엑소슈트의 특수 장갑판을 뚫지는 못했지만, 여기저기 구겨진 모습.
12.7mm 철갑탄도 막아내는 신소재 특수장갑이 구겨지다니, 생명체의 법칙이나 물리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괴물이었다.
[치이익- 일어나!]강력한 충격에 의식을 잃었는지, 널브러진 채 미동이 없는 엑소슈트. 아메바처럼 길게 늘어진 괴물이 풀쩍 점프했다.
[치지이익- Fuck!!! 치이익- 막아!!]느릿느릿 움직이다 갑자기 테니스공처럼 튀어버린 괴물을 곁에 있던 팀원들이 막아보려고 했지만, 놈이 더 빨랐다.
엎어진 엑소슈트에 달라붙어 촉수로 사지를 휘감는 모습. 마치 뱀이 먹잇감을 휘감듯 둘둘 감자 엑소슈트의 사지에서 서서히 뒤틀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까드드드- 장갑은 버텼지만, 관절 부품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
[삐이익!- 잘라! 잘라내!] [치익! 화염방사기!] [치이익- 옆으로 비켜!]친위대원들이 고주파 커터와 화염방사기를 이용해 잘라내고 태우는 영상이 여기저기 계속됐다. 다른 팀들도 동시에 습격을 받고 있었던 것.
[삐이익- 집합. 금고 앞으로 집결한다. 치익-] [치이익- 금고 열렸습니다!]김 양의 판단은 빨랐다. 계단으로 미지의 적과 교전하면서 탈출하느니, 적이 없는 지하 1층 금고를 벙커로 이용하겠다는 생각.
[삐이익- 벙커버스터와 네이팜으로 폭격해! 현재 위치로! 당장! 치익]금고 안으로 대피한 그녀가 블랙 드레이크호에 내린 명령은 주변을 폭격하고 불태우라는 것이었다.
‘금고 속으로 대피했으니까.’
급하게 움직일 건 아니었다. 마루는 다양한 영상 가운데 몇 개를 따로 뺐다. 밖으로 퇴각하는 것도 실패하고 김 양과 합류해 금고로 대피하는 것도 실패한 팀의 영상이었다.
[까드드득- 끄아아악!]괴물들도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지, 엑소슈트의 단단한 몸통을 공격하기보다, 사지를 비틀어 꺾었다.
[떼어내. 화염방사기!] [연료가 다 떨어졌습니다.]화염방사기의 네이팜과 탄약을 다 써버렸다는 것을 알아챈 놈들이 슈륵슈륵 달려들었다. 사지가 꺾이고 목이 부러지면서도 친위대원들은 전술카메라를 끄지 않았다. 죽어서도 정보를 전달하도록 보조 인공지능을 셋팅하는 자들.
마치 문어나 낙지 같은 두족류가 꽃게의 껍질을 까고 속살을 파먹는 것처럼 움직였다. 엑소슈트의 사지를 꺾어 떼어낸 뒤, 촉수를 그 안쪽에 박아 넣는 모습.
츄륵-츄륵-
촉수의 끄트머리를 박아 넣는 것으로 포식이 시작됐다. 영상은 산채로 잡아먹히는 친위대의 비명과 유언, 최후의 기도 소리가 뒤섞였다.
삑-
모니터를 끈 마루는 불타오르는 영국 중앙은행과 국제 금 거래소 구역을 바라봤다. 벙커버스터가 틀어박혀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모습이 선명했다.
화르르르르륵-
크게 파인 구멍이 굴뚝이라도 된 것처럼. 속에서 불꽃과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상하군.’
마루는 그 미묘함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영상을 훑기 시작하는 그를 향해 예리하게 각을 세운 감각이 속삭였다.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치지지지직-]잡음으로 시작해서 잡음으로 끝나는 녹화 영상. 중간중간 화면이 뭉개진 영상을 빠른 배속으로 확인하던 마루의 눈빛이 일순 차갑게 가라앉았다.
[연료가 다 떨어졌습니다.] [끄아아악! 엄마!]산채로 먹히는 영상. 그 영상에는 잡음도 뭉개짐도 없었다. 마루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이 괴물 새끼들.
‘녹화하고 있는 걸 알고 있다?’
전술카메라로 녹화하는 것을 알고 역으로 이쪽의 사기(士氣)를 꺾으려 했다. 너희들은 이렇게 산채로 잡아먹히게 될 것이라며 맨탈을 공격한 것.
‘빌어먹을 새끼들이···.’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벙커버스터와 네이팜으로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으니, 금고에 숨은 김 양과 친위대원들이 밖으로 나왔어야 하는데.
‘블랙 드레이크호가 계속해서 벙커버스터와 네이팜탄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괴물들을 견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전A- 블랙 드레이크호. 폭격 중지.”
인공지능 번호, 전A- 어쩌고에 폭격 중지를 명령한 마루. 신성 왕국 국왕의 명령코드는 최상위 명령인지라 폭격이 중지됐다.
[폭격 중시지 괴물들이 금고 주변을 장악할 위험이 있습니다.]“충분히 모인 뒤에 폭격하도록.”
[알겠습니다.]“센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나?”
[센서 정상 작동하고 있습니다.]“그래?”
