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59)
러스트 [RUST]-659
[그대로. 물러서.]김 양의 총구는 흔들림 없었다.
[대장님?] [의식을 잃었습니다. 의무병이 필요합니다.]총구를 까딱까딱 흔들어 뒤로 물러나게 한 그녀를 향해 두 사람이 이구동성을 외쳤다.
[놈들이 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닥과 천장, 벽이 전부 놈들이었습니다.]벽을 뚫고 나온 게 아니라 놈들이 벽과 천장, 바닥으로 의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에도 김 양은 눈을 떼지 않았다.
순간. 의식을 잃은 자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치 간질에 걸린 것처럼 덜덜 몸부림치는 모습에 곁에 있던 두 사람이 의무병을 부르짖었다.
[의무병! 의무병!] [정신 차려! 조금만 더 참아!]김 양은 쓰러진 자를 향해 달려가는 의무병을 멈춰 세웠다.
[정지.] [예? 하지만 위험합니다.]의무병의 말에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제일 교전 경험이 많은 김 양이었다. 지금 친위대가 장비하고 있는 엑소슈트도 시작은 김 양의 엑소슈트였다.
[위험하면 비상 시스템이 가동되겠지.] [그렇기는 하지만.]마루의 살기를 맞고 ‘살’ 당해버릴 뻔한 경험이 있는 그녀였다. 지금처럼 죽는다고 버둥거리는 모습은 위화감이 들 뿐이었다.
‘죽을 정도면 저렇게 움직이지 못하지. 암.’
무엇보다 보조 인공지능이 꺼져 있었다. 친위대의 엑소슈트에는 전부 보조 인공지능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 3명의 엑소슈트는 보조 인공지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헬멧 벗어.]김 양은 호들갑 떠는 두 사람에게 명령했다.
[대장님. 지금 윌리엄이 죽습니다.] [의무병! 빨리 어떻게 좀 해봐!] [헬멧 벗는다. 실시.]철컥-
김 양의 20mm 전용 벌컨포가 겨눠졌다.
끼드드득-
고개를 숙이고 있던 두 사람이 목을 돌리는 소리. 머리가 90도를 넘어 등판까지 돌아가 김 양과 다른 친위대원들을 향했다.
[씨발!] [FUCK!!!]투두두두둑!
욕설을 내뱉은 친위대원들과는 달리 김 양은 방아쇠부터 당겼다. 12.7mm를 거뜬하게 막을 수 있는 헬멧도 20mm 특수탄을 버티진 못했다.
퍼걱-!! 퍼더더덕!
뻐걱-!! 뻐걱뻐극!
신소재로 만든 헬멧이 터져나가며, 속에 든 검붉은 타르 조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장님!] [닥치셈. 화염방사기 대기!]친위대원들을 김 양의 명령에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화염방사기로 무장한 분대가 바로 화염방사기를 들이대자 즉시 방화를 명하는 그녀.
[쏴!]너덜너덜 구멍이 숭숭 엑소슈트를 향해 화염이 뿌려졌다.
끼에에에에에에-
그 홍염의 불길 속에서 뇌리에 파고드는 기괴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20mm 벌컨포에 머리통을 잃고 구멍이 숭숭 뚫린 엑소슈트가 버르럭 움찔거리는 모습.
[발사!] [완전히 멈출 때까지 멈추지 말고 쏴!]화염방사기가 불꽃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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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가장 많이 싸운 사람은 누구인가? 마루였다.
그렇다면 마루의 옆에서 가장 많이 싸운 사람은 누구인가? 김 양이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마루의 행동 양식을 곁에서 제일 많이 경험한 사람은 김 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녀는 마루의 선택과 가장 비슷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안쪽에 있는 파렛트(Pallet)를 이용해서, 저거 옆으로 밀어내.] [파렛트로 말입니까.] [그래. 손대지 말고. 화염방사기 대기하고.] [옛. 알겠습니다.]금고문 앞에 널브러진 숯덩이들을 옆쪽으로 밀어내고도 김 양은 방심하지 않았다. 일단 엑소슈트 때문이었다.
20mm 벌컨포로 구멍을 숭숭 뚫었다지만, 엑소슈트의 방염 성능은 끔찍하리만큼 좋았다.
애초에 들쥐를 비롯한 변이 괴수들이 창궐했을 때, 여차하면 통째로 불태울 요량으로 성능을 끌어올린 장갑인지라, 네이팜의 고온에도 끄떡없었다.
‘움직임이 없지만, 속에 뭔가 죽지 않고 버티는 게 있을지도 몰라.’
심 회장과 결합했던 검은 촉수만 해도 그랬다. 지긋지긋한 생명력을 보여줬던 것을 떠올린 김 양이었기에 방심은 없었다.
문제는 불태우면서 금고 속에 있는 산소가 급격하게 소모됐다는 점이었다. 공기 순환기가 달려 있었지만, 멈춰버린 지 오래.
