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61)
러스트 [RUST]-661
“의태 괴물이 퍼진 건 이번 겨울인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다른 계절이었다면 영국 전체가 의태 괴물로 뒤덮였을 터, 교전 영상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블랙 드레이크호가 저공 비행하자 인근에 있던 의태 괴물들이 전부 모여든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거 위험한 거 아님?”
블랙 드레이크호를 의도적으로 노렸다는 것. 그거 위험하지 않나?
“확실히 그렇겠네요.”
[의태 괴물이 비행선을 노리고 공격했다는 이야기면 진짜 위험한데. 비행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걸 안다는 소리잖아. 비행선을 안다면, 날이 풀렸을 때 배를 쓸 수도 있고.]후드와 기순도 동의했다. 이미 변이 괴수 가운데 인간의 도구를 사용하는 것들이 나오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쥐. 들쥐와 불꽃 쥐들은 인간의 무기를 사용하곤 했다.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태블릿 같은 전자기기를 다룰 줄 알고 최근에는 간단한 문자를 보낼 수 있을 정도였다.
만약 의태 괴물도 그렇다면.
‘아니, 그렇다고 봐야겠지.’
머리를 잠식한 놈들이 기억을 뽑을 능력이 없으리라 넘어갈 일은 아니었으니까.
“비행선을 노렸다는 건, 놈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했다고 봐야겠군.”
마루는 커다란 모니터에 떠오른 런던 지도를 살폈다. 겨울이 지나면 런던을 중심으로 의태 괴물이 퍼질 것이다.
‘아마도 템즈 강(River Thames)을 따라 퍼지겠지. 일단 퍼지면 답이 없다고 봐야겠군.’
직접 싸워본 마루는 알 수 있었다. 금괴로 의태한 놈들 몇 마리만 나돌아다녀도 마을이고 도시고 뭐고 끝장날 터. 하다못해 커다란 빵으로 의태 하거나 베이컨, 치즈 따위로 의태 해도 좋다고 챙길 거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핵밖에 답이 없겠어. 그것도 진짜 위력 좋은 수소 폭탄으로.]“런던을 날릴 거면 파리도 같이 보내야 하지 않겠음? 파리 그쪽도 이상한 것들 있다며.”
기순과 김 양이 수소 폭탄을 주장했다.
“우리가 가진 핵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사만다의 연산 결과, 런던이나 파리를 핵으로 소독하려면 화구 지름이 최소 3~4km는 나와야 합니다. 그런 탄을 최소 3발에서 넉넉하게는 5발을 사용해야 완벽하게 소독할 수 있다고 합니다.”
50Mt 규모의 차르 봄바의 화구 반지름이 3.5~4km였다. 인공지능 사만다는 그 정도의 화력을 지닌 수소 폭탄을 사용해야 한다고 연산한 것이었다.
삑-
모니터에 인공지능 디아나와 사만다가 연산한 자료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런던과 파리 지하에는 쥐들이 살고 있었다.
런던의 쥐들은 의태(擬態) 괴물에게 잠식됐을 가능성이 컸고, 파리 지하수로의 쥐들은 슬러그(slug) 변이를 일으켰다고 봐야 했다.
지하수로, 지하 깊은 곳에 있을 놈들까지 확실하게 소독하려면 엄청난 화력이 필요하다는 연산. 확실히 지표만 불태운다고 다가 아니었다.
“런던과 파리만 처분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 않나? 그거 몇 마리라도 빠져나갔으면 영국 전체, 프랑스 전체 오염시키는 것들이니까. 이왕에 소독해야 할 거면 완전히 싹 밀어버리는 게 좋지 않겠음?”
김 양의 갸웃함에 후드가 부연 설명했다.
“사만다와 디아나의 연산을 결과, 의태 괴수도 그렇고 슬러그 변이체도 중심체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중심체. 명령계통의 최상위 개체. 왕 또는 여왕으로 불릴 만한 개체가 있다는 이야기.
[일리 있는 말이네. 의태 괴물들이 비행선을 노리기 위해 정교한 집단행동을 했다는 건. 아무래도 지휘 개체가 있다는 소리겠지. 무엇보다 런던과 파리는 중앙 정부가 있는 도시잖아. 그걸 순식간에 장악했다는 건 그만큼 지휘 개체가 뛰어나다고 봐야겠지.]“지휘 개체를 죽이면 놈들의 연계도 약해질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머리를 치면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시간을 벌 뿐만 아니라, 작심하고 소탕해야지. 그렇기는 한데···.]뒷말을 흐린 기순의 문자. 의태 괴물과 슬러그 괴물의 무기화, 자원화가 성공한다면 그건 막대한 이익이 보장된 것이었다.
“그렇겠네요. 슬러그 변이체만 하더라도 다양한 성분을 가진 기름을 추출할 수 있었어요.”
피부노화를 막는 성분도 있었고 자양강장(滋養強壯) 성분도 강력했다. 게다가 마취제, 수면제로 사용하기 좋은 성분도 있었다는 것.
“확실히 그 괴물. 마취, 마비 효과가 강했지.”