놈들은 전자기기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센서를 교란할 수 있다는 뜻. 통신 장애와 녹화 장애 정도였지만, 그 이상이라면?
높은 하늘에 있기 때문인지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할수록 찝찝한 놈들이었다.
혹시나 싶어 벙커버스터와 네이팜탄 잔량을 확인해 본 결과, 좋지 않은 예상대로였다.
블랙 드레이크호의 인공지능은 기존의 교전 자료를 기반으로 폭격했기에, 폭탄의 소모가 컸다. 마루가 폭격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면 곧 전량 소모했을 상황이었던 것.
김 양이 까마귀와 드론을 이용해 런던을 정찰한 영상까지 전부 다시 확인한 마루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들 흔적을 지울 줄 알아.’
정찰 까마귀가 텅 빈 방을 촬영한 영상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난 흔적이 선명한 채, 방문이 닫혀있는 영상.
‘과자 상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마루는 찝찝했다.
과자 상자가 문틈에 끼어 찌그러진 채, 방문이 꼭 닫혀있었기 때문.
‘이상한데?’
급하게 문을 닫았을 때를 떠올려보라.
후다닥-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문틈에 과자 상자가 걸려 문이 닫히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급하니까 그냥 방문을 열어두고 나간다.
문틈에 낀 과자 상자를 발로 쳐내든 손으로 치우든 하고 문을 닫는다.
과자 상자가 문틈에서 찌그러져 문이 닫히지 않아도, 힘으로 끝까지 밀어붙여 닫히지 않는 문을 억지로 닫는다.
세 가지 선택지 가운데 마지막을 선택할 이유가 있나? 굳이?
만약 세 번째를 선택한다면, 그럴 법한 이유가 있겠지.
정찰 까마귀들이 촬영한 영상 속 공통적인 부분은 인적이 없고, 급하게 나간 흔적이 있으며, 대부분 문이 꼭 닫혀있다는 것이었다. 현관문이든 방문이든 창문이든 대부분 전부.
까마귀가 창문을 열고 들어가는 영상. 방문을 열고 2층에서 1층으로 날아가는 영상이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마루는 영상을 보면 볼수록 계속 느낌이 찝찝했다. 구겨진 종이 상자도 그랬고, 인기척 하나 없는 텅 빈 방과 건물들도 그랬다.
‘놈들은 똑똑해. 사기를 꺾으려고 할 정도로.’
부정형의 몸체, 인간의 정신이 나약하다는 걸 알고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놈들. 처음에는 센서에 잡히지 않고 있다가 금고를 발견해 주력 부대가 지하로 내려가자 급습하는 방식.
지하로 내려간 것을 알았다? 어떻게?
마루는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영국 중앙은행 정문을 열고 들어가는 김 양과 친위대의 모습. 바로 옆에 있는 국제 금 거래소도 마찬가지였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는 친위대.
‘열고 들어간다?’
열고 들어가서 알아챘다?
방문을 전부 닫고, 창문도 닫은 이유는 알아채기 위해?
그렇다면 까마귀들이 열고 들어갔던 건?
구분할 수 있다는 건가? 인간과 동물을?
마루는 즉시 자율 기동 엑소슈트를 영국 중앙은행 인근으로 강하시켰다. 인공지능으로 기동 가능한 엑소슈트가 벙커버스터와 네이팜탄의 폭발로 반쯤 뭉개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창이 깨지고 문짝이 너덜거리는 정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건물 내부의 방문을 열었어도 마찬가지.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은 어떨까?
자동 제어 엑소슈트가 한 블록 떨어진 빌딩 정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삐-
아주 찰나의 순간. 붉은 점이 찍혔다가 사라지는 센서 화면. 마루를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놈들이 있었다.
마루는 곧바로 지하 1층을 향해 엑소슈트를 보냈다.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엑소슈트가 비상계단 방화문을 열고 주차장 공간에 진입하자, 방화문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붉은 점.
철컥-
마치 자동문처럼 방화문이 잠기는 소리.
그리고 센서에 하나둘씩 떠오르는 시작하는 붉은 점.
치이익-
엑소슈트에 달린 전술카메라 녹화 영상이 일그러졌다.
촤릭-
방화문과 천장으로 의태(擬態)하고 있던 놈들이 엑소슈트를 덮쳤다. 콰득-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사지부터 꺾은 놈들이 다음으로 공격한 곳은 머리였다.
꾸득-
헬멧 뒤통수에 찰싹 달라붙은 놈이 목과 헬멧 사이에 촉수를 찔러 넣고는 당황한 것처럼 이리저리 몸통을 흔들었다.
헬멧 속이 텅 비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부 카메라로 촉수의 움직임을 확인한 마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머리인가?’
사지를 무력화한 뒤, 놈들은 인간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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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금고문이 서서히 닫혔다.
[빨리 닫아!]축 늘어진 엑소슈트 하나를 양쪽에서 부축해 들어오는 친위대 둘. 김 양이 두 사람을 멈춰 세웠다.
[거기. 제자리에 스톱.] [함정이었습니다.] [놈들이 금고 근처에 매복하고 있습니다.]다급하게 말하는 두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눈 김 양이 말했다.
[물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