‘화재 진압 장비도 작동되지 않고 있고. 비상등도 켜지지 않고 있어.’
비상시를 대비해서 산소통을 챙겨오긴 했지만, 앞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0시간 남짓이었다.
쿵- 쿵-
벙커버스터가 근처에서 폭발하는지 금고 내부까지 작은 진동이 전해졌다.
‘네이팜과 벙커버스터로 폭격하고 있는데 버티고 매복하고 있을 줄을 몰랐는데. 질기네. 괴물 새끼들.’
김 양은 쌓인 금괴를 보며 초조해지는 마음을 다스렸다. 노랗게 빛나는 묵직한 황금빛이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블랙 드레이크호에 있는 보조 인공지능 년이 아무리 병신년이라고 하더라도 신호를 보냈을 터, 마루 전용 고속 비행선이라면 반나절 전후로 도착할 게 분명했다.
그냥 탈출하는 건 수지가 맞지 않았다. 친위대 사망자만 최소 10명이 넘었다. 10명이나 죽었는데 금도 챙겨가지 못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런던을 날려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갈 순 없어.’
이건 금을 포기할 수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놈들을 싹 밀어야 해. 전멸을 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런던에 있는 놈들은 죽여야 해.’
괴물 새끼들이 사람의 ‘뇌’를 먹고 친위대 코스프레를 했었다. 헬멧을 벗겨보지 못해서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흉내 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들 분명히 ‘대장님.’이라고 불렀고 ‘의무병.’을 찾았다.
이놈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면, 신성 왕국의 정보도 어느 정도 털렸다는 의미였다. 근방에 있는 놈들을 전부 죽여서 입막음할 필요가 있었다.
쿠우웅-
쿵-
벙커버스터가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진동을 느끼며 김 양은 마루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규칙적으로 떨어지던 벙커버스터가 뚝 끊겼다.
[벙커버스터 타격이 끊겼습니다.] [네이팜 폭격도 멈춘 것 같습니다.]상황은 두 가지.
벙커버스터를 전부 소진했거나 아니면 마루가 도착해 블랙 드레이크호의 보조 인공지능 년을 멈추게 한 것.
둘 가운데 무엇일까?
‘인공지능 년이라면 벙커버스터가 떨어졌다고 폭격을 멈출 리 없지. 연산대로 잔량이 넉넉한 네이팜을 계속 뿌렸을 거야.’
김 양은 마루가 도착한 걸 알 수 있었다.
[최고 존엄께서 오셨다.]그분께서 친히 왕림하셨다는 선언에 친위대의 사기가 폭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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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드레이크호에서 규칙적인 폭격을 멈추자, 동작 감지 센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영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반경 1.8km~2.5km 범위에서 붉은 점들이 솟아나듯 생기는 모습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치익- 방해전파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고도를 높일까요? 치이익]고도를 유지하고 있는 블랙 드레이크호에서 들어온 통신. 안정적으로 공격하려면 고도를 높이는 게 좋겠지만,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고도 하강한다.”
[치이익- 방해전파뿐만 아니라 전자 장비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삐이익-]괴물들이 뭉치면 통신 장애뿐만 아니라 재밍(jamming)과 비슷한 영향이 있었다. 놈들이 지능이 있다는 가정하에, 비행선의 고도가 높아지면 폭격에 대비해 퍼질 가능성이 컸다.
반대로 고도를 낮춘다면? 저공 비행하는 비행선을 잡기 위해 재밍을 강하게 하려고 뭉칠 터. 지금은 위험하더라도 단숨에 놈들의 숫자를 줄여야 했다.
신형 비행선인 블랙 드레이크호와 마루의 전용 함선이라면 어느 정도는 버틸 터.
김 양과 친위대가 금고 속으로 대피한 지도 제법 오래됐다. 밀폐된 금고라면 산소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시간. 마루는 결정을 내렸다.
“저공비행으로 놈들을 뭉치게 한 뒤 융단폭격한다. 그리고 재밍이 약해지는 순간 드론과 까마귀를 총동원해 2차 폭격을 진행한다.”
[치이익- 명령 확인했습니다. 융단폭격 준비합니다. 삐이익]마루의 예상대로 고도를 700m까지 내리자, 붉은 점들이 하나로 뭉쳐 블랙 드레이크호 아래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생체감지 센서와 동작감지 센서가 겹쳐져 표시되는 모니터는 붉은 물결이 가득 차올랐다. 모니터에 바글바글 표시됐건만 눈으로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도로뿐.
네이팜으로 타올라 검게 그을린 도로만 선명한 모습. 분명히 검은색 괴물들이 보였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놈들의 영향권이라서 센서가 오작동했나?’
그렇다고 넘기기엔 느낌이 너무나 찝찝했다.
“까마귀 정찰대. 도로를 확인하도록.”