용병들이 당했던 전술 카메라 영상이 떠오른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태도 그거 의태인지 정말 모를 정도. 진짜 금인 줄 알았음. 무게랑 감촉이 완전 똑같았음.”
이건 의태 괴물도 마찬가지였다. 문어처럼 의태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의태 대상의 물질 구조를 비슷하게 복사해 냈다.
예를 들어 엑소슈트의 장갑에 의태한 놈들은 엑소슈트 장갑만큼은 아니지만, 그 구조를 흉내 내서 달라붙었던지라 방어력이 있다는 이야기.
“그럼 금괴 의태한 놈들은 금 구조 복사했으니까 일종의 금이 된 거?”
“그런 아니에요. 금 성분을 흡수해 겉만 위장했다고 봐야겠죠.”
나주연의 대답에 김 양은 실망했다.
하긴. 마루가 금괴로 의태한 놈들을 썰었을 때, 속은 그냥 검은 젤리같이 생긴 놈들이었다. 아쉬워하는 김 양과는 달리 기순의 문자는 급했다.
[잠깐. 그거 엑소슈트 장갑과 비슷한 성능의 장갑을 쉽게 뽑을 수 있게 된다는 소리잖아.]의태시킨 뒤 처리하면 남은 건 약간 성능이 떨어지는 장갑만 남는다는 소리 아닌가?
“아직 거기까지는 연구되지 않았지만, 그쪽을 연구하고 있기는 해요.”
연구하고 있다는 소리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의태 괴물을 이용해서 장갑이나 부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생산 혁명이었다.
“아니. 그건 폐기해야 해.”
마루의 목소리는 무섭도록 차가웠다.
“하지만 이용할 수 있으면···.”
“다시 말하지만, 놈들을 지워버린다.”
검은 촉수, 심 회장을 잠식했던 촉수, 의태 괴물, 슬러그 괴물 그딴 건 전부 쓸어버려야 했다. 마루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제국이나 남부 연맹에서 그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 두 나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치인이고 경제인이고 과학자고 할 거 없이 전부 침 흘렸겠지.”
블랙 드레이크호가 네이팜 폭격으로 런던 불태우는 영상을 크게 확대한 마루였다.
“통제할 수 있다. 이익이 된다. 신기술을 만들 수 있다. 이것만 써먹을 수 있으면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다. 그렇게 희망 회로를 돌리다가 저 꼴이 된 거고.”
“······.”
“······.”
“······.”
런던은 인기척 없는 도시가 됐다. 생존자들은 약탈자가 되어 프랑스를 떠돌고 있었다.
“우리는 저런 것들 없이도 충분히 신기술을 만들 수 있지 않나?”
마루의 단언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신성 왕국은 특이점을 돌파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 늦어도 10년이면 노화를 늦출 수 있게 되리라.
유 이사를 해체하고 분해해서 회춘의 비밀을 찾아내지 않더라도, 양자컴퓨터와 포도송이, 인공지능으로 비슷한 효과가 나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었다.
특이점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탈모도 마찬가지. 모낭 세포를 복제해서 꽂아버리면 그만이었다. 탈모를 원천적으로 예방하는 약도 거의 70%가량 완성 단계에 있었다.
보조 인공지능과 로봇, 드론의 도입으로 생산시설도 조금씩 확충되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
“신성 왕국을 건국한 이유가 뭐였지?”
신성 왕국을 만든 이유는 부자로 살기 위해서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신성 왕국을 만든 이유는 생존과 안전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했다.
그래. 신성 왕국을 만든 이유는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게 목적이었다면 제국에서 칼질만 하고 살아도 돈방석에 앉았을 터.
왕국이라는 테두리를 만들고 왕위에 앉은 것은 생존과 안전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의태 괴물과 슬러그 괴물이 신성 왕국의 안전과 생존에 도움이 되나?
지금 상황에서?
아니라면 배제해야 한다.
아닌가?
마루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의태 괴물과 슬러그 괴물을 쓸어 버린다. 수소 폭탄이 필요하다고 했지? 최대한 빨리 만들도록. 겨울이 끝나기 전에 런던과 파리를 소독한다.”
기순이 걱정했다. 프랑스 파리도 슬러그 괴물 소굴이 된 것을 보고 핵 쏘고 싶은 걸 참은 이유가 프랑스가 핵보유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슬러그 괴물과 의태 괴물은 그냥 두는 건 너무 위험해. 지금이야 우리가 먼저 발견해서 알아챘지만, 날이 풀려서 제국이나 남부 연맹이 그것들과 접촉한다고 생각해봐?”
눈이 돌아가서 연구하느니, 추가 샘플을 확보하느니 하다가 거하게 똥을 쌀 게 뻔했다.
마찬가지로 슬러그 괴물, 의태 괴물이 있다고 경고하는 것도 위험했다. 위험하다고 경고한 걸 꼭 찍어 먹어봐야 하는 놈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디아나 핵 방어 시스템은 어떻게 됐지?”
마루가 블라디 아크 타워를 건설할 때부터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폭격이었다. 이지스함을 털어다 인접 호수에 짱-박은 이유도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함이었다.