[까아악!]정찰 까마귀들이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통신과 영상이 끊겼다. 예상했던 것보다 강한 방해전파와 재밍.
[치지지지지직- 치지이이이이익]보조 인공지능이 무언가 통신을 보냈지만, 전부 씹혀버려 의미를 알 수 없는 잡음만 나왔다.
[블랙 드레이크호 균형을 상실합니다.]“비상 경광등으로 신호 전달. 더 내려가지 말고 균형 잡는 즉시 폭격하도록.”
거대한 블랙 드레이크호가 기우뚱 기울어졌다가 다시 균형을 잡는 모습.
우우우웅- 낮은 소리를 내며, 자세제어를 하던 외부 엔진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곤 폭탄을 뿌리기 시작하는 블랙 드레이크호였다.
[미사일을 쓸 수 없다고 합니다.] [고도만 유지할 수 있을 뿐. 동력계통 장애가 심각하다고 합니다.]까아아악!
내려갔던 까마귀 정찰대가 복귀했다.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는 EMP(electromagnetic pulse)라도 맞은 것처럼 고장 나 있었다.
“정보가 필요해. 자료를 복구할 수 있나?”
[본 함에는 복구 장비가 없습니다.]“까-적은- 도로처럼 위장-까-” (적은 도로처럼 위장하고 있습니다-)
“까악- 위장-능력 있는 적-까악!” (위장 능력이 있는 적입니다.)
“도로처럼 위장하고 있다고?”
“까악!” (넵. 그렇습니다!)
의태(擬態)한 채 움직일 수 있었던 건가?
현관과 창문, 방문, 천장, 벽 전부 고정된 상태였었는데, 도로로 위장해서 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이 혹한의 날씨에?
마루는 프랑스 서부 지역을 약탈했던 영국산 약탈자들이 한 짓이 떠올랐다. 약탈만 하고 가면 됐을 것을 사람들을 불태웠던 흔적이 역력했다.
당시에는 사이코메트리로 사람들을 태웠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이후 슬러그 식인귀, 슬러그 좀비처럼 변한 자들이 나와 그들을 죽인 건가 싶었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영국 약탈자들은 의태한 괴물들과 싸웠고 의태 괴물을 피해 얼어붙은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넘어간 것이라면?
이어지는 생각을 끊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조 인공지능이 보고했다.
[블랙 드레이크호 기동력 30% 복구했습니다.] [고도 상승을 요청하고 있습니다.]마루는 생각을 정리했다. 의태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일단 김 양과 친위대를 빨리 구조하는 게 우선이었다.
“주변 도로를 중심으로 폭격하도록.”
[명령 전달했습니다.]거대한 비행선이 느릿하게 움직이며 네이팜 탄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불바다가 되는 런던 시내.
“드론 폭격은 철회한다.”
[드론 폭격준비 중지합니다.]“까마귀 편대만 폭격하도록. 목표는 영국 중앙은행 인접 건물 전부. 인근 지역을 전부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까악!] (알겠습니다!)영국 중앙은행과 국제 금 실물거래소 주변이 통째로 불바다로 변했다.
‘신형 엑소슈트는 불에 강해. 불바다를 만들어서 놈들의 움직임을 억제해 놓으면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거다.’
마루는 김 양의 판단을 믿었다.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폭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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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팜이 끝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영국 중앙은행 지하 1층까지 뜨거운 열기가 가득찰 정도로 때려 붓는 폭탄 세례에 김 양의 눈빛이 번뜩였다.
[전부 챙겼음?] [한계 중량까지 챙겼습니다.]김 양은 불바다가 된 틈을 타 금을 옮길 생각 만반이었다. 불바다를 뚫고 왕복하면 되는 일이었다.
두툼한 금고문이 열리자, 뜨거운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네이팜을 뿌려댔는지, 지하 1층까지 타오르고 있었다.
‘역시 최고 존엄.’
믿고 있었다고. 김 양이 두 손 무거운 친위대원들과 함께 위로 올라갔다. 사방이 지옥처럼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느릿하게 유영하며 폭탄을 쏟아내고 있는 블랙 드레이크호와 저 멀리 하얗게 빛나고 있는 마루 전용 비행선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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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흐흐흐흐흐-]네이팜 불꽃에 그슬린 흔적이 선명한 엑소슈트들이 금을 쌓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김 양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흐흐흐- 헤헤헤헤헤-]기괴한 웃음에 중간중간 친위대원들이 김 양을 힐끗 돌아봤다.
그렇게도 좋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은 행복했다.
금고에 갇혔던 거? 위험했던 거?
금과 함께 살았으면 된 거 아닌가?
그런 김 양의 앞으로 다가서는 마루.
저벅저벅 성큼성큼 다가오는 마루의 모습에 그녀는 웃음을 멈췄다.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딸꾹-
어? 왜 갑자기 딸꾹질이.
스르르릉-
이클립스를 뽑은 마루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헬멧 벗어.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