필사적으로 핵을 보유한 이유도 핵 억지력을 갖기 위해서였고. 다시 말해 갑작스러운 공격을 막기 위해서였다.
[핵 방어 시스템 80% 가동. 성층권 요격 시스템 정상 작동 중.]원거리 핵 요격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었다. 최소한 디트로이트는 안전했다. 기순이 화들짝 문자를 보냈다.
[아니. 잠깐 거긴 이지스함까지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나 있는 쪽은? 캐나다는?] [캐나다 지역도 대서양을 건너오는 공격은 방어 가능합니다.]“프랑스와 영국에 직접 가보니까 알겠더라. 쫄 필요 없어.”
중앙 정부의 기능이 마비된 상황. 프랑스는 식인귀들이 임시정부와 군을 장악했고, 영국은 약탈자들이 떠돌고 있었다.
“수소 폭탄을 우리가 날렸다고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지금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하- 씨- 그거 잡겠다고 하면 반대는 안 하겠는데, 그래도 그렇지 차르-봄바 급 핵을 4~5개씩 꽂는다는 건 좀···. 그거 지각 변동이나 그런 거 생기지 않겠냐?] [영국 런던에 투하할 경우 진도 5.5~6.2 사이의 인공지진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 파리는 진도 5.7~6.4 사이의 인공지진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소 폭탄밖에 답이 없는 거겠지?]“방법이 있다면, 런던은 블랙 드레이크호로 유인해서 계속 폭격하고 다니는 건데. 이것도 몇 번 당하면 방법을 찾지 않겠냐?”
[방사능 변이는?]“어차피 놈들 쓸어버리지 않으면 무슨 변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판이다. 최소한 우두머리는 죽여야 해. 지금. 겨울 지나기 전에.”
마루는 단호했다.
그렇게 신성 왕국에서는 차르-봄바급 수소 폭탄의 생산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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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붕어빵을 찍듯 순식간에 수소 폭탄을 뽑아댄 신성 왕국이었다.
“허허허. 이게 이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거였나?”
“인공지능에 양자컴퓨터까지 돌아갔는데 우리가 뭐 한 게 있나?”
“그러게 조립도 전부 로봇이 했으니까 우린 그냥 검수만 한 거지.”
“어쨌든 차르-봄바급 수소 폭탄을 만든 거 아닌가? 이런 경험을 누가 하겠어.”
“인류 역사에 다시 없을 수소 폭탄 폭격인데 이걸 놓칠 수 없지.”
“그래 괴물 새끼들 날리는 것도 날리는 거지만, 런던과 파리 아닌가?”
유서 깊은 도시의 마지막 장면을 눈에 담고 싶은 연구진과 기술진들이었다.
“보름 휴가 내고 갈 수 있을까요?”
[물리학 연구실 전원 휴가 신청입니다.] [원자력 연구실 전원 휴가 신청입니다.]···
···
연구진과 기술진들은 휴가를 신청하곤 블랙 드레이크호에 탑승하길 원했다. 자신들이 만든 수소 폭탄이 터지는 걸 보고자 한 것.
마루는 흔쾌히 허락했다.
폭격은 고전적인 방법으로 이뤄졌다. 성층권에 가깝게 상승한 뒤, 낙하산을 매단 수소 폭탄을 떨구는 방법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12km 상공에서 떨어진 수소 폭탄이 낙하산을 활짝 펼쳤다. 바람의 영향으로 이리저리 밀려났지만, 외부에 장착한 프로펠러가 가동하며 목적지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빛이 있었다.
다섯 발의 수소 폭탄이 동시에 폭발하며 만든 화구(火球).
반지름 4km에 달하는 작열(灼熱)지대가 무려 다섯.
마치 다섯 개의 태양이 동시에 소환된 것 같은 엄청난 열기.
런던은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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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버섯구름이 성층권을 뚫고 치솟았다.
“Oh- MY- GO—”
“JESU—”
“······.”
그 엄청난 광경에 사람들은 감탄사마저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 소름이 돋았는지 두 팔을 감싸고 있는 사람 등. 선실은 침묵에 싸였다.
[방사능 낙진 위험성은 연산 범위 내에 있습니다.] [미세 분진은 연산 범위를 벗어나 있습니다. 예측보다 많은 분진이 성층권까지 도달했습니다.]수소 폭탄 다섯 개가 동시에 터진 것은 전대미문이었다. 보수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어도 먼지의 양까지 완벽하게 계산하는 데 실패한 것.
[영국 남부지역에 핵겨울이 예상됩니다.]블랙 드레이크호의 보조 인공지능 전에이가 폭격 결과를 설명했다.
그렇게 몇 시간 뒤, 프랑스 파리도 지구에서 사라졌다. 핵겨울이 생긴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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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남부 연맹에서 수소 폭탄 사용에 대해 강력한 항의가 왔습니다]모를 수가 없겠지, 인공지진이 생겼으니까. 근데 그걸 우리가 했다는 증거가 있나?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해.”
마루는 일단 배를 째기로 했다.